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4화
“저희가 진혁 쉐프님 돈 쓰신 만큼 홍보 좀 되게 팍팍! 제대로 찍어 볼게요.”
“아니, 그건 메인 작가님이 아니라 우리 촬영팀이 이야기해야죠.”
카메라 감독과 메인 작가가 진담 반 농담 반 섞어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2팀이 도착했다.
밴 뒤에 따라 오는 하얀색 컨테이너 트럭을 본 진혁이 외쳤다.
“오셨습니까?”
“예.”
“트럭은 이쪽에 주차해 주세요.”
“이쪽이요?”
“예, 지금 타르트를 전부 다 꺼낼 여력이 없거든요.”
타르트를 옮기는 데에는 춘배와 남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다 달려들어 도왔다.
“그럼 이 정도만 꺼내 놓으면 될까요?”
투명한 유리장에 진열한 것은 타르트 하나씩밖에 없었다.
“조금 더 많이 놔야 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이남희에게 진혁이 말했다.
“다 팔리면 그때그때 조금씩 꺼내 주시면 됩니다.”
진혁은 타르트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덜 익거나 하지는 않았다.
‘며칠간 암시를 건 동안에 머릿속에 레시피가 제대로 박혀 들어가긴 했나 보군.’
그는 마음이 편해졌다.
“레시피대로 구우셨군요.”
‘강도를 좀 당하긴 했어도, 타르트도 제대로 구울 줄 알게 되고. 제대로 수습했으니 이 부부한테는 어차피 좋은 일이야.’
기연과도 같다. 진혁은 이 부부에게 더 이상 무언가 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떠먹여 줬는데도 받아먹지를 못하면, 혼자서는 아예 걷지도 못할 테니 말이야.’
그때 스피커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10분 후에 맥주 축제가 개장됩니다. 부스 참가자 여러분들은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남희가 무어라 말하려 했다.
“저기요,”
김춘배가 그 말을 끊고서 말했다.
“맡겨주신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임진혁 쉐프님은 같이 하시는 게 아니신가요?”
진혁이 빙긋 웃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춘남 타르트 가게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거라는 건 알고 계시죠. 거기에 제가 타르트를 함께 팔아드리는 건 포함되지 않습니다.”
“에….”
주영모 쉐프가 말했다.
“두 분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임진혁 쉐프는 팬클럽이 있고 유명한 사람이야. 그러니 진혁 쉐프가 와 있을 때 한순간 잘 팔리는 건 의미가 없다네. 같은 이유로 나도 도와줄 수가 없어.”
“…저희는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요.”
“맛없으면 어떡합니까.”
불안해하는 부부를 보며 주영모가 피식 웃었다.
“아니, 그러면 타르트를 이백 개나 구우면서 그게 팔릴 거라는 생각을 안 했단 말이야?”
“연습하라고 재료를 지원해주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 경우는 없어. 먹을 걸 버리면 벌 받는다고. 이번에는 특별히 재료를 지원해 주신 분이 계셨기 때문에-.”
주영모는 힐끔 진혁을 바라보았다.
‘착해빠져가지고. 자기 돈으로 타르트 재료를 지원하고서는, 생색내고 싶지 않다며 제작진이 지원해준 거라고 말하라고 했지. 어떻게 저렇게 착한 놈이 이 험한 바닥에서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아마도 천재적인 재능, 노력을 즐기는 천부적인 성격 덕분일 것이다. 잠시 딴생각을 했던 주영모는 마저 말을 이었다.
“촬영팀에서 타르트 재료를 지원해줬건 말건, 타르트를 주문한다는 건 그 타르트를 먹겠다는 거니까.”
“판매 수익은 전부 춘남 타르트에서 가져가니까요. 하지만 재룟값은 따로 주셔야 합니다.”
“이게 지금 베이커리 페어도 아니고, 빵 축제도 아니잖아요. 맥주 축제인데 사실 맥주랑 타르트가 잘 어울리진 않으니까. 만일 다 못 팔면….”
이남희가 초조하게 손톱을 깨물었다. 신선하고 알이 큰 딸기는 달고 맛있었다. 블루베리 역시 여태까지 들여오던 상등품보다 월등히 질이 좋은 물건이었다. 그 가격만 해도 상당한 금액이 될 것이다. 갑자기 양어깨에 무거운 짐이 내리누르는 것만 같았다.
진혁이 부드럽게 말했다.
“못 파는 경우에 따로 재룟값은 받지 않을 겁니다.”
주영모는 뒤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너무 착하다니까.’
김산호 PD가 손뼉을 쳤다.
