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63화 (363/656)

제 363화

“형은 튀겨보지 않아도 알잖아요.”

동진이 투덜거리듯 말하자 진희가 킥킥 웃었다.

“진혁이가 무슨 마법사도 아니고, 어떻게 알아.”

“대충은 알지. 그런데 이건 튀기는 사람이 어떤 기름에서 어느 정도로 튀기느냐에 따라서 좀 달라져.”

“그래요?”

진혁이 튀김의 원리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튀김옷에 포함되어 있는 수분은 팔팔 끓는 물 속에서는 수증기가 되어서 날아가 버리잖아. 음식 안에 든 물은 다 없어져 버린다고. 그리고 따뜻한 공기는 같은 양의 차가운 공기보다 부피가 크니까, 튀김옷이 바삭해지면서 부풀어 오른다고.”

“맞아요, 아카데미에서 배웠어요. 빵이 구워지면서 부풀어 오르는 것도 같은 원리라고요.”

“그래, 맞아. 글루텐이 단단하게 응고한 후에는 표면이 캐러멜화되면서 색깔이 변하지.”

“캐러멜화요?”

“금색으로 구워지면서 바삭바삭해지는 거예요.”

유키코가 덧붙여주었다.

“딱 적당한 순간만 튀겨야 하는데, 오히려 태워 버리면 맛없어진다고.”

튀김 빵을 제대로 튀겨야 맛있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리 잘 만든 반죽도 오븐에서 덜 굽거나 태워 버리면 맛이 없어진다. 동진이 시무룩해 하면서 기름을 준비하러 가자, 진희가 웃으며 물었다.

“진혁이 넌 그거 어떻게 알았어? 우리야 이론 수업 들었다지만 너는 우리랑 같이 주영모 아카데미 수업도 안 들었잖아.”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눈으로 보면 보인다.

천안투마공을 사용해 심안으로 꿰뚫어 보면 잡채 고로케 빵을 튀길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모를 수가 없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학교에서 제과제빵 전공했잖아.”

“맞네. 학원에서 배운 우리보다 전문가구나.”

“유키코 쉐프님이 만들어 오신 건 이거에요?”

“네, 저는 이번에 아예 와규를 넣은 월병을 만들었어요. 금가루도 뿌렸어요.”

와규(和牛)란 일본 재래종의 소를 말한다.

한우나 미국산 소고기보다 지방이 풍부해 마블링이 짙다. 단백질보다 지방의 함유량이 더 높은 경우도 있을 정도다.

최고급 일본산 와규 소고기를 익혀서 넣고, 겉은 바삭바삭한 페이스트리로 감았다.

간장으로 바싹 졸인 와규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다.

“이건 진짜 맛있네요.”

“음, 밥이라기보다는 케이크 같은 느낌? 버터에 살살 녹는 마블링이 되게 잘 어울려요. 이거 소고기 비싼 거 쓰셨죠?”

“하하. 버터는 안 썼어요.”

유키코가 웃었다.

“아예 고급형으로 만들어 봤어요.”

진혁이 이야기했던 ‘뇌물형 교환권 월병’까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고급 월병에 속하는 제품이다. 이전에 만들었던 것을 업그레이드해서 새로 개발했다.

“진짜요? 이렇게 향이 풍부한데.”

“버터 향보다 와규 본래의 향을 느꼈으면 했거든요.”

진희가 머쓱해 하며 자신이 만들어 온 빵을 내놓았다.

진한 김치 향이 치즈와 함께 섞여 강렬한 향기를 풍겼다.

“이건 뭐에요, 누나?”

크레페처럼 얇고 부드러워 보이는 빵 위에 두툼한 튀김옷을 입은 돼지고기가 가득하다. 잘 익은 김치가 함빡 버무려져 있는 가운데 맨 위에는 말랑말랑한 모짜렐라 치즈를 얹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요리를 보고 동진이 코를 킁킁거렸다.

“이건 이미 빵이 아닌 것 같은데요.”

동진이 짧게 평가했다.

납작한 접시에 소복하게 담긴 요리를 내놓은 진희가 당당하게 말했다.

“김치 치즈 탕수육 찌앤빙.”

유키코가 웃었다.

“돼지고기 튀김을 넣은 오코노미야키를 찌앤빙에 얹은 것 같아요.”

“부침개 같은 거라고 하기에도 좀 미묘한데.”

“맛있다.”

진희는 요리를 잘라 앞접시에 담아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주었다. 한 입 먹어본 사람들이 감탄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김동진이었다.

