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36화 (336/656)

제 336화

돌아가는 밴 안에서 주영모가 물었다.

“뭐, 어떡해. 숙소로 바로 갈 거야?”

“예.”

“어쩐 일이야? 부모님을 뵙고 가질 않고.”

“지금 시간이면 주무실 텐데 굳이 깨울 필요는 없지.”

“햐, 내가 진혁 쉐프 같은 아들만 있었어도.”

“주영모 쉐프님은 아들이 없잖아요?”

“그렇지, 그러니까 그렇지.”

주영모 쉐프가 농담 삼아 던진 말에 다들 킥킥 웃었다. 지재언이 말했다.

“그렇게 남이랑 비교하면 안 됩니다. 듣는 아들 기분 나쁩니다.”

카메라 감독이 맞장구쳤다.

“맞아. 다른 집 아들이랑 우리 집 아들을 비교하는 건 아들한테 못 할 짓이라고요.”

“이야. 두 분은 비교 좀 당했나 봐?”

“원래 자기 집 아들 흠은 감추고 자랑만 이야기하니까, 친구 아들은 모든 게 완벽한 사람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니까요.”

“하지만 진혁 쉐프는 그런 게 아니잖아, 그냥 착한 거지.”

임진혁은 이미 주영모에게 자신이 ‘선량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할 의욕도 의지도 없었다.

그는 무신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맨 정 씨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나저나 오늘 별일 없어서 다행이에요. 세 분 잠깐 나가 계셨던 때 누가 넘어져서 다쳤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진혁의 말에 카메라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팀 중에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지. 이 카메라가 얼마짜린데, 부서지면 일 년 치 월급은 그대로 날아간다고.”

“넘어지면 카메라 껴안고 있어야죠.”

“목숨보다 카메라가 중하다니, 안타깝네.”

진혁이 질문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대요?”

주영모가 탄식에 가까운 감탄사를 내뱉었다.

“허어어어어. 이것 봐, 이것 봐. 여러분이 뜬금없이 돈 얘기할 때 진혁 쉐프는 사람이 얼마나 다쳤는지부터 살피잖아. 이렇게 착한 아들이 있으면 진짜 세상에 바랄 게 없겠네.”

“병원으로 옮겨지는 것밖에 못 봤어요. 여기저기 밟혀서 꽤 다쳤는데, 그래도 다행히 죽지는 않은 것 같더라구요.”

진혁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김산호 PD가 말했다.

“부모님이 그렇게 신경 쓰이면 내일 오전에 찾아가 보지 그래요? 어차피 축제가 오후부터 밤까지 진행되니까, 그때 합류하면 되고.”

“타르트 가게에서 촬영하는 건 몇 시부터 하죠?”

“오후 2시쯤?”

“그럼 1시쯤 가서 뵙겠습니다. 체력 단련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평가하기로 했거든요.”

“맞다. 바닷가를 뛴다고 했지. 그럼 우리는 오전부터 촬영해야겠네.”

“괜히 일만 늘린 건 아닌지.”

메인 작가가 웃었다.

“아니에요, 덕분에 이것저것 풍성해져서 저희야 좋죠. 시청자분들께서 춘남 씨랑 남배 씨 두 분이 열심히 운동하시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아니까, 더 호감을 갖게 될 거구요. 솔직히 처음에는 그렇게 호감 가는 인상은 아니었으니까 말이에요.”

“작가님, 이름 헷갈리셨어요.”

보조 작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맞다, 맞다. 계속 헷갈린다니까. 타르트 가게 이름 짓고 난 후부터 헷갈려. 입에 찰싹 달라붙어서 말이지.”

카메라 감독이 말했다.

“그래도 용케 쓰러지지 않더라. 체력 단련하고 타르트 굽고 축제까지 나가면 오늘 밤엔 근육통 때문에 내일 못 일어나시는 거 아닌가 몰라.”

진혁이 대답했다.

“그렇진 않을 겁니다.”

◈          ◈          ◈

다음날 오전.

아침 식사를 함께 하러 일찍부터 부모님의 숙소에 찾아간 진혁은 예상치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어머니, 일부러 요리를 하실 필요는 없는데요.”

제대로 된 휴가를 위해서 원한다면 식사를 삼시 세끼 준비해주는, 반려동물이 함께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찾아서 예약했다.

