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39화 (339/656)

제 339화

사흘간의 맥주 축제는 별일 없이 끝났다. 마지막 부스를 철거하는 동안 가게의 물건들을 정리하는 김춘배에게 지재언 MC가 마이크를 들이댔다.

“드디어 사흘 만에 축제가 다 끝났는데요. 기분은 어떠십니까?”

“매일 이백 판씩 다 팔았어요.”

땀으로 흠뻑 젖은 이마를 훔치며 김춘배가 헤실헤실 웃었다.

“이렇게 장사를 했다는 걸 지금도 믿을 수가 없네요. 이제야 진짜 장사꾼, 자영업자가 된 거 같습니다.”

“그럼 그전엔 뭐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남희가 배시시 웃었다.

“그냥 취미로 빵 굽는 아마추어, 그런 거였던 거 같아요. 지금 몇십 개 몇백 개씩 구우니까 내가 무슨 공장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첨엔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 막상 다 구워서 팔고 나니까 너무 좋아요. 집에서 요리하고 집안일만 할 때는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날 일이 없었죠. 사람들 만나니까 좋고, 그 사람들이 맛있다고 해주니까 또 더 좋아요.”

지재언은 옆에 서 있던 페이스트리 쉐프에게 마이크를 향했다.

“주영모 쉐프님! 어떠십니까.”

“처음에는 솔직히 이 사람들 가게 해도 되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원래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거든. 그래서 이분들이 안 바뀌면 이거 완전히 망하는 건데. 이 부부도 망하고 우리 프로그램도 망하고,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재언이 킥킥 웃었다.

“그래서요?”

“그게 또 끝이 아니었지. 무슨 도둑이 들지를 않나! 정말 안 되려면 다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야. 각서 쓰고 달리기까지 하면서 열심히 진혁 쉐프 말 듣는 거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 돈이 중요하지만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안 좋은 사건이었지만 그다음에 크게 깨달음을 얻었는지 사람이 완전 변한 걸 보니까 별생각이 다 들더라고. 우리가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하는구나 싶었어.”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잡히지 않는 곳에 서 있었던 카메라 감독이나 보조 카메라맨들, 그리고 작가 팀들 역시 빙긋 웃고 있었다. 봄의 유채꽃밭처럼 온화하고 따스한 분위기였다.

지재언이 마지막으로 진혁에게 물었다.

“진혁 쉐프님은 어떠십니까.”

제작진 모두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임진혁을 응시했다. 그 와중에 김춘배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진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남희는 기도하는 듯이 양손을 모으고 기대하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꼭 감았다.

당연히 긍정적인 격려의 말을 기대한 이들에게 진혁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장사꾼 됐다고 하는 거 보니까 틀려먹었네요.”

“예?”

“빵을 만드는 사람은요, 장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정성 들여 구워낸 맛있는 빵을 손님에게 주는 거예요. 그 대가로 돈을 받을 뿐이죠.”

주영모가 파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지금 자네가 하고 있는 건 장사가 아니야?”

“저야 사람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있지요.”

진혁은 진심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장사란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거나 표물을 운송하는 따위의 일이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빵을 구워 팔면서 단 한 번도 사람보다 돈을 우선한 적이 없습니다.”

싸구려 재료를 써서 구워 만든 빵을 비싸게 파는 것보다는 좋은 재료를 사용한 빵을 적절한 가격에 팔려고 했다. 내 가족, 내 아내와 딸과 아들이 먹어도 좋을 만한 빵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날그날 안 팔린 빵은 노인정이나 보육원에 기증했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하고 있지요.”

반면에 지금 진혁이 판매하고 있는 빵의 경우는 수준이 다르다.

오행진이 설치된 가게에서 만든 빵을 먹는다면 진기가 순환되며 전신의 기혈이 점차 유통되고 나아가 신체나이가 조금씩 젊어진다.

‘사실 지금 받고 있는 푼돈으로는 모자라지.’

효과를 생각한다면 개당 몇십만 원씩 받아도 부족할 정도다.