“이제 바로 시작합니다! 잘 해보시죠.”
◈ ◈ ◈
맥주 축제의 무대는 지세포 낚시 공원과 거기서부터 시작된 산책로였다. 생선 꼬치와 문어구이, 오징어포를 파는 포장마차를 비롯하여 닭꼬치와 통닭, 곱창을 파는 가게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삼겹살과 떡을 끼운 꼬치, 통통하고 부드러운 소시지, 치즈 조각에 특산물인 꿀빵까지 다양한 음식이 보였다.
‘춘남 타르트’는 포장마차가 줄줄이 늘어선 가운데 섞여 있지 않았다. 낚시 공원이라고 바닷가를 향해 쭉 내뻗은 길 끄트머리에 따로 있었다.
하지만 그 위치에는 엄청난 장점이 있었다.
“맥주 공짜로 드립니다!”
“입장 티켓 보여주신 분들에게는 무제한으로 맥주를 드려요~!”
바로 옆에 무한 생맥주 부스가 있었다. 성인 남자 세 명은 들어갈 것 같은 거대한 통의 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노르스름하고 투명한 맥주다. 뽀얀 거품이 듬뿍 올라간 맥주를 손에 들고 있던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받은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춘남 타르트’부터 향했다.
“이게 케이크라구요? 진짜 엄청나게 생겼네.”
“설탕 공예 케이크라네. 저 밑에 초콜릿 케이크가 숨어 있대.”
설탕에 꼬인 개미들처럼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인적이 드문 곳보다 다른 사람들이 서 있는 곳을 좋아했다.
하지만 막상 타르트를 구매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축제가 시작하고 10분 정도가 흘렀으나, 맥주잔을 든 이들은 케이크를 구경하고 감탄하고서 그 자리를 떠날 뿐이었다.
“이 타르트 이쁘다. 블루베리가 완전 탱탱하고 신선해 보여.”
“응, 그러게.”
예쁘고 탐스러워 보이는 블루베리 타르트를 칭찬하고 지나가는 여자도 있었다. 이남희는 희망에 가득 찬 눈으로 예비 고객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시선이 불편했는지 여자는 그냥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상황실에서 지켜보고 있던 주영모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이거, 그냥 타르트만 문제가 아니었네.”
“기본적인 접객 기술이 부족한데요.”
“지금 사람들이 많이 오기는 해. 그런데 그냥 보고만 가 버리네요.”
지재언이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이번 맥주 축제에서는 진짜로 뭔가 결과를 보여 주실 줄 알았는데….”
진혁은 그 부부가 아닌, 인파를 살피고 있었다.
도둑놈이 있다면 분명히 저 케이크를 구경하러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CCTV를 통해서 본 도둑은 김춘배보다는 키가 작고, 이남희보다는 키가 커. 그리고 춘배보다 어깨가 넓고.’계절이 여름이라 패딩이나 코트 따위로 몸을 가리고 돌아다니는 이들이 없어 생각보다는 탐색이 수월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강도 놈은 나타나지 않았다.
“진혁 쉐프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둑을 탐색하고 있던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첫술부터 배부를 수는 없지요. 뭔가 계기가 필요한데, 그걸 직접 알려줄지 말지 고민되네요.”
“계기요?”
진혁이 싱긋 웃었다.
“제가 새로 알려준 레시피입니다. 맛없을 리가 없죠. 사람들이 일단 한 번씩 맛만 보면….”
지재언이 물었다.
“맛보기용 샘플을 따로 만들라는 이야기군요! 그런데 왜 그걸 미리 알려주지 않으셨죠?”
주영모가 눈을 크게 떴다.
“…그 정도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지.”
“이 정도면 넘치게 도와준 것 같습니다. 저나 MC님, 그리고 주영모 쉐프님이 언제까지나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거야 그렇지. 우리가 모든 걸 다 해 주면 안 돼. 대신 해주는 건 쉽지만, 그럼 그만큼 다시 일어나기는 어려우니까. 진혁 쉐프, 어린 나이에 잘 알고 있군.”
CCTV 안의 부부는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사람들이 몇 오기는 했으나 몇 마디 물어보고 그냥 돌아갔다.
그러다 이남희가 핸드폰으로 무언가 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재언이 혀를 찼다.
“저거, 저거. 가게에서 주인이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는 건 진짜 별론데 말이에요.”
“그렇지. 영업을 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잖아.”
주영모가 거들었다. 그 대화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이남희는 바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손을 다시 씻었다.
“이제 위생에 확실하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네요.”
