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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403화 (402/656)

제 403화

바로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온 진혁은 윌리엄에게 통보했다.

「주방을 잠깐 쓰겠습니다.」

「예? 주방이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이사장님과 무슨 이야기를 한 겁니까?」

「별다른 이야기를 한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 당장 빵을 하나 만들어서 갖다 드려야 합니다.」

카페의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공원처럼 잘 관리된 꽃밭 한구석에 잡초처럼 무성하게 익숙한 풀이 자라난 것이 보였다. 아까 이 풀의 존재를 눈치챘던 진혁은 자연스럽게 허리를 숙였다. 아까 알아보았던 낯익은 다년생 식물이다. 미국에서는 잡초로 보아 그대로 두는 모양이다.

「뭘 떨어뜨렸습니까?」

진혁이 씩 웃었다. 이미 필요한 만큼은 전부 얻었다.

「이미 주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리 많은 양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옆으로 길게 뻗어 자라는 뿌리줄기는 남겨 두고 줄기와 잎새만 잽싸게 뽑았다.

‘꽃이 피기 전이라 다행이야.’

약쑥이라면 더 좋겠지만, 일반 쑥도 꽃이 피기 전에는 충분히 약용의 역할을 한다.

「지금 가게도 영업 중이고 주방이 좁고 번잡한데요.」

윌리엄이 곤란해하며 말했다. 이제 겨우 손발을 맞춰가는 주방 식구들 사이에 생판 남이 들어오는 것이 싫은 눈치인지 주방을 보여주기 싫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민병철이 조율했다.

「자, 자. 사람 한 명 들어갈 공간 정도는 있잖습니까? 그래서 주방 공간을 여유 있게 만들었잖아요.」

하지만 제과주방에서 일해보았던 진혁은 윌리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제가 무례한 부탁을 드렸군요.」

「복도에 사람이 들어갈 수는 있지만, 조리대라든가 오븐 전부 사용 중입니다. 계속해서 주문이 들어오고 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여기 병원 매점이 한 달인가 비었다가 저희가 그 자리에 들어와 어제 개업했잖습니까? 이제 막 오픈 빨을 받아서 손님들이 붙기 시작해서 정신없이 바쁜데요.」

사정을 들은 민병철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윌리엄은 주방으로 두 사람을 데려가서 입구를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과연 아주 좁은 공간 안에서 세 명의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에 덩치 큰 윌리엄까지 들어간다면 진혁은 아예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테이크아웃 카페 매장을 개조해서 제과주방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이전에 보았던 곳보다 더 좁았다.

진혁은 현실을 납득했다.

「그거야 그렇겠군요.」

임진혁은 오븐이나 조리대 따위가 없어도 빵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하고서 화장실에서 빵을 만들어올 수는 없는 일이다.

‘아냐, 그렇게 하면 되지.’

진혁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럼 저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군요.」

두 사람이 멍청하게 진혁이 들어 올린 손을 보는 사이에, 임진혁은 다른 손을 튕겼다.

마침 저쪽에서 주방 직원이 옮기고 있던 반죽이 탐났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2차 발효를 이미 마친 통밀 베이글 반죽을 조금 빌려 쓸 생각이었다.

‘이리 온.’

직원들의 시선도, 주방 감시카메라의 시선도 닿지 않는 사각 위치에서 딱 한 개 분량의 베이글 반죽이 슈르륵 날아왔다.

통밀 베이글은 이제 끓는 물에 양쪽이 튀겨지고, 200도 예열된 오븐에서 20여 분간 구워질 것이다.

진혁은 그 두 가지 모두 할 수 있었다.

‘다른 재료가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다져진 채소 두 종류를 챙겼다.

잘게 다져진 채소들은 저마다 보호하는 공기층에 감싸여 임진혁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왔다. 누군가 본다면 염동력이라 오해할만한 광경이다. 실은 단순히 허공섭물을 이용했을 뿐이다.

이 주방 내의 공간을 지각하여 다른 이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움직이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하지만 윌리엄을 설득하기도 귀찮았고, 움직이면서 CCTV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도 번거로웠다.

