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44화 (344/656)

제 344화

“날 두고 둘이서 간다고? 진짜로?”

“내일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 넌 먼저 가.”

세 사람은 저녁 시간에 이불을 파는 곳을 찾지 못해 택시를 타고 대형 마트로 향했다.

진혁은 택시 기사에게 말해서 중간에 진희를 자취하는 집 앞에 내려 주었다.

“알았어, 그럼 어떤 거로 샀는지 사진 찍어서 보내 줘! 꼭 이야!”

“됐으니까 빨리 내리기나 해.”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대형 마트 매장에서 진혁은 말을 잃었다.

그곳은 완전히 신세계였다.

현대에 돌아온 이후에 이러한 종류의 매장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번쩍번쩍한 전등 아래에 형형색색의 갖가지 새 물건들이 줄줄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은 깔끔하고 현대적이었다. 소똥과 말똥이 거리에 굴러다니고, 먼지가 피어오르는 시장 거리에 비하면 아름답기까지 하다.

설탕을 넣어 달게 만든 음료수만 해도 백여 가지가 넘는다.

벽에 설치된 오픈형 냉장고는 한기를 뿜어내며 채소가 상하지 않게 온도를 낮추는 중이다.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진혁에게 김동진이 말했다.

“진짜로 고마워요.”

“그런 말은 됐다고 했잖아.”

“아니요, 저 마트 처음 와 봐요. 부모님하고 올 때 말고는.”

보육원에서 마트를 가는 일은 없는 모양이다. 진혁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바구니는 네가 들어라.”

“장바구니요? 카트 안 끌고요?”

동진이가 카트 쪽으로 따라갔다.

’맞다, 이불은 부피가 크니까.‘

채소 코너를 지나며 진혁은 당근을 하나 집어 들었다. 깨끗하게 세척한 당근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지만 생기를 상당수 잃은 상태였다.

그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그린워터 농장의 채소 쪽이 훨씬 신선해.‘

냉동식품에는 잘게 잘려 냉동된 닭고기와 돼지고기, 쇠고기가 가득했다. 김동진은 훈제 오리고기 앞에서 눈에 띄게 머뭇거렸다.

“먹고 싶으면 먹어.”

“아니, 전 훈제 오리는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

“이건 옛날에 엄마가 좋아하시던 음식이라….”

진혁은 카트에 냉동 훈제 오리고기를 쑤셔 넣었다.

“오늘 밤에 먹으면 되겠네.”

“아니, 형! 진짜 괜찮은데요. 정말로요. 집도 빌려주시고 이불도 사주시는데 오리고기까지 얻어먹을 수는 없어요.”

진혁이 피식 웃었다.

“얻어먹는 게 아니야.”

“예?”

김동진의 표정에 순간적으로 절박하고 어두운 것이 스쳐 지나갔다. 진혁은 그것을 못 본 척했다.

“갚는 거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가며 진혁이 이어 말했다.

“어차피 졸업하고 빵집에서 일하려고 했잖아? 제대로 연습해서 우리 가게에 취업하면 되지. 그때 열심히 성실하게 갚아.”

“형, 고맙습니다.”

“그 말은 필요 없다니까.”

지하 2층 식품 코너를 전부 돌았지만, 이불과 요는 없었다.

음료수 역시 냉장고에 담긴 것이 아니라 그냥 창고처럼 쌓여 있는 것만 있었다.

“이불은 여기 없나 봐요.”

“지하 1층으로 올라가 보자.”

진혁은 카트를 끌고서 에스컬레이터도 아니요, 엘리베이터도 아닌 요상한 것을 탔다.

금속으로 된 캐터필러가 천천히 굴러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 한구석이 뭉클했다.

’이거 그 기관에 미친 놈들이 설치해놓은 함정하고 되게 비슷하게 생겼는데. 역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다 똑같아.‘

지하 1층에 올라가자 바로 앞에 마트 고유 브랜드에서 출시된 과자와 음료수, 라면들이 보였다. 촉촉한 초코 칩과 말린 고구마 칩, 그리고 다양한 과일 향이 풍기는 과자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본 진혁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버지는 빵과 과자는 만들어 먹자는 주의였고 좀처럼 집에 과자 같은 것을 들여놓지 않았다.

