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35화 (335/656)

제 335화

이남희가 배시시 웃었다.

“여기 있어요.”

그녀는 잽싸게 샘플 한 조각을 따로 담아 내밀었다.

“방송국 여러분에게 드리려고 특별히 큰 조각들 따로 담아 뒀어요.”

“오! 감사합니다!”

“진혁 쉐프님하고 영모 쉐프님 건 여기 있습니다.”

남희가 제작진을 챙겨 주는 동안에도 몇 명이 더 타르트를 사 갔다.

“카드 결제되나요?”

“예!”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손님이 김춘배에게 물었다.

“혹시 초도 있어요?”

김춘배가 고개를 저으며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임진혁이 끼어들었다.

“손님, 블루베리 크림 타르트에는 초를 꽂지 않으시는 게 낫습니다. 케이크보다 높이가 낮으니까요. 촛농이 흘러내릴 가능성이 더 높거든요.”

대학생 손님은 진혁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아는 사람인가 아닌가 하고 헷갈리는 모습이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을 내놓았다.

“흠, 그러면 그냥 주세요.”

대학생 손님이 자리를 떠나고 난 후에 김춘배가 물었다.

“진짜 그래요?”

진혁이 아닌 주영모가 대답해 주었다.

“손님에게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대안을 내놓는 편이 좋아. 진혁 쉐프가 잘 가르쳐 주었네.”

“무료로 달라는 촬영팀에게 아예 새 타르트를 주는 것보다, 조금 더 큰 걸 준다고 하면서 강조하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죠.”

진혁이 씩 웃었다. 이남희가 민망해하며 말했다.

“지금 이 상태로 가면 팔 게 모자랄지도 몰라서요. 지금 여기서 다시 만들 수도 없구…. 내일 새로 한 판 구워 드릴게요. 진짜예요!”

“아뇨, 잘 배우셨습니다.”

계속해서 손님들이 다가왔다. 지재언을 비롯한 세 사람은 손에 각자 타르트 샘플이 담긴 종이컵을 하나씩 들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이거 맥주는 무리겠는데요?”

“맥주 줄이 훨씬 기니까요.”

“그럼 저쪽으로 가서 타르트를 맛보죠.”

지재언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사람이 비교적 적은 바닷가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주영모가 말했다.

“저 두 사람 말인데, 응대는 제대로 하고 있어. 처음보다는 훨씬 나아. 발전하고 있는 걸 보니까 이 프로그램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제서야 좀 궤도에 올라간 것 같습니다. 이게 첫 가게니까 아직 멀었지만 말이에요.”

“결국은 음식 장사가 사람 장사야. 남는 건 사람밖에 없다고.”

“하하. 주영모 쉐프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줄은 몰랐네요.”

“내가 왜?”

“항상 실력이 최고라고 하시잖아요. 제대로 된 빵과 케이크를 만들지 못하는 페이스트리 쉐프는 살아남지 못한다고요.”

“그건 기본이고.”

세 사람이 난간 앞에 섰다. 딸기향이 사라지고 강렬한 바닷바람이 훅 끼쳐왔다.

그때 진혁은 독수리처럼 놀라운 시력으로 무언가를 보았다.

“저는 저기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그가 카메라 감독에게 물었다.

“혹시 잠깐 갔다 와도 될까요.”

“그럼 카메라맨을 한 명 붙여드리겠습니다.”

“예.”

“거제도에 아는 사람이 있어요?”

지재언이 반문하기도 전에 이미 진혁은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누가 서울에서 휴가 내려왔다가 축제에 온 걸 보기라도 했나?”

“그래요? 그런 것치고는 눈빛이 좀 달랐는데.”

지재언은 흥미롭게 타르트를 내려다보았다.

“이거 이번에는 맛이 기대되는데요.”

“저번에는 기대되지 않았고?”

“하하하하. 그땐 손맛을 봤죠. 그것도 저 말고는 아무도 맛보질 않았잖습니까.”

제일 먼저 코를 습격한 것은 목 깊숙이까지 훅 밀려오는 블루베리 향기였다. 진한 블루베리 향이 감도는 가운데 입안에서 블루베리가 톡톡 터지며, 녹진녹진하게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이 그 맛을 감싼다.

“이거 진짜 맛있어졌는데요?!”

아무 처리도 하지 않은 신선한 블루베리도 맛있었다. 그런데 블루베리 소스와 커스터드 크림이 어우러지자 그 맛이 한 층 더 상승했다. 상큼하고 단맛과 부드러우며 기름진 맛이 조화를 이루었다.

