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74화 (374/656)

제 374화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케이크를 관찰하였다.

「이건 안쪽에 레이어드를 세 번 했네.」

「크림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건 아닌가?」

케이크를 맛보는 것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완성되어 좋은 점수를 받은 케이크는 각 지점에서 똑같이 재현해 만들어서 팔게 된다.

그러니 제작하는데 재료비가 많이 든다거나, 손이 많이 가면 곤란하다.

다들 관련 업계 종사자다 보니 따져보는 부분이 많았다.

「이 유리컵은 코스트가 얼마나 되지?」

케이크 옆에 서 있었던 페이스트리 쉐프가 대답했다.

「다시 가져오면 할인을 해주는 방식 같은 게 아닐까?」

「안 가져오면 그냥 로스잖아. 그 금액을 커버할 수가 있나?」

「케이크값보다 병값이 더 나갈지도 모르겠는데.」

다른 데에 집중하는 사람도 보였다.

「여기 이 패션프루츠는 관리하기가 많이 힘든가?」

「필링을 다량 만들어서 재어놓고 부으면 되니까, 생각보다 손은 덜 갈지도 모르지. 그런데 돈은 많이 들 거야.」

옆에 서 있던 진행 보조 요원이 한 조각씩 케이크를 잘라 주었다.

마음에 드는 케이크를 고른 이들은 저마다 접시를 들고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목이 마른 이들은 벽 앞에 설치된 미니바에서 물이나 우유, 커피나 홍차 따위를 컵에 따라서 직접 가져갔다.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무대 한구석에 서서 미소를 띤 채 장내를 지켜보고 있던 황미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침착하게 다가왔다가, 미미에게 다급하게 속삭였다.

「잠깐 일이 생겼습니다.」

「뭔데?」

「아버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녀는 얼굴을 들었다. 반가워하는 것도 번거로워하는 것도 아닌 무표정이었다.

「지금?」

「지금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미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등을 돌려 무대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꽃처럼 아름다운 케이크를 힐긋 바라보았다. 부드럽고 몽실해 보이는 크림을 바라보기만 해도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인다.

‘후.’

미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면 더 빨리 가보아야 한다.

「미미 님, 지금 가보셔야 해요?」

진행자가 동그래진 눈으로 황미미를 바라보았다. 미미가 진행자에게 속삭였다.

「플라워 당근 케이크는 일단 시식을 시작하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제가 오면 그때 시작하도록 해요.」

「오래 걸리십니까?」

「글쎄요, 오 분에서 십 분 정도?」

진행자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케이크 바 쪽을 바라보았다. 남아 있는 케이크보다 사라진 케이크가 더 많았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 회장님, 지금 생각보다 케이크가 빠지는 속도가 빠릅니다. 다 빠지면 그때 내놓자는 거지요?」

미미가 우아하게 미소지었다.

「최대한 빨리 올 테니까 제가 오기 전에는 시작하지 말아요」

◈          ◈          ◈

황미미가 말했다.

「아버지.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환영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사무실 안에서 제멋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던 황려권이 벌떡 일어났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나 있고, 구레나룻 역시 다듬어져 있지 않다. 감지 않아 헝클어진 머리에 구겨진 양복은 마치 길바닥에서 자다 온 것처럼 보였다.

그전에는 항상 멀쩡한 양복을 입고 세수와 면도는 하고 다녔는데,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인 모습은 처음 본다.

그가 비참하게 말했다.

「미미! 내 딸아.」

「….」

「그 사내가 여기까지 손을 썼더구나. 나를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모양이야.」

미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저번에 여기에 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고 백만 위안을 받아가셨잖아요?」

황려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정하게 다가갔다.

「너는 공인이야. 처음부터 시작을 잘못했단다. 외국인 빵장수 나부랭이하고 나란히 부부처럼 서서 개업식을 하면 어떡하니. 너는 아직 어려. 미래를 생각하기에는….」

황미미가 한숨을 쉬듯이 말했다.

「아버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계세요.」

「네가 사랑에 눈이 멀어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은 게야.」

「개업식은 제가 낸 의견이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지시하신 내용이죠.」

「웃기지 마라, 아버지가 그러셨을 리가 없어!」

황려권은 눈이 벌게져서 외쳤다.

「그런 외국인 따위를 손녀사위로 맞아들이고 싶어 하셨을 리가 없다.」

미미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아버지. 이건 전부 할아버지의 뜻이에요.」

「왜 이 아비의 말을 듣지 않는 거냐.」

「제 말을 듣고 있지 않은 건 아버지예요.」

답답하고 속상하다.

아무리 설명해도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미미는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미리부터 예상하셨던 걸까.’

중국 국내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재산은 미미에게, 그리고 그 외의 현금과 유동 재산은 전부 임진혁에게 상속했다.

상속세금만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돈이나 건물 따위가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곁에서 충실하게 할아버지를 보필하던 비서진을 비롯하여 모든 인력은 이제 전부 미미의 관리하에 있다.

황려권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앞이 창창한 차기 후계자에서 잊혀진 뒷방 노인네 처지가 된 아버지는 사람이 완전히 변해 버렸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조금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처음에는 부드럽게 말하였지만 원하던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황려권이 소리를 질렀다.

황태명이 쫓아내기 직전에 소리치고 욕하며 물건을 집어 던지던 그 모습 그대로다.

미미는 한숨을 쉬었다. 사무실의 책상 위에 걸려 있는 시계가 똑딱똑딱하는 유난히 큰 소리를 내면서 바늘을 움직였다.