정확히는 진희가 찾아주고 진혁이 돈을 냈다.

“주방이 딸린 숙소로 하고 싶다고 하셔서 그렇게 하긴 했는데…, 된장하고 김치는 또 언제 챙겨 오신 거예요?”

“얘는, 이 정도를 가지고 뭘. 호호.”

어머니는 자랑스러워하며 식탁에 앉았다.

식탁 위에 펼쳐진 것은 제대로 된 한상차림이었다.

된장국에 깍두기, 그리고 김치에 콩나물무침, 고사리 무침까지 전부 진혁이 좋아하는 반찬이다. 숭덩숭덩하니 큼직하게 썰어 넣은 깍두기는 무 크기가 전부 다르고, 콩나물무침은 나물 손질이 미묘하게 서툴다.

그리운 어머니의 손맛이다.

진혁은 이마를 짚었다.

“오늘은 일부러 아침 내오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그럼, 그럼. 모처럼 네가 아침을 같이 먹으러 오는데 당연히 집밥을 먹어야지.”

임진희는 이곳이 맛깔나기로 소문난 해산물 요리를 내놓는 집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농어를 통째로 넣어 끓이는 매운탕부터 회덮밥, 그리고 갓 잡아 온 멸치로 만드는 신선한 멸치 회무침까지 모든 끼니가 다 맛있다고 열심히 칭찬했더랬다. 이곳에서 내세운 광고 문구 역시 ‘바닷가 어부가 직접 잡아 끓이는 가정식’이었다.

“당연하기는 뭐가 당연해. 여기 오자마자 새벽에 일어나서 국부터 끓이더라. 하여튼 아들 사랑이 지극해.”

아버지가 농담 반 진담 반 섞어 말했다. 진혁은 아들을 부러워하는 그 말을 애써 못 들은 척했다.

“그럼 매일 아침에 여기서 내놓는 식사가 아니라 어머니가 한 식사로 드셨겠네요?”

요리 속도가 느린 어머니라면 분명히 한 시간 이상 걸렸을 것이다.

“그렇지.”

“제가 언제 올 줄 알구요.”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지만 그래도 준비는 해야지.”

진혁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주름이 옅은 얼굴이 미소를 짓고 그를 향했다. 한 쌍의 눈동자에는 조건 없는 애정이 깊이 담겨 있다. 그 애정은 진혁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자리에 드러누워 있기만 했을 때도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었다.

마음 한구석이 절로 울컥했다.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깃털 이불에 둘러싸인 것처럼 안온하다. 다정하고 따스한 이 느낌은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최근 촬영하면서 느낀 감각은 미미했다. 아주 작은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그리고 소소한 짜증과 불쾌감뿐이었다.

‘감정을 거의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니었어. 그냥 인간 자체를 대등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뿐이지.’

어머니의 된장국.

진희가 제대로 끓인 우거지 된장국은 성둥하니 썰어 넣은 두부까지 아주 맛있는데, 어머니가 만든 건 그렇지가 않다.

미묘하게 된장을 덜 풀어서 그런 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살짝 텁텁한 맛이 나는데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해도 따라 하기가 어렵다.

처음에 와서 먹었을 때도 온몸이 떨릴 정도로 감격했다.

“어머니, 항상 감사합니다.”

진혁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젓가락을 들고 있던 아버지가 떨떠름한 시선으로 진혁을 바라보았다.

“그래, 진혁아. 너도 모처럼 남해까지 내려왔는데 네 어머니 음식보다는 여기서 준비해주는 걸 먹고 싶지 않냐? 네가 얘기하면 네 어머니는 들을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여보. 서울에서 계속 식당 밥을 먹고 사는 애잖아. 이번 기회에 집밥을 먹어야지.”

사실 진혁은 식당에서 무언가를 사 먹는 일이 없다시피 했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아니면 보통은 직접 만든 벽곡단으로 끼니를 때웠다.

시판하는 8곡 미숫가루에 진기를 소량 주입해 적당히 뭉쳐 만들면 되고, 건강에도 좋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머니가 만든 집밥보다 월등히 우월하다.

‘이 콩나물무침에는 미원을 너무 많이 넣은 거 아닌가? 미원을 여기에 대체 왜 넣은 거지?’

의문이 생기는 맛이지만 추억이 함께한다.

