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7화
일주일 후, 임진희는 카페로 향했다. 간호대학 동기 세 사람을 만날 예정이었다.
저마다 다른 곳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근무 시간이 각자 달라 만나기 힘들었다.
이번에도 거의 일 년 만에 만난다.
그녀는 카페에 들어가기 전, 종이봉투를 열어 안쪽을 살펴보았다.
오늘 친구들에게 선보여줄 빵은 평범한 밤 식빵이었다.
하지만 삶은 밤을 잔뜩 넣었고, 프랑스산 밀가루를 썼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특별한 재료를 넣었다.
“진혁이랑 동진이가 먹기 전에, 누군가 평범한 사람이 맛을 보고 솔직하게 얘기해줬으면 좋겠는데.”
일부러 음식을 반입해도 되는 카페를 찾느라 조금 멀리 나왔다.
그녀는 심호흡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 진희 왔니?”
“은주 너는 진짜 빨리 왔구나.”
“늦는 것보다는 빨리 오는 게 낫지.”
분명히 한 시간 전에는 와 있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있던 은주는 책을 덮어서 가방에 집어넣고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병원 탈출하니까 살만하니?”
“웃지 마. 빵집도 3D 중의 3D야.”
“그래도 향긋한 향기 맡으며 일할 거 아냐? 뭔가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은데.”
“너 일하는 중환자실보다는 냄새가 좋긴 하지.”
“네, 네, 혈액내과 중환자실 출신 이야기 잘 들었고요.”
“우리는 냄새 안 나. 소독약으로 다 발라서, 포비돈이랑 알콜 냄새만 가득하지.”
“그래. 그 피부 상하는 냄새 말이지.”
은주는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언니랑 초희는 또 늦어?”
“낮 근무가 안 끝났겠지.”
“나처럼 아예 오프를 냈어야지.”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어야 말이지. 이번에 신규 들어와서 세 명이 한꺼번에 그만둬서 번표 완전히 뒤집혔대.”
“그거 정말 남 일 같지 않다.”
진희는 눈앞에 있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병원 일을 이야기하는 은주는 한때 학교에서 매일같이 바로 옆에 앉아 수업을 듣던 제일 친한 단짝이다.
“나 요새 들어오는 신입들 때문에 진짜 죽겠어. 걔들이 정말 오색찬란하게 다양한 종류의 실수를 저지른다니까. A를 하지 말라고 하면 A는 안 하는데 B를 새로 저질러. 이번에는 글쎄 백만 원이 넘는 항암제를 실수로 떨어뜨려서 터트려 버린 거야. 그래서 결국 부서 비용으로 돈 모아서 물어줬지. 환자한테 내라고 할 수는 없잖아.”
하지만 지금 은주가 말하는 그 이야기들은 진희에게는 남 일처럼 느껴졌다.
진희는 가방 안을 바스락거리며 빵 봉지를 쥐었다.
“그, 언니랑 초희 오기 전에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응?”
“너희 집 옛날에 빵집 했었잖아.”
“아빠가 사업 병에 미쳐서 이것저것 가게 열 때가 있긴 했지. 그런데?”
“내가 만든 빵 맛 좀 봐 줘.”
“우와 빵 만들어 왔어? 그래서 이 카페로 왔구나?”
은주는 손을 뻗어 빵을 받아들었다.
종이봉투를 열자마자 진한 가을 향기가 훅하고 풍겨왔다.
보들보들하고 따뜻한 겉면이 손에 닿자 저절로 입가가 올라간다.
은주가 빵을 반으로 갈라 찢자 안쪽에 통째로 들어있는 노란 밤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기포가 풍성해 가볍고 푹신푹신한 느낌이 드는 빵이었다.
“이야, 밤을 아주 화끈하게 넣었는데? 나 이런 거 좋아해.”
“응, 먹고 평 좀 얘기해봐.”
은주는 엄지손가락과 검지로 빵을 주우욱 찢었다. 하얀 빵조각이 결에 따라 치즈처럼 찢어지며 길게 늘어난다.
붉은 입술이 열리며 그대로 빵을 조각째 삼켰다.
“으음.”
꿀떡꿀떡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삼키던 은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이거 뭔가 익숙한 맛이 나는데?”
“알겠어?”
