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67화 (367/656)

제 367화

반년 후.

소망시의 <소망 베이커리>에 한 손님이 서 있었다.

그녀가 젊은 제빵사에게 물었다.

“여기에는 엔젤 치즈 케이크 안 팔아요?”

“네.”

“에이.”

긴 생머리의 여학생이 아쉬워하며 케이크 진열대 앞에서 서성거렸다.

유일봉이 부드럽게 물었다.

“중국에서 드셔 보셨나 봐요?”

“예. 사천성 중앙지점에서 먹어봤는데…, 진짜 너무 맛있어서요.”

“국가별로 만드는 케이크가 달라요. 엔젤 치즈 케이크는 중국에서만 팔고 있거든요. 대신 여기에는 크림슨 치즈 케이크라고, 지금 딱 하나 남아 있어요.”

“그러면 그거 하나 주세요.”

“홀케이크로 드릴까요?”

“네!”

주방에서 임진혁이 나왔다.

“일봉이 이제 세일즈도 잘 하네?”

“빵집 생활을 얼마나 했는데 이 정도는 기본이지. 그나저나 정말로 엔젤 치즈 케이크는 진짜 우리 안 줄 거야? 중국에서 얼마나 팔리는지, 간간이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흠. 치즈 케이크를 그렇게 많이 추가할 필요는 없잖아?”

“그거야 그런데, 엔젤 치즈 케이크는 다들 궁금해하고. 중국에서 엄청 많이 팔렸다고 하니까 더 그렇지.”

“음….”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메뉴를 합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차라리 한국 한정으로 태극 치즈 케이크 같은 걸 새로 내놓으면 모를까.”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인데. 기대된다.”

“언제는 메뉴 좀 그만 늘리라고 하더니 말이야.”

진혁이 씩 웃자 일봉이 마주 웃었다.

“아니, 그래도 형. 손님이 먹고 싶어 하는데 갖다 놓지를 못하니까 그렇지. 다른 메뉴 다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엔젤 치즈 케이크 하나만 놓으면 어때? 그거 진짜 맛있던데.”

일봉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진혁이 일봉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우리 일봉이, 형한테 할 말도 다 하고. 많이 컸네.”

처음에는 진혁을 무서워하면서 제대로 말도 못 하던 녀석이다.

나중에는 직접 빵 만들기를 배우면서 몇 마디 농담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형 동생 하게 되었다.

이제는 직접적으로 가게에 필요한 사항을 요구하기도 한다.

“큰 사장님은 오늘은 학교 가셨는데, 미리 말하고 오지.”

“아버지는 집에 가서 뵈면 되니까 괜찮아. 그것보다 너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면 가게 마무리하고 난 다음에 그 앞으로 갈게.”

“그래. 내가 미리 치킨 시켜 놓을게.”

일봉이 활짝 웃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한 마리씩은 시켜야지.”

“네!”

◈          ◈          ◈

소망 베이커리에서 100미터쯤 걸어가면 통닭집이 하나 있다.

얼마 전에 알게 되었지만 유일봉의 부친이 직접 닭을 공급하는 곳이다.

진혁은 그곳에서 닭 두 마리를 시켜놓고 일봉이를 기다렸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일봉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조리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였다.

“야, 옷은 갈아입고 와야지.”

“금방 다시 다녀올게요!”

치킨집 아주머니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진혁이 서울에서 크게 성공했다면서? 부모님이 아주 좋아하시던데.”

진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요즘 소망 베이커리가 유명해지면서 거리 전체가 매출이 늘었어.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도 많고.”

그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머니의 수다에 호응해 주었다. 이 아주머니 역시 어머니가 아는 사람 중의 하나다. 좁은 동네에는 소문이 빨리 돈다.

‘‘좋은 아들’이라는 평판을 지키기 위해서는 몇 분이나 더 이 수다를 참고 들어야 하지?’

일봉이 곧 다시 들어왔다. 구겨진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아까보다 훨씬 편해 보였다.

“조리복은 빵집 안에서 일을 할 때 입는 옷이니까. 외부에서 조리복을 입고 뭔가를 먹거나 술을 마시면 곤란하잖아.”

“그거야 그렇죠. 미안해요, 형.”

고소하고 바삭바삭한 후라이드 치킨이 수북이 놓였다. 황금처럼 노랗고 바삭바삭한 그 튀김옷을 보며 일봉이 입맛을 다셨다.

“우리 엄마는 후라이드 치킨은 안 해주거든. 혈관에 나쁘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그래, 우리 집 와서 사 먹어. 맛있잖아.”

