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06화 (405/656)

제 406화

“형님! 도대체 언제 그만큼 진도를 나간 거예요?”

계속 쉐프님, 쉐프님 하다가 너무 놀라자 저절로 형님 소리가 나온다. 언젠가는 실력을 인정받고 큰형님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막 불렀다가 오히려 혼날지도 모른다. 강운종이 자신의 말실수에 놀라서 버벅거리는 동안 병철이 물었다.

“야! 너 연애한다고 말한 적도 없잖아. 그냥 만나서 밥만 먹는 거라며! 미미 씨가 어디 보자, 너랑 몇 살 차이냐.”

혼자 손가락을 꼽으며 숫자를 세어보던 민병철은 혼자 흥분해서 말했다.

“이 도둑놈 같으니라고! 우리의 아이돌인데!”

진혁이 태연하게 말했다.

“옛날에는 열다섯 살이면 다 결혼했어.”

명문 정파의 아들과 딸이라면 태중 혼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열서너 살짜리 아이들을 앉혀 놓고 약혼식을 거행하는 경우도 흔하다. 병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이 숙맥이 나보다 먼저 연애를, 아니 결혼을 하다니.”

“그런데 이틀밖에 안 쉬어도 괜찮아요? 준비할 것도 많을 텐데요.”

“난 그냥 몸만 가면 된다고 하던데?”

운종이 눈을 껌뻑거렸다.

“그러면 결혼식에 저희도 가도 돼요?”

“직원들 모두 정식으로 초대할 거야.”

“한국에서 한 번, 중국에서 한 번 하겠네. 그럼 우리는 당연히 한국 결혼식에 초대하는 거지? 이틀 중에 언제야, 날짜 빼놓게.”

진혁이 웃었다.

“<해와 달> 직원 일동은 중국 결혼식에 초대할 거야. 오가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시간 없어도 1박은 하고 가.”

“야, 이 자식아! 너만 일정 있는 줄 알아?! 난 일 안 하냐?! 나도 계획이 있고 일이 있는 사람이야!”

병철이 임진혁을 구박했다.

◈          ◈          ◈

그날 밤, 에드워드 해링턴은 드물게 상쾌한 마음으로 잠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들어갔다. 유난히 그날따라 몸이 가벼웠다. 그리고 놀랍게도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최근에는 침대에 누워도 잠이 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며 한두 시간 정도 시간이 걸렸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푹 잔 덕분인지 새벽에는 알람 없이도 네 시에 눈을 떴다.

몇십여 년 동안 없던 일이었다.

‘머릿속이 개운하군.’

그는 서른 살 이후로 자신의 생활 습관을 바꾼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식습관만이 아니라 일, 저녁마다 하는 산책과 주말마다 즐기는 골프 역시 변치 않는 습관이다.

몸 상태가 너무나 좋아서 신기할 정도다.

아침마다 있던 지긋지긋한 편두통도 없고, 시큰하던 무릎 역시 전혀 쑤시지 않는다. 몸이 깃털처럼 가뿐하다. 마치 스무 살, 한창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

명상을 한 것처럼 머리가 맑다.

‘내가 어제 뭘 했지.’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을 먹었고 병원 내 회진을 하였으며 진료를 했다. 여느 때와 같은 점심을 먹었고, 저녁을 먹기 전에 엉뚱한 것을 먹고 말았다.

‘베이글을 먹었지.’

동양인 쉐프가 직접 만들었다는 빵이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다학제간 회의를 한 다음에,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오후 회진을 하였다.

저녁 식사 후에는 추리 소설을 읽고 아내와 체스를 둔 다음에 잠자리에 들었다.

달라진 점은 단 하나밖에 없다.

‘간에 좋은 채소를 넣었다고 했나.’

빵을 아무리 맛있게 만들었다고 해도 그 빵 때문에 이렇게 상태가 좋아졌을 리는 없다. 동양에는 허브를 찌거나 말리고 빻아 환으로 만들어 복용하거나 탕에 다려 약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희귀한 약재를 넣었나.’

에드워드 해링턴은 반드시 그자를 다시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현대 미술에 관심도 없는 페이스트리 쉐프가 밥 앤더슨과 인연이 있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닐까. 효능이 뛰어난 약초를 빵이라는 형태로 공급하는 거겠지.’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여느 때처럼 양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후 계단을 내려가 식당에 앉았다.

멕시코인 가정부가 웃으며 접시를 내왔다.

