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78화 (378/656)

제 3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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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소년은 멀뚱멀뚱하니 소년원 앞에 서 있었다. 드높이 서 있는 콘크리트 장벽, 그 위에 삐죽삐죽하게 가시 돋친 철망이 여러 겹 감겨있는 방범용 울타리에 회색 CCTV까지 보니 여기까지 다시 왔다는 실감이 났다,

강운종이 중얼거렸다.

“정말 와버리다니.”

소년원까지 오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호송 당해 오던 때와는 달리 사복을 입고, 면회객이 되어 문 앞에 서서 기다리자 기분이 이상하다.

‘맨날 누가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다가 우리가 여기 다시 찾아온 거잖아.’

강운종은 양손에 주렁주렁 든 쇼핑백을 들고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 내가. 직접 만든 케이크를 들고 여기에 다시 오다니.”

“푸하하핫. 너 여기서 나갈 때, 다시는 여기에 발 들이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잖아? 그런데 제 발로 다시 돌아왔잖아.”

너구리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이거랑 그거랑 같아?! 내가 말한 건 죄를 짓고 다시 끌려가는 거지!”

강운종이 발끈했다. 멸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운곰이가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다. 우리가 지금 밖에서 애들 수감기간 끝나기만 기다리는 순정적인 여자애가 된 것 같잖아. 직접 만든 케이크도 구워서 가져오고, 아주 애타는 마음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여자애 말이야.”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말고!”

쇼핑백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꾸욱 들어갔다. 지금이라도 케이크를 집어 던져 버릴까, 하고 강운종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멸치가 진지하게 말했다.

“운곰이, 지금이라도 가서 사 오는 게 좋지 않을까? 양말 바닥에 숨기고 다시 신으면 돼. 호랑이 교위도 그건 못 찾을걸.”

담배 이야기다. 강운종이 단호하게 말했다.

“차라리 케이크 안에 담배를 넣고 케이크를 굽는다고 해라, 멍청이! 면회하려다가 쫓겨날 거야.”

“그래도 애들 앞에서 담배 보여주면 얼마나 부러워하겠냐? 안에서 말대 피우는 거에 비교하면 아주 크, 환상이지.”

말대란 소년원이나 소년교도소 안에서 몰래 말아 피우는 담배를 말한다.

녹차나 율무차 등의 티백을 찢어내 안쪽의 가루를 빼낸다. 얇디얇은 성경책의 종잇장을 절반 찢어서 돌돌 말고, 몰래 빼낸 베갯솜을 안에 넣어 필터도 만든다.

건전지와 수세미 철사로 몰래 불도 붙일 수 있는데, 피우다가 걸리면 그대로 독방행이다.

강운종이 멸치의 등을 후려쳤다.

“야, 이놈아! 임진혁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

“미각은 소중하다!”

“그래, 그런데 어디서 담배 같은 소릴 하고 그래. 우리가 그냥 가는 거냐? 애들한테 여기 꼭 오라고 얘기하러 가는 거지. 그런데 걔들 입맛 벌써부터 버려놔서 어쩌려고!”

“멸치 이놈은 그냥 뽐내고 싶은 거야. 얘만 안에서 뭣도 아니었잖아.”

너구리가 킬킬거렸다. 이 녀석 역시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해 있다.

“일요일에 종교 행사에서 받는 과자 한 조각에 신나서 방방 뛰는 놈들이 이걸 보면 얼마나 좋아하겠어. 완전 부러워할걸?!”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걸 보며 운종이 툴툴거렸다.

“그놈들이 뭐가 이쁘다고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멸치가 신나서 양팔을 파닥거렸다.

“애들이 빵에 있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빵을 갖고 와주는 거지.”

“웃기지도 않는 농담하지 말고!”

강운종은 멸치가 들고 있던 케이크 봉지를 황급히 낚아챘다.

“그렇게 뛰어가면 케이크 완전히 뒤집어진다고! 완전히 개죽같이 보일걸.”

“앗차!”

티격태격하면서 기다리다 보니 교위가 맞이하러 나왔다.

“니들, 정말로 면회를 왔냐?”

“그건 또 뭐고.”

“핸드폰이나 담배, 라이터. 들고 있는 건 없지?”

강운종은 새삼스럽게 다른 눈으로 교위들을 평가했다.

제복을 입었을 뿐, 그저 피곤해 보이는 중년 남자들이다.

‘그냥 평범한 아저씨들이네.’

전에 이 안에 있을 때는 누구보다 더 무서워 보였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새벽부터 일어나서 달리게 시키는 임진혁이나,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옆에서 같이 뛰는 유일봉과 비교하면 이들은 그냥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 형들은 정말로 자기 일을 좋아하는데. 이분들은 엄청 피곤해 보이는구나.’