“돼지고기 안심이에요, 이거?”

“응. 제주도산 흑돼지.”

“누나도 엄청 좋은 고기 썼네. 진짜 살살 녹는다. 먼저 치즈가 쫄깃하게 잡아주면 김치가 아삭하게 씹히고, 그리고 돼지고기가 쫀득쫀득하게 씹히는 게 아주 맛있어.”

진혁이 말했다.

“이건 굳이 찌앤빙으로 만들 필요가 없는데. 공깃밥이랑 같이 먹으면 맛있겠다.”

진희가 미간을 좁혔다.

“아, 역시 그런가.”

“아니에요. 누나. 정말 맛있어요.”

동진이가 애써 위로했다.

하지만 진희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맛있는 요리지만 굳이 빵과 함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밥 위에 올려 덮밥처럼 만들면, 밥알 사이사이에 국물이 새어 들어가 더 맛있을 것이다.

“으-음. 주제랑 완전히 다른 걸 만들어 버렸네.”

“어제 구로 차이나타운에 갔다 오고 나서 생각한 거예요?”

“응.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 주는 게 맛있어 보이더라고.”

뒤늦게 옷을 갈아입고 사무실에서 나온 백진영이 코를 킁킁거렸다.

“맛있어 보인다. 나도 먹어봐도 돼?”

“당연하죠.”

마침 동진이 튀김 빵을 접시에 담아서 나왔다.

“튀긴 꽈배기 나왔습니다-!”

“아, 잘 먹을게.”

“진영 사장님은 진짜 먹을 복이 있다니까요. 어떻게 이렇게 딱 타이밍 맞춰 나오냐.”

진영이 입맛을 다시며 갓 튀긴 빵에 손을 가져가자 진혁이 제지했다.

“이걸 제일 먼저 먹으면 다른 것들의 맛이 잘 안 느껴질 거야. 먼저 월병부터 먹어.”

“그럴까?”

간장에 졸인 쇠고기 월병은 만두처럼 큼직했다. 금가루가 화려하게 뿌려진 꽃 모양의 월병이다.

“이건 보기만 해도 너무 예쁘다. 안에 커스터드 크림 같은 게 들어있나?”

“먹어보면 알지.”

덥석, 한 입 베어 문 백진영이 눈을 크게 떴다.

“이야. 이건 완전 호주식 미트 맛이다. 그런데 페이스트리 반죽이 훨씬 얇아. 완전히 빵으로 만든 만두 같아서 식사 한 끼가 충분히 되겠는데.”

“그렇죠?”

“예쁜 디저트 같은데 안에 호쾌하게 쇠고기가 잔뜩 들어있는 점이 좋네요.”

유키코가 웃었다.

“감사합니다.”

임진혁 역시 월병을 맛보았다. 입안에서 톡 터지는 진하고 강렬한 육즙의 풍미에 그 역시 흐뭇해했다.

“맛있네.”

진희가 질세라 백진영에게 작은 접시를 내밀었다.

“백 사장님, 제 것도 드셔 보세요.”

“사장님이라고 안 불러도 돼요, 진희 씨.”

“그럼 공동 회장님?”

백진영은 젓가락을 들어 김치 치즈 탕수육을 한 점 집었다.

“하하. 이건 진짜 든든한 메뉴네요. 김치에 돼지고기 탕수육, 거기에 치즈까지 완전히 환상이야. 여기에 떡볶이 떡을 넣어도 좋겠다.”

“그것도 맛있겠네요.”

“그런데 이거, 어디가 빵이에요?”

“….”

“설마 여기 밑에 깐 이게 빵…?”

“….”

“미안합니다, 진희 씨.”

“아니에요, 회장님. 괜찮습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김동진의 꽈배기였다.

“이건 정말 그냥 중국식 꽈배긴데?”

“소금간을 조금 했어요.”

“음, 원래 중국식 설탕 없는 꽈배기는 소금 간을 해.”

“딱 그 사람들 입맛에 맞추려고 했는데.”

“입맛엔 맞는데 시장성으로 봐서는 어떨까.”

진혁의 말에 동진이 대답했다.

“어차피 중국 사람들을 상대할 거니까 중국 분이 만드신 걸 참고해서 조금 더 맛있는 게 좋지 않아요?”

“음, 아니지.”

진혁이 가게의 냉장고로 다가갔다.

“비슷한데 조금 더 맛이 좋을 뿐이면 처음부터 차별화를 두기가 어렵잖아.”

“엑, 그런 건 또 언제 만든 거예요?”

“일하는 사이에 틈틈이.”

