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65화 (365/656)

제 365화

1. 황미미는 <해와 달> 중국 지부의 최종 책임자이자 투자자다.

2. 임진혁은 신제품 케이크를 개발할 때마다 최종 책임자에게 1개씩 제공할 의무가 있다.

3. 중국 지부의 개업식은 한국 본점의 책임자와 중국 지부의 최종 책임자 두 사람이 황제와 황후의 분장을 하고 개업을 선포하는 형식을 취한다.

4. 한국 본점의 책임자와 중국 지부의 최종 책임자 두 사람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 식사를 함께한다.

‘음침한 녀석.’

그 소소하고 까다로운 조항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죽어가는 녀석이 신음처럼 내뱉는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어차피 너무 애 같아서 여자로 보이지도 않고.’

하지만 황미미의 생각은 다른 것처럼 보였다.

「다음에는 여름 한정 치즈 케이크를 개발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도 과일을 쓰나요?」

「블루베리 오레오 치즈 케이크가 될 겁니다.」

「우와, 말만 들어도 좋아 보여요.」

개업식을 마치고 인터뷰까지 하고 나서 두 사람은 함께 지부장실로 향했다.

‘이번 주의 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          ◈          ◈

특급 호텔 식당의 이미 예약된 룸으로 이동하자, 준비된 탁자가 보였다.

깔끔하고 단정한 흰 식탁보 위 투명한 유리병 속에는 화려한 붉은 장미가 한 송이 꽂혀있었다.

은은한 피아노 음악 소리가 흘러오는 가운데 두 사람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매번 식당이 바뀌는군요.」

진혁이 가볍게 말하자 미미가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미리 예약해 두신 거예요.」

「….」

「진혁 쉐프님이 다양한 음식을 맛보셔야 한다며 식당의 목록을 만들어 놓게 했거든요. 예약 자체는 왕 비서관이 했을 거예요.」

진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미미의 얼굴에서는 광안마를 닮은 점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단지 황태명과 귀 모양이 비슷할 뿐이다.

‘나이 어린 여배우가 외국의 사업가와 여러 번 식사하여 스캔들이 나는 것을 걱정해서 식사하는 곳을 계속 옮기는 게 아니었군.’

언론 단속을 어찌나 철저히 하는지, 미미에 대한 정보는 전혀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아시는 대로 할아버지가 진혁 쉐프님을 많이 아끼셨어요.」

식전주로 나온 붉은 포도주를 거침없이 따르며 미미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반대에 가깝다.

‘나도 그 녀석을 많이 아꼈는데.’

조금만 더 살다 갔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일찍 갔다. 함께 백여 년 이상을 함께했어도 짧다고 느꼈는데, 며칠 만에 잃었으니 더 상실감이 컸다.

입맛을 돋우기 위한 전채 요리로 통통한 메추리 알과 베이컨 요리가 나왔다. 향미가 강한 허브 잎과 메추리 알, 그리고 얇게 썰어 바싹바싹하게 튀긴 베이컨이 잘 어울렸다.

전채 요리를 먹으며 두 사람은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웨이터가 메인 요리를 가져왔다.

미미는 잘 익은 양고기 스테이크를 썰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쨌거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계속해서 마음속 한구석을 짓누르던 고민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저분과 결혼하기를 바라셨어.’

미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전부터 말씀드리고 싶은 사실이 있습니다.」

「예.」

「오해하지는 말아 주세요. 할아버지와 진혁 쉐프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당장은 그 뜻을 따를 생각이 없습니다. 아직 결혼하기에는 많이 이르고,」

진혁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유언장에 지시한 내용은 일주일에 한 번씩 식사를 하는 겁니다. 결혼하는 게 아니고요.」

「….」

미미는 눈을 깜빡였다.

‘이 사람, 유능하지만 눈치가 없구나.’

그녀가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진혁 역시 마주 보며 미소지었다.

「저는 그대로 따를 생각입니다.」

미미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결혼은 해야겠다는 건가.’

「할아버지의 뜻은….」

「저도 미미 지부장님과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에, 네?」

황미미가 어떤 대답을 예상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결혼하고 싶지 않다’라는 대답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황망한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놓쳤고, 접시에 메추리 알을 떨어뜨렸다.

포크와 접시가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진혁은 못 들은 척해주었다.

「어, 죄송해요. 제가, 제가 이상한 오해를….」

‘저는 실은 진혁 쉐프님이 저랑 결혼하고 싶어 하셔서 할아버지께서 이어 주시려고 하는 줄 알고….’

