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88화 (387/656)

제 388화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상자였다.

“넥타이?”

“재미없게 바로 맞추네.”

아버지 것과 같은 무늬지만 색깔은 다르다. 선명한 붉은색 넥타이를 손에 들고 진혁이 눈알을 굴렸다.

“…….”

명품 실크 넥타이는 부드럽게 손에 착 감겼다. 진희가 재잘재잘 떠들었다.

“네가 좋아하는 색깔로 골랐어. 이제 그 망할 놈의 티셔츠들 버릴 때도 됐잖아. 양복 수트를 빨간색으로 맞춰 입을 수는 없으니까, 넥타이만 포인트로 하고 수트는 남색이나 검은색으로 입자고.”

어머니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돈은 내가 냈다.”

“고맙습니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진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런 건 안 사줘도 되는데.”

진희가 톡 쏘았다.

“사주면 그냥 냅다 고마워하고 받아! 원래 소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야.”

“어어.”

“넥타이에 어울리는 수트는 네가 직접 사 입어. 내가 명동의 백화점에 봐놓은 거 있으니까, 귀국하고 같이 가자.”

“옷은 충분히 많이 있는데?”

“돈도 많은 녀석이 맨날 양복 두 벌만 갈아입는 걸 모를 줄 알고? 이번에 아예 제대로 된 걸로 맞추자고.”

“…….”

“이거 이렇게 많이 사면 세금만 엄청나게 많이 내는 거 아니냐?”

아버지가 걱정스레 물었다. 진희가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아빠. 네 명 한도에 딱 맞춰서 샀어요.”

“그런데 이렇게 많아?”

“미리 인터넷 면세점에서 산 다음에 여기서 받은 거예요. 온라인에서 쿠폰 할인받으면 할인율이 높아지거든요. 신용카드 할인이랑 출석 할인 다 받았어요.”

진희는 물건을 하나하나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임진혁이 중국 여행을 그렇게 맨날 다니면서 선물 한 번 사 온 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회사 사람들 나눠줄 걸 좀 따로 챙겨봤어요.”

자기 것은 없고 다른 사람들 선물만 잔뜩 샀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뭘 그리 사나 했는데.’

진혁이 미간을 좁혔다.

그는 잡지 비치대에 꽂혀 있던 카탈로그를 내밀며 말했다.

“진희 네 것도 좀 사지 그래.”

그녀가 키들키들 웃었다.

“그럼 면세 한도 넘어서 안 돼.”

“그깟 세금 좀 내면 되지. 넌 뭐 사고 싶었던 것도 없어?”

“없네요, 없어.”

“…….”

이전에 사서 주었던 건과일들은 그다지 기뻐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진혁은 마음속 할 일 목록에 ‘진희 선물 사기’를 추가했다.

그동안 임진희는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며 일등석을 한껏 즐겼다.

“우리 여기 배경으로 사진 좀 찍자. 엄마, 이쪽으로 좀 친한 척 얼굴 좀 내밀어 봐요.”

그녀는 언제 챙겨왔는지 셀카봉까지 길게 뽑아 들고 여러 장 사진을 찍었다.

가족 전부의 얼굴이 사진 한 장에 전부 들어갈 수 있게 하면서도 자신의 얼굴은 제일 뒤쪽에서 조그맣게 나오도록 신경을 썼다.

서너 시간밖에 되지 않는 짧은 비행 동안 와인도 나오고, 간식도 나왔다.

“이 자리 진짜 넓다. 접시가 올라가도 자리가 넉넉하게 남네. 소보루 반죽도 할 수 있겠어.”

아버지는 테이블을 만지작거리며 감탄했다.

“여보, 반죽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고기를 드세요.”

어머니는 스테이크 위에 올라간 붉은 소스를 한 입 찍어 맛보았다.

“소스가 참 맛있네.”

“엄마, 고기 드세요. 진짜 부드럽고 입에서 살살 녹아요.”

“너야말로 사진 그만 찍고 밥부터 먹어!”

가족들이 스테이크를 집어 먹는 동안, 진희는 사진을 찍고 있었다.

레드 와인 소스가 올라간 스테이크에 사이드로 나온 샐러드는 물론이고, 식사 중인 가족들까지 열심히 촬영했다.