“전에는 덜 익은 쓰레기 붕어빵 같은 맛이었는데, 지금은 확실히 맛있는 빵 맛이 나요. 가격은 좀 더 싸면 좋겠지만.”

“이 프로그램에 임진혁 쉐프를 초빙한 건 정말로 잘한 일이야. 그는 석공의 재질이 있어.”

“석공요?”

“나는 모든 사람이 자기 안에 내면의 광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왔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지재언에게 주영모가 설명했다.

“광산에서 광석을 캘 때 그냥 아무 데나 무식하게 내려치는 게 아니야. 광맥이 있는 곳을 정으로 쪼고 망치로 두들겨서 광석을 얻거든. 그렇게 해서 얻은 광석을 날망치로 다듬어서 원석을 얻지.”

“그런데요?”

지금 이 이야기가 무슨 상관인가 하는 눈빛에 주영모가 차분히 말해주었다.

“진혁 쉐프는 타인이 자신의 안에 있는 제일 좋은 것을 꺼내도록 도와주는 능력이 있어.”

“본인이 선해서 그런가 봐요. 선생님 했으면 잘 하셨을 것 같긴 하던데.”

“조금 달라. 그냥 막 퍼주는 게 아니야. 적절한 칭찬과 엄격한 태도라고 해야 하나. 각성해야 한다고 그, 체력단련 시키는 거 봤어? 조금 특이한 방법이긴 해. 그냥 운동만 강요했다면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하지만 레시피니 재료니 뭐니 전부 지원해 주면서 상대방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신경 써 주는 게 보이잖나. 저 부부도 마음을 연 거지.”

◈          ◈          ◈

진혁은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찾았다.’

천안투마공을 익혀 심안을 사용하는 자는 9성에 달하면 타인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가게 모형 케이크’를 보는 자들을 멀리서 관찰하고 있었다.

도둑이 범죄 현장을 바라보며 느낄 법한 감정이야 뻔하다.

‘자랑스러움, 의기양양함, 흐뭇함,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강렬한 욕망.’

도둑은 야구 모자와 싸구려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CCTV에서 보았던 것과 다른 모자였다. 아까 타르트 가게에서 언뜻 본 것 같기도 하다. 기껏해야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남자였다.

진혁은 인파 사이를 헤치고 매끄럽게 움직여 그자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그를 따라오던 카메라맨은 벌써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이쪽으로 오지 못하고 있었다.

“진혁 쉐프님!”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리는 카메라맨의 위치를 확인한 임진혁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의 눈앞에는 이미 감시카메라 화면을 통해 보았던 익숙한 뒤통수가 있었다. 그는 느릿하게 다리를 움직였다.

“으컥?!”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각도로 무릎 뒤쪽이 걷어차인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무료 생맥주 리필을 받기 위해 앞으로 움직이던 사람들은 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대로 앞으로 움직였다. 그 와중에 쓰러진 남자는 수없이 짓밟혔다.

“거기 좀 비켜 봐!”

처음에는 소리를 냈으나, 곧 의식을 잃었는지 아무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윽, 여기 이거 뭐야.”

물컹하고 뭔가를 밟은 남자는 기겁을 하고 물러났다. 그는 자신이 밟은 것이 무엇인지 보고 크게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맥주잔을 그대로 쏟아버렸다. 남자와 함께 온 여자가 외쳤다.

“꺄아아악! 여기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여자 비명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렇지만 그 비명을 지른 이 역시 곧 인파에 밀려가 버렸다.

“어디입니까?”

비명을 들은 진행 요원과 해양 경찰들이 그쪽으로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구급대원 불러 주세요!”

이미 그쪽을 빠져나와 다시 방파제 쪽으로 향했던 진혁은 일행과 막 합류했던 참이었다.

지재언이 물었다.

“진혁 쉐프, 만나려던 사람은 만났어요?”

“제가 잘못 본 것 같습니다. 언뜻 봐서 비슷한 사람인가 싶었는데 아니더라구요.”

진혁을 따라갔다가 놓쳐버렸던 카메라맨 정현호가 말했다.

“아는 사람 따라가는 것도 힘들더라구요. 처음에는 진혁 쉐프를 찍고 있었는데 금방 잃어버려서 간신히 돌아왔네요.”

“아니, 너는 그러면 안 되지. 넌 이런 인파도 헤치고 찍을 수 있어야지.”

