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57화 (357/656)

제 357화

임진혁은 사업을 확장하면서 믿을만한 사람을 경영 전문가로 초빙했다.

어머니의 곱창 가게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던 민병철은 임진혁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오랜만이네.”

“오랜만은 무슨.”

진혁은 웃어넘기며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 저는 곱창 순두부 하나 주세요.”

“어머! 진혁이 왔네. 특별히 곱빼기로 해줘야겠다.”

언제나처럼 아주머니가 미소로 반겨주었다.

민병철은 눈앞에 있는 1인분 순두부를 보면 눈을 깜빡였다.

“엄마, 왜 나는 곱빼기가 아니고?”

“진혁이랑 너랑 같니. 단골손님 부부의 아드님이시잖아?”

“네에, 네에.”

민병철은 웃음을 터트리며 마저 순두부에 수저를 가져갔다.

이제 막 먹기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곧 가게 사장님이자 민병철의 모친이 음식이 담긴 상을 내왔다.

진혁은 커다란 검은색 옹기뚝배기에 담겨 팔팔 끓는 곱창 순두부를 보고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역시 곱창 순두부는 하얀 순두부찌개로 하면 안 된다니까.”

“당연히 안 되지. 그럼 비린 맛이 더 강하게 느껴진단 말이야. 어디 그렇게 하는 데가 있니?”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어머니께서 집에서 그렇게 요리하십니다. 라고 고백할 수는 없었던 진혁이 뒷말을 삼켰다.

이전에 아버지의 고혈압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어머니는 집 식탁에서 얼큰한 탕이나 매운 찌개를 전부 치워버렸다.

곱창전골부터 생선 찌개까지 붉은 국물이라고는 싹 사라지고 맑거나 하얀 국물 요리들만 남은 밥상을 보고 아버지는 크게 슬퍼하셨다.

진혁은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맑은 곱창 순두부찌개는 조금 별로였다.

주문하지 않은 해물이 들어있는 것을 본 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여기 게하고 새우가 들어있는데요.”

“아줌마가 우리 진혁이 많이 먹으라고 좀 더 넣었지. 진혁이 네가 공장 세워준 덕분에 나도 덕을 좀 봤단다. 호호홋!”

그러고 보니 공장에 인근 거주자의 투자금을 소액 유치했다. 금천복 할머니나 홍 노인을 비롯한 단골손님들도 몇몇 약간의 금액을 투자하기도 했다.

“병철이 형이 잘해주신 덕분이죠.”

“하하하.”

“얘는 좋은 학교 가더니 그만두고 나와서 사업한다고 난리를 치다가, 이젠 또 그 사업이 적성에 안 맞는다고 헛소리를 하고 있지 뭐야. 아직 삼십대밖에 안 된 놈이 아직 멀었어, 멀었어.”

“어머니.”

그린워터 농장의 일을 동업자에게 맡기면서 일을 줄이고 한가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민병철이 곤란해했다.

“저는 지금 놀고 있는 게 아니에요. 제가 없어도 자동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원래 높은 사람이 회사에 없어서 회사가 원활하게 굴러가게 되어 있어요.”

어머니가 아들의 등을 내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이 가게에 하루 안 나오고 주방 이모님들한테 다 맡긴다고 생각해 봐. 하루야 잘 돌아가겠지만 일주일, 이주 지나도 잘 돌아가겠니?”

“….”

민병철이 조그맣게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음 주에는 오키나와에 가서 서핑하려고 했다고.”

임진혁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쉬는 건 나중에 몰아서 해.”

“그래, 나-중에 아예 흙 속에 누워서 말이지?”

자작하게 끓은 순두부찌개에는 반쯤 익은 노른자가 탱글탱글하게 광택을 뽐내며 익어가고 있다

다진 고기와 다진 양파가 붉은 국물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고기 향이 한껏 진하게 풍겨온다.

제대로 깔끔하게 해감해 놓은 바지락은 닫혔던 입술을 자연스럽게 벌려 새빨간 국물을 빨아들이는 중이다.

