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6화
진희네 가게가 회식을 하고 있을 무렵, 임진혁은 막 부친을 찾아간 참이었다.
라는 팻말이 달랑거리고 있는 문을 누군가 두드리자 임운정이 문을 열며 말했다.
“닫았습니다. 아, 진혁이냐?”
“예. 아버지, 접니다.”
민병철과 함께 소망 베이커리를 방문한 진혁이 봉투에 가득 담긴 빵을 흔들어 보였다.
“이겁니다. 전부터 이야기하던 거요.”
아버지는 아들과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접이식 탁자를 꺼내 펼쳤다.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왔던 일을 마주한 임운정의 표정이 약간 밝아졌다.
“허허, 이게 새로운 시제품이라고?”
“예. 한번 맛 좀 보시죠.”
민병철이 마치 자신이 만들었다는 듯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소망 베이커리의 탁자 위에 빵들이 봄의 꽃처럼 흐드러지게 펼쳐졌다. 투명한 봉투 위에 인쇄된 <소망 베이커리>라는 글자가 은박으로 눈부시게 반짝인다.
비닐에 담긴 빵들은 일반적이고 평범한 것들이었다.
크림빵과 소보루빵, 팥빵, 카스텔라 등이다. 당장 지금 소망 베이커리에서도 매일 수십 개씩 파는 중인 무난한 상품이다.
아버지는 빵을 하나 집어 들었다.
소망 베이커리뿐만이 아니라 동네 빵집 어디에서나 판매하는 흔한 크림빵이다.
봉투에 담긴 빵은 통통하고 보드라웠다. 살짝 겉껍질이 들뜨는 듯 가볍게 껍질과 속살이 분리되었다. 풍부한 공기층을 확인한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빵을 손으로 떼어냈다.
금덩어리를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손길이 떼어낸 빵 쪼가리 안에는 꾸덕꾸덕한 크림이 새하얗게 발려 있었다.
“이거는 사람이 직접 발랐다고 해도 믿겠다. 크림이 아주 골고루 발려져 있구만.”
“예, 거기에 특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정도면 괜찮은데 진혁이 녀석이 계속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리더라고요.”
일주일 동안 세 번이나 견본을 돌려보냈다.
임진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제는 잘 됐으니까 괜찮지.”
“뭐, 내가 보기에는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말이야.”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별 차이가 없다니. 맛 자체가 다른데.”
그는 공장에 오행진을 설치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견본으로 처음 받은 빵이 푸석푸석한 것을 보고 결단을 내렸다.
‘아버지와 내 이름을 걸고 나가는 빵이 이런 퀄리티일 수는 없어.’
아무리 퀄리티 관리를 해도 사람과 기계가 하는 일인 이상 완벽하지는 못했다.
진혁은 기계와 공장에 절진을 설치하는 것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
먼저 바퀴벌레나 바구미 등의 벌레를 차단하기 위해 벌레를 쫓는 진을 제일 바깥에 둘렀다.
그리고 오행진을 설치했다.
사용되는 재료의 질이 균등하게 좋아진 것만으로도 빵의 맛이 한 급 더 상승했다.
그 밖에 진혁이 손을 본 것은 따로 있었다.
“진혁이가 입맛이 예민하지. 제과제빵사에게 있어서는 아주 좋은 재능이야.”
아버지가 흐뭇하게 말했다.
민병철은 손짓 발짓하며 말했다.
“신기하게 진혁이 그냥 왔다 가서 사람들이랑 이야기만 하고 가는데도 빵 맛이 좋아졌다니까요.”
“그래.”
진혁은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뿐이다.
교주, 아니 예전에 상급 관리자로 일하던 시절에 하던 것처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기계를 움직이면서 팔꿈치가 아프다는 사람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 주는 등 소소한 참견을 조금 하긴 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다면 일 열심히 하라고 암시라도 걸었을 텐데 말이지. 저번에 별생각 없이 건 암시 때문에 귀찮은 일이 잔뜩 생겼다고.’
덜 아프면 일을 열심히 하겠지라는 단순한 논리다.
하지만 격려받고 기분이 좋아진 일꾼들은 열심히 일했고, 결과적으로 상품의 질에도 미약하나마 영향을 끼쳤다.