진혁은 아버지를 한 번, 어머니를 한 번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간절한 눈빛으로 진혁을 응시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평생 동안 어머니가 한 식사를 드셔왔네.’

반면에 어머니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잘 먹고 있어요, 어머니.”

진혁은 수저로 밥술을 떴다. 고슬고슬한 밥이 수북한 밥공기를 보고서 그가 물었다.

“이 밥은 아버지가 했나 보네요?”

“그래, 내가 했다.”

아버지가 어깨를 으쓱했다.

“마누라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달그락거리는데 그냥 누워만 있을 수는 없지.”

처량하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에 진혁이 킥킥 웃었다. 어머니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그냥 누워 있어도 되는데. 모처럼 휴가니까 늦잠을 좀 자면 어때요.”

진혁은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머니는 진밥을 좋아하고 아버지는 고슬고슬한 밥을 좋아하시니까….’

선호하는 밥을 먹기 위해서 새벽같이 일어났을 것이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밥을 하면 항상 물이 너무 많아서 진밥이 되잖아. 진혁이는 고슬고슬한 밥을 좋아하니까, 물을 잘 맞추는 내가 밥을 지어놔야지.”

진혁은 이후에 부모님이 나눌 대화가 무엇이 될지 그린 듯이 눈에 보였다.

“아니, 여보. 그게 무슨 소리에요. 진혁이는 진밥을 좋아하는데.”

“진밥은 당신이 좋아하잖아.”

살금살금 자리에서 일어난 진혁은 화장실로 향했다. 눈에 띄게 큰 물소리를 내며 손을 씻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쟤는 여덟 살 때부터 진밥을 좋아했는데.”

“군대 갔다 와서부터는 계속 물기가 적은 밥을 좋아했어.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아니, 우리가 이렇게 얘기할 게 아니라 진혁이한테 물어보면 되죠. 어머, 얘가 그새 어디로 갔지?”

“화장실에 갔나 본데? 그걸 또 묻긴 왜 물어. 애를 곤란하게 하려고 그래.”

“제일 좋아하는 거로 해 주고 싶으니까 그렇죠.”

“그건 내가 다 알아. 고슬고슬한 밥이라니깐.”

“당신보다 내가 쟤를 더 잘 알아요.”

진혁은 화장실 안에서 손을 좀 더 씻었다.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가지고 다투는 것을 듣고 있노라니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했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진혁은 결정을 내리고 화장실에서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진혁아, 너 밥은 이런 게 좋아? 아니면 진밥이 좋아?”

결국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와 같은 유형의 질문이다. 무엇을 골라도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제3의 대답을 골랐다.

“흰쌀밥이면 다 좋아요.”

“아, 그런 거였어?”

“그럼 보리밥은 싫으냐?”

진혁이 웃었다.

“있으면 잘 먹죠.”

“그럼 콩밥은?”

집요하게 물어보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진혁이 웃었다.

“그건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잖아요.”

“그래, 그런데 진희가 콩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네 엄마가 잘 안 해준다.”

“그럼 저 있을 때 많이 먹죠.”

“진혁이 너도 콩밥 좋아해?”

“그럼요.”

“그럼 내가 당장 콩 사다가 불려놓을 테니까, 저녁에라도 와서 먹어.”

아버지가 서운해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내가 먹고 싶다고 할 때는 안 해주더니….”

“진혁이처럼 이렇게 맛있게 먹어주는 애랑 당신이랑 같아요?”

진혁은 화제를 돌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 아버지. 오늘 점심때 낚시공원에서 만난 부부하고 같이 식사하신다면서요?”

젓가락으로 깍두기를 집으며 아버지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거 말이야? 취소됐다.”

“예, 왜요?”

“그 집 아들이 어제저녁에 축제를 갔는데, 운이 나쁘게 넘어져서 크게 다쳤다나 봐. 거제도에서 제일 큰 병원에 입원했는데, 지금 거기서 시설이 좋지 않다구 해서 부산에 있는 병원으로 전원가니 어쩌느니 하고 있어.”

어머니가 거들었다.

“그 집 어머니가 딸 자랑을 엄청나게 했던 거 기억나니? 그런데 아들은 한 명 있다는 말 하고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잖아. 글쎄, 어렸을 때부터 말썽을 하도 피웠나 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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