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80화 (380/656)

제 380화

“이거 금속인데요?”

이빨 자국이 남은 시계를 들어 보이며 소년이 물었다. 멸치와 너구리가 강운종을 보면서 웃었다. 임진혁 역시 강운종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진짜 개 같네.’

그는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네가 개냐? 아무거나 다 입에 넣게.”

“쉐프님이 주신 거잖아요!”

“생일 케이크에 초 꽂아 주면 초도 먹을 놈일세?”

“으. 그게 아니고. 진혁 쉐프님이 만드신 케이크는 꽃잎도 진짜 꽃 같고, 감쪽같으니까 이것도 그냥 시계처럼 만든 건 줄 알았죠.”

강운종이 시무룩해 하는 동안, 진혁이 손짓했다.

“다 먹었으면 나가자. 제일 먼저 강남점부터 들를 거야.”

너구리가 급하게 말했다.

“안돼요!”

“왜 안돼?”

“잠깐만요, 아직 다 못 먹었어요.”

“왜 너만 아직도 못 먹었냐.”

“아껴 먹느라고요.”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사람마다 반응하는 방식이 다르다. 강운종은 누군가에게 뺏기기 전에 그냥 빨리 먹어버리는 타입이었으나 너구리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걸 왜 그렇게 아껴 먹고 있어? 그러다가 누가 뺏어 먹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강운종이 한마디 했다.

조금이라도 흘릴세라 조심스럽게 먹고 있던 너구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맛있는 걸 한입에 먹어버리면 금방 사라져 버린다고. 조금씩 남겨 놓았다가 그만큼 그 맛이 혀에 오래 남아 있으면 더 행복하고 좋잖아.”

강마리오가 피식피식 웃어버렸다.

“사탕 같은 거 받으면 단물 쪽쪽 빠질 때까지 다 빨아먹는 타입이구나? 너. 나랑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마리오가 빙긋빙긋 웃자 너구리가 멍청하게 눈을 깜빡거리며 올려다보았다.

진혁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흐음. 그럼 그거 다 먹고 일어나자. 제일 먼저 강남점부터 갈 거야.”

◈          ◈          ◈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내내 소년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이거 시계, 진짜로 우리한테 주는 거예요?”

“그럼 가짜로 주겠냐.”

거기에 강마리오까지 끼어 있으니 더 시끌벅적했다.

‘병아리들을 몰고 다니는 어미 닭이라도 된 느낌이군.’

임진혁은 네 사람을 인솔해서 지하철에 탔다. 네 사람은 아까 먹었던 케이크에 대한 감탄, 실습에 대한 기대 등 시답잖은 잡담을 끊임없이 떠들어 댔다. 그러던 중 멸치가 아까 선물 받은 시계를 꺼내며 물었다.

“그런데 이 시계는 왜 줄이 없을까? 손목에 찰 수도 없고, 벽에 달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회중시계라는 거야. 끈을 달아서 주머니 속에 넣거나 가방 속에 넣고 들고 다니면 돼.”

강마리오가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진혁이 덧붙였다.

“옛날에 시계가 처음 나왔을 때는 이렇게 썼대. 그냥 기념품 같은 거지.”

“헤에.”

“뒤에 내 이름도 새겨져 있다!”

“그리고 케이크 위에 올려놓기에 그게 제일 적당하더라.”

이빨 자국이 남은 시계를 들고서 강운종이 쓸쓸하게 말했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먹을 것 같이 생기진 않았는데.”

“감촉 자체가 아예 다르잖아.”

“하하하.”

“잘 쓸게요!”

강운종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항상 들고 다닐게요.”

“나는 잃어버리거나 망가지지 않게 서랍 속에 넣어서 보관할 거야.”

너구리가 말했다. 강마리오가 소년들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얘네들 진짜 다르구나.’

소년원에서 온 애들이라고 해서 다들 비슷비슷한 애들일 줄 알았다.

하지만 저마다 느끼는 것도 다르고, 감성도 다르다. 환승하지 않고 한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간신히 강남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 공기가 한결 서늘해졌다. 강운종이 진저리를 쳤다.

“여기는 사람이 진짜 많다.”

“으, 이렇게 사람 많은 거 오랜만에 봐요.”

소년들 뒤에서 따라가던 강마리오가 추억에 잠겨서 말했다.