진혁은 수저로 달걀을 한 번 뒤적여 냄비 맨 아래쪽으로 보냈다. 그 와중에 큼직하게 듬성듬성 썰어놓은 초록색과 흰색 파 줄기가 출렁이며 한쪽으로 밀려났다.

수저로 한번에 뜨기에는 살짝 큰 정도 크기의 순두부도 둥실둥실 같이 밀려났다.

새빨간 국물이 가득 담긴 그릇에 하얀 순두부와 노란 달걀노른자, 그리고 녹색 파가 선명하게 드러나니 보기에 좋았다.

뜨거운 김이 팔팔 올라온다.

“그거 뜨거우니까 조심해.”

진혁은 냄새를 맡고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뚝배기를 끌어당겨 자신의 앞으로 가져왔다.

보통 사람이 만졌다면 뜨거워 화상을 입었을지도 모를 온도지만 그에게는 아무려나 좋았다.

오히려 오늘은 이렇게 화끈한 음식이 당겼다.

“여전히 맛있네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쫄깃하고 탱탱하게 씹혀오는 곱창 조각을 우물거리며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호호.”

맞은편에 앉아 있던 민병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음식은 다 맛있죠.”

이미 자신의 그릇을 전부 비운 채였다.

진혁은 경건하게 곱창 순두부찌개에 집중했다.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깨끗하게 해치우고 나서 고개를 들었다.

민병철이 감탄 섞인 표정으로 웃었다.

“그거 잘못 먹으면 입천장 데이는데. 잘 먹네.”

“원래 뜨거운 건 잘 먹습니다.”

눈치 빠른 곱창 가게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일 얘기할 거지? 차 좀 내줄까?”

“아니요, 어머니. 괜찮은데요.”

“저희가 테이블을 차지하면 안 되니까 자리를 옮기겠습니다.”

“아니, 아니. 정말로 괜찮은데. 우리 아들 일 시켜 주려고 온 거잖아.”

“잘 먹었습니다, 어머니.”

자연스럽게 민병철의 식삿값까지 함께 낸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병철이 미간을 좁혔다.

“아니, 내 밥값은 내가 한꺼번에 낼 건데.”

“부모자식 간에도 계산은 철저해야지.”

“진혁이가 아주 맞는 말 하네. 그럼, 그럼. 당연히 철저하게 해야지.”

“엄마가 몰아서 줘도 된다고 했잖아요.“

“자, 자. 그럼 둘이서 비즈니스 이야기 잘 하고!”

열렬한 배웅을 받은 두 사람은 인근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라기보다 다방에 가까운 이 가게도 최근에 손님이 늘었다. 소망 베이커리에 손님이 몰리면서 상점가 전체에 활기가 돈다. 덕분에 카페 주인인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민병철이 말했다.

“야, 내가 지금 노는 게 아니야. 그냥 잠깐 쉬고 있는 거라고.”

“오키나와 서핑 가기 전에 잠깐?”

민병철이 빙긋 웃었다.

“너도 서핑하면 잘 할걸. 너야말로 진짜 일을 너무 많이 하잖아. 같이 가 볼래?”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번에 민병철을 설득하러 소망시까지 내려왔다.

‘주변에 인재가 많지만 넓게 보고 멀리 보면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데에는 이자가 제일 적절해.’

아버지는 빵집 경영에는 빠삭하지만, 규모와 숫자가 조금만 커져도 크게 놀라며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반면에 어머니는 숲보다는 나무를 보는 꼼꼼한 성격이다. 임진희는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이 있지만 새로운 가게에서 적응하면서 다른 데까지 손을 벌릴만한 여유가 없다. 백진영 역시 사업 확장에는 일가견이 있으나 현재는 직영점을 늘릴 계획을 하면서 바리스타들을 교육하느라 바쁘다.

유일봉은 성실하고 노력하는 재능이 있지만 위임하는 데에 서툴고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하려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협력 업체의 사장으로 만난 자지만, 지금은 회사의 인재로 등용하고 싶었다.

