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85화 (384/656)

제 385화

사이렌을 울리며 소방차가 아래쪽에서 사다리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관람차는 너무나 높이 있었다.

미미가 아연하게 중얼거렸다.

“소방차가 너무 조그마한데요.”

들리는 사이렌 소리마저 아득하게 멀다.

그녀는 새빨간 점처럼 보이는 소방차가 하얀 사다리를 뻗어 올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지만 이곳까지 닿으려면 한참 멀었다.

‘대충 68m 정도 되려나?’

진혁은 대략 셈해 보았다. 일반 건물이라면 23층까지는 닿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관람차는 그보다 더 높이 있었다.

“세계 최고로 거대한 대관람차를 만들자는 의견을 각하하긴 했는데, 조금 더 작게 만들 걸 그랬어요.”

소방차에서 나온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바닥에 쿠션을 깔기 시작했다.

여기서 보면 성냥갑처럼 조그맣게 보일 뿐이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킹사이즈 매트리스보다 더 크고 두꺼운 쿠션들이다.

창가를 내려다보던 미미가 조금 움직였다.

새하얀 뺨이 다른 의미로 상기된 채였다. 그녀는 마주보고 있던 자리에서 임진혁의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

“잠깐만 여기에 앉을게요.”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와는 달리 침착한 목소리였다.

진혁은 왜 자신의 옆에 오려는 건지 의문을 가졌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네에.”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그녀가 건넨 말은 고백이 아니었다.

“임진혁 쉐프님, 죄송해요.”

사과였다.

불안과 초조, 그리고 안타까움을 섞어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제가 관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거예요.”

진혁은 말없이 그런 미미를 응시했다.

행복하고 편안한 가정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라난 이였다.

‘본성이 선량하고 심지가 굳어.’

사실은 패닉에 휩싸여 울부짖으며 절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반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버지에게 미리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어요.”

후회에 가까운 그 말을 듣고서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서 얘기하면 됩니다.”

“……네.”

한 성을 다스리는 패자에 가까운 정파에서도 애들을 귀하게 키운다.

비단 강보에 싸이고 오냐오냐 하며 귀하게 큰 애들은 급작스럽게 위기에 처했을 때 대응할 만한 능력이 없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지면 고향을 벗어나 수행을 떠나게 한다. 가문을 떠난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파각(破殼)’을 하고 나서야 진정한 한 사람의 성인으로 거듭난다.

개중에는 그 파각을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지는 이들도 없지 않다.

‘기분이 좋을 때 친절하고 상냥한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야. 하지만 최악의 상황이 닥쳐야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지.’

그런데 여기서 그녀가 사과를 할 줄은 몰랐다.

‘감정보다 이성을 먼저 두고,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한 다음에 내 걱정을 한 거야.’

진혁은 미미를 다시 평가했다.

“헬리콥터가 옵니다.”

멀리서 헬리콥터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프로펠러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굉음과 높은 풍압을 이기고 날아오며 생기는 거친 파열음이다.

‘이 높이라면 헬리콥터가 맞지. 경호팀들도 아예 바보들만 있는 건 아니야.’

조금 더 가까워지자, 미미 역시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아!”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눈썹을 위로 올리며 입술을 살짝 열었다.

“말씀하신 대로 다 잘 되었네요.”

곧 날아온 헬리콥터가 위쪽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문이 살짝 열리고, 파일럿이 무어라 외쳤다.

진혁이 고개를 들어 소리쳤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헬리콥터 소리보다도 더 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미는 황급히 인이어 이어폰을 다시 두드렸다. 두 번 두드리면 아까 껐던 소리가 다시 들려야 한다.

그렇지만 헬리콥터 소음이 너무 커서인지, 인이어 안쪽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미미는 단념하고 다시 인이어를 껐다.

진혁이 커다랗게 손을 한 번 휘저었다.

헬리콥터 문이 조금 열리고, 그 안에서 긴 끈이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임진혁은 문을 활짝 열었다.