정현호가 카메라 감독에게 혼나는 사이, 주영모가 진혁에게 말을 걸었다.

“그것보다 이 타르트 좀 먹어보라고. 실력이 부쩍 늘었어. 이전에는 초보자가 대충 구운 거라고 하면, 이제는 팔아도 될 정도의 퀄리티야.”

“누구 레시피인데 당연히 그래야죠.”

진혁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며 주영모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항상 노회한 노인 같더니 이제 좀 젊은이 같구만.”

◈          ◈          ◈

맥주 축제가 끝나고 나서 정산금을 세며 이남희가 눈물을 흘렸다.

“세상에, 세상에. 임진혁 쉐프님, 감사합니다.”

발등이라도 핥을 것 같은 기세였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200개는 전부 팔았습니까?”

“샘플로 사용한 20개를 제외하고 다 팔렸습니다.”

김춘배 역시 감격을 숨기지 못했다.

진혁이 씩 웃었다.

“그건 잘됐네요.”

칭찬도, 무엇도 아닌 짧은 말이었다.

“블루베리 브랜디 글레이즈도 바르셨고요.”

김춘배는 그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

“어땠습니까.”

“방향이, 조금 보이는 것 같습니다.”

김춘배가 더듬더듬 말하는데 이남희가 곁에서 거들었다.

“저희가 애초에 방향 자체를 아예 잘못 잡았어요. 솔직히 잘못 잡았다는 것 자체도 모르고 있었는데, 진혁 쉐프님이 말해주면서 알았네요.”

“제가 뭘 말했죠.”

“기본에 충실하기만 하면 될 줄 알았거든요. 내 눈에 맛있어 보이고, 내 입맛에 맞기만 하면 잘 팔릴 줄 알았지 뭐에요.”

“아아.”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쁘고, 누가 먹어도 맛있어야 하는 거였어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부부였다.

“단체 주문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야겠습니다. 학교 행사나 지역 축제 같은걸요.”

진혁이 건성으로 맞장구쳐주었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요.”

저도 모르게 울컥해, 김춘배는 왼손으로 제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넘쳐흐르는 감격을 목 너머로 꿀꺽 삼키며 그는 어렵게 말했다.

“그냥 가게를 열어서 팔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평생 서류를 만져 왔으니, 모자란 돈으로 은행 대출을 받는 데에도 문제없었고요.”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가 목사에게 고백하는 것처럼 담담한 목소리였다.

“블루베리 타르트 같은 건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어서, 이런 걸 팔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말입니다.”

그는 고개를 똑바로 들고 임진혁을 응시했다.

피하지 않고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진혁 쉐프가 말씀하신 대로 만드니까 훨씬 더 맛있더군요. 제부 부부가 와서 맛보고 하는 말이, 이제는 먹을 만하다고 하더군요. 이래야 비로소 팔만한 물건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혁은 미간을 좁혔다.

‘아니, 갑자기 왜 이러지?’

보통 비무를 한 무림인들이 패배를 하고 승복하여 갑자기 부하로 받아달라고 할 때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 무릎을 꿇고 똑바로 두 눈을 바라보며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것이다. 지금 김춘배는 비무에서 패배한 것도 아니요, 무릎을 꿇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저 말투와 이야기는 인생을 건 승부에서 져버린 남자의 고백 그 자체였다.

진혁이 떨떠름하게 서 있는데 주영모가 끼어들었다.

“맛없는 건 먹어보고 맛없는 줄 알아야 해. 맛있는 걸 보고 맛있다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건 그 다음이지. 그런데 전에는 맛없는 게 그런 줄도 모르고 팔려고 했으니까 말이야.”

“예,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춘배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저희가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이자까지 쳐서 꼭 갚을 거예요.”

이남희도 함께 허리를 숙였다. 진혁은 두 사람을 일으켰다.

“아니,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다 출연료 받고 하는 일인데요.”

“돈 때문에 하시는 일이 아닌 거 잘 알아요.”

“그 출연료가 오백은 넘지 않을 거 아닙니까.”

두 부부가 거듭해 감사의 말을 하는데 진혁이 끊었다.

“내일 맥주 축제 때도 장사하시려면 어서 들어가서 만드셔야죠. 내일도 이백 개 구우려면 쉬셔야 합니다.”

“예에, 예.”

두 부부를 설득해서 들여보내고 제작진 역시 숙소로 향했다.

‘오늘은 부모님을 만나러 갈 시간이 없었네.’

진혁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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