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69화 (369/656)

제 369화

“그럼 역시 그거구나.”

소년이라기보다 청년에 가까운 덩치다. 세 명의 덩치가 눈빛을 교환했다.

“흐흐.”

너구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가 문화동 너구리가 어떤지 실력을 좀 보여줘야겠구만.”

“어디 형님들 앞에서 가오 잡기는.”

“빵 안이랑 여기는 다르지. 바깥에 나가면 내가 운곰이 너한테 질 줄 알아?”

운곰이 픽 웃었다.

“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백 명의 부하 말이야?”

똑똑.

세 명이 뭉그적거리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간다.”

나지막한 목소리에서는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강운종은 막 들어온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지, 이 사람은? 연예인인가?’

강운종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반달곰파나 태현파에서 잘 나가는 ‘형님’들이나 그 형님들이 믿고 아끼는 어깨들 역시 보아왔다.

자신 역시 그 길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나타난 이 사람은 그런 ‘형님’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 정도 마스크면 호스트 바에서 완전 잘나가겠는데. 완전 에이스일 거야.’

싸 보이지 않고 고급스러운 얼굴이다.

운종이 잽싸게 얼굴을 평가하는 동안 다른 두 녀석은 인사를 하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발을 딱 붙이고 허리를 직각으로 숙인다. 저절로 각이 딱 잡혀 있다. 조직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새다.

강운종 역시 잽싸게 따라 했다. 허리를 꾸벅 숙이며 정중하게 대응했다.

“좀 기다렸지?”

“아닙니다!”

“이쪽으로 와.”

‘반달곰파에서 온 건 아닌 것 같아. 태현파에서도 저런 마스크가 있었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혹시….’

불길한 느낌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우리들을 데려가서 호빠에 선수로 투입하려는 건가?’

강운종은 나름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 있었다. 지금은 감옥에 들어가 있는 모친이 10살 때 자신을 보고 잘생겼다고 한 적도 있다.

그는 너구리와 멸치를 흘끔 바라보았다.

‘아예 날 선수로 키우고 얘네 둘은 내 시다바리로 키워주려는 건가.’

아무리 봐도 저 두 명은 찌그러진 양은냄비처럼 생겼다. 호빠 선수는커녕 나이트클럽 수질관리도 불가능할 면상들이다.

운종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럼 나만 호빠로 데려가고 얘들은 어디로….’

강운종이 이것저것 쓸데없는 것을 상상하는 동안, 임진혁은 세 명의 애들을 데리고 실습실로 이동했다.

화웅 제과제빵 기계공업사에서 폐업한 베이커리들을 방문해 수거하고 수리하여, 저렴한 가격에 설치한 오븐들이다.

교도소에 있는 오븐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의, 세련되어 보이는 금속 기계들을 보고 세 소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가 오븐이고 뭐가 냉각기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표정들이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일단 손부터 씻고 오지.”

“네!”

수도꼭지와 싱크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세 명의 소년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손을 씻으러 갔다.

있는 대로 물을 튀기면서 손을 씻고 있는데, 비누거품을 제대로 내지 않는다.

기껏해야 물만 묻히는 수준이다.

‘이건 진희가 보면 난리 나겠는데.’

진혁이 혀를 찼다.

병원에서 일하던 진희는 손 씻는 것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했다.

병원 내에서 손 씻기 교육 전문가로 신규 간호사와 실습생들에게 손 씻기 교육을 하기도 했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소년들은 손 씻기 교육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진혁은 옆에 다가서 가볍게 지적했다.

“손을 씻을 때는 거품을 최대한 많이 내고, 엄지손가락을 둥글게 감싸면서 씻도록 해. 손톱 아래에 끼어 있는 때를 벗길 때는 좀 더 신경 쓰고.”

강운종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역시 선수는 뭔가 달라도 달라.’

제대로 된 호빠 선수는 한 달에 몇억씩을 벌어들인다고 들었다.

‘여자들 앞에서 나서야 하니 항상 손을 깨끗이 하는 건 기본인가보다.’

진혁이 보여주는 손 씻기 방법은 굉장히 특이했다. 다른 형님들이 손을 씻는 방법과는 아예 달랐다. 손 전체에 물을 묻히고 바지에 적당히 쓱쓱 문지르는 스타일과 달리, 이곳저곳 비누거품까지 꼼꼼하게 바른다.

“제대로 하네.”

진혁이 칭찬을 하자 강운종이 씩 웃었다.

“제가 손재주 하나는 기가 막힙니다. 연장도 잘 다뤄요.”