휘이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순식간에 자그마한 관람차 안을 뒤덮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강한 바람에 놀란 미미가 옆에 있던 안전용 플라스틱 바를 꽉 붙잡았다.

“꺄악!”

“잠깐만 기다려요.”

임진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문 밖으로 손을 뻗어, 헬리콥터가 내려보낸 끈을 낚아챘다.

“위험해요!”

황미미가 외쳤다. 그녀는 진혁이 바깥으로 떨어지지 않게 잡으려는 것처럼 뒤쪽에서 허리를 부둥켜안았다.

하지만 진혁은 이미 끈을 잡은 후였다.

“괜찮습니다.”

낙하산용으로도 쓰는 튼튼한 재질의 끈 끝에는 오렌지색 하네스가 달려있었다.

진혁은 순식간에 몸을 돌려 미미를 일으켜세웠다.

“?!”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아니, 그보다 임진혁 쉐프님. 지금 저기 바깥에서 줄을…….”

“한 번에 잡았죠.”

“그러다가 떨어지시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구요?”

힐난이나 비난이 아니었다. 그를 염려해서 하는 걱정이다. 그 말을 듣고서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미미의 왼쪽 어깨에 하네스를 걸어주고 몸에 꽉 맞게 벨트를 조였다.

“예?! 제가 아니라 진혁씨가 먼저…….”

찰칵.

오른쪽 어깨에도 끈을 걸고, 벨트를 조절한 후 바로 가슴끈 한가운데에도 벨트를 채웠다.

순식간에 허리에도 끈을 감고서 벨트를 채우곤 난 후에야 진혁이 말했다.

“직접 하시겠습니까?”

허리 끈 아래에는 다리 끈이 달려있었다.

허벅지에 하네스를 걸고 고리를 채우려면 스커트를 올릴 수밖에 없다. 미미는 얼굴을 붉히거나 수줍어해서 불필요한 시간이 더 걸리게끔 하지 않았다.

“해주시는게 더 빠를 것 같아요.”

미미 역시 이런 식의 안전장구를 다루어본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가 허리를 숙여서 다리를 올리고 벨트를 차는 것보다 진혁이 해주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예.”

진혁은 미미의 구두를 벗겼다.

둥근코 검은색 메리제인 구두가 벗겨지며 스타킹을 신은 작은 발이 드러났다.

발톱은 새빨간 붉은색이었다.

양 발이 고리 안에 들어가도록 올리고 양쪽 벨트 모두 허벅지 안쪽에서 채워지도록 하는 데까지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미미는 무심코 하네스 때문에 말려올라갔던 스커트를 다시 내려보려 애썼다.

진혁은 끈에 매달려 있던 두 번째 하네스를 착용했다.

“무사히 돌아간다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녀는 문가에 똑바로 섰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거친 바람에 스친 뺨은 이미 붉게 물들었다.

바람 때문인지 감정 때문인지 촉촉해진 눈망울이 진혁을 돌아보았다.

“제가 먼저 뛰어내릴게요.”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꺄악!”

그는 미미를 꽉 껴안은 채 문에서 뛰어내렸다. 미미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          ◈          ◈

“디저트 테마 파크라.”

진혁이 가져온 팸플릿을 보면서 임진희가 웃었다.

“엄청 크다. 되게 본격적인데? 이건 진짜 대기업에서 할만한 일이잖아. 중국에 있는 회사가 한국보다 더 크네.”

“아예 맘먹고 키우고 있더라. 아예 하려던 사업인데 테마만 이번에 디저트로 바꾼 거라고 했어.”

식탁 위에는 기념품으로 받아온 사탕 통이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유리병 안에 들어 있는 사탕에 눈독을 들였다.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

“포도맛이나 딸기맛처럼 직접 만들 수 있어요.”

“그건 재밌겠네.”

임진희가 턱을 괴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래서 거기를 가족들이 다같이 가자구? 회사도 쉬고?”

“웬일이야?”

어머니가 즐거워하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어디를 먼저 가자고도 하고.”

“저번에 거제도도 같이 갔잖아요?”