조금 전까지 얄팍했던 진혁의 양복 속주머니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비닐이나 봉투 따위는 필요 없이, 공기층으로 감싸 오물이 묻지 않도록 보호했기에 조금 더 부피가 컸다.

그는 이 부피 변화가 부자연스럽지 않도록 양쪽 주머니에 절반으로 나누어 담았다. 그리고 종이봉투를 하나 챙겼다.

그는 차라리 화장실에서 빵을 만들기로 했다.

‘살다 살다 별걸 다 해보는군.’

베이글은 다른 빵보다는 오히려 만드는 시간이 짧은 편이다. 치아바타처럼 발효에 18~21시간가량 걸리는 빵과 비교하면 더 그렇다. 1~3시간으로 발효가 전부 끝나버리고 이십여 분 내에 구워낼 수 있는 베이글은 정말로 금방 만들어낼 수 있는 빵이다. 그러나 밀가루와 드라이 이스트, 소금과 달걀 등을 전부 빼 오는 것보다는 반죽을 가져오는 게 더 편하다.

다만 남이 만들어놓고 발효까지 마쳐놓은 반죽으로 빵을 만드는 건 처음이다.

‘쑥은 데친 다음에 갈자.’

원래라면 발효를 마치기 전에 섞었어야 할 쑥을 이렇게 늦게 넣었으니, 쓴맛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찌고 난 후 갈아놓은 브로콜리와 당근, 건포도를 섞어 이 쓴맛을 묻을 계획이었다.

모두 간에 좋은 재료들이다.

두 사람을 뒤로 하고 화장실로 걸어가며 그는 반죽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다.

베이글을 만드는 방법은 수만 가지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발효 시간을 줄여 옛날 방식- 즉 ‘올드 스타일’대로 쫄깃쫄깃하고 무거운 식감이 되게 하거나, 발효 시간을 충분히 늘려 식감이 부드러워지게 하는 ‘소프트 스타일’이 있다.

노인 환자가 많은 특성상 여기서는 당연히 소프트 스타일 반죽이 대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반죽은 올드 스타일이었다.

‘일부러 이렇게 한 건가.’

진혁은 이편이 마음에 들었다.

노인이라고 전부 이가 약한 것만은 아니며, 부드러운 것보다 씹는 것을 좋아하는 이도 있다. 아까 그 이사장은 틀니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치아 역시 건강했다. 입을 열었을 때 드러났던 치아의 흠집을 보면 이것저것 씹는 것을 즐기는 이가 분명하다.

임진혁은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손을 씻는 동안 바로 곁의 거울 속에는 초능력 히어로 영화 속에서나 나올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갓 채취한 쑥이 허공에 떠올라 물에 씻겨지는 중이다.

이렇게 길가에서 채취한 쑥은 거리의 미세 먼지나 매연이 묻어 있는 경우가 많기에 제대로 씻어야 한다.

뽀글뽀글 공기 속에서 피어오르던 물방울은 멍울처럼 덩치를 키우며 쑥에 비벼졌다. 묻어있던 흙과 먼지, 오물이 물방울에 묻어서 떨어져 나간다.

조금 전까지 흙먼지에 뒤덮여 있던 쑥은 완연히 깨끗하고 싱싱해져 당장이라도 판매용으로 내세울 수 있을 정도로 말끔해졌다.

진혁은 염화기공을 일으켰다.

새로운 물 덩어리는 팔팔 끓어올라 순식간에 쑥을 익혔다. 삶겨진 쑥은 유리창이 깨지는 것처럼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나가 진녹색 가루처럼 변했다.

쫄깃쫄깃해질 반죽에 쑥과 당근, 브로콜리 가루가 섞여 들여갔다.

‘쑥보다는 당근을 더 많이 넣어서 단맛이 많이 나는 편이 좋겠어. 브로콜리는 쑥 맛을 숨길 정도만 조금 넣고.’

남이 만든 반죽이기에 더 신경을 써서 비율을 조정했다. 진기를 조금 흘려 넣어 반죽이 생생하게 살아나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 굽기만 하면 되겠군.”