“으으음.”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기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한 표정이었다.
“정말로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예?”
“거, 대형 브랜드 베이커리 공장에서 빵을 만들어서 팔지 않느냐. 마트니 슈퍼마켓이니 하는 데에 쫙 깔려 있잖아.”
“그렇죠.”
“사실은 그게 조금 부럽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단다.”
아버지는 두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평생 고된 일에 익숙해져 거칠어지고 주름진 양손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진혁은 그 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언제 또 저렇게 된 거야.’
환골탈태를 해서 한순간 주름이 덜해졌던 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그 모습을 잃은 지 오래다. 그동안 또 얼마나 반죽을 하고, 뜨거운 트레이를 만지고 찬물에 씻었는지 그 세월이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내가 그렇게 어렵게 해온 일을 기계가 뚝딱뚝딱한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지 않으냐.”
“….”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쪽이 훨씬 나은 것 같기도 하구나.”
아버지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평생 일하면서 누가 나 대신 일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니까 말이다.”
민병철이 진중하게 말했다.
“사람이 직접 반죽해서 만드는 빵과 저희가 공장에서 납품하는 빵은 분명히 질이 다릅니다.”
빵을 한 입 베어 문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직접 만든 것보다 크게 뒤떨어지지 않아. 오히려 반죽을 기계로 더 세게 해서 그런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뿌듯하고 기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씁쓸하다.
산업화로 인해 재봉틀에게 자리를 뺏기고 쫓겨나는 재봉사처럼 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처음부터 모르고 있던 건 아니었어. 나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막상 이 빵의 맛을 얕보고 있었나 봐.”
임운정은 손에 들고 있던 크림빵 조각을 어루만졌다. 나머지를 입에 집어넣고서 우물우물 씹는다.
입안에 퍼지는 우유 향과 살살 녹아내리는 덩어리진 크림, 그리고 크림에 젖어 있어 살짝 물렁한 빵의 가장자리. 살짝 빽빽한 듯하면서도 공기가 많이 들어가 있어 푹신한 속살.
“이게 뭐라고, 좋은데 속상하구나.”
진혁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런 일을 겪지 못했다.
아무리 강한 신진 고수가 나오더라도 그보다는 약했다.
몇 수를 겨루고 나서는 바로 패배를 인정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낸다고 하지.’
막상 공장을 세우고, 기계를 들이고 할 때는 진혁보다 더 신나있던 아버지다.
그런 아버지가 이렇게 풀이 죽어 있는 것을 보니 진혁 역시 신경이 쓰였다.
진혁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 일단 판매하는 대상 자체가 다릅니다.”
“빵 먹는 사람이 다 똑같지, 뭘.”
“대형 마트와 슈퍼마켓, 편의점에 직접 납품할 겁니다. 아버지의 빵 맛을 알게 된 사람들이 멀리서도 이 가게에 찾아올 거예요.”
“!”
아버지가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내 빵보다 훨씬 싼데 말이지. 이 정도 가격 차이면 굳이 우리 빵집에 올 것도 없이 마트에서 이걸 사 먹으면 되잖느냐.”
“그런 게 아니니까요.”
진혁이 단언했다.
“아버지가 직접 구우시는 빵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계속 이 빵을 먹으러 올 겁니다. 공장에서 만든 빵을 원치 않을 거라구요.”
“그런가?”
병철이 황급히 거들었다.
“그렇죠. 대신 거제도와 남해, 부산과 통영, 상상하시는 그 먼 곳까지 다 이 빵이 갈 겁니다. 혼자 만드시는 거로는 거기까지 팔 수가 없잖아요. 트럭이 대신 실어다 주고, 다른 사람들이 판매를 해줄 겁니다. 단지 일을 대신 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이 빵을 먹어본 사람들은 아버지 빵 맛이 실제로 어떤지 여기까지 먹으러 올 겁니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하실 필요가 없어요.”
“내가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고. 그냥 잘 돼서 기쁜 건데 말이다.”
“애초에 아버지가 없으셨으면 이 공장 건도 아예 시작을 못 했을 텐데요.”
“….”