현재 가게는 대학가에 있으니 젊은 손님들이 주로 오고 있다. 하지만 유일봉이 매니저로 있는 소망 베이커리에서는 지금도 계속해서 동네 노인들의 주문이 밀려 들어오고 있다.

단골손님인 금천복만 해도 소망 베이커리의 빵을 먹은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이 컨디션이 다르다며 매일같이 빵을 사 간다.

소문이 나서 멀리서 차를 몰고 운전해 와서 사가는 사람도 있는 마당이다.

성인병 예방과 만성 통증 치료에도 좋다.

진혁이 하도 당당하게 이야기하자 다른 출연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핫!”

“진혁 쉐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빵을 잘 만드나 봐.”

김춘배는 망치에라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각오가 너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개구리처럼 납작하게 바닥에 엎드렸다.

“정말로 많이 배웠습니다, 임진혁 쉐프님!!”

“바닥 더러워요, 여보!”

이남희는 남편을 부축해서 일으키려 했다. 진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부인에게 부축받아 가게 안까지 들어가면서도 김춘배는 계속 뒤를 돌아보며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임진혁 쉐프님 의외인데요?”

“예?”

“당장 부축해서 바닥에 엎드리지 못하게 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저번에 달리다가 쓰러질 뻔할 때는 받쳐 주셨잖아요?”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치 타르트는 다 만들었잖습니까.”

“그게 중요한 거예요?”

“그렇죠. 타르트를 만들기 전에 넘어지면 더럽잖아요.”

이제는 씻든 말든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그 말에 다른 이들은 그만 웃어버렸다.

김춘배가 들어가서 씻는 동안 이남희는 따로 납작한 상자를 가지고 나왔다.

“이거는 저희가 방송국 여러분 드리려고 따로 구운 겁니다.”

타르트 세 판을 본 주영모가 지갑을 꺼냈다.

“18만 원 받으셔야죠?”

“돈을 받기는요, 무슨. 그리고 이거 가격 내렸어요. 또 그렇지 않아도 돈 받을 생각 없었습니다. 저희가 챙겨드려야죠.”

이남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에 저희가 너무 아무것도 몰랐어요. 가르쳐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김춘배가 곧 손을 씻고 나와 다시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거제도 오면 꼭 또 들러 주세요!”

마지막 모습까지 촬영을 마치고 나서, 제작진은 짐을 챙겼다. 밴 안에 짐을 싣는 동안 메인 작가가 말했다.

“진짜 예측불허대로 진행된 촬영이었어요.”

“도둑에, 가게 안 모형 케이크에, 맥주 축제까지 정말로 쉴 틈이 없었네.”

“진혁 쉐프님이 제일 고생하셨죠.”

“진혁 쉐프님?”

어딘가를 바라보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진혁은 자신을 재차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아아. 특별히 고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하는 시간도 평소보다 짧았고요.”

“설마 하루에 열 시간을 넘게 일하시는 건 아니죠?”

진혁은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와, 자기 가게가 있는 사람들이 더 독하다더니.”

“원래 그런 거야. 나도 처음 내 가게 차렸을 때는 삼 년 넘게 15시간씩 일했어.”

“주영모 쉐프님! 그거는 몇십 년 전 얘기고요. 요즘에는 그렇게 일하지 않아요. 노동기준법이라는 게 있다고요.”

“자기 가게인데 자기가 책임지고 일하지 않으면 누가 해.”

“하하.”

김산호 PD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임진혁 쉐프님에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완전히 우리 프로그램 자체를 끌어 가주셨어요. 이번 에피소드만 참석하신다고 하셨었는데, 혹시 계속 레귤러로 나와 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진혁이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죄송합니다. 저는 예정대로 이번 에피소드까지만 참석하려고 합니다. 누군가가 변화한다는 것 말입니다. 쉽지 않더군요.”

메인 작가가 말했다.

“너무 아쉽네요. 함께한다면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진혁 쉐프님이 딱 한계까지 도달하게 한 다음에 놔 줘서, 근성을 길러 주는 그런 걸 잘하시는 것처럼 보여서 더 그래요.”