평소 호랑이 교위라고 불리던 장 교위가 능숙하게 가방과 봉지를 수색했다.

“여, 뭔 케이크를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저희가 만든 거예요.”

먹을 것이라면 빼놓지 않고 끼어드는 한 교위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완전히 파는 것 같은데? 이야. 잘 만들었다.”

그가 입맛을 다시며 말하는데 장 교위가 슬그머니 밀쳐냈다.

“어딜 애들 먹을 걸 탐을 내. 그보다 너희들 이번에 제과제빵 직업훈련원에 들어갔다고 했지?”

장 교위가 새삼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거기서 애들 또 소개해 달라고 하던데, 어때. 괜찮아?”

멸치가 물었다.

“우리 의견을 물어보는 거예요?”

“당연하지, 임마. 니들이 괜찮다고 해야 다른 애들도 가는 거야.”

장 교위가 피식 웃었다.

“너희들이 세상 물정을 알아봐야 얼마나 안다고 그래. 몇 년 있었지? 네가 2년, 쟤가 4년인가.”

“요 안에서 오래 있으면 완전히 다 잊어버려서 밖에 나가는 걸 무서워하고 적응하기도 어려워하는데, 니들 보니까 아주 신색이 훤해 보인다. 건강하고 좋아 보여.”

느낌이 좋다. 강운종이 환하게 웃었다.

“그렇죠, 제과제빵 학원에서 운동도 많이 하고, 밥도 맛있게 잘 먹고 있어요.”

면회실에서 애들을 만나는 것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예쁘게 컵에 담겨 있는 케이크를 본 애들은 다들 놀라워하며 신나 했다.

“반장님 진짜 올 줄은 몰랐다.”

“사나이가 가오가 있지, 한번 온다고 한 이야기는 지킨다고.”

강운종은 내심 뜨끔했다. 사실은 올 생각 따위는 없었는데, 멸치와 너구리가 오자고 졸라서 왔다.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먹냐.”

“빨리 안 먹으면 다른 놈들이 다 먹어버릴걸.”

“나 같은 놈 가족들도 다 버려서 아무도 안 찾아오는데 그래도 옛 반장이라도 오니까 힘이 나네.”

“이제는 니가 반장인가? 어디 보자, 삼선쓰레빠랑 뭉실이 양말도 잘 신고 있네.”

“히히.”

수감되어 있는 소년들은 본디 수인용의 무채색 제복을 입고, 지급받은 양말을 신는다.

하지만 방마다 한 명씩 있는 반장은 멋대가리 없는 회색 목 긴 양말 대신, 기존 반장이 방을 나가면서 물려주고 나간 캐릭터 양말을 신는다.

그가 있던 7번 방에서 대대로 물려주고 있던 양말은 뭉실이라는 이름도 모르는 하얀 개가 그려진 것이었다.

“방 관리는 잘 하고 있지?”

“아, 누구 방인데 당연하지. 요즘은 새로 신입이 들어왔는데….”

강운종은 똘쇠 놈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소년원에 들어온 놈들 누구나 저마다 변명할 거리가 산더미만큼 있다지만, 그중에서도 똘쇠 이 녀석은 불쌍한 놈이었다.

부모 없이 자라면서 어찌어찌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길에서 만난 삼촌이란 놈이 취업을 시켜 준다고 해서 낯모르는 서울까지 따라 올라왔다.

그리고 자기가 망보는 동안 저기 서 있으라고 해서, 말 그대로 서 있었다.

서 있다가 삼촌이 뛰어나왔고 그 뒤를 누군가 쫓아 나왔더랬다. 삼촌이 그 사람을 붙잡고 있으라고 해서 붙잡고 있다가 그대로 경찰에 신고당해서 붙잡혀 왔다.

키가 크고 덩치가 있으며 얼굴은 험악해 보이지만 머리는 좀 나쁘다.

그래도 나름 신의가 있는 놈이라 반장을 맡겼다.

‘아무래도 다른 애들이 얘를 반장 대우를 해줄 것 같지 않은데.’

“너 나올라믄 얼마나 남았냐?”

“이제 한 달인가.”

“다른 데 이상한 데 가지 말고, 꼭 이리루 와야 해? 알았지?”

“알았어.”

쪼끄마한 컵케이크를 허겁지겁 퍼먹으며 똘쇠가 눈을 빛냈다.

“이거 진짜 맛있다. 주일날 받는 과자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

시판하는 초콜릿 과자 이름을 언급하자 강운종이 으스댔다.

“이 하늘 같은 1대 반장님이 직접 만들었는데 그것보다 더 맛없으면 어떡하냐!”