“오늘 종일 손님도 많았잖아!”

“어차피 계속 만들고 있는데 한두 개 더 만드는 게 뭐 대수라고.”

종일 옆에서 같이 일했던 백진영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무슨 마술사도 아니고, 이걸 도대체 언제 만든 건데?”

여덟 개의 딸기가 올라가 있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는 하얗지 않았다.

오히려 새카맸다.

“왜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하얀 생크림으로 아이싱하지 않고 검게 한 거야?”

“우리랑 문화가 달라. 상복을 입을 때도 흰색이고, 조의금을 낼 때 흰색 봉투를 써.”

“아.”

“기쁜 일이 있을 때는 붉은색 봉투를 쓰는 게 예의거든. 숫자 8을 좋아하고.”

“그래서 딸기를 일부러 여덟 개 놓은 거예요?”

“그렇지. 홀수보다는 짝수를 좋아하니까 그것도 맞췄고. 7도 싫어해.”

“7은 또 왜요? 럭키 세븐인데.”

동진이가 대답해주었다.

“안 좋은 뜻을 가진 중국어 단어랑 발음이 비슷해서 그래요. 우리가 숫자 4를 기피하는 것하고 똑같은 이유였는데, 뭐였더라.”

“사십구재와 관련이 있어서 그렇다는 설도 있고, ‘화를 낸다(生?)’는 말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렇다는 말도 있지.”

“형은 정말 아는 게 많네요.”

“하하.”

진희가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난 아직 멀었네.”

“응?”

“그냥 거기에 있는 거 먹어보고, 이렇게 하면 맛있겠다 싶어서 만든 건데. 명색이 점장인데 경영적인 측면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문화적인 면은 아예 생각도 못 했어.”

“아니야, 너 정도면 잘 했어.”

진혁의 말에 백진영이 거들었다.

“그래. 진혁이가 진출 방향을 명확하게 얘기해주지 않은 게 나빴어.”

그는 보글보글 끓인 우유를 얼그레이 티백 위에 담았다. 우유로 바로 우려내는 차를 보고 유키코가 미소지었다.

“로열 밀크티네요. 이번 진출은 단순히 빵집이 아니라 카페 컨셉으로 가기로 결정했나 봐요?”

“중국에는 아직 고급 카페가 없습니다. 데이트를 하거나 이야기를 할 만한 장소는 고급 요릿집이나 주점이죠. 대낮에 누군가를 만나서 시간을 보낼만한 장소 역시 대부분 식당입니다.”

“저렴하고 대중적인 빵을 만든다면서요?”

“최근 파인애플과 카스텔라를 주로 판매하는 홍콩의 유명 베이커리 체인이 중국에 진출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아. 첫 1년 만에 300개가 넘는 가게를 확장했지.”

“일 년이 365일인데 거의 하루에 하나씩 가게를 연 셈이네?”

“진혁이 너도 가게를 삼백 개나 차리려고?”

“음, 그건 아니지만. 고급형 카페가 들어갈 만한 시장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어.”

동진이가 억울한 듯이 중얼거렸다.

“어제 그렇게 말씀해 주셨으면 저도 카페에 내놓을만한 고급 케이크류로 만들어 왔을 텐데요.”

케이크를 만들 줄 몰라서 만들지 않은 것이 아니다. 방향 자체를 완전히 잡은 것이다. 진희 역시 시무룩해져 있었다.

“나도.”

반면에 유키코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서 그대로 서 있었다. 그녀가 만든 와규 월병은 충분히 카페 베이커리에서 판매할 수 있다.

‘평소에는 어울리지 않더라도 중추절에는 충분해.’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은 두 사람이 시무룩해 하자 진혁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두 사람 다 제과제빵사지만 이쪽 일을 한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리고 앞으로는 경영자로서의 안목도 키워야 하니까, 헛된 일은 아니야.”

“그건 그래. 생각해보면 나도 이 일을 한 지 일 년이 채 안 됐는데 벌써 점장까지 맡아버렸으니. 능력에 비해서 과도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 부담스럽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고…….”

임진희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동진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저렴한 식사용 빵을 위해서 중국 전역에 고품질 냉동 생지를 제공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거든요. 엄청나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충분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서 그렇지. 분석까지 하고 그래.”

진혁이 두툼한 서류를 내밀었다.

“이거 읽어 보고.”

“저는요?”

“네 서류는 여기에 있어.”

“이게 뭐예요? 사업 보고서?”

“장례식만 하고 온 게 아니라 사업 의논까지 하고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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