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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342화 (342/656)

제 342화

“남녀칠세부동석이냐?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야?”

툴툴대는 진희를 설득하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임진혁은 드라마 화면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다음 장면이 궁금한데 전화기 너머의 말소리는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진혁이 진중하게 말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그보다 지금 케이크는 다 만들었어? 40분 후면 예정대로 수업 시작할 거야. 애들한테 공지 좀 해줘.”

그는 서울역에서 내려서 바로 주영모 베이커리 아카데미로 향할 예정이었다.

◈          ◈          ◈

임진혁이 공식적으로 도착하기 30분 전, 주영모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의 케이크를 최종적으로 손질하느라 바빴다.

진희가 짜랑짜랑하게 소리 질렀다.

“30분 남았다! 너희들 다 했어?”

“말 걸지 말아요, 언니!”

“맞아요! 시간 안 알려줘도 괜찮아!”

혜정이와 현아가 비명으로 대답했다. 우당탕하고 조리기구가 바닥에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꺄악! 이거 떨어졌어!”

“석현아, 너는 나중에 유명한 페이스트리 쉐프가 되어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케이크를 만들고 싶다며. 그럼 이 정도로 당황하면 안 되지.”

진희는 자신이 하던 것을 멈추고 달려가 바닥에서 조리 기구를 주워 주었다. 바닥에 닿았던 뒤집개와 거품기를 순식간에 깨끗하게 세척해서 건네준다. 현아는 고마워하며 받았다.

“언니는 어쩌면 이렇게 손이 빨라요?”

“환자 서른 명 기저귀 갈고 용품 소독하다 보면 빨라져.”

혜정이가 옆에서 듣다가 웃었다.

“아하하하하하.”

현아가 불퉁하게 말했다.

“저는 계속 물건도 떨어뜨리고, 너무 덜렁거리는 거 같아요. 이래서야 어디 주방에라도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냥 학원이나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슨 소리야! 너희 다 선수반에 들어 있는 애들이잖아. 지금 기능경기 준비하려고 하는 거고.”

“주제부터 완전히 잘못 잡은 것 같아. 꽃봉오리는 무슨, 그냥 송충이나 번데기 같은 걸 해야 했다고.”

석현아가 한탄했다.

진혁은 그들에게 거제도에 내려가기 전에 ‘갤럭시 치즈 케이크’를 만들어 주었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인생관을 담은 케이크를 만들어보라는 과제였다.

임진희가 크게 웃었다.

“누가 송충이 모양이나 번데기 모양 케이크를 먹고 싶어 하겠어? 그렇게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좀 더 보편적으로 가자. 응?”

“그래서 꽃봉오리를 했잖아요.”

석현아도, 혜정이도 동진이도 셋 모두 아직 고등학생이다. 전국 기능대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대회 준비반은 보통 하루 10시간 이상 반년 이상을 준비한다.

그 시간과 재룟값만 해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주영모는 새로운 반을 만들었다.

비단 동진이만이 아니라 현아도, 혜정이도 그럴만한 여유가 없지만, 솜씨가 있는 아이들이다.

“솔직히 나도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고 클 만큼 컸잖아요. 내년이면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도 볼 수 있고 투표도 할 수 있고, 술도 마실 수 있고.”

“그래, 너 다 컸다.”

진희가 피식피식 웃었다.

고등학교에서도 최고학년이고, 자신은 이미 다 자랐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에서는 아직 어리게 보는 나이다.

그래서 현아는 이번 주제를 ‘전부 다 여물어 금방이라도 필 것 같은 꽃봉오리’로 잡았다.

진희는 그게 알기 쉽고 좋은 표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미리 배웠던 꽃장식 기법도 활용할 수 있고 말이지.’

반면에 혜정이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진혁에게서 본 적 없는 것들을 보면서 견문을 넓히라는 조언을 듣더니 엉뚱하게 현대 미술관을 다녀왔다. 추상적이고 기호학적인 조각 작품들을 보더니 장식용으로 얇게 뽑은 초콜릿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한눈에 딱 들어오는 현아의 작품과 달리 기하학적인 도형 모양의 무언가를 만들려는 모양이다.