“자, 진혁이 너는 이제 스테이크하고 네 얼굴이 동시에 보이게 접시를 들어 올려 봐.”

“이, 이렇게?”

“응!”

“이럴 거면 차라리 먹기 전에 찍자고 하지, 왜 먹다 만 스테이크를 찍으려고 해?”

“그게 더 실감 나잖아. 네가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중이다, 라는 거지.”

“…….”

“진희야, 그만하고 네 스테이크 먼저 먹어. 식겠다.”

“그냥 바로 먹지.”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언제 또 우리 가족이 이렇게 모이겠냐고.”

“으음.”

그녀는 여행을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전부 기억해둘 태세였다.

“이거 돌아가면 포토북으로 만들어서 다 한 권씩 줄 거라고요.”

“아이구. 그래도 사진만 찍느라 현재를 즐기지 못하면 어떡하냐. 적당히 해.”

어머니가 웃으며 진희의 어깨를 도닥였다.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 이제 자주 모이면 되지.”

비행을 마치고 중국의 공항에 도착하자, 황미미가 보낸 사람들이 마중을 나왔다.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나와 짐을 들어주자 진희가 민망해했다.

“괜히 너무 많이 샀나 봐.”

양복 입은 남자들이 무표정하게 면세점 로고가 찍힌 쇼핑백을 잔뜩 들고 가는 모습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진혁이 킥킥 웃었다.

“그래, 많이 사긴 했어. 다음엔 선물 신경 쓰지 말고 네 것만 사라.”

“흥.”

보안 검색을 통과하자 또 다른 남자들이 나타나서 짐을 챙겨주었다.

「저희가 짐을 찾아서 숙소로 바로 보낼 테니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네 명이 짐을 찾으러 가는 동안, 한 명은 주차장으로 안내해 주었다.

주차장에서는 기사 딸린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무사히 리무진에 타고 난 후에 어머니가 소곤거렸다.

“이 사람들이 다 회사 사람들이니?”

아버지가 심각하게 말했다.

“나중에 팁이라도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니냐? 덕분에 아주 편하게 왔구나.”

“아니, 아버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자동차는 다시 거리를 달렸다.

리무진 안에서 진희는 바빴다.

미니바도 열어 보고, 조명도 켰다가 꺼 보고, 창문도 내렸다가 다시 올려 보았다.

진혁이 킥킥 웃었다.

“꼭 촌티 낸다.”

“가만히 있어 봐, 사진 좀 찍게.”

“이 안에서 사진을 또 찍는다고?”

“리무진을 또 언제 타 보겠어.”

“그래, 마음껏 사진 찍게 둬라. 좀 찍을 수도 있지.”

어머니도 진희 편을 들었다.

“그 뽀샵으로 얼굴 좀 하얗게 해 주고.”

“당연히 필터 켰죠, 후후.”

- 찰칵, 찰칵.

어머니와 진희는 함께 얼굴을 맞대고 몇 장이나 더 사진을 찍었다.

눈을 감기도 하고, 입을 벌리기도 하고, 일부러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 사진의 배경에는 전부 리무진 내의 무언가가 포함되어 있었다.

미니바나 푹신한 좌석, 아니면 창가 등이다.

“엄마, 여기 이 로고가 잘 보이게 얼굴을 움직입시다.”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다.”

행복해 보이는 모녀를 보며 진혁이 물었다.

“……진희 너 운전은 좀 하냐?”

“아니, 완전히 장롱 면허야. 알면서 왜 그래.”

“음.”

진혁은 임진희에게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지 결정했다.

‘기사 딸린 리무진이면 되겠다.’

자동차는 세 시간 정도 도로를 달렸다. 첫 30분 동안 격렬하게 사진을 찍은 진희는 편안한 자세로 널브러졌다.

“흐아, 편하다. 넓은 게 좋긴 좋네.”

“그래. 진혁이 덕분에 우리가 이런 사치를 다 누려보네.”

진혁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는 마음속으로 반성했다.

중국에 올 때마다 미미가 리무진과 전용기를 보내주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던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니, 이 정도는 사치가 아니에요. 차가 필요하면 사 드릴게요.”

“어허. 사치가 아니라니!”

임진희가 검지를 까닥거렸다.

“소망역에서 시청까지 오는 마을버스하고 비교해 봐.”

“기준이 너무 낮아.”