“요거트를 어디에 넣은 거야?”
“티가 나나?”
“당연히 티가 나지. 그런데 빵을 겉으로 봤을 때는 아무리 봐도 요거트가 들어갈 만한 부분이 없어 보이는데.”
“반죽할 때 넣었거든.”
다행히 반응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진희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먹을 만하다는 거지?”
“응. 이거 완전 맛있다.”
조금 더 가져와도 좋았을 것을 그랬다. 진희는 자기 몫으로 빼놓았던 빵도 전부 은주에게 주었다. 은주는 신나게 빵을 먹었다.
“그런데 너 진짜로 빵 만들어?”
“으응.”
“병원 그만둔 거 아깝지 않고?”
“그건 괜찮아. 의외로 내가 빵 만드는데 소질이 있더라고.”
“넌 원래 뭐 만들 때 잘 만들잖아. 정신과 병동 실습할 때 요리 요법 때도 다들 네가 만든 음식 먹으려고 달려들었는걸.”
‘그건 네가 특별히 요리를 못 해서….’
진희는 자신의 속마음을 굳이 털어놓지 않았다.
“그런데 오빠가 나한테 가게를 차려주겠다고 해서 걱정이야.”
은주의 동공이 떨렸다.
“가게를 차려준다고? 무슨 가게를, 어디에?”
“빵집을 명동에.”
은주는 임진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존심이 강했다.
그리고 돈 한 푼 한 푼에도 꼼꼼히 따지는 성격이었다.
“옛날에 우리 피자집에서 거스름돈 잘못 거슬러 받아서, 5천 원짜리 받아야 하는데 5만 원 받았던 거 기억나? 그때 진희 네가 앞장서서 가서 돌려줬잖아.”
“그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지. 그 알바생이 자기 돈으로 메꿔야 할 거 아냐.”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들도 있거든. 그래서 넌 진짜 신세 지는 거, 부당한 거, 돈 문제 꼬이는 거 싫어한다는 거 알고 있는데. 고맙지만 마음이 불편하겠다.”
정확하게 자신이 느끼고 있었던 것을 짚어주는 친구의 말에 진희가 환히 웃었다.
“어쩜 너도 아는 내 마음을 우리 가족들만 모르냐.”
진희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가게가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냉큼 받아. 여태까지 그 돈 모으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는데, 염치가 없잖아.”
은주가 그런 진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좋겠다, 가게 차려주는 오빠도 있고.”
“너는 옷 같이 입을 수 있는 여동생 있잖아. 나도 오빠 말고 여동생이 갖고 싶었다고. 요즘이야 제대로 철이 들었지만, 옛날엔 진짜 장난 아니었어. 오빠라고도 안 불렀지. 집안의 말썽꾼 그 자체였단 말이야.”
은주가 킥킥 웃었다.
“나도 여동생을 갖고 싶어서 갖게 된 건 아니야. 완전 속았다고. 부모님이 형제가 있으면 좋겠냐고 해서 오빠 갖고 싶다고 졸랐는데, 오빠가 아니라 여동생을 낳아 오셨다니까.”
“남동생도 아니고 오빠를 어떻게 낳니? 헛소리 좀 그만해.”
“그때 난 8살이었으니까 그런 이치를 몰랐지.”
초희와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구간호사로 일하는 초희는 갑자기 충청도 지방으로 내려가야 할 출장이 생겼고, 언니는 뒷번 간호사가 출근할 수 없다는 연락이 와서 계속해서 근무해야 한다는 연락이었다.
두 사람은 핸드폰 문자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야 4인방이 언제 또 모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너 가게 열면 개업 축하하러 갈게. 내가 초희네 회사랑 언니네 병원을 폭파해서라도 둘 다 데리고 간다.”
“푸핫, 그래도 폭파범은 안 돼.”
둘이서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나며 진희가 어렵게 물었다.
“은주야. 내가 이 가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나 솔직히 지금이라도 거절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거든. 그런데 이미 권리금도 냈고, 벌써 터를 다 잡아 놨더라고. 보면 괜히 나도 욕심이 생기는데, 난 아직 부족한데 역할을 다 못하고 완전히 말아먹을까 봐 걱정돼. 혈연이라고 괜히 빈대처럼 들러붙는 그런 꼴 나는 거 아닌가 해서.”
