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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361화 (361/656)

제 361화

아무리 인력과 넉넉한 예산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진출 방향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은 임진혁이 내려야 한다.

황태명이 제안한 방안도 있었으나 진혁은 그건 거절했다.

“원래 투자자님은 고급화 전략으로 가라고 했다며? 왜 그건 싫다고 했어?”

진희가 궁금해하자 진혁이 짧게 대답했다.

“고급화가 아니라 뇌물화던데.”

“뇌물화?”

딱 그 녀석의 머리에서 나올만한 생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추석이 되면 송편을 만드는 것처럼, 중국에서는 중추절이 되면 월병을 만든다.

팥소에서부터 블루베리나 라즈베리 잼 같은 달콤한 계열을 비롯해 달걀과 고기, 햄 등을 넣어 만두처럼 만든 것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겉모양 역시 단순히 둥글게 만든 것이나 특별한 문양이나 글자를 넣어 찍어낸 것, 꽃 모양으로 만든 것까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다만 송편과 다른 점은, 각 회사나 부서 등에서 고급스러운 월병을 주문해 선물한다는 것이다.

임진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혁이 너 그런 거 잘 하잖아. 고급스러운 과자 만드는 거.”

“음, 확실히 진혁 쉐프님이 고안하시는 제품은 저렴하고 양이 많고 저렴한 계열은 아니죠. 손이 많이 가고 고급스러운 수제 과자류라고 해야 하나? 아마 월병도 그럴 테고요. 고급화 전략은 딱 맞는 것 같은데요.”

유키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개발하는 과자가 다 그렇지만 진혁의 경우에는 특히 그랬다.

단순한 과자에도 하나씩 특색을 주기 때문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야.“

진혁은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황태명의 계획은 간단했다.

팥소를 넣은 월병에 금가루를 뿌려 고급스럽게 만들고, 인증서를 넣는다.

이 월병은 자격을 가진 특정한 이들에게만 한정 판매를 하되, 단순한 월병이 아니라 ‘교환권’의 성격을 지닌다.

인증서를 지닌 이들은 ‘교환소’로 와서 월병을 돈으로 바꿔 갈 수 있다.

즉 월병의 형태를 띤 사과 상자나 마찬가지다.

세상 어디나 눈에 띄지 않게 뇌물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격을 증명하게 하고 일부만 한정해 판매하는 계획이었다.

황태명은 그게 권력층에게 특권을 만들어서 팔면서 동시에 세력도 확대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이라며 매우 자랑했다.

임진혁은 단칼에 거절했다.

“음, 다양한 사람들이 즐기면서 많이 먹을 수 있는 계열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탁자에 두 종류의 빵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그렇기에는 중국 빵 자체가 너무 저렴한데요. 종류도 많고.”

실제 오늘 아침에 중국 현지에서 만든 신선한 빵이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빵을 보며 김동진이 신기해했다.

오른쪽에 있는 탁자 위에는 양념이 되어 있지 않고 소도 들어있지 않은 식사용 빵들이 놓였다.

“이 빵이랑 저 빵은 똑같아 보이는데 왜 양쪽에 있어요?”

“먹어보면 알걸.”

반면에 우측에는 이것저것 소가 들어가고 설탕을 넣어 맛을 다르게 한 간식거리 빵들이 놓였다.

“아, 똑같이 튀긴 거라도 오른쪽에 있는 건 엄청 달콤한데요?”

“응. 그쪽이 간식거리, 이쪽이 주식 빵.”

“형은 주식 빵을 하고 싶다고 했죠.”

“간식은 먹는 데에 한계가 있잖아. 이왕이면 더 많이 먹어줬으면 좋겠거든.”

“진짜 야심 차다니까.”

진희가 기가 차 하며 말했다.

“나는 네가 식사 빵에는 경쟁력이 있다거나 하는 이유로 식사 빵을 새로 개발하려고 하는 줄 알았거든.”

“시장은 커. 중국인들은 매일매일 아침마다 식사용 빵을 사 먹거든.”

“그만큼 이미 매일 사 먹던 곳에서 사게 되지 않을까? 결국, 외국 회사가 뒤늦게 진출하는 셈인데.”

진혁이 웃었다.

“외국 회사건 뭐건 상관없어. 더 맛있으면 되지.”

제과제빵사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하나둘씩 빵을 집어 들어 맛보기 시작했다.

김동진이 팔뚝만큼 큰 빵을 하나 집어 들었다.

“이거는 어렸을 때 시장에서 보던 그 빵 같아요. 그런데 모양도 좀 다르고, 음… 이거 하나 가격이 우리 돈으로 천 원 정도라.”

빵마다 실제 가격이 얼마 정도 되는지 아래쪽에 붙어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살아가는 동진은 제일 크고 저렴한 빵에 먼저 눈길을 주었다.