“네. 사실 제가 몇 명을 좀 가르쳐 본 적이 있거든요.”

진혁은 이번 촬영을 참가하면서 그렇게 많은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할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적당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때려줄 생각이었다.

누구나 온몸이 노곤하게 몇 대 맞고 나면 제대로 일하기 마련이다.

“거 담배 한 번만 피우고 갑시다.”

김산호 PD가 담배를 피우는 다른 이들과 함께 바닷가 쪽으로 걸어갔다.

매캐한 연기를 코와 입으로 뿜어내는 이들 뒤에서 메인 작가가 눈살을 찌푸렸다.

“담배 피우시는 분들은 금연하기가 진짜 힘든가 봐요. 저희 아버지께서도 십 년째 끊는다 끊는다 하는데 못 끊고 계시거든요.”

박하연이 맞장구쳤다.

“좋아서 피우는 거 아니라고 진짜 누가 강제로 끊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막내 카메라맨 정현호가 말했다.

“저희 할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마지막 소원이 그거였어요. 담배 한 대 피우고 싶다. 그래서 의사가 담배 피워도 된다고 했는데, 그거 허락 받구 결국 못 피우고 돌아가셨지 뭐에요.”

“그건 좀 피우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몰래 피워도 되잖아.”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던 이들이 오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때는 제가 할아버지 옆자리를 지켰는데, 의사 말은 무조건 들어야 되는 줄 알았어요. 할아버지가 너무 약해져서 어디 나가려면 휠체어 타고 나가야 하니까. 그리고 뭐 담배를 피우려면 그거를 손에 들고 있을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힘도 없을 정도로 약해지셔서 나 돛대 좀 피우고 싶다 하는데 진짜 마음 아프더라구요.”

김산호 PD가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못 피우게 한 거야?”

“와, 진짜 안타깝다.”

한둘씩 밴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팀이 나뉘었다.

정현호가 진혁에게 물었다.

“진혁 쉐프님은 어떻게 하셨을 것 같아요?”

“뭘 말입니까?”

“할아버지와 담배요.”

진혁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는 할아버지가 없습니다.”

“그럼 아버지라면요?”

집요하게 물어오는 질문에 진혁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려야죠.”

‘담배를 버텨낼 수 있도록 폐의 건강을 좋게 만들어주면 되지.’

진혁은 실제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대답할 수 없었기에 대충 둘러댔다.

“그건 또 신박한 대답인데?”

“예, 뭐. 흡연 자유 공간이 따로 있는 병원으로 옮긴다거나. 의사를 설득한다거나.”

정현호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할아버지가 담배 피우시면 더 빨리 돌아가실까 봐 무서워서 못 드린 것도 있거든요.”

“그렇지만 할아버지가 하고 싶어 하는 그 의지를 더 존중해야 하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자신이 먹을 음식을 직접 만들고 싶어 하고 계시다. 진혁은 그게 노동력 낭비에 재료 낭비라고 생각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하면서 기뻐하기 때문에 용납하고 있다.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어차피 돌아가실 거, 그냥 피우게 해 드릴 걸 그랬다고 지금도 계속 생각해요.”

정현호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밴의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왼쪽 바닷가에 펼쳐진 풍경이 아름다운데에 비해서 오른쪽에는 나무가 듬성듬성 나 있어 볼품없는 시골길이 쭈욱 이어졌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

김춘배와 이남희 부부의 근성이 얼마나 버텨줄지는 모른다.

처음에 보았을 때는 예상보다 더 근성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자들이었기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암시를 걸어주었다.

‘평생 암시대로 살도록 할 생각이었는데.’

암시를 건 녀석들은 보통 바로 죽여버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렇게 며칠간이나 지켜본 적이 없었다.

‘암시가 평생 유지된다면 온갖 사기꾼에게 다 털려 재산을 잃고 말겠지.’

하지만 지금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정현호를 보니 새삼스럽게 깨달음을 얻었다.

처음부터 암시 따위를 거는 것이 아니었다.

진혁은 비로소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실패할 권리가 있는 거지.”

이제 내일이면 서울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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