혜정이가 조심스럽게 케이크 위에 얇은 초콜릿 판을 하나씩 겹쳐 올렸다.

포커 카드로 쌓는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선풍기가 이쪽을 향했다.

바람이 불자 순간, 에펠탑처럼 삐죽이 솟아있던 얇은 초콜릿 판 탑이 케이크 위에서 기우뚱하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으앗! 이거 또 무너졌다!”

혜정이가 괴로워했다. 그 옆에서 동진이가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물었다.

“여기 따로 빼놓았던 버찌 본 사람 있어? 내가 설탕에 졸여 놓은 거 말이야!”

진희 역시 외쳤다.

“이거 누구 거야? 냉각기 옆에 있는 시트. 동진이 네 거야?”

“으악, 네!”

“치우고 내 것 꺼낸다!”

“제가 치울게요! 지금 꺼낼 거예요!”

활기로 가득 찬 연습실은 평소보다 유난히 더 소란스러웠다.

이미 도착해 1층에서 위층을 올려다보고 있던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서 CCTV의 사각에 서서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극마의 경지를 초월한 고수의 시선은 유리창 너머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케이크를 꾸미고 있는지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확인하고 싶은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럭저럭 잘 하고 있군.’

주영모 베이커리 아카데미에서 선발된 세 명의 아이들.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내년 봄에 바로 취업하고 싶어 하는 전문인력들이다.

직접 훈련시킨 젊은 직원들이 경영하는 직영점을 오픈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다.

하지만 진혁은 세 명의 고등학생들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보다 그가 정말로 주목하는 것은 다른 방향이었다.

‘진희가 생각보다 애들을 잘 다룬단 말이지.’

간호사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천성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성격이 다른 세 명을 맏언니, 누나처럼 감싸 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안심이 됐다.

‘진희에게는 오늘 이야기해주어야겠다.’

촬영을 계속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다. 진희 역시 자신이 새로운 가게를 맡게 될 것이란 사실을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몇 년 후라고 막연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진혁은 그렇게까지 시간을 오래 줄 생각이 없었다.

‘본디 새끼 살수가 제대로 된 살수로 거듭나려면 첫 살인을 해야 하는 거지. 실전은 연습과 달라.’

어머니와 함께 하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접대하며, 일봉이에게 빵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오늘의 성과를 보고 최종적으로 진혁이 결정할 셈이었다.

그는 연습실 안에 붙어 있는 벽시계를 응시했다.

아직 10분 남았다.

‘그냥 지금 들어가도 되겠다.’

그가 소리 없이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 문을 열었다.

열릴 때마다 삐걱하는 소리가 나던 오래된 문이었으나 그 소리를 죽이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문을 열 때 힘을 주는 방향을 달리 하면 되는 정도로 간단한 요령이다.

“나 왔다.”

“우끼약!”

세 번째 초콜릿 탑을 쌓고 있던 조혜정이 비명을 질렀다.

“벌써 오셨어요?!”

“안녕하십니까!”

놀라는 현아와 갑자기 인사하는 동진에 이어, 마지막으로 진희가 반겼다.

“뭐야, 택시라도 탔어? 왜 이렇게 빨리 와.”

진혁이 팔짱을 끼고 그 자리에 섰다.

“자자, 집중해. 아직 10분 남았으니까 천천히 마무리해.”

“알았어!”

석현아가 조잘거렸다.

“으아악, 보고 계시니까 더 긴장된단 말이에요.”

“대회 나가면 심사위원들은 안 쳐다볼 거 같아?”

“그건 그렇지만요. 으으.”

진혁은 이들이 어떤 케이크를 만들 예정인지 미리 따로 보고를 받지 않았다.

그간 함께 연습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최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주제를 골랐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역시 내가 잘 키웠다니까.’

임진혁은 흐뭇하게 진희를 지켜보았다.

다른 고등학생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침착하고 차분한 태도로 마지막 마무리를 할 뿐이다.

하얗고 네모난 케이크는 유독 높이가 높아서 눈에 확 띄었다.