아주머니가 호쾌하게 웃더니 덤이라며 모래주머니도 한가득 주었다.

“많이 먹고 가라.”

생맥주 두 잔도 시켜놓고 일봉이 물었다.

“형, 그런데 진짜 왜 왔어?”

“음?”

“신메뉴 얘기하려고 온 건 아닐 거 아냐. 형 진짜 무지무지하게 바쁘잖아.”

튀긴 닭 다리를 집어 들자 따끈따끈한 기름이 손에 묻었다. 기름이 묻던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일봉은 바로 입을 열어 다리 살을 물어뜯었다.

바삭바삭하고 따스한 튀김옷 아래 공기층을 지나, 쫄깃하고 촉촉한 닭 다리 살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여기 진짜 맛있어.”

황금색 튀김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 식탁보 위에 흩어졌다.

진혁이 빙긋 웃었다. 그는 날개를 집어 들어 닭 껍질과 함께 튀김옷을 물었다.

“음.”

닭의 날갯죽지 부분은 닭 껍질이 완전히 덮고 있어 지방의 함유량이 많아 야들야들하다. 중국인들은 닭 날개와 닭발의 쫄깃쫄깃한 식감을 높게 쳐, 따로 이 부위들만 모아 고가로 팔기도 한다.

진혁 역시 닭 날개의 맛을 즐겼다.

일봉이 물었다.

“형, 형은 이제 충분히 돈 많이 벌었잖아.”

“음?”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충분히’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생맥주로 건배를 하며 그가 물었다.

“왜?”

“치즈케이크가 성공해서, 중국에서도 엄청 잘 팔린다며.”

심지어 치즈 케이크의 온라인 판매를 원하는 총판의 제안도 들어왔다.

진혁은 총판에게 치즈 케이크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유통망만 이용해서 치즈 케이크를 판매할 수 있는 쪽으로 다시 제안을 받아오라고 요청했다.

그 말대로 사업은 순항기에 올라와 있고, 아주 잘 되고 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정도다.

“그러니까 형은 자수성가한 부자인 셈인데, 왜 돈을 안 써?”

진혁이 웃었다.

“돈 쓰고 있는데.”

“어디에?”

“지금 너한테 치킨 사주고 있잖아.”

메뉴판을 손가락질하며 일봉이 물었다.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같은 명품 차나, 롤렉스 같은 비싼 시계를 살 수도 있잖아. 아니면 아르마니 같은 명품 슈트를 입을 수도 있고.”

진혁이 피식 웃었다.

“야, 지금 나랑 진희가 사는 집이랑 빵집이랑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잖아.”

이전에 백진영이 살 수 있게 해 주어 혼자 살던 오피스텔은 강남에 있다.

하지만 새로 진희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은 <해와 달>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그거야 그렇지만. 차가 있으면 폼나잖아.”

진혁은 최신식 자동차 모델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옛날, 아주 먼 옛날 무림 세계에 가기 전에는 그러한 자동차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걸어가는 것보다 느린 기계에 관심은 없다.

‘차라리 남이 운전하는 게 낫지.’

이왕 타고 간다면 차라리 다른 사람이 운전하면서 속도를 조절하는 게 낫다.

그는 자신이 화가 날 만한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았다.

‘운전하다가 화가 나면 정말로 누가 죽어버릴지도 모르니.’

모든 차가 블랙박스를 달고 다니는 시대다.

진혁 자신이 사고를 치는 것도 곤란하다.

자칫해서 홧김에 흘린 살기에 다른 차의 운전사가 놀라 굳어버렸다가 사고를 내버리거나 하면 그것도 귀찮다.

‘경공을 통해 날아가는 게 훨씬 더 몸도 가볍고 즐겁고.’

진혁은 오히려 일봉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일봉이 넌 돈이 많으면 뭘 하고 싶은데?”

주저 없이 대답이 돌아왔다.

“일단 차부터 사고.”

그는 어떤 차를 사고 싶은지 이미 결정한 것 같았다. 아예 고장 난 수도꼭지가 물을 줄줄 쏟아내는 것처럼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포르쉐 카이엔 사고 싶어. 거기서 만든 첫 번째 SUV고, 스포츠카보다 더 실용적이고. 색깔도 남자답고. 아, 그냥 진짜 멋있잖아.”

치킨집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도 두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난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아, 잠깐만. 맥라렌이나 포르쉐 911시리즈도 있고. 크아아. 갖고 싶은 차가 너무 많은데.”

“차는 왜 갖고 싶은데?”

“그냥 좋잖아.”