그리고 10여 분이 지나자 한 아주머니가 들어와 말을 걸었다.
“저 이거 하나 주세요.”
“예, 여기 있습니다.”
선캡과 선글라스를 썼지만, 진혁이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누군지 알아본 진혁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언니에게 부탁했군.’
한 명이 타르트를 사자 망설이고 있던 다른 이들도 한 둘, 타르트를 구입해갔다. 조각 단위로 산 타르트를 종이컵에 담아주자, 그 타르트를 베어 물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다른 손에는 타르트 컵을 들고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점차 사람들이 늘어섰다.
이남희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CCTV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남편을 설득하더니 타르트 한 판을 잘랐다. 그 모습을 본 지재언이 손뼉을 쳤다.
“오, 드디어 샘플을 나눠 주시려나 봐요.”
김춘배는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로 자른 타르트를 비닐로 씌운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공짜 맥주를 마신 사람들은 타르트 샘플에 관심을 보였다. 공짜라는 사실에 열광하여 달려온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이 몰려들자 새로운 줄이 생겼다. 샘플을 맛본 사람 중 타르트를 사는 사람이 몇몇 보였다.
“세 명 중에 한 명은 꼭 사는데요?”
“맛있으니까 더 먹고 싶은 거지.”
“의외로 타르트랑 맥주가 맛이 어울리나 봐요. 솔직히 나는 맥주는 삼겹살하고 같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재언이 입맛을 다셨다.
“삼겹살에 맥주라니 너무 배부른 조합 아닙니까. 당연히 삼겹살에는 소주지.”
“타르트에는 밀크티라떼나 아메리카노가 어울리지 않습니까? 아니면 딸기 에이드나, 블루베리 에이드를 같이 마실 수도 있고.”
진혁이 웃었다.
“잘 만든 과일 타르트라면, 제일 어울리는 건 찬물입니다. 과일 자체의 상큼한 맛을 돋보이게 하면서 시트의 바삭함 역시 강조하게 될테니까요.”
“아니, 그런데 맥주 축제에 타르트 갖고 나오자고 한 건 진혁 쉐프님이잖아요?”
“맥주도 상쾌한 계열이니까요. 계속해서 맥주를 마시다 보면 짭조름한 간식거리가 땡기는데 타르트는 정말로 안 어울리죠.”
“그런데 왜 축제에 과일 타르트를 내놓자고 하셨어요?”
그 질문에는 진혁이 아닌 주영모가 대답했다.
“사람들이 몰리니까 그렇지. 지금 그 가게는 너무 위치가 이상한 데에 있어서, 오는 사람들 자체가 적었어. 홍보를 하려고 해도 어딜 사람이 와야 말이지.”
“그럼 타르트를 200개나 만들라고 하신 건…….”
“어차피 만드는 걸 연습해야 하니까요.”
진혁이 싱긋 웃었다.
“이천 개쯤 만들면 좋겠지만 말입니다. 지금 여기 오는 손님 열 명 중에 한 명만 팔아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 테니까요.”
주영모는 CCTV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무료 생맥주 리필을 즐기며 계속해서 반복해 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군침을 흘렸다.
“이거 보기만 하니까 나도 먹고 싶은데. 맛있어 보인다.”
“그럼 저희도 한번 방문해 볼까요?”
세 사람과 카메라맨은 상황실 역할을 하는 컨테이너에서 내렸다. 그들은 인파를 헤치고 타르트 가게 쪽으로 다가갔다. 이남희가 대응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예, 손님! 여기 딸기 타르트 한 판 있습니다.”
그녀는 행동이 빨라서 바로바로 돈을 계산해 거스름돈을 내놓았다.
“블루베리 타르트 조각 드릴게요.”
느릿느릿하게 타르트를 자르고 컵에 담아 내놓는 김춘배는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보였다.
샘플을 만들어 놓았던 블루베리 타르트는 스무 판, 딸기 타르트는 두 판 가까이 팔린 것으로 보였다.
진혁은 미소를 지었다.
‘그럭저럭 잘하고 있는데. 조금만 도와줄까?’
가게 앞에 서 있던 진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으나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작은 바람 줄기가 딸기 타르트로부터 출발해서 사람들을 휘감고 지나갔다. 새콤달콤하며 향긋한 향기가 은은하게 풍기자 진한 바닷내음이 사라지고 과일 향이 짙게 느껴졌다. 딸기밭에 온 것처럼 청량해졌다.
딸기 냄새를 맡은 지재언이 코를 킁킁거렸다.
“저도 딸기 타르트 맛보고 싶은데요. 돈 내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