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7화
“그래요?”
“오토바이를 훔쳐서 타다가 사고를 내질 않나, 하도 말썽꾸러기였나 봐. 몇천만 원씩 쥐여 주면서 합의해서 전과만 없다고. 그래도 몸 하나는 건강해서 감기 한 번 앓아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크게 다쳐서 여태까지 저질렀던 잘못을 다 한 번에 갚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래. 걱정하면서 펑펑 우는데 안됐더라.”
“그래요.”
“완전히 아픈 손가락이지. 착한 딸보다 말썽꾸러기 아들이 더 눈에 밟힌다고 하네. 그래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봐.”
어머니가 한숨을 푹푹 쉬며 말하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그런데 여보. 굳이 병원에 가서 반찬거리를 갖다 줄 필요까지는 없잖아? 알아서 잘 사 먹겠지.”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오래 간병할 거 같다고 하잖아요. 원래 병원에선 보호자 식사를 안 주니까. 깍두기랑 김치랑 있는 거랑 없는 거랑 많이 다르거든요.”
진혁이 물었다.
“그럼 지금 병문안 가시게요?”
“뼈가 여기저기 부러져서 오늘은 그 수술을 한다고 하니까 내일쯤 갈 것 같아.”
“저 내일부터는 촬영이 바빠져서 여기까지 식사를 같이 하러 오기는 어려운데.”
“그렇지 않아도 너 먹이려고 했던 반찬들 좀 덜어 담아서 갖다 주려고 했어. 생각보다 너무 많이 했지 뭐야.”
아버지가 반가운 표정으로 무언가 눈치 없는 말을 하려고 하는데 진혁이 끼어들었다.
“그러면 어머니, 숙소에서 다시 식사 내 달라고 할게요. 두 분 다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고생하시는 걸 보니까 마음이 안 좋아요. 와서 한 끼밖에 못 먹었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엄마 밥 먹으니까 좋잖아. 이런 거 절대로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어차피 집에서는 맨날 하던 일이고 말이야.”
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어머니, 요즘도 집안일을 전부 직접 하세요?”
어머니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누가 하니?”
진혁은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들어오는 수입이 훌쩍 늘었다. 세무사의 조언을 받아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사업자로 전환한 지도 몇 달 됐다.
본점 가게의 월 매출만이 아니다.
당장 진혁이 벌어들이는 수입을 제하더라도, 부모님이 순수하게 버는 돈만 월 천만 원이 넘는다.
그는 문득 옛일을 떠올렸다.
일월신교에서 직위가 없는 평교인들은 각자의 집안에서 평생 해오던 일을 한다. 농부는 논밭에 벼를 심어 거두고 도정을 하며, 백정은 동물을 도축하고 뼈를 발라내고 행상인은 외부의 마을을 오가며 상품을 매매한다.
하지만 그들의 자녀 중 누군가가 좋은 근골을 갖고 있어 무인이 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가장 하급 무인이라고 해도 벽곡단을 제공받기 때문에 따로 식사를 차리거나 치우지 않는다. 빨래와 세탁 같은 잡일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최하급 하인이 여러 명의 하급 무인들을 관리하면서 허드렛일을 대신해준다.
무공을 익히기만 하는 데에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하루에 일하시는 시간이 얼마나 되지?’
“어머니, 어깨 좀 주물러 드릴게요.”
“그럴래?”
어머니는 사양하지 않고 냉큼 의자에 앉았다. 환골탈태를 겪어 부드럽던 어깨는 더 이상 부드럽지 않았다. 샌드위치 만드는 일을 계속하며 일에 적합한 노동근이 자리 잡았다.
“요즘 기 체조는 잘 하고 있어요?”
“그럼! 네가 당부한 대로 하고 있지.”
아버지가 식탁 앞에 서서 자랑스럽게 동작을 선보였다.
골반이 비뚤어져 척추를 똑바로 세우지 못하였으며 양팔은 흐느적거린다.
진혁은 어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며 웃었다.
“어머니 안마해 드리고 아버지도 안마해 드릴게요.”
“고맙다.”