“그건 요티아오라고 하는 빵이야.”

바게트보다 얇고 납작하지만 좀 더 길다. 노랗고 통통한 과자 빵은 보기 좋게 바삭해 보이지만 만져보면 푹신푹신하다.

낯선 이름에 동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티아오요?”

“기름과자라는 뜻이지. 밀가루와 찹쌀을 반죽해서 튀긴 빵이야.”

“그냥 꽈배기구나.”

“가게마다 반죽하는 방식도 모양도 다른데, 보통은 이런 식으로 길게 만들어서 아침으로 먹지.”

동진은 노란 빵을 한 입 덥석 베어 물었다.

“이야. 이렇게 느끼한 걸 어떻게 아침으로 먹냐. 간식도 아니고.”

베이글처럼 밀도가 높지는 않고 오히려 파삭한 것이 부드럽게 씹힌다.

하지만 안쪽에 가득 담겨 있는 기름에 약간 거부감이 생겼다.

“형, 이거는 뭐 같이 먹는 게 있죠?”

“보통 콩 국물이랑 같이 먹지.”

진혁이 아이스박스에 따로 포장되어 있던 콩 국물을 꺼냈다.

“진짜 밥이네.”

“양도 많고. 국물에 찍어서 먹으면 온종일 든든하겠어.”

“아침마다 이걸 하나씩 먹고 일하러 가는 거군요.”

“천 원, 이천 원짜리 아침 식사가 많으니까 집에서 아침을 해 먹는 중국 사람은 아무도 없대.”

“아침을 만들어 먹는 노동력보다 사 먹는 값이 훨씬 더 싼 거구나.”

“우리나라도 그런 식으로 아침 식사를 만들어 팔았으면 좋겠다. 조식도 최소한 육천 원은 하잖아.”

“편의점 삼각김밥이랑 컵라면 먹으면 이천 원에 해결할 수 있어요.”

“그건 매일 먹기 힘들지.”

저마다 이런저런 의견을 늘어놓으며 중국식 빵을 먹어 보았다.

설탕을 넣지 않고 튀긴 맹맹한 꽈배기 빵을 맛보며 임진희가 탄성을 질렀다.

“나 이런 꽈배기는 처음 먹어봐. 의외로 먹을 만한데? 그런데 나는 이게 식사라는 생각은 안 드네.”

“이쪽에 같은 모양인데 설탕 넣어서 튀긴 거 있어요.”

유키코가 중얼거렸다.

“이렇게 기름으로 튀긴 빵은 금방 산화돼서 맛이 변하는데 용케 이렇게 신선하게 공수해 왔네요.”

“하하.”

황태명은 지금도 침대에 누워 있다. 하지만 그가 생전에 꾸려놓은 부하들은 임진혁의 지시를 받아, 충실하게 튀김 빵을 비행기에 실어왔다.

유키코는 맹숭맹숭하게 납작한 사각 베이글처럼 생긴 빵을 집었다.

“만터우는 오랜만에 보네요.”

“만터우요?”

“속을 아무것도 넣지 않은 찐빵이에요. 고기나 채소 같은 걸 양념해서 넣기도 하는데, 저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편이 담백해서 좋더라구요.”

빵 반죽을 길게 하여 거대한 가래떡처럼 길게 빚어낸 다음에 통통통 칼로 썰어내고, 그 반죽을 그대로 쪄낸다.

튀기지 않아 담백하고 단순한 빵은 잘라낸 자국이 그대로 남아, 큼직큼직하니 썰어놓은 떡 조각처럼 보였다.

찜기에 든 만터우는 서른 개가 넘었는데, 갓 쪄낸 것처럼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모두 색깔이 미묘하게 달랐다.

“호빵 같은 거구나. 난 원래 호빵이 중국에서 온 건 줄 알았는데, 동글동글한 모양이 아니네요.”

“이건 하얗고 이건 약간 갈색인데 뭐가 달라요?”

“밀가루를 다르게 쓴 거야.”

“유키코 쉐프님은 초콜릿 계열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찐빵같이 담백한 것도 좋아하시네요.”

“맨날 단것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유키코와 동진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진희는 다른 빵 상자들을 뒤적거렸다.

이미 상자를 개봉해 내놓은 빵들도 있지만 상자에 담겨 있는 것들도 많다.

모르는 빵들 사이에서 반가운 빵을 발견한 진희가 신나서 말했다.

“나, 이건 뭔지 알아. 꽃빵이지?”

“나도, 나도. 중국집에서 제육볶음 같은 거랑 곁들여서 싸 먹지 않아요?”

“제육볶음만은 아니고, 다양한 요리하고 같이 먹지.”

