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2화
집에 돌아가는 길에 김동진은 생각했다.
“나도 저렴한 빵 계열로 만들고 싶은데.”
그가 주목한 빵은 꽈배기 빵이었다.
‘값도 저렴하고, 맛도 있고. 우리나라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고.’
밀가루 반죽을 제대로 반죽해서 튀기기만 하면 된다. 그는 현재 중국에서 팔고 있는 빵과 차별화하는 방법을 하나 생각했다.
‘찹쌀가루를 조금 섞어 넣어서 반죽 자체에 차별화를 두면 어떨까?’
하지만 그 정도로는 그다지 티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아침에 회사를 향해 출근하면서 익숙한 가게에서 습관적으로 빵을 사는 누군가의 모습을 그렸다.
‘음, 반죽에 차이를 두는 정도로는 파고들어 가기 힘들어.’
그는 마음을 정했다.
‘내일은 직접 중국인들이 있는 곳에 가서 이것저것 빵을 먹어 봐야겠다. 이건 책상 위에서 혼자 생각해 볼 만한 일은 아니야. 먼저 최대한 더, 많은 빵을 먹어야 해.’
손에 들고 있는 빵들은 이미 누군가가 골라서 사 온 것들이다.
‘중국 가게에서 자신이 직접 빵을 사는 경험을 해봐야 해.’
사흘 후.
<해와 달>의 공식 휴일이다.
어디에 가면 좋을지 고민하던 동진은 스마트폰으로 주변 동네를 검색했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너무 멀고. 건대 쪽에 있다던 가게는 한두 개밖에 없어 보이고. 음…, 아! 이 동네에도 많이 있나? 그럼 여기로 가면 되겠다.”
그는 지하철을 타고 구로역까지 왔다. 처음 가보는 역이었지만 중국인 거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당장 출구로 나오자마자 한자로 적혀 있는 핸드폰 가게부터 보였다.
“여긴 완전히 외국 같네.”
그 옆에서 구운 닭꼬치와 양꼬치, 그리고 튀긴 빵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동진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빵 진열대를 눈여겨보았다.
어제 진혁이 가져다준 빵과 비슷하게 생긴 빵들이 이것저것 보였다.
「이거 하나 주세요.」
「학생 중국어를 아주 잘하네!」
「어렸을 때 유학했거든요.」
「이것만 먹으면 부족할 텐데, 마실 것도 필요하지 않아?」
「괜찮아요, 일단 빵만 하나 주세요.」
바삭바삭해 보이는 빵과 폭신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호빵들.
고기나 채소 소가 들어간 빵들, 그리고 소금만 쳐서 간단하게 구운 빵들 역시 보였다.
‘역시 방금 구워낸 게 좋아.’
미리 튀겨낸 빵을 다시 한 번 기름이 든 냄비에 넣고 튀긴다.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였다.
바작바작 기름에 빵이 튀겨지는 소리와 코끝을 간지럽히는 진한 빵 냄새, 그리고 향신료의 향.
“아, 맛있다.”
「학생, 참 맛있게 먹는구먼!」
물도 없이 목 메이는 빵을 덥석 베어 문 동진이 행복한 표정으로 가게를 나섰다.
한국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 빵들은 아무래도 공기에 노출된 시간이 긴 만큼 충분히 산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빵을 우물우물 씹으며 거리를 돌아다니던 동진은 낯익은 등을 보았다.
“이거 여러 개 사시면 깎아 주실 수 있어요?”
「이 아가씨가 뭐라는 거야. 우리 이렇게 팔면 남는 것도 없어!」
“저 진짜 많이 사는데.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이것도 또 살 건데.”
「깎아주는 건 없어, 없어. 정가에 사.」
한국어와 중국어로 대화하는데 신기하게도 말이 통한다. 반가운 사람을 본 동진이 반갑게 인사하면서 다가갔다.
“사장님! 여기에 오셨네요?”
“동진이니? 잘됐다, 이거 좀 깎아 달라고 해 봐. 엄청 많이 사는데 절대 안 깎아주려고 하네.”
“누나, 이건 워낙 싼 거라서 그렇게 사도 할인이 없어요….”
“그래?”
“진짜 몇십 개씩 주문한 단골이라면 또 될지도 모르겠지만요.”
“하긴, 하나에 팔구백 원밖에 안 하니까.”