현대에 돌아온 후에는 진혁 역시 바쁘게 사느라 이런 종류의 과자를 접할 일이 없었다.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과자들은 칠현금을 연주하며 우아한 목소리로 다정한 연가를 부르며 구애하는 기녀보다 더 매혹적이었다. 저녁을 먹지 않고 돌아가는 길에 풍기는 구수한 빵 냄새처럼 식욕을 자극한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과자 봉지는 생각보다 더 가벼웠다.

“이거 안에 거의 안 들어 있는데?”

진혁이 봉지를 살짝 흔들어 보자 동진이 말했다.

“원래 질소로 부풀린대요.”

“그래도 맛 좀 보자.”

진혁은 세심하게 과자를 골랐다. 과자 봉지를 만져 보면서 1g이라도 더 들어있는 것들을 골라냈다.

’대체로 비슷비슷하게 들어있기는 한데 조금 더 많은 것들이 있어.‘

순식간에 카트에 과자가 산처럼 쌓였다. 종류별로 양이 많은 것들을 골라 하나씩 넣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김동진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임진혁 선생님은 진짜 대단하세요.”

“응?”

“이렇게 과자를 종류별로 맛보고 연구하시니까 그렇게 빵을 맛있게 만드시는구나 싶어서요.”

‘그건 아닌데.’

김동진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진혁이 머쓱하게 말했다.

“그냥 같이 먹자.”

“네.”

음료수도 종류별로 살까 싶었으나 카트에 자리가 없었다.

진혁은 이불과 요가 어디에 있을지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낯익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곳은 가전제품 코너였다.

“형, 뭐 사실 거 있어요?”

그는 저도 모르게 거대한 50인치 텔레비전 앞에 멈추어 섰다.

“음.”

텔레비전에서는 마침 진혁이 보고 싶어 했던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스산한 현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며 달이 내려다보는 숲이 보였다. 이전 화에 나왔던 20대의 도산검림은 어느샌가 훌쩍 나이를 먹어 40대가 되어 보인다. 중후한 표정의 중년인이 된 그는 허공으로 뛰어올라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 손가락 사이에서 소털처럼 가느다란 바늘들이 뻗쳐나가며 양쪽으로 펼쳐진다.

“와, 최신화인가보다.”

“형도 <천마> 보세요? 진짜 멋있지 않아요?”

“저걸 저렇게 하면 안 되지.”

진혁은 혀를 찼다.

최신형 FHD 3D LED니 뭐니 하며 완벽한 평면을 구현했다는 광고 문구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집의 것보다 훨씬 큰 최신형 텔레비전 안에 담긴 화면을 집중해 살폈다.

“저런 식으로 움직이면 바로 떨어져 죽어. 저건 와이어가 체중을 지탱해 줘서 가능한 거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그 말에 동진이 대답했다.

“당연히 떨어져 죽죠.”

“하하, 그렇지.”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그 화면을 지켜보았다.

“임진혁 선생님도 이거 좋아하신다니까 좋아요. 요새 진짜 인기 있잖아요. 중국에서도 완전 난리에요.”

“중국 일은 어떻게 알아?”

“저 어렸을 때 중국에서 살았잖아요. 거기 친구들이랑 아직 연락하거든요.”

“그래?”

“어렸을 땐 진짜 잘살았거든요. 아버지가 미래는 중국과 함께 해야 한다며 거기 공장 차리면서 저랑 엄마랑 데리고 가셨어요. 일부러 중국어 배우라고 국제학교 말고 공립학교 보내셔서 거기서 친구들 사귀었죠.”

그리고 거기서 사기를 당해 크게 실패했다.

동진은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고, 진혁 역시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잠시 다른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드라마는 계속되었다.

목숨을 건 사투를 마치고 나서 동굴 속에서 의식을 갖고 있는 자는 제갈책,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제갈책을 쫓아 찾아온 암살자들을 해치운 도산검림은 그대로 쉬지 못했다. 무리한 상태로 화산(火山)의 기운을 받은 불거북과 싸우다가 치명적인 내상을 입어 쓰러진 것이다.

