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93화 (392/656)

제 393화

그리 크지 않은 크기의 3단 케이크는 흑갈색 초콜릿 글레이징으로 깔끔하게 덮여 있었다.

하지만 검지만은 않았다.

중간중간 노랑과 분홍, 하늘색 점들이 불꽃놀이를 위해 밤하늘에 쏘아 올린 폭죽처럼 찍혀 있다.

최근 진혁이 주로 사용하던 색깔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달콤한 코코아 향이 어슴푸레하게 풍겼다.

「어서 오세요, 진혁 오라버니.」

미미가 방긋 웃었다. 진혁은 새로운 호칭에 놀랐다.

「오라버니요?」

카트를 끌어당겨 미미 곁에 놓았다.

「미미 씨가 좋아하시는 맛의 케이크입니다.」

「초콜릿 케이크인가 봐요!」

「드셔보시면 아실 겁니다.」

진혁은 젓가락을 들어 케이크를 깔끔하게 갈랐다. 볼 때마다 감탄이 나는 솜씨에 미미가 슬며시 웃었다.

「그렇게 잘 자르시는 분은 진혁 오라버니밖에 없어요.」

「별 것 아닙니다.」

진혁이 케이크를 크게 한 점 잘라서 미미 앞에 내려놓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향이 언뜻 풍겨왔다. 미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케이크는…, 부모님과 가족분들에게는 드리지 않으시고요?」

「이건 미미 씨 케이크예요.」

황미미는 두 번 사양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색하게 케이크에 포크를 가져가며 속삭였다.

「그래도 두 분 먼저 챙겨 주셔야 하는 게 아닌가요?」

「저희 부모님은 탄산음료를 별로 안 좋아하셔서 괜찮습니다.」

「네? 탄산음료요?」

임진혁이 콜라를 몇 병 주문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작업하면서 마시려고 부탁한 줄 알았다.

포크를 찍자 초콜릿색 케이크 덩어리가 찐득하게 달라붙었다.

멋지게 부풀어 오른, 촉촉하고 포슬포슬한 케이크가 아니다.

‘브라우니가 아니네?’

미미는 엿가락처럼 끈덕지게 포크 사이사이에 늘어지는 케이크 덩어리를 한 점 입에 넣었다.

「웃.」

끈적하리라 예상했던 케이크는 입안에 들어오자마자 눈처럼 사르륵 녹았다. 투박하고 단순한 모양에서는 예상할 수 없었던 맛이다. 그녀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맛에 놀라 포크를 떨어뜨릴 뻔했다.

「푸핫!」

분명히 입안에 들어갈 때는 고체였다.

하지만 입안에서 혀에 닿자마자 부드럽게 녹아내린 케이크는 톡톡 튀는 탄산음료 특유의 청량감과 함께 목구멍을 넘었다.

씹히는 식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순간 걸쭉한 코코아처럼 입안을 장악했다가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다.

꼴깍꼴깍 음료를 마시듯 케이크를 삼킨 미미가 눈을 깜빡거렸다.

「이건 정말로 콜라네요.」

무슨 냄새인지 모를 향이 살짝 섞여 있다고 생각했는데, 콜라 냄새였다.

그녀는 다시 한 번 포크를 가져가 케이크를 떠먹었다.

평소에 콜라를 마실 때는 한 번에 작은 캔 하나만 따서 아끼듯이 조금씩 마셔 왔다.

아무래도 여배우인 이상 체중 관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달콤하고 칼로리가 높은 콜라를 자주 마실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케이크는 그것보다 더 농축되고 진했다.

「너무 맛있어요.」

탄산 특유의 코끝까지 톡 쏘는 맛까지 완벽하다.

‘이런 마음이구나.’

느끼하지 않으면서 담백하다. 진혁이 말했다.

「약용 성분인 카카오 열매를 베이스로 사용했고 추가로 사용한 설탕 역시 비정제당을 썼습니다. 콜라보다는 건강에 좋을 겁니다.」

미미는 계속 포크를 움직였다. 먹으면서 온몸에 활력이 솟아올랐다. 달콤하고 톡톡 쏘고 다시 또 달다. 파도에 휩쓸려가는 것처럼 매력적이고 풍성한 맛의 향연에 그녀는 눈을 감았다.

