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77화 (377/656)

제 377화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예?」

「그쪽에서 아무 관심도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박박 긁었다. 머리를 다듬어주고 있던 스타일리스트가 황급히 말렸다.

「미미 씨! 머리 상해요, 그러다가 탈모 생겨요!」

스타일리스트가 손에 에센스를 발랐다.

「이쪽으로 고개를 조금만 들어 주세요, 네. 그렇게.」

길고 검은 머리가 윤기 있게 찰랑거린다.

왕 비서가 젖은 티슈를 건네주었다. 미미는 방금 손에 묻어난 헤어 에센스를 손에서 씻어내며 투덜거렸다.

「그분이 진짜 비슷하단 말이야.」

「그런 식으로 구는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은 거지. 이분이 진짜 똑 닮았단 말이야.」

「원래는 그 영화 속 캐릭터 좋아하셨잖아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놀렸다.

「캐릭터는 좋지만 배우는 싫다면서 대사만 줄줄 외우시던 게 어찌나 깜찍하던지.」

「그 배우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너희가 몰라서 그래! 얼마나 능글맞은데.」

스타일리스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 드라마 속 캐릭터랑 비슷한 사람이 정말로 있어요? 진짜 독특한 캐릭터잖아요. 엄청 세고, 마이웨이인 데다가 자기 사람들은 제대로 챙기는 사람. 이야기에서 주인공으로 다루기에는 어렵고, 강한 악역이나 조력자로 나오기에 딱 좋은데. 그런 사람이 현실 세계에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이분도 자기 분야에서 실력으로는 진짜 최고야. 자기 사람들도 제대로 챙겨.」

미미가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메이크업 팀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에이, 원래 장인들은 후학 양성에 신경을 쓰는 법이죠. 당장 황태명 선생님만 봐도 그래요.」

「그렇죠, 황 선생님께서 장학금을 주지 않으셨으면 저도 그냥 시골에서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었을 거예요! 그 정도 벌이로는 절대로 부모님에게 집을 사드리거나 할 수 없었겠죠.」

「황 선생님에게 받은 은혜는 몇 날 몇 밤을 이야기해도 모자라지.」

할아버지가 가난한 농촌 출신이나 고아들을 데려와 장학금을 주며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후원해 주었다.

그중에서도 이들은 미미의 경호원과 메이크업 팀을 겸하는, 입이 무거운 사람들이다. 미미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일리스트가 단언했다.

「이 나라에 미미 씨에게 관심이 없는 남자가 있을 리가 없어요. 관심 없는 척하는 거겠죠.」

「관심 없는 척하는 거랑 관심 없는 것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 진짜로 관심이 없다니까.」

「미미 씨가 여자로 안 보인다니, 그럴 리가 없는데. 혹시 스님이에요?」

「스님이라도 파계할 만한 미모잖아요.」

「그럼 여자 취향이 아닌 게 틀림없어. 게이 아닐까?」

「설마요!」

여자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스타일리스트가 의견을 냈다.

「너무 바쁘셔서 자주 못 만나시니까 그런 게 아닐까요?」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고 있어. 벌써 꽤 됐는데, 전혀 관계가 진전되지 않아.」

그 바쁜 일정을 파악하고 있는 왕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평소에 어떻게 하고 계신데요?」

「같이 식사를 하고 있어요. 업무 관계 회의를 하기도 하고, 지점을 시찰하기도 하고요.」

「매주 하시는 그 식사 말이에요?」

「네.」

「으-음.」

「우리 공주님과 그렇게 오래 밥을 같이 먹었는데, 전혀 동요하지 않다니. 용서할 수가 없네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중얼거렸다. 미미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용서할 수 없다니, 무슨 소리야.」

스타일리스트가 웃었다.

「미미 님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무릎을 꿇고 꽃이라도 바쳐야죠!」

「미미 씨가 저랑 같이 그만큼 둘이서 식사를 했다고 하면 저는 벌써 사랑에 빠져서 둘이서 도피를 했을 거라구요.」

농담 반 섞인 여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말에 다 같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러니까 너랑 같이 둘이서 식사를 하지 않으시는 거라고!」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물었다.