그녀가 침착하게 말했다.

「백만 위안은 전부 어디에 쓰신 거예요?」

‘뇌물이라도 써서 들어온 건가?’

황려권이 눈알을 굴리며 웃었다. 한때 총명했으나 지금은 탁하게 물든 눈동자가 데굴데굴 구르며 주변을 살폈다.

「아비가 조금 돈을 쓸 수도 있지, 내게 당연히 올 돈을 전부 빼앗아 놓고 무슨 소리냐.」

「아버지, 드라마 저작권과 소설 원작 수입은 전부 받고 계시잖아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미미는 조곤조곤 말하며 허리를 숙였다. 책상 밑에 있어 보이지 않는 손을 서랍 밑쪽에 넣어 버튼을 눌렀다.

딸깍

「내가 낳은 아이가 내 돈을 다 훔쳐갔잖아!」

가까이 다가오니 씻지 않아 지독한 냄새가 확 하고 풍겼다. 황미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버지! 그 소설도 할아버지가 쓰신 노트를 보고 그대로 베껴서 조금만 고친 거잖아요. 저도 원본을 읽었어요.」

「!!」

깜짝 놀란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버지를 보자 갑자기 버럭 화가 치밀었다.

황미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사실 아버지께서 무슨 생각으로 할아버지 소설을 자기 이름으로 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끄럽고 치욕스러웠다.

아버지가 훌륭한 작품을 썼다며 자랑했던 자신이 부끄러웠고, 아버지가 원작자라고 해서 우선순위로 캐스팅되어 연기했던 자신이 괴로웠다.

너무나 좋아했던 작품이 사실은 표절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화가 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버지가 나한테 거짓말을 했어.’

직접 쓴 소설이라면서 밝은 표정으로 보여 주었던 그 원고.

그것 자체가 전부 거짓말이었다.

미미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언성을 높이며 싸우던 모습을 보니 더 그랬다.

딸이 아득바득 소리치는데도 황려권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숙이며 책상 위에 양손을 짚고, 미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가 맞닿을 듯 가깝게 고개를 숙였다.

황려권이 한 말은 사과도, 애원도 아니었다.

「매일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나는 네 아비도 아니라는 거냐!」

미미가 싸늘하게 말했다.

「거기까지만 하세요.」

분을 참지 못한 황려권이 화를 냈다.

「너는 아직 회사를 관리하기에는 너무 어려. 아버지의 사생아일지도 모르는 놈한테 홀려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뭔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핏덩어리 같으니라고! 할아버지가 왜 너 같은 것에게…!」

그는 수습하려는 듯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자는 나와는 어머니가 다른 형제고, 너하고는 삼촌 관계야.」

그 말을 들은 미미가 순간 차갑게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랬다면 할아버지가 맺어준답시고 쓸데없는 짓을 했을 이유가 없다.

「제과제빵 매거진 같은 건 안 보시나 봐요.」

「어?」

「지난달 ‘굿 브레드’ 매거진에서 임진혁 쉐프를 취재한 적이 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를 포함해 명동에서 빵집을 하고 있는 쌍둥이 여동생까지 전부 가족사진에 나와 있었죠. 핏줄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았던데.」

문 뒤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치즈 케이크처럼 부드럽게 말했다.

「들어와.」

「뭣.」

달칵

양복을 입은 경호원이 방 안으로 한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널찍한 사무실이었으나 체격이 큰 남자 네 명이 곁에 자리 잡자 시궁창처럼 좁아 보였다. 마지막으로 안경을 쓰고 양복을 걸친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미미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왕 비서관님.」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 네 명은 황려권에게 다가가 팔을 잡았다.

황려권은 힘없이 버둥거렸으나 곧 제압당해 끌렸다.

미미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할아버지는 임진혁을 예비 손녀사위로 점찍어 두고, 미미에게 전권을 넘겼다.

그 와중에서 부친은 완전히 기분이 상해 버렸다.

소설가이자 인기 드라마의 원작자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서 어디서도 대가 취급을 받아왔다.

하지만 황태명의 후광이 사라지자 아무도 더 이상 그를 대 작가 취급해주지 않았다.

사회적 체면이고 뭐고 없이 종잇장도 되지 못할, 이름뿐인 호랑이가 되었다.

저명한 작가로서 높아진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던 만큼,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니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황려권은 변호사에게 의뢰해 미미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했다. 하지만 고인이 생전에 증인과 함께 작성한 유서가 너무나도 명확하여 소송에서 지고 말았다.

그리고 미미는 더 이상 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졌다.

가능하다면 평생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 정도였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없이 자라서 아빠 바라기였던 만큼 그 실망감이 더 컸다.

「하아.」

그녀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뉘우친 것도 아니고, 반성하는 것도 아니다.

「내 돈인데! 감히 빼앗아가서!」

결국은 돈 이야기였다. 바닥이 닿지 않는 바다처럼 깊숙한 실망감에 미미는 아버지의 눈을 피했다.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4번 방으로 보내 주세요.」

듣기만 해도 불길한 이름에 황려권이 눈을 크게 떴다.

「거기에 나를 왜 넣으려고?!」

미미는 손을 내저었다. 어서 빨리 돌아가 케이크를 먹을 시간이다. 벌써 아까 말한 10분은 훨씬 더 지났다.

경비원 중 앞쪽에 서 있던 두 명이 앞쪽에서 황려권의 양팔을 잡았다.

「아버지에게는 요양원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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