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9화
강마리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녀석한테는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어.’
강마리오는 임진혁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번 돈이 적지 않지만, 옷차림에는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다. 명품을 입지 않는다는 정도가 아니다.
정말로 보이는 대로 아무거나 있는 옷을 입고 다닐 뿐이며 패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다행히 흰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대충 챙겨 입어도 큰 키에 준수한 외모가 있으니 모델처럼 보인다.
‘크으. 얼굴이 잘생겨서 그런가.’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마리오는 잘생기고 예쁜 모델 친구들을 꽤 만났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진혁만큼 독특하고 개성 있는 사람은 없었다.
페이스트리 쉐프답게 짧게 자른 머리에, 평범한 신발.
신발 역시 그리 마리오가 알아볼 수 있는 브랜드는 아니었다.
‘도대체 저건 어디 신발이야.’
마리오는 진혁을 보며 생각했다.
‘얘가 젊은 나이에 크게 성공해서 그런 걸까.’
그는 혼자 고개를 저었다.
루이스가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 중에는 국가 대표 운동선수로 활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나이에 세계 정상에 올라 있는 것이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쟤만큼 성공한 사람이 적지는 않지만 없지는 않아.’
하지만 임진혁만이 갖고 있는 그 어떤 분위기가 있다. 강마리오가 따져 물었다.
“진혁이 너는 왜 천재인데 노력하기까지 해?”
억울함 섞인 그 이야기를 듣고 진혁이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또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오오! 하느님! 왜 세상에 나를 내리고 나서 또 임진혁을 내려주셨나이까!”
“허허.”
농담처럼 근황을 주고받고 나서, 진혁이 본격적인 용건을 꺼냈다.
“실습생들이 슬슬 실습을 나갈 건데, 너도 한 번 같이 봐줬으면 좋겠어.”
“뭐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벌써?”
“어차피 가게에서 빵을 만들어 팔려고 하는 거잖아. 실전은 처음부터 겪는 게 좋아.”
검술 연습과 마찬가지다.
허공을 향해서 초식을 연습하면서 만족해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전은 다르다. 실제 상대와 검을 맞대어보면서 초식을 교환하고, 자신의 초식을 끊기지 않게 이어나가는 것은 초보자에게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마리오가 말했다.
“…진혁이 너 마냥 부드럽기만 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냉정한 데가 있네.”
“하하. 어디가?”
“전에 레시피 공유했던 것도 그렇고. 뭔가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고 알아서 일하는 것도 그렇고.”
“그거랑 이건 다르지? 적성에 맞지 않으면 빨리 그만둬야 하니까. 젊은 애들이니까 뭐라도 할 수 있겠지.”
“에이. 착하고 부드러운 우리 진혁이 맞네. 그 소년원에서 왔다는 애들 말이야?”
마리오가 친한 척 엉겨 붙자 진혁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일단 첫 번째 실습생들부터 만나 보자. 당장 오늘부터 바로 감독 들어갈 수 있지?”
“어? 나 지금 인천공항에서 이리로 바로 왔잖아?”
마리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가 신경질적으로 선글라스를 추켜올리며 투덜거렸다.
“해도 해도 너무하지, 지금 열 몇 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일을 또 시켜?”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편하게 비즈니스석 타고 왔잖아.”
“….”
“내가 마사지해 줄게. 그러면 바로 갈 수 있을걸?”
“그럼 시원하긴 한데….”
마리오가 머뭇거렸다.
그는 임진혁과 함께 제과제빵 대회를 준비하면서 안마를 여러 번 겪어 보아 그 신통방통한 효과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12시간 넘게 비행하고 돌아왔는데 바로 다시 일하러 가자니 억울하다.
마리오는 어물쩍어물쩍 대답을 피하며 뒷걸음질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진혁이 씩 웃으며 주방 냉각기의 문을 열었다.
마리오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서 입을 딱 벌리며 눈앞에 있는 물건을 응시했다.
“이번에 새로 만든 초콜릿 시한폭탄 케이크야.”
그는 눈을 번뜩이며 접시를 낚아챘다.
“먹어도 돼?”
“당연하지!”
진혁이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더 꺼내는 동안, 마리오는 콧노래를 룰루랄라 흥얼거리며 초콜릿 시한폭탄 케이크를 내려다보았다.