“강남역도 오랜만에 온다. 전에 H & J 카페에 몇 번이고 명함을 남겼는데, 진혁이 네가 한 번도 연락을 주지 않았지. 기억해?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네가 내 재킷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따라와. 신호등 바뀐다.”

이전에는 H & J 베이커리 앤 카페라고 불렸던 가게다. 지금은 <해와 달> 강남점으로 간판 역시 바꾸어 달았다. 리모델링을 거치며, 이전에 흰색과 청회색 중심으로 꾸며놓았던 카페를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바꾼 것이다.

달라진 모양을 보고 강마리오가 눈을 크게 떴다.

“리모델링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정말 완전히 바뀌었네. 전에는 하얀 대리석 바닥에 하얀 탁자와 의자를 놓았잖아? 이제는 꼭 바 같아.”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일부러 그런 컨셉으로 다시 만들었다고 하더라.”

카페 내부는 홍콩 누아르 영화에라도 등장할 법한 바처럼 보였다.

겉에서 보면 평범한 건물이지만, 안쪽에서 보면 실제 벽돌을 쌓은 것처럼 벽돌로 꼼꼼하게 꾸며놓은 벽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바닥은 짙은 적갈색 나무를 겹겹이 깔아놓았고, 그 위에는 철제 틀에 무늬 있는 목판을 올려놓은 1인용 탁자가 조르륵 늘어서 있었다.

누군가 서서 음료를 마실 수도 있을 법한, 서서 먹을 수 있는 탁자다.

거기에 역시 검은색 철제 틀에 목판과 방석을 올려놓은 키 높은 스툴이 함께했다.

한쪽 끝에는 의자 없이 서서 마실 수 있게 되어 있는 바 형태의 탁자가 세로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진짜 멋있다.”

“우리가 여기서 일한단 말이지.”

실습생 셋은 상상한 것과는 달랐던 카페를 보고서 크게 놀랐다.

“공주님 풍으로 분홍색 커튼이 있는 빵집에서 일할 줄 알았어요.”

“여기는 남자답고 아주 좋네.”

“하하.”

리모델링을 한 이후에, 오픈 키친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바 형태의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다.

페이스트리 쉐프들은 안쪽의 주방에서 제과제빵을 하게 되어 있다.

예전처럼 손님들이 역까지 늘어지게 줄이 서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게 전체에 사람들이 꽤 있었고, 개중에는 임진혁을 알아보는 손님들도 있었다.

“쉐프님, 여기에는 오랜만에 오셨네요!”

“강남 지점에도 자주 와 주세요!”

“감사합니다.”

진혁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계산대에서 계산하던 종업원이 진혁 일행을 알아보고 안쪽에 소식을 전달했다.

“쉐프님, 회장님 오셨어요!”

그녀가 소리쳐 부르자, 안쪽에서 일하고 있던 페이스트리 쉐프가 뛰쳐나왔다.

“임진혁 CEO님!”

유키코 대신 일 하고 있는 젊은 페이스트리 쉐프다. 그가 먼저 허리부터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김전일입니다.”

“반갑습니다!”

임진혁이 인사하고 마리오와 실습생들을 소개해 주었다. 김전일 쉐프가 웃었다.

“전에 말씀하셨던 실습생이지요? 이 셋 중에 누굽니까?”

진혁이 멸치를 가리켰다.

“얩니다.”

“이름이 뭐지?”

“하동욱입니다.”

“그래, 잘 부탁한다.”

마리오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렇게 멀쩡한 이름이 있는데 왜 애를 계속 멸치라고 불러?”

임진혁이 웃었다.

“동욱이는 내일부터 출근할 겁니다. 들어가 봐도 됩니다, 우리도 여기에 손님으로 왔으니까요.”

“아.”

“음료하고 케이크를 좀 주문하려고 하는데,”

“아니, 저희가 그냥 드리겠습니다!”

“이런 거야말로 정확하게 해야지.”

임진혁과 김전일이 옥신각신하는 동안에 강마리오는 태연하게 계산대로 걸어갔다.

“여기 따뜻한 아인슈페너 한잔하고 밀크티 네 잔, 그리고 크림슨 치즈 케이크 다섯 조각 주세요.”

“주문받았습니다! 저, 계산은….”

계산대에 서 있던 종업원이 곤란한 표정으로 웃었다.

“김 쉐프님이 자꾸 눈짓하시는데요.”