웬만한 의사보다도 더 많이 사람을 갈라 본 진혁은 뼈와 근육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 잘 알았다. 그는 근육이 뭉쳐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미미한 힘을 주었다.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
부모님은 바뀐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무 변화 없이 그대로 살고 있었다.
직업적으로 해야 하는 일의 양은 늘었는데, 타인이 대신할 수 있는 업무 역시 스스로 하고 있다.
진혁이 어머니를 주무르며 부드럽게 말했다.
“요즘 아침에는 언제부터 일하고 계십니까?”
“글쎄다. 파출부로 일할 때랑 비슷하지. 네다섯 시에는 일어나서 나가.”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태극권 자세라고 하기도 민망한, 국민체조 같기도 하고 스트레칭 동작 같기도 한 자세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양팔을 양옆으로 벌려 위로 세웠다가 다시 아래로 내리꽂는데, 그 와중에 골반이 계속 흔들린다.
“나두 비슷하지. 새벽에 가게 나가서 반죽 좀 하고 9시 수업에 맞춰서 학교로 가니까.”
‘저건 잠시 후에 봐 드려야겠다.’
진혁은 일단 어머니와의 대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요즘은 그래도 장사가 잘 되나 봐요.”
“그렇지. 샌드위치도 아주 잘 나가고, 빵들도 괜찮아.”
단체 주문 샌드위치가 많아서 안정적이라며 어머니가 밝은 미소를 지었다.
“요즘 산목아파트 부녀회장도 그렇고, 아파트 아줌마들이 날 보고 부럽다고 다 그래. 아들을 어떻게 키웠길래 아들 한 명이 집안을 일으키냐고.”
“하하하.”
진혁이 머쓱하게 웃음 지었다. 어머니가 고개를 들어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는 네가 자랑스러워. 그렇지만 꼭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란다.”
“그냥 건강하고 어디 아프지만 않아도 돼.”
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어머니가 덧붙였다.
“아까 얘기한 그 집 아들도 봐. 20대에 앞날이 창창하던 아들이 사고로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진짜 들으면서 가슴이 철렁하더라. 너도 그 축제에 갔다며. 그렇게 다치는 사람이 너일 수도 있었잖니?”
걱정과 염려가 가득한 시선을 마주 보며 진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는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당장 핵폭탄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진혁은 어디서든 자기 몸 하나는 빼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진혁을 살폈다.
“걔는 뭐 다치고 싶어서 그렇게 다쳤겠니? 사고라는 건 언제 어디서 날지 알 수 없는 거야.”
“그거야 그렇죠.”
진혁은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다칠 뻔했던 파리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
‘차라리 부모님 두 분을 다 서울로 모시고 오는 게 나으려나.’
독립을 강권하여 독립했는데, 또 걱정이 된다.
“너 전처럼 잠도 안 자고 맨날 일만 하는 건 아니지? 그러잖아도 백진영이가 너 일 많이 한다고 그러던데.”
“진영이 형이랑 연락하세요?”
아버지가 웃었다.
“저번에 술 마시고 연락처 받아 놨다. 우리가 서울에 연고가 없으니 혹시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해서, 비상연락처로 받은 거야.”
“….”
진혁은 어머니의 어깨를 안마하던 손을 멈추었다. 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제일 걱정이야. 일 욕심이 있는 건 좋지만 그러다가 몸 상하면 늙어서 고생한다.”
“그렇지 않아도 그 얘기를 드리려고 했는데요.”
“무슨 얘기를?”
“어머니, 전부터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지금 너무 많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진혁이 진중하게 말했다.
“집안일을 하는 사람을 아예 따로 두는 게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머, 얘. 그게 무슨 말이야.”
진혁이 아버지에게 눈을 깜빡여 눈짓했다.
“저녁에 퇴근하면 이미 밤 시간이잖아요?”
“그래. 그래도 지금은 일하면 일한 만큼 바로바로 돈이 들어오잖니. 돈 들어오는 재미로 일하고 있다, 얘.”
어머니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지금은 젊은 나이가 아니시니까요. 건강이 상하기 전에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일은 하는 게 좋죠.”