진희는 웃는 낯으로 빵을 몇 개 더 샀다. 중국인 아주머니 역시 웃는 낯으로 서비스 빵을 봉지에 하나 더 넣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학생은 중국어를 좀 하네? 닮았는데, 친누나야?」
「아니에요! 일하는 가게 사장님이에요.」
「사장님이랑 사이가 좋구나. 같이 빵도 먹으러 다니고.」
「하하하.」
동진이는 자연스럽게 진희가 산 빵 봉투를 집어 들었다. 진희가 그 봉투를 빼앗아 안았다.
“쉬는 날도 아닌데 일하는 것처럼 굴 필요 없어.”
“네에, 네에. 사장니이임.”
“방금 전에는 누나라고 하더니?”
“히히. 사실 누나도 지금 여기에 일하러 온 거잖아요? 중국 빵 먹어 보려고.”
“응. 아무래도 중국까지 가보는 건 무리지만 여기 정도는 올 수 있을 것 같아서.”
진희가 머쓱하게 웃었다. 동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나가 여기 있으면 형은 어디 있어요? 당연히 같이 올 줄 알았는데.”
“아시는 분이 몸이 엄청 안 좋은가 봐. 장례식에 참석해야 할지도 모른다면서 급하게 중국에 갔어.”
“형이 요즘 중국에 자주 가네요. 가까운 친척이신가 봐요?”
“글쎄, 군대에서 신세를 졌다나 봐. 나는 잘 모르는 분이야.”
‘군대에서 일반인에게 신세를 질 일이 있나?’
동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누나는 뭐 생각했어요?”
“먹어보면서 생각해 보려고.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는 가게랑 실제로 중국 진출할 때 꾸려나갈 가게랑 너무 차이가 나는 것 같아. 부지랑 인력 규모를 들어 봤을 때는 진짜 무슨 백화점 수준이었단 말이야. 그래서 외국인이 하는 가게가 이런 소규모 가게들 사이에 치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아예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크게 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최근 실제로 가게를 경영하면서 숫자를 신경 쓰게 된 진희가 웃으며 말했다.
“음, 저도 누나랑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저런 식으로 지역 주민이 살면서 하는 조그만 빵 가게하고 똑같이 접근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그래서 차라리 그분들을 경쟁자가 아니라 우리랑 상생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면 어떨까 했거든요.”
“아!”
진희가 눈을 크게 떴다.
“형이랑 누나네 빵집도 동네 빵집이잖아요.”
“그치, 비슷하지.”
“예전에 빵집 앞에 바로 문을 연 프랜차이즈 때문에 고생한 적도 있다면서요. 외국계 프랜차이즈 빵집을 만들 생각은 아닌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아예 꽈배기 빵 반죽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제대로 된 반죽을 만들어서 냉동 생지 단계에서 판매하면 의외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저 작은 가게랑 상생하자는 얘기가 그거구나.”
“네. 아까 가게 아주머니들 봤는데 허리도 안 좋아 보이고 손목도 움직이면서 불편해 보이는 게 관절염이 있어 보였어요. 반죽하고 튀기고 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반죽 시간만 줄여도 훨씬 일하기도 편해지고 하니까요. 제대로 된 냉동 생지 반죽이 균일하게 맛있으면 경쟁력이 생길 거 같아요.”
초롱초롱 빛내며 이야기하는 동진이를 보며 진희가 생각했다.
‘얘가 정말 어리지가 않구나. 어렸을 때 사업을 크게 했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그때 두 사람 모두 아는 사람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나타났다.
“어머. 두 사람 모두 여기에 있네요.”
어제 만났던 유키코 쉐프였다.
“쉐프님도 빵 사셨어요?”
“예, 예전에 맛보고 분석해본 적이 있긴 한데 한 번 더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진혁이한테 소식 들었어요,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대신 일할만한 사람을 찾고 있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네요. 진혁 쉐프님의 기준이 생각보다 엄격해요.”
“그래요?”
별문제 없이 아카데미에서 바로 스카웃되었던 동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부적인 기준과 다른, 진혁이만의 기준이 뭐가 있긴 있어.”
진희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수상 경력도 좋고 자기 가게도 있었던 오너 쉐프가 왔는데 진혁 쉐프님이 보고 바로 걸러내더라구요.”
“그래요? 왜 그랬지?”
동진이 입을 열었다.
“저 그거 알 것 같은데. 그분 옷에 담배 냄새가 배어 있었어요.”
“그래?”
“예. 담배를 오래 피우면 후각이 무뎌져서 맛을 제대로 못 느낄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던데.”
“흠.”
세 명은 길가에 서서 빵을 베어 물면서 거리를 바라보았다. 한국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이 섞여서 돌아다니는 거리는 활기차고 생기있어 보였다.