“그건 네가 일이 있는데 우리가 따라간거잖니.”

임진희가 킥킥 웃었다.

“이번에도 회사 일인데요. 이거 그냥 테마파크도 아니고 디저트 파크고, 또 가족들만 가는 것도 아니고 다 같이 가는 거잖아요?”

“우리가 조금 먼저 가서 가족들끼리 시간을 보내면 되지. 아무렴, 한창 일할 나인데 일하면서 바쁜 게 당연하지.”

아버지가 웃었다.

“마침 학교도 수업이 없는 기간이니 잘 됐다.”

임진희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아니, 진혁아. 너 진짜 무슨 일 있어? 원래 이런데 신경쓰지 않고 일만 하는 애잖아.”

“지금 명동점이 얼마나 바쁜지 알아? 실습생 데려다놓고 교육시키고, 다음 시즌 메뉴 준비에, 전에 말했던 컵케이크 개발까지 같이 하고 있다고. 그렇지 않아도 일이 많아 죽겠는데 갑자기 부모님 보러 내려오자고 하더니. 느닷없이 해외를 같이 가자고 하는 건 또 무슨 얘기야.”

“진희야.”

아버지가 엄하게 말했다.

“요즘 너도 너무 일만 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진혁이가 생각해서 그러는 거지.”

입을 삐죽 내민 진희가 유리병에 손을 가져갔다.

그녀는 찌그러진 수수깡처럼 생긴 사탕을 꺼냈다.

“이건 파는 거 아니지? 네가 만든 건가?”

진혁이 그 사탕을 빼앗아서 자기 입에 쏙 집어넣었다.

“콜라맛은 내꺼야.”

임진희가 씨익 웃었다.

“뭐야, 누가 준 거야? 여자야?”

“그런 거 아니야.”

진혁은 분명히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뭘 눈치챘는지 임진희가 히죽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너 그 어린 18살 아가씨랑 잘되고 있구나.”

“정말 그러니?”

어머니까지 함께 묻기 시작했다. 진혁이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사업적인 일 때문에 자주 만나는 것 뿐이에요.”

아버지는 일정 수첩을 넘겨 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언제쯤 가는데?”

“음, 일반 개장을 하기 전에 오는 편이 좋겠다고 했으니까요. 당장 내일 모레부터 이틀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데 괜찮죠?”

어머니는 손에 들고 있던 사탕을 식탁 위에 떨어뜨렸다.

일정 수첩을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는 기가 막히다는 듯 입을 벌렸다.

진희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야, 지금 우리가 방학 중에 노는 대학생도 아니고. 해외 출장을 이런 식으로 갑자기 잡아 버리면 어떡해? 잠깐 소망시에 와서 부모님 보고 가는게 아니잖아!”

진혁이 씩 웃었다.

“명동점은 동진이가 알아서 잘 해 줄 거야. 거기 실습생도 이제는 일 꽤 한다며.”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실습생이 있다고 해서 점장이 자리를 비워도 되는 건 아니잖아. 나랑 걔랑 같아?!”

아버지가 다른 점을 짚었다.

“직원들을 데리고 가서 연수를 하고 싶다며. 이번에 실습생들도 다 데리고 갈 거니?”

“아, 그건 아닙니다. 이번에는 가족들끼리만 가고, 직원 연수는 내달에 따로 선발해서 보내려고요.”

일정 수첩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던 아버지가 말했다.

“이틀 정도는 다녀와도 되겠구나. 여보, 당신은 어때요?”

“일봉이네 어머님께 물어보고, 된다고 하면 갈 수야 있지요.”

이전에 거제도에 갈 때도, 대신 가게를 봐주었던 분이다.

진혁이 말했다.

“그분이 일을 잘 하시면 아예 직원으로 모셔오는게 어때요?”

“그럼 나는 뭘 하고? 아서라, 가끔 이렇게 놀러다녀야 좋지. 맨날 놀면 심심해.”

임진희는 스마트폰의 달력 어플리케이션을 노려보더니 말했다.

“너, 방으로 따라와. 나하고 얘기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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