동글동글한 구형 폭탄 자체에는 검고 매끄러운 초콜릿이 비단처럼 말끔하게 덮여있어 광이 났다.
금가루로 덮은 꼭지 부분에서는 심지가 솟아있고, 모터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직사각형 모양의 부품이 붙어있다.
그 부품 옆에는 자그마한 원형 시계가 있었다. 네 개의 숫자만이 새겨진 원판 위에 초침과 분침까지 정밀하게 표현된 시계를 보면서 마리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해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설마 이 시계 진짜야?”
“음, 이 두 개를 비교해 봐.”
진혁은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다른 케이크를 보여 주었다.
비슷하게 생긴 두 개를 나란히 놓고 보자 바로 구분할 수 있었다. 금속제 제품 특유의 광택을 확인한 마리오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진짜 시계고, 이건 가짜 시계네?”
“응. 은 회중시계를 소독해서 케이크 위에 올려놓은 버전인데, 중국에서 온 쉐프가 낸 아이디어야. 그리고 방금 네가 받은 케이크가 내가 만든 것.”
“으, 중국은 진짜 들으면 들을수록 스케일이 다르단 말이지.”
“먹을 거 위에 시계가 같이 올라가는 게 마음에 안 들어.”
“푸하하핫! 뭐야, 그게 문제야?”
마리오는 눈앞의 케이크에 정신을 집중했다. 아스라이 풍기는 초콜릿 향기가 마음에 들었다.
‘브라우니인가? 아니면 그냥 코코아? 아니면 새로 들여온 아르헨티나산 초콜릿인가.’
레드 플라워.
과일 향이 짙은, 아르헨티나산 싱글 오리진 초콜릿의 이름이다.
생산량이 많지는 않아 구하기 꽤 힘들다. 그러나 그 독특한 맛이 꽤 좋다고 하여,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를 얻고 있다고 들었다.
마리오는 온갖 초콜릿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혀끝을 갖다 댔다. 여인의 손길처럼 차갑고 보드라운 감촉이 미뢰에 느껴졌다.
하지만 그다음에 느껴진 감각은 조금 전처럼 보들보들하고 살가운 것이 아니었다.
망치로 쾅쾅 치는 것처럼 충격적인 감각의 폭풍이 혀를 휘감았다.
“달아!”
용암이 들끓어 오르는 것처럼 진하게 온몸을 때려대는 단맛이다.
‘레드 플라워는 절대 아니야.’
가볍고 봄처럼 상큼한 초콜릿은 절대로 아니다. 피아노의 낮은음처럼 중후하고, 테너의 목소리처럼 무겁다.
유지방이 풍부한 크림은 끈적끈적하게 혀에 엉겨와 마지막까지 달콤한 뒷맛을 남겼다.
하지만 감각의 향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폭력적인 초콜릿 향이 숨 막히게 밀려 들어와, 코는 물론이며 목구멍까지 완전히 채워버렸다.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낀 순간, 다른 향기가 진하게 풍겨왔다.
“?!”
마리오는 허겁지겁 크림과 시트를 씹어 삼켰다. 부드럽고 온화한 봄의 햇살처럼 평화로운 우유 맛이었다.
늘 맛보던 평범한 우유 맛이나, 조금 전까지 강렬하고 농후한 풍미의 초콜릿에 허덕이며 있던 그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맛처럼 느껴졌다.
“미친 거 아니야? 이걸 어떻게 한 거지?”
도저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리오는 개구리처럼 눈을 끔뻑이며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연한 맛이 느껴진 다음에 진한 맛을 느낄 수는 있잖아. 그런데 진한 맛이 느껴지면 미각이 완전히 마비돼서 그다음에 느끼는 건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진다고. 어떻게 다크 초콜릿 다음에 우유 맛을 느끼게 할 수 있게 한 거야?!”
비명처럼 들리는 그 질문에 진혁이 웃었다.
“그냥.”
“으아아아아악!”
강마리오는 양손으로 머리를 잡아 쥐어뜯을 듯이 벅벅 긁어댔다.
“그냥이 아니잖아! 지금 이 중간에 있는 이 얇은 초콜릿 판, 이걸로 구분을 준 거지? 그래서 우유 맛하고 초콜릿 맛이 섞이지 않게 한 건 알겠어. 하지만 그렇게 해도 초콜릿 맛 다음에 우유 맛이 느껴질 수는 없다고.”