아버지가 솔깃해했다.
“느이 어머니가 파출부로 일하던 시절도 있었지. 그런데 우리가 집에 파출부를 둔다라….”
어머니가 차갑게 잘랐다.
“그러면 한 달에 최소한 몇백이 그냥 날아가는데? 그럼 빵을 몇 개를 팔아야 하니.”
진혁이 어깨를 주무르던 손을 멈춘 틈을 타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어디 다친 것도 아니고 평생 해오던 일을 못 할 건 아니야.”
장은효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내 남편, 내 자식 밥은 내가 한다.”
어머니의 어깨너머에서 아버지가 입을 벙긋거렸다.
‘야, 네 엄마 좀 말려 봐라.’
진혁은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에.”
◈ ◈ ◈
부모님과 점심까지 함께 먹었지만, 어머니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진혁은 미리 제작진과 연락한 대로 바로 남춘 타르트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김춘배가 허리를 숙여가며 인사했다. 이남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 복덩이 임진혁 쉐프님 오셨네요.”
진혁은 두 사람의 복장을 보고 피식 웃었다.
“운동복입니까.”
암시가 풀린 후의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꼭두각시처럼 맹한 표정으로 다니는 것보다 지금이 더 살아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그럼, 그럼. 이래 봬도 내가 소싯적 서라벌 산악회 다닐 때 맞춘 거요.”
김춘배는 형광 노란색으로 무릎 부분이 기능적인 천으로 덧대어 있는 바지를 자랑스러워했다. 이남희는 헐렁한 기능성 티셔츠와 선캡, 그리고 역시 같은 색깔인 등산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이가 마운틴 시리즈니 어쩌느니 하면서 내 것도 같이 사서 말이에요.”
‘그래도 등산화는 신고 오지 않아서 다행이네.’
“그럼 지금부터 달리죠.”
“에, 뭐 차라도 마시지 않아도 괜찮겠어요?”
“그럼요. 시간이 없습니다.”
김춘배와 이남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 그럼 지금 가서 뛰죠.”
“얼음물은 어떻게 하지? 배낭에 넣어서 가져가도 되려나?”
“아뇨, 짐이 너무 많습니다.”
고작해야 30분 뛰었다가 30분 돌아올 뿐인데 한심하기 그지없다. 막내 카메라맨 정 씨가 손을 들었다.
“그럼 물병은 제가 들고 갈까요?”
“카메라만 해도 무겁잖습니까. 차라리 제가 들죠.”
진혁은 김춘배가 카운터에 올려놓은 가방을 들어서 메었다.
“이거 물병이 한두 개가 아닌데요?”
“진혁 쉐프님 거하고, 거기 카메라 찍는 기사님 거하고 다 얼려놨지.”
“그래. 거기 촬영 기사님 아니었으면 우리가 강도한테 돈만 뺏겼겠어? 누가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제가 좀 더 빨리 신고했어야 했는데요.”
진혁은 가방을 들여다보았다. 얼린 500mL 물병이 다섯 개나 들어있었다.
‘…암시를 풀어놓으니까 별 새로운 방식으로 바보짓을 다 하네.’
가방을 단단히 멘 진혁이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30분, 앞으로 뛰겠습니다.”
“알겠어요.”
암시를 걸었던 때와는 명백히 달랐다.
헉헉대면서 뛰는 김춘배와 이남희는 점점 더 뒤로 처졌다. 거의 뛰는 게 아니라 걷는 수준이었다.
“조금 더 힘을 내고!”
진혁은 옆에서 달리며 격려했다.
“허억, 허억.”
카메라맨은 앞과 옆에서 그 광경을 찍으며 따라왔다.
진혁은 이 부부에게 무엇이 제일 절실할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 5분밖에 안 뛰었습니다. 지금 뒤에서 빚쟁이가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지금 따라잡히면 돈을 내야 합니다!”
이남희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허어억, 허어억.”
그녀는 필사적으로 온몸을 움직였다. 오른발과 오른팔이 같이 앞으로 나오는 수준이었지만 어떻게든 달렸다.
“어, 어제의 근육통이….”
“빚쟁이는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