한 사람이 여러 명을 면회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각자 한 명씩 정해서 저마다 면회실에서 만나고 있었다. 강운종은 똘쇠를, 멸치는 흉터를, 너구리는 백곰을 만났다.

나름 셋이서 열심히 의논한 끝에 결정한 인선들이다.

‘최대한 가족들이 덜 오고, 우리 제과제빵 학원에 오고 싶어 할만한, 먹을 걸 좋아하는 애들.’

너무 세고 막 나가는 애들은 좋지 않다.

사고 칠 애가 오면, 그 애들을 감독해야 하는 세 소년이 더 피곤하다.

오랫동안 같은 방에서 생활하면서 지켜본 바가 있어 심혈을 기울여 괜찮은 애들만 골라냈다.

케이크를 내놓으면서 각자 이야기하는 동안에 수많은 질문이 오고 갔다.

“그거 수업은 괜찮아?”

“돈은 얼마나 주는데?”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야?”

세 명의 소년 모두 간단하게 대답했다.

“우리 선생님이 최고야!”

“여기서 자원봉사하는 선생님한테는 미안한 말인데, 우리 선생님은 빠리 가서 세계대회에서도 상을 타온 사람이야. 여기 제과제빵 선생님이 종로구 선수라고 하면, 우리 선생님은 국가대표급이라고 할 수 있다고.”

사복을 입고 희망에 차서 미래의 꿈을 이야기하는 강운종의 모습은 소년원 안에 있던 때와는 매우 달랐다.

똘쇠는 부러운 눈빛으로 운종을 바라보았다.

“진짜로? 그런 사람한테서 배우는 거야?”

“당연하지, 처음에 오면 무조건 같이 달리기부터 해.”

“아니, 빵 만드는데 달리기를 왜 해?”

“그래야 체력이 좋아져서 나중에 빵집에서 실제로 빵 구울 때 오래 버티지. 잘나가는 빵집들은 다 이렇게 교육하나 봐. 아 참, 그리고 잘 나가는 애들은 중국으로 유학도 보내 준대.”

“짱깨 나라에 가서 뭣해?”

“돈을 더 준다니까? 돈도 받고 중국어도 배우는 거야. 거기서 완전 고급으로 베이커리를 하고 있어. 너도 보면 뿅 갈걸.”

“우와.”

자랑할 것도 많고, 이야기할 것도 많다.

감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TV를 보던 때와는 달리 말할 것이 너무나 많다.

강운종은 뿌듯한 마음으로 말했다.

“진짜 장난 아니야. 이상한 데 가는 것보다 여기 가는 게 훨씬 나으니까, 그 삼촌이니 뭐니 하는 이상한 놈한테 다시 연락하지 말고 꼭 이리로 와. 나 믿지?”

“어엉.”

똘쇠가 어리바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 그렇게 내가 아무나 믿지 말랬지! 또 멍청하게 고개 끄덕인다!”

“….”

똘쇠가 어벙하게 눈을 깜빡였다. 강운종은 답답해서 자기 가슴을 쳤다.

“됐고, 그냥 끝나고 이리 와. 알았지?”

“알았어!”

“대답만 잘 한다.”

◈          ◈          ◈

한편 소년들이 친구들을 면회하는 동안, 임진혁 역시 옛 친구를 다시 맞이했다.

“어서 와.”

미국 출장에서 돌아온 강마리오는 더워 보이게 입고 있었다.

“이 날씨에 가죽 재킷은 좀 덥지 않나?”

그는 명품 스카프에 가죽 재킷을 휘날리며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나한테 어울리는 패션 코드가 날씨보다 중요해.”

마리오는 서류 더미를 턱 하고 올려놓았다.

“이거, 미국 진출 관련 서류.”

“해리어트 병원하고 상의 끝났어?”

“당연하지!”

그가 신나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존 입점해 있던 베이커리 체인과 계약 기간이 끝날 즈음이라고 하더라. 우리도 서류를 제대로 제출해서 냈고, 내일쯤 최종 회의를 검토해서 셋 중 하나로 결정해서 알려 준대. 하지만 우리를 제일 좋게 보고 있는 것 같더라! 넌 도대체 그 사람들을 다 어디서 알게 된 거야?”

해리어트 병원은 미국 서부에 주로 분포하는 체인형 병원으로, 원내에 베이커리가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기존에 있었던 베이커리의 질 문제로 인해 병원 측과 갈등이 있었고, 안토니오와 에드워드를 통해 소식을 들은 진혁이 냉큼 마리오를 보낸 것이다.

“어디서라니, 너도 같이 있었는데. 디저트 서바이벌 프로에서 만난 안토니오가 소개해 줬잖아.”

마리오가 허망하게 말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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