「미스터 해링턴. 좋은 아침이에요! 에그 베네딕트와 소시지, 커피입니다.」

「고맙네, 마리아.」

손바닥만 한 평평한 빵은 베이글과 달리 납작하다. 마리아가 직접 구운 잉글리시 머핀에 얇게 썬 소시지와 샛노랗고 진한 올랑데즈 소스(Sauce Hollandaise)를 얹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잉글리시 머핀을 한 조각 잘라 입에 넣은 에드워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푸석푸석해.’

어제 먹었던 빵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조금 더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입천장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 빵에 비교하면 이건 분필 조각이나 다름없다.

「마리아.」

「미스터 해링턴?」

마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녀 역시 이제 젊은 나이는 아니다. 20대 시절에 해링턴 집안에서 일하기 시작해 어느덧 60대가 되어 보기 좋던 적갈색 머리도 새하얗게 세었다. 에드워드는 혀를 찼다.

「아무것도 아니야.」

소시지는 여느 때처럼 짭조름하고 맛있었다. 마리아 특제의 올랑데즈 소스 역시 알싸한 후추 향과 함께 싱그러운 레몬 향, 그리고 버터와 달걀노른자의 농후한 지방 맛이 조화를 이루어 먹기 좋았다. 다만 잉글리시 머핀만이 거슬렸다.

그는 결국 빵을 먹지 못하고 포크를 내려놓았다.

「미스터 해링턴! 아침을 남기다니요. 무슨 일이 있어요?」

마리아가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별일 아닐세.」

그는 접시를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근하는 에드워드 해링턴의 뒷모습을 보며 마리아는 근심이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서 즐겨찾기의 3번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네. 미시즈 해링턴. 미스터 해링턴이 아침 식사를 남기셨어요.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어요. 저한테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

◈          ◈          ◈

해링턴 클리닉의 베이커리 카페는 아침부터 놀라운 손님을 맞이했다.

윌리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사장님. 베이글이요?」

「그래, 여기 메뉴에 있는 베이글을 전부 주게.」

「각종 질환자용으로 따로 나가기 때문에 한두 개가 아닙니다.」

에드워드 해링턴이 이마를 찡그렸다. 그는 이런 식으로 변명을 늘어놓는 부하 직원들을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윌리엄은 페이스트리 쉐프로, 독립적인 가게를 경영하는 자다. 자신의 부하가 아니니 무어라 이야기할 수는 없다.

「기껏해야 두세 개 아닌가?」

당장 병원에서도 환자별로 식이를 구별하지만, 그렇게 세심하게 구분하지는 않는다. 정말로 개별식이 필요한 경우에는 외부 식이처방사의 도움을 받아 각자 구매하도록 하고 있다. 뇌신경외과 전문의인 그는 이 빵집에서 시스템적으로 빵을 구분해서 팔고 있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는 외부에 노출하지 않고 내부에서만 공개하는 메뉴판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얼마나 다양한 종류가 있는지 상상하지 못했다.

「맙소사, 기껏해야 저염이나 무염, 글루텐프리 빵 정도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당장 저희 가게에서 만들고 있지는 않지만, 주문받으면 만들 수 있는 빵만 해도 서른 가지가 훌쩍 넘습니다.」

‘대단하군.’

정말로 ‘병원에 적합한 형태의’ 베이커리다. 에드워드 해링턴은 그 동양인 페이스트리 쉐프가 꽤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는 조금 너그러운 마음이 되어 말했다.

「간에 좋다는 채소가 들어간 베이글을 주면 되네.」

「예? 그런 건 없습니다.」

「뭐?」

에드워드 해링턴은 눈썹을 추켜올리며 따지고 들었다.

「없을 리가 없어. 자네 회사의 사장이라는 페이스트리 쉐프가 나에게 직접 만들어 줬는데 말일세.」

「임진혁 쉐프님께서 직접 개발 중인 시제품이 아닐까요?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허, 참!」

「그럼 어떤 거로 주문하시겠습니까>」

에드워드 해링턴은 크게 실망했다. 당장 여기 오면 그 빵을 먹을 수 있을 줄 알고 회진 시간보다 조금 일찍 왔다. 그런데 원하던 빵을 구하지 못했다.

어제의 그 맛을 떠올리자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였다.