‘진혁 씨는 나를 아끼고 계셔.’

예전에 선물 받은 콜라 맛 사탕은 차마 먹지 못하고 소중하게 보관해두었다.

하지만 이 케이크는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아예 맛을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먹기 시작한 이상 멈출 수가 없다.

그녀는 숫제 포크를 던져 버리고 그냥 수저로 떠먹었다.

진혁이 흐뭇한 미소를 띠고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먹을만합니까?」

사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고 언제나 무표정을 고수하는 편인 진혁이다.

그런 그가 초승달처럼 호를 그리는 눈을 하고서 환하게 웃고 있다.

케이크의 맛과 그 시선만으로도 미미는 확신했다.

‘나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보들보들한 케이크에 진하게 베인 콜라 맛에서 깊은 연정(戀情)이 느껴졌다.

‘방법이 조금 서툴고 표현이 약간 부족하면 어때.’

지금 이 사람에게는 나밖에 없다. 발끝까지 전신에 관통하는 모세혈관을 깨우는 것처럼 진한 콜라 맛에 그녀는 부르르 떨었다.

「아주, 아주 맛있어요.」

미사여구를 붙일 수가 없었다.

그저 맛있을 뿐이다.

단순한 그 말에 진혁이 피식 웃으며 조금 더 덜어주었다.

「조금 더 드세요.」

「진혁 오라버니도 드셔야지요.」

「만들면서 많이 먹었습니다.」

미미는 다시 사양하지 않았다. 그녀는 수저조차 내려놓고 케이크를 접시째 들어 올려 호로록 마시기 시작했다.

그녀는 꽤 큰 양의 케이크를 순식간에 해치워버리고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잘 먹었습니다.」

접시는 케이크가 있었다는 흔적 한 점 남지 않았다. 방금 설거지한 것처럼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를 보고 진혁은 웃어 버렸다.

「잘 먹네요.」

「진혁 오라버니.」

「예?」

「케이크가 너무 맛있어요.」

미미가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진혁이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전에 이야기한 대로 매일 먹을 수 있게 준비하겠-.」

진혁은 더 이상 말소리를 낼 수 없었다. 부드럽고 말캉한 입술이 입술에 마주 닿으며 콜라 향이 언뜻 섞인 입김이 강하게 느껴졌다.

한순간 닿았던 입술은 바로 멀어졌고, 진혁은 자유로워진 입술을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깜빡였다.

‘하마터면 공격할 뻔했네.’

그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미가 고개를 앞으로 숙이면서 다가오는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수도로 미미의 목을 내려칠 뻔했다.

평소처럼 자동반사적으로 행동했다면 미미는 그 자리에서 목뼈가 부러져 버렸을 것이다.

죽이는 건 쉽지만 살리는 건 어렵다.

한순간의 실수로 황태명의 손녀이자 자신이 돌봐주기로 약속한 여인을 죽여버릴 뻔했다.

그는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심호흡을 했다.

‘여기에 나를 암살하려고 하는 이들은 없어. 더 이상 경계하지 않아도 돼.’

미미는 거리낌 없이 임진혁의 안전거리 내에 들어서서 귀엽게 눈웃음을 쳤다.

「많이 놀라셨어요?」

진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황미미가 수줍은 듯이 해맑게 웃었다.

「키스 정도로 이렇게 놀라면 손은 어떻게 잡으려고 해요.」

자연스럽게 진혁의 손 위에 작은 손이 겹쳐왔다. 작고 하얀 손은 마디가 굵은 진혁의 손을 전부 감싸지 못했다.

그녀는 차갑고 딱딱한 고리를 진혁의 왼손 약지에 살짝 끼웠다.

진혁이 물었다.

「이건 뭡니까?」

「별거 아니에요, 건강을 기원하는 반지예요. 몸에 지니고 있으면 신체의 원기가 금방 회복된대요.」

임진혁이 미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럼 직접 끼고 다니시는 게.」

「제 것도 있어요.」

미미가 왼손을 펼쳐 자랑스럽게 자기 손에 있는 반지를 보여주었다. 어렴풋하게 붉은색 그림자가 비추어 보이는 투명한 보석이 조명을 받아 휘황찬란하게 빛을 반사했다.

보석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번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주에 또 봐요. 오라버니!」

진혁이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난 후,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서 사무실로 향했다.