은주는 미소를 지으며 격려해 주었다.
“당연하지. 조금 전에 빵 맛보니까 더 그래. 요즘 건강빵 파는 거 맛없는 게 얼마나 많은데, 내가 맨날 가서 사 먹어 줄게.”
“말만이라도 고맙다, 얘.”
“오빠한테 고마우면 그만큼 열심히 가게에서 일하면 되지. 네가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알아줄 거 아니야.”
“그건 아니다. 은근히 둔한 데가 있어서 내가 직접 말해도 모를걸? 지금 내가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것도 몰라.”
“그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네 성격 몰라.”
“뭔가 잔뜩 착각하고 있어. 내가 엄청나게 희생적이고 상냥하다고 오해하고 있더라고.”
“너 상냥하긴 하잖아.”
“엄마 생일에 엄마가 갖고 싶어 하다던 구두 챙기는 거나, 아빠가 구멍 난 양말 신고 다니지 않게 신경 쓰는 거. 그런 건 그냥 내가 해주고 싶으니까 하는 거란 말이야. 특별히 희생하는 게 아니고 가족이니까 그냥 당연한 건데.”
은주가 웃었다.
“넌 상냥한 게 맞아. 난 여동생이 구멍 난 청바지 입어도 맘대로 하고 다니라고 한다, 얘.”
“양말이랑 청바지는 다르지!”
은주와 헤어지면서 진희는 굳게 결심했다.
‘이 요거트 빵이 통과하지 못하면 가게를 맡을 수 없다고 해야겠다.’
굳게 결심한 그녀는 그날 저녁 두 사람의 미식가에게 빵을 선보였다.
임진혁은 간단하게 평했다.
“신기한 아이디어를 냈네. 요거트라.”
동진이 맑은 표정으로 웃었다.
“이거 맛있어요.”
“반죽에 요거트를 섞을 생각은 어떻게 했어?”
“벌꿀을 섞어서 빵을 만드는 사람이 있길래. 벌꿀이 되면 요거트도 되겠다-싶었지.”
“밤 덩어리가 오밀조밀하게 씹히는 것도 잘 어울려요. 요거트가 반죽을 더 부드럽게 한 것 같아요. 이건 이가 약한 사람들, 건강한 빵을 찾지만 딱딱한 것은 먹고 싶지 않은 사람들, 노인이나 약한 사람들에게 권하면 좋겠어요.”
“맞아. 그런 생각으로 만들었어. 빵을 좋아하지만 이가 없거나 치통을 겪는 환자분들이 먹을 수 있는 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진희 누나는 병원을 그만두고 빵을 만들어도 간호사네요.”
간단한 평에 진희가 눈시울을 붉혔다.
“…그건 영광이네. 오늘 병원에서 일하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전히 바쁘고 보람차게 살고 있더라고.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어.”
“언제는 병원에 있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러더니.”
임진혁이 혀를 찼다.
“그러면 가게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지 결정했어? 나하고 진영이 형이 후보군을 세 개 정도 뽑아 놨는데, 이거 카탈로그에서 보고 고르면 돼. 가격은 신경 쓰지 말고.”
진희가 거절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확신에 찬 표정이다. 진희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만에 하나라도 내가 가게를 맡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돈을 써가면서 일을 이 단계까지 진행했지.’
진희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묻자.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말도 없이 이렇게 큰일을 결정한 거야?”
“전에 이미 말했잖아. 너 가게 차려 줄 거라고.”
마치 벽과 이야기하는 것 같다.
태산처럼 높게 우뚝 선, 말하는 벽이다.
같은 언어를 말하고 있지만, 뜻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벽은 순수하게 호의를 보이고 있으며 진희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있다.
어쩌면 지금 문제인 것은 진혁이 아니라, 불안하고 자신을 믿지 못해 초조해하는 임진희 자신일지도 모른다.
“…알았어, 고마워.”
진희는 그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너한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할게.”
임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건강 챙기면서 쉬엄쉬엄해.”
“아니, 난 완전히 건강하다니까?!”
“너무 약해. 16시간 정도 일하면 그대로 쓰러져서 잠들잖아. 체력을 좀 더 길러야 한다고.”
“보통 사람은 원래 다 그래!”
“난 괜찮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