「동양에서 왔다고 했지? 일본인가?」

「한국입니다.」

「다 비슷비슷해서 말이지.」

「미국하고 캐나다가 다른 것처럼 다른 나라라고 하더라구요.」

「아아, 뭐.」

에드워드 해링턴은 한숨을 쉬며 베이글을 하나 골랐다. 그 쉐프가 만든 것이 아니라도 그가 언급한 채소가 들어 있는 베이글을 먹고 싶다. 하지만 어제부터 계속 베이글을 떠올리고 있었으니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기본 베이글이라도 먹고 싶었다.

「이거라도 주게.」

「예, 바로 드리겠습니다! 음료는 필요 없으신가요?」

「필요 없네.」

에드워드 해링턴은 빵 봉지를 받아서 성큼성큼 사무실로 향했다. 평소 외부에서 간식 따위는 절대로 먹지 않던 이사장이 카페에서 빵을 사 가는 모습은 직원들에게 크나큰 충격이 되었다.

「맙소사, 이사장님이 빵을 사 가고 계셔.」

「저기가 정말 맛있긴 맛있나?」

전공의들이 그 모습을 보고 수군거렸다. 이 흥미로운 소문은 금방 병원 전체에 퍼졌다.

「우리도 한번 먹어볼까?」

「그래, 몇십 년 동안의 습관을 깰 정도라면 거기 베이글이 진짜 맛있긴 맛있나봐.」

하지만 막상 사무실 안의 에드워드 해링턴은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맛없잖아.」

◈          ◈          ◈

한편 미미의 결혼식 대책 회의 본부는 한창 분주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최신 카탈로그를 넘기며 웨딩 화장 스타일을 연구하였다. 한국에서 웨딩 화장 전문가를 초빙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미미가 괜찮다고 거절해서 결국 일상 화장 전문인 그녀가 웨딩 화장도 맡게 된 것이다.

「으으, 나 따위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좀비처럼 퀭한 눈으로 자신의 손등에 옅은 핑크 펄 아이 쉐도우도 발라 보고, 연한 브라운 펄 아이 쉐도우도 발라 보았다. 그 옆에서는 스타일리스트와 미미의 패션 팀장이 격렬하게 논쟁했다.

「우리 아가씨의 허리는 세계 제일이야. 특히 등에서 허리를 거쳐 엉덩이까지 내려가는 라인을 살려야 한다고. 그럼 이 머메이드 라인 드레스가 제일 어울린다니까?」

「당연히 세계 최고지. 하지만 허리를 강조하려고 등을 벗길 필요는 없잖아! 여기 이 목까지 감싸는 벨 드레스로 하죠. 풍성하게 퍼지는 치맛자락이 오히려 더 허리를 강조하면서 신비감을 더해줄 거예요.」

옆에서 웨딩 헤어에 어울리는 티아라를 스케치하고 있떤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끼어들었다.

「헤어는 업스타일로 할 거예요. 목이 어느 정도 보이는 건 괜찮을지도 몰라요.」

「머메이드!」

「벨!」

「머메!」

「벨!」

하지만 옷이나 장신구는 가장 단순한 문제에 속한다.

왕 비서는 깨질 것 같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결혼계약서의 초안을 다듬었다.

「보통 계약서하고는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한 비서가 들여다보며 말했다. 왕 비서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크루즈 선 인테리어 공사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말씀하시는 검은색과 붉은색, 금색을 기본으로 새로 단장했습니다.」

일 년 동안 빠듯하게 준비해도 모자랄 큰 행사를 한 달여 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해치우려니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는 자신이 빼놓은 것이 없는지 일정 수첩을 뒤적거렸다.

「하객 명단은?」

「회장님께서 전부 확인하셨습니다.」

「초대장과 티켓은 보냈어? 중국행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매니저도 붙여 줘.」

「이번에 아예 여행사를 하나 고용했습니다.」

「그래, 잘했어.」

한 비서는 PDA를 들여다보다가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크루즈 내부에 그림을 전시할 수 있도록 온도와 습도를 설정한 전시실을 건설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만.」

왕 비서가 짜증을 냈다.

「돈 더 준다고 해! 회장님은 결혼 예물로 받은 그림을 결혼식과 함께 공개하고 싶어 하신다. 그 마음은 존중해 드려야지.」

「배 내부 구조를 변경할 수는 없다고 해서….」

「그럼 아예 아크릴 상자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 안에 그림을 넣으면 안 되나?」

「섭외해 보겠습니다.」

「그래, 하객 참석 여부도 확인하고.」

「예.」

왕 비서나 한 비서 역시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다크 서클이 짙었다. 왕 비서는 한 비서를 내보내고 다시 계약서를 꼼꼼히 읽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신뢰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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