「아니면 차라리 깡패들을 고용하는 게 어때요?」

「엥? 깡패?」

「깡패 말고, 적당히 무술 잘하는 배우들을 고용해서 두 분이 습격당하는 거예요. 그리고 미미 씨가 그분을 구출해 주는 거죠.」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의 강권으로 적당히 운동을 해온 미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실력으로 그게 되겠어? 거의 보여 주기용이잖아.」

「그러니까 프로 배우들을 고용하는 거예요. 맞아서 진 척하면서 도망가는 거죠.」

「남녀가 바뀐 거 아니야?」

「요즘에는 용맹한 여자들을 좋아한대요.」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미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이유로든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건 좋지 않아.」

「그러면 만나는 장소를 바꿔 보는 게 어때요?」

스타일리스트가 말했다.

「놀이공원을 가거나, 경치 좋고 풍광 좋은 곳에서 뱃놀이를 하세요. 매일 비슷비슷한 호텔 식당을 가시는 것보다 그런 게 더 낫잖아요.」

왕 비서가 말했다.

「스캔들이 생길 수 있어서 지양하고 있습니다.」

「뭐가 문제에요, 돈도 많으신 분이. 그냥 통째로 빌려.」

「아.」

미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 달이 지났다.

강운종과 멸치, 너구리는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그 옆에서 유일봉 역시 달렸다. 놀랍게도 나이가 더 있는 유일봉이 세 사람보다 훨씬 빨랐다.

“내가 1등이다!”

“헉, 헉.”

“아, 선생님! 왜 그렇게 빨라요!?”

“글쎄. 빵 만들다 보니 체력이 붙어서 그런가? 그런데 나 정도는 별로 체력이 좋은 편도 아니야. 진희 누나나 진혁이 형만 봐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일도 많이 하잖아.”

“으으.”

체력 단련을 마친 후에는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실습실로 모인다.

냉각기를 들여다보고서 강운종이 힘차게 외쳤다.

“이거 굳히기 다 됐습니다!”

“좋다, 좋아.”

일봉이 손뼉을 쳤다. 투명한 플라스틱 음료 컵 안에 담긴 케이크를 보며 그가 칭찬했다.

“이 복숭아 젤리 치즈 케이크는 정말 예쁘게 잘 만들었는데!”

“어렸을 때 저희 집 앞에 복숭아나무가 있었어요.”

멸치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래? 엄청 시골에 살았나 보네?”

“거기에 조그맣고 시큼 떨떨한 복숭아가 열리면 벌레가 엄청 많이 꼬였어요.”

“흠.”

“그래서 그 복숭아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었거든요.”

일봉이 떨떠름하게 멸치를 바라보았다. 이 이야기는 그가 예상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 그래.”

“그런데 그 복숭아를 떨어뜨려서 짓뭉개면 집주인 아저씨가 엄청 화내면서 막대기로 때렸어요. 그 나무도 그렇고 우리 집도 그렇고 다 자기 것이라고. 그런데 그 복숭아가 그대로 주렁주렁 열려 있으면 계속 벌레가 꼬여서, 우리 집안에 온갖 송충이들이 기어들어 오고 그랬는데.”

너구리가 물었다.

“야, 그런데 왜 복숭아 케이크를 만든 거야?”

“내가 아는 과일이 그것밖에 없어서?”

“딸기나 포도는 몰라?”

“아.”

멸치가 멍청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일봉이 멸치의 어깨를 툭 쳐 주었다.

“맨날 봐왔던 거라서 친근하게 느꼈나 보지?”

“음. 그런데 좀 달라요. 그런데 여기서 쓰는 복숭아는 정말로 크고 달고 벌레도 하나도 안 먹어서, 그때 그 조그맣고 떫은 복숭아하고는 완전히 다른 과일 같아요.”

“아마 정말로 다른 품종일 거야. 이 ‘천중도백도’ 품종이 흔히 재배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거든.”

“그래요?”

“응, 그전에는 ‘백도’나 ‘유명’ 아니면 ‘창방조생’ 이나 ‘대구보’를 주로 재배했어. 4대 복숭아 품종이라고 했거든.”

“복숭아는 한 종류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복숭아만 아니라 사과나 딸기, 배나 포도도 종류가 엄청 많아. 과수원 하시는 분들 따라다니다 보면 알게 되지.”

너구리가 궁금해했다.

“그러면 어떤 과일을 케이크에 올리는지에 따라서 크게 차이가 나요?”

“생크림 케이크에 장식하는 과일은 기본적으로 설탕에 절여 놓기 때문에 어떤 품종이든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아. 흠집이 있는 싸구려 과일을 써도 상관없지. 하지만 너희가 이번에 만들 타르트 같은 경우에는 과일이 많이 중요해.”

“타르트가 뭐예요?”

일봉이 주춤했다.