얼굴이 새빨개진 미미가 쓸데없는 설명을 열심히 하는 것을 들으며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업하느라 바쁘고 부모님도 모셔야 합니다. 지금 결혼할 여유는 없습니다.」

그는 짧게 자신의 이유를 설명했다. 미미는 눈을 크게 떴다.

‘오히려 그게 더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

다음에 나온 요리는 작은 뇨끼를 곁들인 버섯 콘소메였다.

식전에 부담스럽지 않도록 새끼손가락 정도 크기의 작은 뇨끼가 동실동실 떠 있다. 맑고 투명한 버섯 야채수프는 깔끔하고 청명한 맛이 났다.

곧 라임과 아보카도, 잘게 썬 베이컨을 곁들인 샐러드가 나왔다.

하지만 황미미는 음식의 맛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녀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돌아가시는 분의 마지막 뜻을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어.’

하지만 그녀는 아직 어리다.

배우로서의 미래도 아직 앞길이 창창하며, 다니려던 대학 역시 있다.

대학생도 되기 전부터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임진혁’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 역시 한몫했다.

‘이 사람은 나를 여자로 보고 있지 않아. 완전히 어린애 취급을 하고 있어.’

드라마 팬 미팅 현장에서 처음 만났지만, 드라마의 팬인 것 같지도 않다.

자신은 어린애 취급하면서 할아버지는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서 이상하게 여겼는데, 결혼에 관심이 없다고 하자 오히려 속이 편해졌다.

양고기 스테이크는 카레 향이 풍기는 특별한 소스를 버무려 비린내 없이 부드럽기만 했다.

화제를 바꾸어도 좋을 때다.

나이프로 양고기를 얇게 썰어내며 그녀가 빙긋 웃었다.

「처음에 진혁 쉐프님을 만났을 때는 정말 놀랐어요.」

「음?」

「팬 미팅 현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진혁 쉐프님이 배우 지망생인 줄 알았다고 했거든요.」

비교적 마음이 편해진 그녀는 친구 대하듯이 재잘재잘 이것저것 떠들어 댔다.

알아서 조잘거리며 이야기하니 진혁 역시 대답할 필요가 없어 편했다.

그는 묵묵히 고기를 썰면서 들어 주었다.

「진혁 쉐프님도 좋아하시는 분이 따로 있으신 거지요?」

「…?」

특별히 있는 건 아니지만 진혁은 일부러 설명하지는 않았다.

이 맹랑한 아가씨는 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저도 있어요.」

진혁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소녀는 나름대로 심각한 고백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진혁에게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기에 그는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눈앞에 있는 양고기의 육질과 바비큐 소스의 배합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광안마 네 이놈, 엉뚱하게 나랑 결혼하라고 권유할 게 아니잖아. 네 핏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음이나 잘 알아두고 행동할 것이지.’

아쉬운 일이다.

‘생전에 알았다면 쓸데없는 마음 먹지 말라고 크게 놀릴 수 있었을 텐데.’

‘여기 요리사도 솜씨가 좋은 편이란 말이지.’

진혁은 그 좋아한다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묻지 않았다. 하지만 미미가 스스로 대답했다.

「그분은 아주 강하고 멋진 협객이에요. 진혁 쉐프님도 아시는 분이에요.」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미미의 지인 중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비서진이나 부하 중 ‘협객’이라고 할만한 사람은 전혀 없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요.」

다음 코스는 오리고기와 살구 콩피였다. 진혁은 포크를 내려놓고 이야기를 경청했다.

「짝사랑이라는 이야기군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분이에요.」

「네?」

「도산검림이라고.」

진혁은 오리 콩피를 뱉을 뻔했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 말입니까.」

「에이, 그 배우님은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역할 하고 배우는 구분해야죠.」

「…그러니까 그 드라마 속의 캐릭터가 마음에 드신다는 이야기군요.」

「네.」

진혁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렇군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문득 떠오른 의문을 이야기했다.

「혹시 그 이야기를 돌아가신 조부님께 하신 적이 있습니까?」

「아, 물론이죠. 드라마 촬영할 당시에 말씀드렸어요. 할아버지도 제일 존경하는 분이시라면서 좋아하시던데요?」

‘…광안마 이 새끼가?’

진혁은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깨달았다.

◈          ◈          ◈

임진혁은 이제 단순히 자신의 가게에서 빵을 만드는 오너 쉐프가 아니었다.