“괜찮아요, 괜찮아. 이 신용카드로 할게요.”

진혁이 씩 웃었다.

“잘했어, 마리오.”

“요이!”

막상 케이크와 음료를 주문했지만 다섯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은 없었다.

진혁 일행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손님들의 시선도 있어, 그들은 안쪽의 사무실로 안내를 받았다.

너구리가 중얼거렸다.

“여기 안은 그냥 평범한 사무실이네요.”

마리오가 말했다.

“저 인테리어가 다 돈이야, 돈. 보이지 않는 데까지 할 이유가 없지.”

“바깥쪽이 예뻐서 안쪽도 예쁠 줄 알았는데.”

“호텔도 마찬가지야. 손님들 오는 곳 꾸며놓은 부분이랑, 직원들이 이용하는 부분이 다르지. 청결하고 청소하기 편하면 되지 이뻐야 할 필요가 없어.”

적갈색 커피 위에 하얀 크림이 몽실하니 올라와 있다.

아인슈페너를 받아들고 홀짝이며 진혁이 웃었다.

“이 맛은 진영이 형이 만들어주는 거랑 똑같네.”

“바리스타님이 특별히 신경 써주신 것 같습니다.”

“고맙다고 전해줘요.”

서울로 갓 올라와 여기서 일하던 것도 엊그제 같은데, 이곳 역시 완전히 변해버렸다.

그래도 사무실은 달라진 점이 없어 익숙했다.

진혁은 편안한 마음으로 크림슨 치즈 케이크에 포크를 갖다 댔다.

“그런데 마리오, 왜 같은 걸 5개 시켰어?”

“다른 걸 시키면 나눠 먹자고 할 거잖아.”

“….”

강마리오는 다른 사람 케이크를 얻어먹는 것은 좋아했지만, 자신의 케이크를 나누어주는 것은 싫어한다.

진혁이 마리오의 어깨를 툭 쳤다.

“알았어, 알았어.”

“저희는 왜 밀크티에요?”

“밀크티가 맛있으니까.”

“….”

멸치는 호로록 짭짭 밀크티를 마셔 보더니 즐거워했다.

“이거 진짜 맛있네요.”

“여기 밀크티는 나름 신경 많이 쓴 거라고. 일단 우유 자체도 단백질 변성이 되지 않게끔 저온 살균 방식의 우유를 사용하고, 물이 아니라 데운 우유로 차를 직접 우려내서 맛이 훨씬 진해.”

“끓인 물이 아니라 끓인 우유를 쓴다고요?”

“우유를 데우면서 타지 않게 계속 저어줘야 하니까 손이 많이 가. 그래도 나는 이쪽이 더 맛있더라고. 먹어봤던 거랑 좀 맛이 다르지?”

너구리가 말했다.

“보리차 말고 차는 처음 먹어 보는데요.”

강운종이 너구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무식하긴, 녹차나 옥수수 수염 차도 못 먹어 봤어?”

“….”

강마리오는 신기한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눈으로 세 소년을 응시했다.

“그럼 얼그레이 티나 실론 티는 마셔 봤어?”

“아니요.”

“홍차 계열인데….”

멸치가 밝게 말했다.

“전 다방 커피 좋아해요. 스틱으로 된 거.“

강마리오가 진혁을 바라보았다. 그가 결심한 듯이 말했다.

“진혁, 얘네들은 일단 좀 다양한 것들을 먹어봐야 할 필요가 있어.”

“…그래야겠네.”

임진혁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빵이나 케이크, 과일 같은 것은 이것저것 먹여 보았지만, 음료수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

“일하면서 많이 먹으면 되지. 종류별로 먹어보고, 이 맛을 케이크나 빵으로 낸다면 어떻게 만들면 될까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야.”

“알겠습니다!”

“멸…, 아니 동욱이는 여기서 오리엔테이션 받고, 내일부터 이쪽으로 바로 출근해.”

멸치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임진혁과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네에.”

두려움에 가득 찬 눈이었지만, 그래도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진혁이 웃었다.

“실습생 하는 동안에는 수당도 따로 주니까, 열심히 해라.”

“열심히 하겠습니다!”

세 명이 씩씩하게 외쳤다. 한 명을 두고 나오며 네 사람이 된 일행은 명동점으로 이동했다. 강운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요, 진혁 회장 쉐프 선생님.”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러.”

“진짜 수당 줘요? 얼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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