“흠, 흠흠.”

아버지가 헛기침을 했다.

“진혁아, 그렇게 뭐든지 사 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가 그 정도 사려면 살 수는 있어.”

“예, 알겠습니다.”

“그냥 네가 몸 건강히,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게 제일 큰 복이지. 자꾸 뭘 주려고 하지 않아도 돼. 이미 충분히 받고 있단다.”

진희가 거들었다.

“그래, 네 옷이나 좀 사 입어. 지금 심각한 건 아빠 차가 아니고 네 옷장이야.”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아버지 차가 20년 된 국산차긴 하지. 새 차로 바꿀 때가 되긴 했어. 비상금이 있으니까 슬슬 바꾸실 거야. 진혁이 네가 안 사줘도 된다.”

“아니, 당신이 내 비상금을 어떻게…….”

“차 바꾸려고 모아둔 비상금 아니었어요?”

“마, 맞아.”

“나한테 넌지시 알려주려고 속옷 서랍에 통장 넣어둔 거잖아요.”

어머니가 해맑게 웃었다. 아버지가 머쓱하게 수염도 없는 구레나룻을 쓰다듬었다.

“하하하하하. 그렇지.”

아버지가 애절해 보이는 눈으로 진혁을 바라보았다. 임진혁은 창밖을 가리키며 애써 화제를 돌렸다.

“이제 거의 다 왔네요. 저기 컵케이크 모양 관람차 보이죠?”

“그러게! 디저트 테마파크라더니 관람차도 케이크 모양으로 만들어놨네. 예쁘다!”

“창 때문에 가리니까 사진 찍으려면 내려서 찍어.”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테마파크 내에 있는 리조트 호텔이다.

“여기도 좋네. 5성급인가 봐.”

“아직 인증을 받지는 못했지만 특급 호텔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

“아, 그게 그냥 거는 게 아니고 또 인증을 받아야 하는 거야?”

차에서 내리자마자 반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임씨 가족들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아예 입구에 서 있었다.

중년 남자가 앞으로 나와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리조트 호텔의 지배인 장치미엔입니다.”

매끄러운 한국어 발음에 장은효가 반색했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진희는 양복 입은 남자들이 들고 가는 쇼핑백을 아련한 눈빛으로 보았다.

“저기, 저희 짐이…….”

“직원이 숙소로 바로 올려다 드릴 겁니다.”

“잠깐만요, 저 상자 하나만 뺄게요. 넵, 다 됐어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주먹만 한 상자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바로 안심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대리석 바닥에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다던 황미미가 직접 나온 것이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멀리서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발음은 조금 서툴지만 능숙한 한국말을 듣고서 어머니가 활짝 웃었다.

“어머, 한국말을 아주 잘하시네요.”

“연습했어요.”

미미가 생글생글 웃었다. 진희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여기까지 불러줘서 고마워요!”

임진혁은 멀뚱멀뚱하게 서 있었다.

‘한국어가 많이 늘긴 늘었는데.’

하지만 동시통역사 한 명과 메이크업 팀이 미미의 인이어 이어폰 너머로 도와주고 있었다.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서 연습했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회장님, 잘하고 계십니다!」

「자, 자. 이런 식으로 쭉 갑시다. 예비 시댁에 좋은 첫인상을 남기시는 거예요!」

이전에도 들었던 귀에 익은 목소리다. 왕 비서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가 차례대로 한마디씩 했다.

인이어 이어폰 너머의 대화를 전부 들어버린 진혁이 미묘하게 미간을 좁혔다.

‘이건 안 듣는 편이 낫겠는데.’

미미의 비서실은 비서의 역할이 아니라 연애 컨설턴트 노릇을 하려고 단단히 마음먹은 것처럼 보였다.

진혁은 일부러 미미의 인이어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도록 신경을 껐다.

“먼저 쉬시는 편이 나을까요? 아니면 테마파크로 바로 가시겠어요?”

미미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진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넓은 비행기에 편한 차를 타고 온 덕분에 별로 피곤하지는 않아요.”

“그래요,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아주 고맙소.”

진혁의 부모님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진희는 따로 빼두었던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초청해 주셔서 고마워요! 이건 별 건 아니지만 한국 특산품이에요.”

진혁이 눈을 껌뻑였다.

‘이건 또 언제 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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