이제 중국 전역에 동시 개업한 150여 개의 점포와 한국에 있는 지점들을 총괄하며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데만도 바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개업식을 마친 후 보름이 지나, 수요일이 되었다.

<해와 달>의 공식 휴일이다.

부모님은 모처럼 진희와 진혁이 함께 사는 집을 방문하였다.

“어머니, 이런 건 가지고 오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직접 한 김치와 갈비찜, 그리고 된장국에 무친 나물까지 캐리어에 가득한 짐을 보고 진혁이 말했다.

“엄마! 내가 아무것도 해오지 말랬잖아.”

진희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맨날 새벽같이 나가서 일하면서 이런 건 또 언제 다 만들어 왔어.”

“너희들이 바쁘게 일하면서 밥은 제대로 먹는지 모르니까 그렇지. 빵집에서 일한다고 맨날 빵만 먹으면 건강에 안 좋아. 그래서 내가 반찬만 조금 챙겨왔다.”

말은 조금이라고 하는데, 양은 ‘조금’이라고 할 정도가 아니다.

4인 가족을 열흘 넘게 먹일 수 있을 것 같은 다량의 반찬과 식재료가 계속해서 나왔다.

“엄마, 이건 또 뭐에요?”

“그건 찐 고구마야. 바빠서 밥 먹을 시간 없을 때 그냥 집어 먹으면 돼. 껍질도 깨끗이 씻어놓았으니까 알아서 주워 먹어.”

“….”

임진희도 진혁도 빵집에서 일한다.

일하다 보면 잘못 구워졌거나 못생기게 구워진 빵은 계속해서 나온다.

먹을 것이 없는 환경은 전혀 아니다.

“우리 절대로 굶으면서 일하지는 않는다니깐.”

“그래도 잘 먹으면서 해야지.”

“알았어요, 고마워.”

진희가 미안해하면서도 고마워하며 여러 번 말했다.

아버지가 빙긋 웃었다.

“둘이서만 산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아주 깨끗하게 해놓고 사는구나.”

진희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엄마, 내가 내 친구 이야기했잖아. 집안 정리하고 살림 깔끔하게 해주는 사업 한다고. 걔가 우리 집부터 시작했는데 아주 잘 해.”

“그래? 네 친구면 젊은 나이일 텐데. 청소 사업을 해?”

“응. 소망시에도 이번에 새로 지점 낸다고 하는데, 누가 서비스를 좀 이용해 주고 소문을 내줬으면 좋겠나 봐. 엄마가 좀 도와줄 수 있어?”

“아무렴, 젊은 애들이 사업을 한다는데 도와줘야지.”

“여보. 당신은 누가 집에 와서 부엌이랑 이런 데 손대는 게 싫다며?”

“그래도 딸 친군데 해줄 수 있는 건 해 줘야죠.”

“앗싸! 그럼 내가 혜영이한테 얘기할게.”

“그래, 그래. 잘 부탁한다고 해. 내가 산목아파트랑 다 소문 퍼트려 줄게.”

임진혁과 진희는 눈빛을 교환했다.

‘성공했어.’

미리 계획한 대로였다.

‘이제 청소하는 애가 요리 서비스도 늘리고 있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엄마 일을 줄여 드리는 거야.’

목적을 달성한 두 남매는 만족스럽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진희는 부모님이 소파에 앉자 동영상을 틀어 주었다.

“엄마, 우리 중국 진출한 거 영상 봤어? 광고 진짜 기가 막히게 나왔어.”

어머니가 혀를 내둘렀다.

“이게 그 개업식이라고?”

“외국은 개업식도 특이하게 하는구나. 나는 돼지머리 올려놓고 고사 지낼 줄 알았어.”

“그런 것도 해요. 그런데 이번에는 좀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처럼 하기로 해서요.”

“저렇게 둘이 나란히 서 있으니 아주 잘 어울리네. 인기 있는 여배우하고 나란히 서 있는데도 전혀 외모가 꿀리지 않아. 당신이 잘생기게 낳아 줘서 그렇지.”

“호호호호.”

아버지와 어머니는 개업식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서 즐거워하셨다.

“좀 더 좋은 식당에 모실 것을 그랬어요. 요즘 투자자님하고 의논하느라 중국의 고급 식당에 자주 가는데, 음식이 아주 괜찮더라고요. 다음에는 엄마, 아빠도 같이 가요.”

“그런데 그 투자자님이 이 아가씨 아니냐. 둘이서 자주 고급 식당에 간다고?”

어머니의 눈이 번쩍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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