“우리 이번에 해외 진출하잖아. 그거 맡아 줬으면 좋겠는데.”

임진혁은 매력적인 조건 따위는 언급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핵심부터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민병철이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솔직하네.”

“다 아는 처지에 굳이 숨길 이유도 없고.”

진혁이 빙긋 웃었다.

“하아.”

민병철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대 초반부터 정력적으로 사업에 모든 것을 바치며 불타올랐던 청년이다.

무엇이 그의 불씨를 끄게 만들었을까?

진혁은 그 계기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솔직하게 말했으니 병철이 형도 솔직하게 얘기해 봐. 사실 지겹지?”

“!”

“사업하는 게 재미없잖아. 안정기가 되어 꼬박꼬박 돈 들어오고, 더 이상 개혁하거나 손댈 것도 없어 보이니까 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지금 한창 잘 되는 사업이 왜 재미가 없겠어.”

민병철이 코웃음을 치며 부정했다.

“통장에 돈 쌓이는 것만 봐도 흐뭇한데.”

“하지만 속이 텅 빈 것 같잖아? 매일 돈이 쌓이고 있으니 불평할 수는 없지만, 재미가 없지. 반복적인 일을 무의미하게 계속한다는 느낌이 드니까 일하기가 싫고.”

“….”

정곡을 찔린 민병철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무언가를 계산하는 것 같은 눈빛으로 임진혁을 마주 보았다.

“나는 대학원에서 교수님 밑에서 연구를 하면서 그게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단 말이야. 나는 실험실에 틀어박혀서 같은 일을 계속하는 것보다, 바깥에 나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 실험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설명하는 게 더 좋았거든.”

두서없는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던 민병철이 고개를 들었다.

진혁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광안마 녀석이 딱 그랬지.’

“경영자가 권태를 느끼기 시작하면 아랫사람들도 그 영향을 받아.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나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내 부족한 능력 때문에 회사 전체가 흔들리는 게 싫어. 지금까지 거의 8년 정도 쉬지 않고 달려와서 그런 것 같거든. 그러니까 의욕이 좀 생겨서 제대로 일할 수 있을 때까지 당분간은-.”

충전을 하기 위해 휴식을 좀 취하겠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 진혁이 말을 잘랐다.

“이미 충분히 쉰 것 같은데.”

“일주일밖에 못 쉬었다고. 내일은 오키나와에 가려고 비행기 표도 결제했어.”

“비행기 표는 내가 물어주지. 이걸 좀 봐.”

진혁은 가죽 폴더에서 꺼낸 서류를 펼쳐서 보여주었다.

“우리는 다음 달부터 중국에 가게를 런칭할 거야.”

막 커피를 마시려던 민병철은 그만 컵을 쏟을 뻔했다.

“미국이 아니고 중국이라고? 그런데 왜 내가 필요해?”

당연히 미국 진출을 위해 자신을 부른 줄 알았다. 실리콘 밸리의 벤처 기업들과 함께 연구한 경험이 있어, 그쪽에는 아는 이들도 적지 않다.

“중국 쪽은 통역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어. 난 중국어도 못하는데.”

“배우면 되지.”

진혁이 가볍게 종잇장을 넘기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쪽은 꽌시(關係)가 없으면 꽉 막혀 있어.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거라고. 전에 그린워터 농장이 중국 진출하려다가 돈만 날리고 망했잖아.”

수련에 지루함을 느끼며 답보 상태에 있는 무공의 고수에게 새로운 계기를 일깨워 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전에 자신을 패배시켰던 상대를 데려와 비무하게 하면 해결된다.

두들겨 맞든, 아니면 이기는 데 성공하든 결과는 상관없다.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경험하기만 하면 된다.

“그 망할 놈의 꽌시만 없었어도 우리가 충분히 잘 할 수 있었는데.”

민병철이 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혁이 씩 웃었다.

“있어.”

“응?”

“꽌시, 있다고.”

진혁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원래 미국에 진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바로 어제 운 좋게 다시 만날 일 없으리라 생각했던 옛 인연을 만나며 계획을 완전히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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