진희가 중얼거렸다.
“똑같이 중국 사람들이 많아도 우리 가게가 있는 명동이랑 여기는 좀 다른 느낌이야.”
“그래요?”
“응.”
동진이 멀뚱멀뚱 보면서 뭐가 다를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유키코가 웃었다.
“아, 저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명동에는 명품을 두르고 피부 좋은 여자분들이 많지요? 관광객들이잖아요.”
“여기는 관광지가 아니고 정말 사람들 사는 생활 공간이잖아요? 정말로 일하는 사람들이 저렴한 빵을 먹으러 온다는 느낌이고.”
“그러게요.”
임진희가 중얼거렸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그게 해답이야.”
◈ ◈ ◈
그날 밤.
중국에 다녀온 진혁은 유난히 지쳐 보였다.
둘이서 함께 살고 있는 빌라에 돌아온 시각은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오후 다섯 시에는 올 거라며? 늦게 왔네.”
임진희가 걱정스러워 하며 물었다.
“열다섯 시간씩 일해도 괜찮다던 애는 어디로 가고. 완전히 얼굴이 반쪽이 됐네. 많이 힘들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왔어.”
“….”
‘돌아가셨구나.’
진희는 말없이 곁에 머물러 주었다. 창문 밖으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이 무심하게 두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달빛보다 더 밝은 LED 조명 아래에서 진혁이 중얼거렸다.
“이제 간신히 찾았는데 말이지.”
“그동안 계속 찾았는데 연락이 안 됐던 거야?”
“응.”
“하긴, 너 군대 갔다 오면서 핸드폰 망가지고 번호도 완전히 바꿨잖아.”
진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대로 해.”
“응?”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고 싶은 거잖아.”
“음.”
진혁이 창문 너머로 비치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초승달이었다. 밝은 집 안에서 보니 저 멀리 보이는 달은 아주 작고 가녀리고 어설퍼 보였다.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었지.”
“나이가 어느 정도였는데?”
“여든 좀 넘으셨을 거야.”
“널 많이 아끼셨나 보다.”
“그래?”
“그러니까 네가 울고 있지.”
“울고 있지 않은데?”
진희가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아 주었다.
“….”
“그래, 너 안 울어.”
그녀가 가만히 속삭였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난 먼저 잘게.”
손수건을 손에 쥐여준 임진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자리를 피해준 것이다.
진혁은 손수건을 손에 꼭 쥐었다.
방금 전까지 진희가 갖고 있었던 손수건은 그녀의 체온이 남아 따뜻했고, 눈물이 한 방울 묻어 촉촉했다.
부엌에는 빵 봉투가 보였다. 구운 지 오랜 시간이 지나 기름이 눅눅하게 배어 나오는 빵 봉투는 나가기 전에는 없던 것이었다.
‘진희가 어딘가 가게에 가서 새로 중국 빵을 사 왔구나.’
진혁은 방으로 돌아가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심호흡을 하고 대주천을 시작했다.
그의 머리 위로 기가 형상화되며 연꽃이 피어났다.
‘누구라도 평생 함께할 수는 없어.’
인간은 모두 죽는다.
빨리 죽거나 늦게 죽거나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 앞에서 웃고 있는 진희 역시 고작 몇십 년, 아무리 건강하게 지켜내도 백 년을 조금 더 살 뿐이다.
‘환골탈태를 했으니 사고가 없으면 150년 정도는 살 수도 있지.’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죽는다.
한숨과 미련, 안타까움과 고통, 쓰라림이 기혈을 타고 전신을 순환했다. 이 상태로 대주천을 하다가는 그대로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혁은 그 모든 것을 차곡차곡 자신의 안에 주워 담았다.
부정하거나 잊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그대로 받아들였다.
‘나 역시 죽겠지.’
그리고 후련함이 남았다.
◈ ◈ ◈
다음날 영업을 마친 후, <해와 달> 본점에 또다시 사람들이 모였다.
“이게 제가 개발한 반죽인데요, 어때요?”
김동진이 신나서 말했다.
눈 밑에는 짙게 그늘이 져 있고 동작이 느리다.
밤을 새워서 찹쌀가루를 섞어 넣은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명동점 근무까지 마친 동진은 이미 반쯤 맛이 가 있었다.
“피곤하면 저기 앉아서 쉬어.”
“저 피곤하지 않은데요.”
“그냥 여기 앉으라고 하면 앉아라.”
진혁이 의자를 하나 밀어주었다.
“어떻긴 어때, 이건 튀겨 봐야지 알지. 지금은 그냥 반죽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