“같이 만들어 보면 알게 될 거야.”

“그럼 이 컵케이크는 그만 만들어요?”

“아주 잘 만들어진 것 같은데!”

“이제 완성된 건가?”

세 명이 만든 것은 각자 과일만 달리해서 만든 컵 치즈케이크들이었다.

모두 오븐을 사용하지 않고 크림치즈를 굳혀 만들어, 수저로 떠먹을 수 있게 하였다.

복숭아 미니 컵 치즈케이크와 딸기 미니 컵 치즈케이크, 그리고 사과 미니 컵 치즈케이크.

셋 다 모두 과일을 바꾸었을 뿐 레시피 자체는 대동소이하다.

“이거 이제 먹어봐도 돼요?”

“아, 당연히 시식해야지!”

일봉이 웃었다. 이 미니 컵케이크를 한 사람당 하나씩만 만든 것이 아니다. 일봉은 다섯 개만 만들었지만, 다른 세 학생은 1인당 10개씩 만들었다. 그는 연습은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는 주의였다.

일봉이 식탁에 앉았다. 다른 세 학생 역시 따라 앉았다.

“같이 먹고 평가해 보자.”

먼저 일봉이 수저를 들었다.

강운종은 일봉을 따라 조심스레 수저를 들어 올렸다.

플라스틱 컵 안에 담긴 케이크를 한 수저 떠올리자, 달 위의 크레이터처럼 패인 자국이 남았다.

푹신푹신하고 보들보들하며,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달콤하지만 너무 달지 않은 크림 사이로 사각사각하게 사과가 씹혔다.

아삭아삭한 식감에 목구멍을 타고 비단처럼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크림의 목 넘김, 두 종류의 감각을 즐기며 강운종은 눈을 감았다.

멸치가 말했다.

“설탕에 졸이지 않은 사과는 좀 밍밍하긴 한데, 치즈하고는 이게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너구리가 웃었다.

“복숭아가 몽클몽클하고 뭉실뭉실한 게 아주 좋아요.”

“같은 걸 먹어야지 함께 맛 평가를 하지, 이눔아!”

강운종이 너구리의 대갈빡에 손가락을 튕겼다.

일봉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어허! 어딜 친구들끼리 손을 올려.”

“아니, 이건 손을 올린 것도 아닌데.”

강운종이 억울해했다.

“그럼 방금 머리를 친 건 손이 아니고 발이냐?”

유일봉이 엄하게 말했다.

“나나 진혁이가 너희들에게 손 한 번 올린 적이 있어, 없어?”

“없습니다!”

“우리가 너희들을 때렸으면 좋겠어?”

“아니요!”

“그런데 왜 너는 친구를 때려.”

“….”

“너는 복숭아는 다음에 먹고, 사과 먼저 같이 먹어. 그래야 우리가 맛에 대해서 의견을 나눌 거 아니야?”

‘내가 방금 한 말이잖아.’

강운종은 조금 더 억울해졌다. 너구리는 눈치를 보면서 사과 컵케이크를 자신의 앞으로 끌어왔다.

“이거는 아삭하긴 한데, 확실히 좀 싱겁네.”

세 가지 케이크를 전부 다 맛보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베리 쪽이 새콤달콤해서 훨씬 낫네.”

다 같은 결론을 내렸다. 멸치가 못내 아쉬워했다.

“복숭아가 더 맛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일봉 선생님이 만든 건 진짜 차원이 다르게 맛있네요잉.”

“그러게.”

“하하! 너희는 치즈 케이크를 만들었잖아. 나는 생크림 케이크를 만들었고. 그래서 좀 더 다르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 세 개나 먹으면 질리니까.”

일봉이 웃었다. 머쓱해 하면서도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그가 말했다.

“남은 건 들고 가서 친구들이랑 나눠 먹어도 돼.”

세 명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친구요?”

“음.”

“면회라도 갈까?”

너구리가 꺼낸, 말 같지 않은 농담에 강운종이 피식 웃었다.

“친척 아니잖아.”

“친구도 면회 될걸?”

“흠.”

“어차피 이거 갖고 가도 우리끼리 다는 못 먹어. 거기 애들 넣어주면 좋아할걸.”

“반입되나?”

멸치가 중얼거렸다.

“원래 다 검사하잖아.”

“이거는 안이 투명하게 다 보이는데 검사할 게 뭐 있어. 검사하는 교도관님도 챙겨주면 되지.”

“그거 아마 이제는 못 받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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