“평생 빵을 만들면서 살고 싶어 하시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쉬셔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 일하고 싶을 때 일하시고, 쉬고 싶을 때 쉬시면 됩니다. 원하시는 대로 학교에서 가르치셔도 되고요.”
진혁이 웃었다.
“쉬고 싶을 때 쉴 수 없는 것과 쉴 수 있는데 쉬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아버지, 알고 계시잖아요?”
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먼 곳을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던 눈빛은 현재로 돌아와 두 사람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래, 사실은 이 이야기부터 해야 했던 것을. 둘 다 너무 잘해주었다.”
“감사합니다.”
“아니요, 다 임 사장님 덕분인걸요.”
아버지가 탄식하듯 말했다.
“항상 너희 젊은이들한테 배운다. 지금 내가 이 공장 빵이 맛있다고 불평을 했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진혁이도 그렇고 내가 투자한 돈이 얼만데.”
“아닙니다. 불평하신 게 아니지요. 그냥 조금 섭섭하실 수는 있는 것 같….”
민병철이 무어라 말하려고 하는데 임운정이 그 말을 끊었다.
“아니다. 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할 때가 아니라, 더 맛있는 크림빵을 만들어야 되겠어.”
“…예? 아니, 아버지. 조금 더 쉬시는 게 아니고요?”
내심 아버지가 쉬기를 바랐던 진혁이 곤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공장 빵을 맛본 사람들이 우리 가게에 찾아왔을 때 실망하면 어쩌냐. 최소한 이 빵보다는 더 맛있게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
아버지는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야 너희들 보기도 부끄럽지 않지.”
진혁이 따라 웃었다.
“역시 아버지답습니다.”
그런 그 두 사람의 얼굴이 놀랄 만큼 닮아 있어 민병철이 피식 웃었다.
“두 분이 아주 닮으셨습니다.”
“하하하!”
즐거운 웃음소리가 빵집에 울려 퍼졌다.
◈ ◈ ◈
두어달 후, 중국의 한 국립병원 주차장에 고급 차가 들어섰다.
몇 달간의 사투가 끝나고 마침내 아버지가 눈을 떴다는 소식을 들은 황려권은 황급히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달려왔다.
하지만 감격하여 아버지를 찾아뵌 황려권은 뜻밖의 호통과 마주했다.
「이 멍청한 녀석.」
부친은 뼈와 가죽밖에 남아 있지 않은 몸을 가누지 못해 침대에 반쯤 누운 채였다. 희어진 눈썹과 머리카락은 거의 빠지고 없고, 이마에는 주름이 깊다.
일그러진 얼굴에 형형한 분노를 띠고서 아버지가 외쳤다.
「내 네가 노트를 엿본 것을 모를 줄 알았더냐!」
황려권은 아버지가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서 제일 먼저 물을 줄 알았다.
아니면 하다못해 그동안 자식과 손녀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할 줄 알았다.
그러나 둘 다 아니었다.
집안의 소소한 일을 어떻게 처리를 했다거나 하는 것을 묻는 것도 아니었다.
뜻밖에도 황려권이 저지른 사소한 실수에 대한 언급이 제일 먼저였다.
「….」
황려권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가 입술을 달싹이며 신음처럼 말을 내뱉었다.
「허, 허락하신 줄 알았습니다.」
「허허, 참!」
그는 억울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글을 써 보고자 하는 아들을 좋게 봐주어, 영감이 될 만한 일기를 보여주셨다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은 그만두거라. 네 유일한 장점은 솔직하다는 것이었는데, 지금 그것마저 없어져 버렸으니.」
「아버지!」
「내 너 같은 놈을 아들이라 여겼다니! 허, 참. 하지만 네 그 어쭙잖은 짓거리를 통해 실마리를 얻게 되었으니 벌을 내리지는 않겠다.」
벌.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 듣는 단어에 황려권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저, 저는 상관없지만 미미는….」
「미미는?」
「미미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부디 그 애만은! 아버지의 손녀딸입니다!」
「그래. 눈치는 없지만 내 손녀딸이지.」
「아버지!」
「나는 한국으로 갈 거다.」
「아니, 아버지. 지금 체력에 비행기를 타시면 위험하시다고….」
「내가 알아서 한다, 이 불효자 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