“우유 맛이 훨씬 더 많으면 가능하지.”
“아!”
마리오가 깨달은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크 초콜릿이 맛이 엄청나게 진해서 거의 다 다크 초콜릿인 줄 알았는데, 그 반대구나.”
“응. 우유 시트하고 크림이 90% 이상이야. 미각이 둔한 사람이라면 70~80% 이상, 민감한 사람은 한 절반 정도 먹다 보면 우유 맛이 느껴지게 만들어 놓은 거야.”
“아니, 우유 맛이 먼저 느껴지고 초콜릿 맛이 다음에 느껴지게 만들면 편할 것을.”
“이런 게 더 재미있잖아.”
“넌 진짜 제과에 미친 사람 같다.”
“하하하하! 칭찬이라고 듣지.”
“아니, 아니. 내가 말을 잘못했어. 그런데 이거 세 개나 있는데? 내가 두 개 정도는 더 먹어도 되지?”
“안 돼.”
진혁은 케이크를 옆으로 치웠다.
“어차피 파는 것도 아니고, 샘플로 만들어 놓은 거 아니야?”
마리오가 못내 아쉬운 듯이 말했다.
“내가 지금 열 몇 시간을 비행하고 와서 학생 실습도 봐주려고 하고,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케이크 조금만 더 주지.”
‘꼬리가 있으면 신나게 흔들 것 같은 얼굴이군.’
강마리오는 양손을 맞잡고 진혁에게 열렬하게 부탁했다. 신에게 기도하는 것과도 같은 모양새였다.
“제발, 제발. 케이크 하나만 더 먹게 해 주세요.”
“진짜 안 돼. 지금 오는 실습생 애들도 맛보여 줄 거라 개수대로 만든 거란 말이지.”
“그 시계 있는 거?”
“응. 시계도 같이 선물하는 거야. 첫 실습 기념해서.”
강마리오는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내가 여기서 처음 일하게 됐을 때는 그런 거 없었잖아.”
“….”
임진혁은 그만 풉 웃어버렸다.
“대신 머더 하우스 쿠키 시리즈 한 개 줄게.”
“앗싸!”
방금 전까지 실망했던 모습은 간데없이, 마리오가 신나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말 바꾸기 없기다!”
임진혁이 진지하게 말했다.
“다 괜찮으니까 이따가 실습생들 오면 그 앞에서는 조금…,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 줘.”
“지금 어른스럽지 않아?”
“….”
◈ ◈ ◈
실습생들은 곧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셋 모두 몸이 좋은 편이다. 한 명이 조금 말랐지만 다른 두 명이 워낙 덩치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지, 빈약한 것은 아니었다.
강마리오는 신나게 붕붕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어서 와!”
“….”
진혁은 세 사람과 마리오를 서로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곰, 멸치, 너구리.”
“뭐야, 그게 이름이야?”
“자기들끼리 그렇게 부르던데. 기억하기 쉽지?”
방금 멸치라고 소개받은 녀석이 대뜸 대답했다.
“임진혁 쉐프님께서 별명을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되지도 않는 아첨을 줄줄 늘어놓는 모습을 보고 강마리오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하하하하! 너네 되게 웃긴 애들이구나?”
소년원에서 왔다고 해서 긴장하고 있던 마리오는 내심 안도했다.
이 세 학생 모두, 자신이 임진혁을 바라보는 것과 똑같은 눈망울로 진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애들도 진혁이를 엄청 존경하는구나.’
진혁이 가볍게 손짓했다.
“이건 오늘 너희들이 먹어볼 케이크야. 제대로 된 케이크를 만들려면 맛있는 걸 많이 먹어봐야지?”
“감사합니다, 쉐프님!”
강마리오는 세 명의 소년을 재미있게 지켜보았다.
소년들은 은빛 금속제 시계가 함께 설치되어 있는 케이크를 보고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코를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포크로 건드려 보기도 한다.
그동안 너구리는 문명인답게 물어보았다.
“쉐프님! 이거도 먹는 겁니까?”
그새 강운종은 시계를 입에 집어넣어 깨물어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