쓰러져 있는 남자 앞에서 그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지?」

제갈책은 결정해야 했다. 그의 손에는 북해빙궁에서 얻은 빙정이 들려져 있었다. 자신이 복용하기 위해 생명이나 다름없는 기관진에 대한 문서를 넘기며 거래를 통해 얻은 것이다.

지금 그가 빙정을 도산검림에게 준다면 검림은 살아날 터다.

「하지만 난 고수가 되어야만 해.」

제갈책은 원래 지금 이 시기에 빙정을 복용하고 절정 고수가 된다. 그리고 북해빙궁의 후계자로 인정받아, 그 지위를 이용해 빙궁을 일월신교에 끌어들인다.

「빙정을 포기해서 일류고수에 머무른다면 난 이 다음에 습격하는 살야단(殺夜團)의 살수에게 죽을지도 몰라.」

아는 것이 너무나도 많기에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없다.

그는 도산검림을 주군 주군 하면서 불러왔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조종하려고 했던 말 중의 하나다.

하지만 그 장기말과 지나치게 가까워졌고, 그자는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이자는 여기서 죽으면 안 돼. 앞으로 소교주가 될 주문성과의 마지막 결투에서 죽어야 한다고….」

이 사람을 살리면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될지 한치 앞길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사람이 죽는다고 해도 미래는 꼬인다.

여태까지 격렬한 감정 표현을 한 적이 없었던 제갈책이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시여!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이까.”

텔레비전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임진혁과 김동진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 앞에 멈추어서 드라마를 구경했다.

“요즘 이게 제일 재밌지 않아?”

“큰 텔레비전으로 보니까 더 좋긴 좋네.”

“이 기회에 텔레비전 하나 장만하시죠, 사모님.”

가전 센터의 전담 직원이 나와서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진혁은 거기서 발걸음을 뒤로 돌렸다.

“형, 이 드라마 진짜 재밌네요.”

“음. 저게 몇 화였지?”

“아마 40화일 걸요?”

진혁은 저도 모르게 시무룩해졌다.

“난 12화까지밖에 못 봤는데.”

“다시 13화부터 보면 되죠. 처음부터 다시 보면 더 재밌을걸요? 뒤에 내용 다시 보고 난 다음에 보면 그 복선을 알 수 있어서 더 좋대요. 친구들도 세 번씩 봤다고 하더라구요.”

“그 드라마 작가나 배우들도 인기가 많겠지?”

“요즘 몸값 열 배씩 올랐대요.”

“팬클럽 같은 것도 하나?”

진혁은 자신의 팬클럽을 기억했다. 진바라기의 회장은 공식적으로 몇 번이나 팬클럽의 편지를 전달하고, 선물을 가져왔다.

그는 중국의 드라마 작가나 배우들, 아니면 관련된 인물들과 어떻게 접선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흥신소에 맡겨야 할지, 아니면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국의 사람들에게 문의해야 할지 몰랐다.

원래는 오늘 진희에게 그런 걸 물어볼 예정이었는데 그런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가게 하나를 맡기는 것뿐인데 엄청나게 놀라서, 완전히 허둥거리면서 갔지.’

“이거 진짜 좋아요.”

커다란 이불을 껴안은 김동진은 행복에 겨워 말했다. 진혁은 그 이불의 감촉을 더듬어 보고 말했다.

“…나중에 좀 더 좋은 거로 사줄게.”

화학섬유로 만든 베개는 질이 좋지 않았고, 이불은 지나치게 얇았다. 그가 사용하던 비단 보료와 침구에 비하면 질이 좋지 않았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동진이는 끝까지 괜찮다고 했다.

적당히 이불과 요, 베개를 고르고 난 후에 진혁은 다시 가전제품 코너에 들렀다.

“진혁 선생님, 뭐 더 사실 거 있어요?”

이불 속에 파묻혀서 웅얼거리는 동진이를 뒤로하고서 그가 점원에게 물었다.

“여기 이 텔레비전은 얼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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