“이건 웨딩 케이크…, 아니네. 병원인가?”

한쪽 끝에 올라가 있는 자그마한 녹색 십자가가 보였다.

현아는 꽃봉오리 모양의 케이크에 최종적인 마무리를 하는 중이다.

혜정이는 다시 탑 쌓기를 시도하는 중이었으나 얇은 초콜릿 판들은 또다시 장렬히 무너졌다.

붉은 새틴을 깔아둔 것처럼 선명하게 퐁당을 씌운 케이크 위에 산산이 조각난 초콜릿 칩들이 제멋대로 뿌려진 광경은 나름대로 보기 나쁘지 않았다.

“일부러 그렇게 하고 있는 건가?”

진혁이 정말로 궁금해서 물었다.

“아, 아니요.”

혜정이는 고개를 숙였다. 눈시울을 붉힌 것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보였다.

임진혁은 머릿속으로 점수를 매겼다.

‘멘탈이 약함. 마이너스 10점.’

그가 연습실에 일찍 온 것은 고작 10분이다. 이 정도로 흔들리는 약한 정신력이라면 애초에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

차라리 여기서는 뻔뻔하게 나서면서 ‘일부러 이렇게 초콜릿을 부서뜨려서 흩어놓은 거예요.’ 하고 말하는 편이 진혁에게 더 좋은 평가를 얻었을 것이다.

‘관리자보다는 얌전히 순응하는 타입이야.’

최하단이라면 모를까, 관리자가 되기에는 무리다. 진혁이 냉정하게 계산하며 바라보고 있자, 혜정이는 정말로 울 것만 같았다.

진희가 혜정이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얘, 얘. 아무 걱정하지 마. 쟤가 저렇게 눈빛은 무서워도 실제로 험악하게 구는 애는 아니야.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

진혁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내가 무섭다고?”

“그렇게 말도 없이 쳐다보면 화내는 것 같잖아. 설마 진짜 화내는 건 아니지?”

그는 머쓱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혜정이는 히끅히끅 딸꾹질을 하며 간신히 울음을 삼켰다.

“죄, 죄송해요. 제가 긴장해서….”

“됐어. 마저 해.”

진혁은 뒤로 물러났다. 그는 뒤쪽 조리대에 서 있던 동진이에게 향했다.

“뭘 만들고 있지?”

그것은 언뜻 보기에는 붉고 각진 덩어리로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다른 케이크들보다 세 배 이상 컸다. 혜정이처럼 붉은색 퐁당으로 겉을 씌웠지만 부드러워 보이는 비단 느낌이 나지는 않았다. 일부러 금속처럼 보이게 광택이 나게 하려고 이것저것 바른 티가 난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 케이크가 커다란 붉은색 트레일러트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트럭 위쪽에 실린 물탱크와 하얀색 사다리를 본 진혁이 피식 웃었다.

“이건 뭐야?”

“소방차 케이크요.”

진혁이 짧게 물었다.

“왜?”

동진이 머쓱하게 웃었다.

“아니. 그게요. 이게 요즘 계속 꿈에 나오고.”

횡설수설하는 소년의 말을 진혁이 단호하게 끊었다.

“그게 어떻게 네 삶의 인생관을 반영하는지 설명해봐.”

동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말이죠. 사실 빵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그래.”

“그런데 그게 재미있으면 안 될 것 같거든요.”

진혁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색 소방차의 하얀색 사다리에 광택제 역할을 할 시럽을 바르며 동진이 말했다.

“재미있어하면 안 될 것 같고, 맛있는 걸 먹으면 안 될 것 같고 그랬는데 요즘은 또 그래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 저도 죽는구나 하는 시점에 소방차가 구하러 왔거든요. 그게 진짜 100톤 트럭처럼 커다랗게 보여가지고, 그 인상이 머릿속에 깊게 남았나 봐요. 내가 나한테 그런 소방차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고.”

진혁은 짧게 말했다.

“케이크가 맛있었으면 좋겠군.”

자신을 담아낸다는 주제에는 합격했다는 뜻이다. 그 말을 들은 김동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임진혁 쉐프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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