강운종은 은근슬쩍 자신이 호빠에는 관심이 없음을 어필해 보았다.

‘한 달에 몇억을 벌어도 여자한테 살랑거리는 건 취미가 없어. 내가 좀 잘생기긴 했어도 어렵지, 어려워.’

임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연장이라.”

너구리와 멸치는 힐끔힐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고 있었다.

“오늘은 제일 기본적인 것부터 배울 거야.”

“예?”

강운종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여기 이게 오븐. 내가 미리 예열해 놓았는데, 다음부터는 너희가 예열하도록 해. 기본 레시피북은 여기에 있고.”

“예에에.”

힘 빠진 목소리가 뒤따라왔다.

“이건 밀대. 반죽을 얇게 펼 때도 쓰고, 이건 버터용으로 따로 빼놓은 거야.”

“밀대로 버터를 어떻게 하는데요?”

“버터를 살짝 두드리면 부드러워지거든.”

진혁은 미리 꺼내 놓은 버터를 눈짓으로 가리켜 보였다.

“흠.”

“이 스크래퍼는 반죽이나 버터를 자를 때도 쓰고, 작업대에 있는 반죽을 긁어낼 때도 써.”

주걱과 거품기, 온도계와 스테인리스 보울, 저울과 발효기, 식힘망을 비롯해 다양한 주방용품에 대해 안내를 받았다.

“이 쿠프 나이프는 반죽에 칼집을 넣을 때 써.”

길고 납작한, 직사각형 모양의 금속제 판에 날카로운 면도칼이 양쪽으로 붙어있다.

연장으로 쓰기 딱 좋은 모양이다.

강운종은 방금 전까지 하던 생각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이 밀대랑 쿠프 나이프를 들고 직접 현장에 가시는 건가? 여자를 꼬시는 게 아니고?’

하지만 저 외모라면 호빠 외의 다른 곳은 상상할 수가 없다. 일단 너무 튄다. 현장에서 저런 얼굴이 눈에 띈다면 일반인이나 경찰들 역시 한눈에 알아볼 것이다.

멸치와 너구리 역시 영문을 모르고 설명을 듣고 있는 모양이 보였다.

강운종은 멸치에게 눈짓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겠어?’

멸치 역시 눈짓으로 답변했어야 했는데, 눈치 없는 너구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요리를 해서 여자를 꼬시는 게 아닐까?”

즉, 저 녀석 역시 호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는데, 어떻게 들었는지 방금 전까지 설명을 하던 남자가 성큼 다가서 있었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너희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여자를 꼬실 생각부터 해?”

딱, 딱, 딱.

아주 가벼운 딱밤이었다.

CCTV가 달려 있다고 하더라도, 폭행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딱밤.

하지만 그 딱밤에는 무시할 수 없는 내공이 실려있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돌아서 강운종은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크윽!”

“아. 괜찮나?”

진혁이 손을 뻗어 부축해 주었다.

“?!”

강운종은 입을 벌렸다.

키 182cm에 100kg에 달하는 운종을 검지로 가볍게 부축하는 게, 보통 힘이 아니다.

그것도 안아서 부축한 게 아니고 검지로 등을 쿡 찔렀을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균형을 되찾아 스스로 일어날 수 있었다.

‘이 형님, 사실은 얼굴이 문제가 아니고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건가?’

순간적으로 엄청난 위압감이 지나갔다.

아까까지 보고 있던 평범하게 잘생긴, 모델 같은 형님이 아니다.

빵을 두 번 넘게 갔다 온 살모사 형님보다도 더 위압적이고 엄청난 살기였다.

순간적으로 지릴 뻔했다.

‘내가 잘못 봤나.’

운종은 송아지처럼 눈을 껌뻑껌뻑 감았다가 떴다.

다시 봐도 눈앞에는 잘생긴 형님이 서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느꼈던, 척추에 흐르는 서늘함과 피부에 돋은 닭살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 오늘은 제일 쉬운 식빵부터 만들어 보자. 이론 수업부터 하면 귀에 안 들어올 것 같으니, 일단 하나씩 만들면서 배우자고.”

진혁은 강력분과 설탕, 소금과 탈지분유를 준비했다.

미리 꺼내놓은 버터와 쇼트닝, 드라이 이스트와 물, 달걀 역시 제대로 꺼내져 있다.

소년들은 각자 스테인리스 보울에 가루를 넣어 석기 시작했다.

“거품기로 천천히 섞으면 돼.”

하얀 가루가 풀썩풀썩 날린다. 각자 자기 앞에 보울을 들여다보며 소년들은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멸치가 물었다.

“물은 언제 넣어요?”