“운전면허는 있어?”

“따면 되죠.”

“….”

“….”

“그런데 형은 진짜 차에 관심이 없다.”

“그럴 수도 있지. 진희는 돈 모으면 집부터 산다고 벼르던데.”

“진희 누나는 진짜 똑 부러지잖아요. 저도 차 사고 난 다음에는 집 생각하고 있지요, 당연히. 그런데 돈을 그만큼 모으지는 못했으니까.”

일봉이 웃었다.

“그래도 친구들보다는 겁나 많이 모았어.”

“그래?”

“내가 만든 메뉴에 형이 인센티브 줘가지고. 형 없으면 솔직히 이 정도로 못 모았지. 너무 많아서 겁이 날 정돈데.”

“얼마나 모았는데?”

“지금 일을 안 해도 한 달에 몇십만 원이 라이센스 비용으로 꽂히는데.”

“많이 들어오긴 하네.”

이번에 중국 지점에 진출한 치즈케이크 메뉴 중에는 유일봉이 개발한 메뉴 역시 끼어 있다.

진혁은 그 메뉴가 팔릴 때마다 일봉에게 인센티브가 돌아오도록 조처했다.

“나한테 이 정도로 인센티브가 들어오면 형한테는 훨씬 더 많이 들어올 거 아니야. 그런데 그러면 일 그만두고 쉬고 싶지 않아? 이제 은퇴해서 막, 그런 카리브해 같은 데서 칵테일 마시면서 삶을 즐기는 거지.”

유일봉의 눈동자에 진혁이 마주 비쳐 보였다.

진혁이 웃었다.

“그래서 너는, 은퇴하고 싶어?”

“그건 아니지. 지금 일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또 새로 치즈 케이크 또 만들면 형이 중국에 팔아서 인센 벌어줄 거 아니야.”

“그런데 내가 지금 은퇴를 왜 하겠냐? 나도 일이 재밌는데.”

“형은 하루에 십몇 시간을 일하잖아. 이제 지겨울 때도 되지 않았어?”

“백 년은 해야 지겨운지 아닌지 알지.”

“백 년이면 사람은 죽어!”

“하하.”

일봉이 유리잔에 맥주를 다시 따라주었다. 투명한 맥주가 흐르며 뽀얀 거품이 몽글몽글하게 올라왔다.

“자식, 맥주는 기가 막히게 따르네.”

“아주머니! 여기 피처 하나 새로 주세요!”

다시 한 번 맥주잔을 부딪치고 나서 진혁이 말했다.

“일봉이 너도 이제 서울 올라와야지.”

“?!”

“전에 말했던 아카데미 계획 말이야, 서울에서 하려고 하거든.”

유일봉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거는 우리가 은퇴할 때쯤에, 30년 후에 하는 거 아니었어?”

이번에는 진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임마? 지금 네 경력에 30년 후 은퇴를 생각해? 지금 나이에 삼십 년이 지나봤자 오십 대 초반이야. 한창 일할 나이지.”

“아니, 형. 오십 대 초반이면 부모님 세대인데….”

“그게 한창 일할 나이지. 우리 아버지만 봐도 계속 일하고 계시잖아.”

“그리고 내가 여기서 빠지면 큰 사장님은 어떡해.”

“네 밑에 있는 애들, 네 역할 못 해? 네가 그렇게 키웠어?”

“알았어. 내가 올라간다, 올라가.”

진혁이 멋지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잘 생각했어.”

◈          ◈          ◈

다음날, 사무실에서 만난 유일봉이 혀를 내둘렀다.

“건물도 벌써 구해놨단 말이죠. 하여튼 손은 빨라.”

진혁이 보여주는 건물 조감도를 보니 아주 본격적이었다.

“교육생 희망자 명단은 여기에 있어.”

16세에서 19세 사이의 남녀 청소년 이름 목록이다. 연령과 이름, 주거지역이 적혀 있을 뿐이다.

그걸 보고서 유일봉이 휘파람을 불었다.

“전에 자원봉사한다던 그 보육원 애들이야?”

“보육원 애들도 있는데, 거의 소년원 애들이야.”

일봉이 눈썹을 찌푸렸다.

“소년원 애들? 그거 뭔가 큰 죄를 저지른 애들이 가는 데 아닌가?”

“그런 애들이 의외로 순해.”

“그래요?”

소년원에 대해서 아무런 개념도 없는 일봉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진혁이 짧게 설명해 주었다.

“중범죄를 저지르면 소년교도소로 가. 소년원은 사실 교화를 하는 ‘학교’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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