레시피대로라면 양면을 각각 20여 초씩 뜨거운 물에 데쳤을 것이다. 진혁은 허공에 뜨거운 물 덩어리를 띄우고 빵 반죽을 통과시켜서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맞춤 염화기공으로 빵을 구웠다.

‘2~3분 정도만 더 있으면 되겠어.’

그가 생각하기에 화장실에서 있어도 괜찮은 시간은 대략 5분 정도.

3분간 직접적으로 염화기공에 노출된 쑥 베이글은 내부에서부터 점차 익어가기 시작했다. 미리 들고 왔던 종이봉투에 빵을 넣은 진혁은 다시 손을 씻고 화장실을 나섰다.

「진혁 쉐프님, 당장은 아니더라도 한 두어 시간 후에는 주방을 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윌리엄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에?」

「너 뭔가 주방이 필요하다며? 빵 만들어야 한다며.」

「생각해보니까 어제 만들었다가 남겨둔 빵이 하나 있더라고, 그걸 갖다 주려고. 병철이 형은 가서 운종이 좀 봐 줘.」

그는 눈에 보이게 종이봉투를 들어 보이며 민병철에게 당부하였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지요,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못했던 것이 생각나서요.」

◈          ◈          ◈

이사장실로 다시 돌아가던 중, 진혁은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진혁 씨, 그림은 잘 받았어요. 이런 큰 선물을 제게 줄 생각을 하고 계셨다니 전혀 몰랐어요.」

기쁨에 가득 찬 미미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혁이 대답했다.

「별 것 아닙니다.」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서울 본사 먼저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한정판 케이크를 판매했으면 좋겠어요. 그림의 소유와 권리 이전에 대한 발표도 같이 하면서 결혼식 날짜도 같이 알리죠.」

「예?」

순식간에 진행되는 절차에 진혁이 반문했다.

「결혼식 날짜를 정했습니까?」

「아이, 참. 별장이 생각보다 빨리 완공됐지 뭐예요. 어머님 아버님께 한시라도 빨리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 이번에 찾아뵈었어요.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오지 뭐예요? 당연히 두 번 하는 거로 생각하고 계시더라구요. 진혁 씨도 동의하지요?」

임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생각 외로 진도가 빨랐다.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호호호호호. 소망시 외곽에 짓기 시작한 3층 집이 내달에 완성될 거예요. 마당이 딸려 있는 곳이니 거기서 <해와 달>의 직원과 진혁 씨의 친척분들을 초청해서 야외 결혼식을 올리면 어때요?」

‘뭘 짓고 있다고? 집을?’

진혁이 입을 뻐끔거리는 사이에 미미가 대답했다.

「지금 진혁 씨의 부모님이 계신 집에 추억이 서려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보안상으로 너무나 취약해요. 남해의 무인도에 있는 별장은 충분히 안전하도록 설계했지만, 거기에 내내 계실 건 아니니까요. 아시다시피 혹시나 진혁 씨나 저에게 위협을 하고자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두 분이 위험에 처할 수 있잖아요?」

진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군요.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지금은 대부호와 결혼하는 셈이다. 일월신교의 교주 역시 지위가 높아지면서 인질이 될 만한 자들을 안전한 곳에 둔다. 임진혁은 이 결혼으로 인해서 무엇이 바뀌는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결혼 소식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과 진희 씨에게 경호원을 보냈어요.」

「감사합니다.」

「중국에서 하는 결혼은 연안에 크루즈선을 띄우고 거기서 하려고 해요. 다음 달 15일, 22일, 27일, 28일 중에서 골라 주세요.」

진혁은 자신의 일정을 떠올려 보았다.

「15일이나 22일이 좋겠군요.」

「우오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드디어어어어어어!」

전화기 너머에서 갑자기 비명처럼 환호성이 들려왔다. 이전에 들었던 스타일 팀의 목소리 같았다.

「미미 씨?」

「아니, 아니에요. 그럼 15일에 한국 결혼식을 진행하고, 22일에 중국 결혼식을 진행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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