“거품기로 충분히 섞이고 난 후에.”

“이 물을 다 부어요?”

“아니, 그건 조정수야.”

“조정수요?”

진혁이 조정수에 관해서 설명해 주었다.

“믹싱용 보울에서 반죽이 얼마나 굳었는지 확인해 가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넣는 거야. 작업용으로 물을 500mL 준비해 놓았다고 해서 그걸 전부 다 넣는 게 아니거든.”

“흠, 그럼 조정수는 얼마나 써요?”

“작업용 물의 2~3% 정도면 돼.”

진혁이 웃었다.

“같은 재료를 아무리 정확하게 측정해서 똑같은 양을 쓴다고 해도 반죽은 달라지게 마련이야.”

“왜요?”

“그날그날 실온이나 습도에 따라서도 그렇고, 이 강력분이 보존된 환경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지.”

의외로 친절하게 하나씩 설명해 주고 있다.

멸치는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따로 조금 빼놓은 조정수를 빼고, 세 소년은 모두 반죽을 만들어냈다.

물을 붓고 가루를 치대고 덩어리로 만든다.

손끝에 닿아오는 차가운 감촉이 낯설고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하다.

‘이게 정말로 빵이 되는 건가?’

신기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진혁은 경도를 확인하면서 조정수를 조금씩 부어 주었다.

반죽을 강하게 내려치고 치대고, 너무 퍼지면 스크래퍼로 긁어서 다시 모은다.

한참이나 반죽을 계속하고 나서야 진혁이 말했다.

“이제 버터하고 쇼트닝을 넣으면 돼.”

너구리가 물었다.

“이거 바로 넣어요?”

진혁이 웃었다.

“냉장고에서 꺼낸 다음에 조금 시간이 지나야 해. 자, 만져 봐. 손가락으로 살짝 눌렀을 때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면 돼.”

“이건 완전히 쑥 들어가는데.”

“그건 너무 부드러운 거야.”

멸치가 말했다.

“이건 아예 안 들어가요.”

“그건 너무 차가운 거니까 조금 더 있으면 되고. 다시 새로 꺼내서 써.”

너구리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서 말했다.

“이미 넣었는데요….”

반죽 위에서 동그마니 흐를 것처럼 고여 있는 노란 액체를 보며 너구리가 곤란해했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섞어 봐.”

한참이나 낑낑대면서 저어대도 버터는 제대로 섞이지 않았다.

“버터는 밖에서 힘이 들어오면 점토처럼 모양을 바꿔서 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특질이 있어. 그걸 가소성이라고 하는데….”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한 너구리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껌뻑이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너무 녹아도 안 섞인다. 차가워도 안 섞인다, 이거죠?”

“그래, 맞아. 잘 하네.”

멸치가 물었다.

“이 버터는 다시 냉장고에 넣어두면 돼요? 너무 녹은 거?”

한 번 녹았다가 다시 얼린 버터는 발효점에서 녹아버릴 우려가 있다. 빵이 제대로 부풀지도 않는다. 진혁은 그러한 사항을 일일이 미리 지적해줄까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실패도 적당히 해봐야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웃었다. 마침내 세 소년 모두가 동글동글하게 부풀어 오른 반죽을 갖게 되었다.

주먹만 한 하얀 덩어리를 보고서 멸치가 말했다.

“이거 너무 쪼끄만 거 아니에요?”

“괜찮아.”

“여기 이 모양 조금만 더 다듬어야지.”

너구리가 중얼거렸다.

“은근히 기분 좋은데. 말랑말랑하고 촉촉하고, 계속 만지고 싶다.”

“온도계로 반죽 온도를 재 봐. 지금 26도? 딱 적당한 온도네.”

운종 역시 반죽을 볼에 넣어 내밀었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이 잘생긴 형님이 제빵을 너무 잘했다.

‘아니, 그러니까. 이 형님은 사실 호빠가 아니고….’

말로만 듣던 비밀 요원 같은 걸지도 모른다.

일본에는 가문의 후계자라면 그에 걸맞은 비밀 부하들을 키운다고 들었다.

전통 있는 야쿠자 집안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충성을 다하며 비밀리에 암약할 애들을 붙여서 키운다고.

‘반달곰파 형님들이 나를 추천한 건가?!’

아예 대놓고 어깨 질을 하는 형님들하고는 다르다. 일반인의 세계에서, 마치 CIA나 FBI처럼 평범한 일반인으로 가장한 채 비밀스럽게 활약하면서 정보를 모으고 자금을 세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이 형님도 제과제빵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자금 세탁 담당이 틀림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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