“꽃빵만 사 먹을 사람은 없을 거 같아요. 이건 중국 요릿집에서 반찬으로 나오는 거지, 이것만 따로 팔면 곤란하니까.”

“음… 오히려 이런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꽃빵을 만들어서 각 요릿집에 납품하는 거지요. 진혁 쉐프님이 생각하시는 빵은 어떤 거예요?”

“일단 다 함께 먹어 보고 난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도 한 번 먹어보시죠.”

진혁은 다른 납작한 상자를 열었다. 김이 확 뿜어져 나와 다른 사람들은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이건 피자에요?”

“그보다는 부침개 같아요. 부추전 아니에요?”

진혁이 빙긋 웃었다.

“찌앤빙입니다. 이건 달걀을 넣어서 부친 찌앤빙이고, 저건 부추와 당근을 넣은 거고.”

찌앤빙은 빵 반죽을 크레페처럼 얇게 구워내 다양한 소를 넣어주고 양념해 만들어주는 즉석요리다.

맵게 해 달라고 하면 고추 기름장(라조장)을 넣어 간을 더 해 준다.

“노릇노릇하고 바삭바삭한 게 되게 맛있네요.”

“이거 매콤하고 소시지랑 오징어 들어 있어요.”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른 채 아무거나 집어 먹던 진희가 신기해했다.

“크레페는 바나나나 초콜릿 같은 걸 넣는데, 이런 식으로 고기랑 이것저것 넣은 것도 괜찮네.”

“아마 우리는 이건 하기 힘들 거야. 이건 사람이 직접 계속 앞에서 만들어 주면서 주문에 맞춰서 이것저것 넣어주는 시스템이거든. 인력이 훨씬 많이 필요하지.”

“흠….”

“그런데 진짜 물가가 싸긴 싸다. 이건 지금 팔백 원이라는 거잖아요.”

“물가가 싼 지역에서는 그렇지만 비싼 데서는 1500원 정도 하기도 하지.”

“그래도 이 크기 좀 봐요. 우리나라에서는 천오백 원이면 이 사 분의 일 정도 되는 소시지 빵을 겨우 사는데, 가격경쟁력이 있을지 모르겠어.”

진희가 걱정스러워하며 중얼거렸다.

“아니면 더 싸게 하려면 진짜 엄청나게 싸구려 재료를 써야 하는데, 그럴 건 아니잖아?”

“당연히 그럴 건 아니지.”

“글쎄. 이 사람들이 원하는 가격대를 맞출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진희는 못내 걱정스러워했다.

빵 시식회는 한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저마다 중국식 빵을 잔뜩 맛본 이들은 남은 것들을 싸 들고 돌아갔다.

“어떤 걸 만드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볼게요.”

“한국식 빵이지만 중국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게 개발해 보라는 거지, 형? 열심히 해볼게.”

“그럼 내일 또 봐.”

다른 사람들이 먼저 돌아가고, 오랜만에 본점에 온 유키코가 자리에 남았다.

진혁은 유키코에게 따로 황태명의 고급 월병 전략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유키코가 웃었다.

“저도 전에 월병을 개발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고기와 부추를 다져 넣고, 겉은 페이스트리처럼 얇게 여러 번 겹친 반죽을 사용해 만들었지요.”

“만두에 가깝군요?”

“예, 저희 회사에서 중국 명절을 대비해 개발한 제품이었는데 크게 실패했어요.”

그녀는 깊은 눈으로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진혁 쉐프님. 원래는 한국 내에 지점을 좀 더 늘린 다음에 중국으로 갈 생각이었잖아요. 갑자기 왜 이렇게 급작스럽게 중국 진출을 결심하시게 된 거예요?”

진혁이 대답했다.

“좋은 투자자를 만났습니다.”

“중국 현지에서도 이미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충분히 있을 텐데 굳이 이쪽에 맡겼다는 점이…, 조금 걱정됩니다. 진혁 쉐프님의 노하우와 이미지를 사용하기만 하는 데에 그칠까 봐서요.”

염려하는 눈빛을 보며 진혁이 웃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옛날부터 알던 분이세요.”

“진혁 쉐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믿을만한 분이시겠네요.”

유키코 역시 웃었다. 진혁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그녀의 아랫배 쪽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사람을 하나 빨리 새로 구해야겠는데.’

진혁이 대뜸 물었다.

“출산 휴가는 언제쯤부터 계획하고 계십니까?”

“아,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아직 불러오지 않은 배를 문지르며 그녀가 생긋 웃었다.

“8개월까지는 일하려고 해요. 출산 휴가 3개월은 가능하면 산후에 쓰고 싶어서요. 아기하고 시간을 오래 보내고 싶거든요.”

진혁이 멈칫했다.

“아 참, 그것보다 먼저 드려야 할 이야기가 있었는데 빠뜨렸네요.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유키코가 행복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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