수석비서실장인 임 비서를 비롯한 팀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 고용한 연애 컨설턴트가 그녀를 나무랐다.

「미미 씨. 너무 성급하셨어요.」

「으아아아아.」

미미가 양손으로 뺨을 감싸고 앓는 소리를 흘렸다. 왕 비서 역시 말했다.

「회장님! 반지를 벌써 줘 버리면 어떡해요. 나중에 제대로 프러포즈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게.」

헤어스타일리스트가 발을 동동 굴렀다.

「갑자기 그렇게 먼저 키스를 하는 것도 좋지 않았어요. 입술을 살짝 내밀고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도록 기다리셔야죠!」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안타까워했다.

「오늘 키스할 걸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제가 키스할 때 완벽하게 유혹할 수 있는 꿀 립밤을 발라드렸을 텐데요.」

「괜찮아, 콜라 맛 케이크를 바르고 있었으니까.」

「케이크하고 립밤은 다르죠!」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지, 뭘.」

300쌍의 결혼을 성사시켰다는 연애 컨설턴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그 상황에 꼭 먼저 키스를 하셨어야 했습니까? 많이 당황하신 것 같던데요.」

「내가 삼백 년 동안 오리 주둥이처럼 입술을 내밀고 있어도 진혁 씨가 먼저 키스를 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관계에 있어서 서두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첫 키스를 하자마자 반지까지 바로 주실 필요도 없고요.」

CCTV를 통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연애 컨설턴트가 한숨을 쉬었다.

「상대방에게 반지를 주면서 부담스러운 말이나 행동을 하지는 않으셨습니까?」

「….」

미미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진혁 씨가 한 번도 연애해본 적이 없는 건 알고 있었어. 그래도 살짝 입술만 스쳤을 뿐인데 놀라서 뻣뻣하게 굳어버리시길래.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만….」

「그래도 우리 미미 회장님의 첫 키스는 장미꽃밭을 배경으로 악단이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가운데 하셔야 했는데 말이에요! 아휴!」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발을 동동 굴렀다.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회장님의 첫 키스는 공연이 아니야.」

미미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어. 더이상 컨설턴트님의 조언은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예?」

「당신은 해고예요.」

왕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연애 컨설턴트를 바깥쪽으로 안내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고 나자 미미가 웃었다.

「서로 마음만 통하면 됐지, 순서 따위가 무슨 소용이람.」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반색했다.

「회장님 말씀이 맞아요! 다음에는 키스를 하려고 할 때 꼭 미리 말씀해주세요. 제가 키스를 부르는 립 아이템을 종류별로 전부 준비해 두었답니다.」

「다음에 만나면 정식으로 날짜를 잡자고 해야겠어.」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런데 임진혁 CEO님이 과연 왼손 약지의 반지 의미를 잘 알고 계실까요?」

「상식이잖아?」

「의외로 모르실 수도 있어요.」

「….」

한 비서가 제안했다.

「가족분들을 통해 아실 수 있도록 전달해 둘게요.」

「그래, 부탁해요.」

◈          ◈          ◈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진희가 큰 소리를 냈다.

“오오~ 임진혁!! 이 반지는 뭐야? 커플링?”

“비슷해.”

“커플링이면 커플링이지 비슷한 건 또 뭐야?”

“나도 잘 몰라.”

“처음 보는 보석인데 예쁘다.”

어머니가 고개를 쭉 빼서 임진혁의 손을 응시했다.

“브릴리언트 커팅으로 한 게 딱 다이아몬드 같은데, 이런 색깔은 처음 봐. 진혁아. 이게 뭐니?”

“글쎄요.”

“네가 산 게 아니야?”

“미미 씨가 사서 준 건데요.”

어머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진희가 입을 딱 벌렸다.

“뭔가 답례로 너도 선물을 해야 하지 않겠어?”

“케이크 줬어.”

“아, 먹을 거 말고! 보석을 받았는데 먹을 거로 갚으면 어떡해!”

어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희가 물었다.

“이 정도 크기 다이아몬드인 데다가 왼손 약지면 완전히 약혼반지인데?”

묘하게 연기하는 것 같은 말투에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아버지가 물었다.

“너희들 식은 언제 하려고 생각 중이냐? 이야기는 좀 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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