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33화 (333/656)

제 333화

김산호 PD가 설명하는데 이남희가 화를 내며 쏘아붙였다.

“도둑이 들었다는 게 뭐 우리 잘못은 아니지만, 자랑할 일도 아니잖아요. 그걸 빵으로 만들면서까지 텔레비전에 내보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요.”

짐을 다 옮긴 김춘배가 쩔쩔매며 물었다.

“여보, 무슨 일이야?”

씩씩대던 이남희가 남편에게 전화기를 돌려주었다.

“예, 김춘배입니다. 전화 받았습니다. 예에.”

상황 설명을 들은 김춘배는 통화하면서 가게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이남희는 입을 삐죽거리며 툴툴거리면서도 남편이 풀어 놓은 짐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춘배는 아내에게 들리지 않는 곳에서 목소리를 낮춰 나지막하게 통화했다.

“그건 괜찮을 수도 있겠네요. 맥주 축제에 우리 타르트를 낸다구요? 하지만 값은 제대로 주시는 건지, 아….”

장시간의 통화 끝에 김춘배는 제작진에게 설득당했다.

결국, 가게 내부를 케이크로 만들어서 맥주 축제에 제출한다는 결론을 듣고서 이남희가 분통을 터트렸다.

“하여튼, 당신은 내 말을 들어주는 적이 없다니까. 내 말 말고 다른 사람 말은 다 좋아 보이지?”

“아니야. 애초에 방송 출연 자체가 자기 아이디어였잖아.”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두 사람 모두 손은 쉬지 않았다.

“원래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그 현장에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래.”

“그래서, 그거랑 케이크랑 무슨 상관이래?”

“범행 현장을 케이크로 만들고, 거기에 와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누가 돈을 훔쳐갔는지 알 수 있을 거라더라고.”

“마음을 읽는 것두 아니구, 그걸 어떻게 알아?”

정확히 계량한 밀가루에 소금을 섞고, 설탕을 넣는다. 아내를 건너다보며 김춘배가 말했다.

“수상쩍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대. 그리고 그런 사람이 없어도, 우리 가게 안이 설탕공예 케이크가 되어서 공개되는 거 자체가 아주 좋은 일이야. 당신도 알잖아. 그런 걸 보면 실제로 우리 가게에 와보고 싶을 거라고.”

“그럴까?”

이남희가 솔깃해하며 웃었다.

처음 몇 개를 만들 때는 손이 느렸지만, 백 개라는 목표를 가지고 하니 저절로 속도가 붙는다. 김춘배가 외쳤다.

“이 버터 미리 꺼내둔 거 맞지?”

“응.”

이전처럼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버터를 전자레인지에 돌리거나 해서 온도를 맞추지 않는다. 진혁이 지적한 대로, 미리 꺼내두어 실내 온도에 맞게 자연스럽게 녹은 버터를 사용한다. 적당히 녹은 버터를 버터나이프로 자르며 김춘배가 말했다.

“이렇게 자기 일처럼 챙겨 주고, 홍보까지 해준다니 고맙잖아. 그 청년 처음에는 섬뜩하고 무서운 데가 있었는데, 정말로 좋은 사람이야. 내가 처음에 사람을 잘못 봤나 봐.”

당시를 떠올려보면 지금도 소름이 쫙 끼친다. 척추에 얼음이 바로 꽂히는 것처럼 두렵다. 유령을 본 것처럼 서늘하고 공포스러웠으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냥 착각한 것이 분명하다.

“잘생기고 착한, 돈 많고 평범한 청년이잖아.”

이남희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게 뭐가 평범해? 그리고 원래 옆집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고, 남의 자식이 착해 보이는 거야. 우리가 겉으로만 봐서 그렇지, 세상에 그렇게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이란 건 없다고. 분명히 뭔가 구린 데가 있을 거야.”

“여보.”

“그래, 알아. 알아. 우리가 이번에 신세를 졌지. 각서도 썼으니까 당연히 하긴 할 거야. 이씨 집안 딸들은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고.”

남희는 한 마리 소 같은 여자였다. 한 방향을 정해서 달려나가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소심한 김춘배가 중얼거렸다.

“당신이 약속 잘 지키는 거야 동네 사람들이 다 알지.”

구워져 나온 시트 위에 커스터드 크림을 올릴 차례였다. 이남희가 크림 위에 블루베리를 예쁘게 올려놓는 동안, 춘배는 블루베리 글레이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설탕 한 컵에 옥수수 전분과 찬물을 섞고, 신선한 블루베리를 넣어 뭉갰다. 질 좋은 브랜디를 티스푼으로 하나 넣고 끓이면 진혁이 알려준 대로 만든 블루베리 브랜디 글레이즈 소스가 된다.

“여보! 소스 다 됐어.”

“발라 보자.”

몽글몽글하니 포도송이처럼 듬뿍 올라간 블루베리들에 조심스레 소스를 끼얹는다. 반질반질한 광택에 더해서 향긋한 블루베리 향이 더 진해졌다.

코를 킁킁거리며 김춘배는 쉐프 청년의 실력을 재평가했다.

“정말로 먹음직스러운데. 확실히 평범한 청년이라곤 할 수가 없어.”

이남희가 단언했다.

“당신도 황 씨 언니 알잖아.”

“그 해녀 황 씨 말이야? 왜?”

“해녀 중의 해녀라고 이름을 날리잖아. 그렇게까지 되려면 사람이 뭔가 하나에 미쳐야 한다고. 언니가 물질에 제대로 미쳐서 집안이 완전 풍비박산 났던 거 몰라? 천재라는 건 그런 거라고. 겉으로는 착해 보여도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김춘배는 적당히 흘려들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          ◈          ◈

다음날, 임진혁과 촬영 1팀은 바로 거제 맥주 축제 현장으로 향했다. 그가 만든 도난 현장 케이크를 맥주 축제 현장에서 전시할 예정이었다.

“이 오븐이 설치된 트럭은 진혁 쉐프님이 따로 수배하셨다면서요?”

“별거 아닙니다.“

진혁이 어제 급하게 백진영에게 부탁해 수배한 카페 트럭은 제대로 된 오븐과 커피 메이커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보다 주영모 쉐프님이 대단하죠. 맥주 축제에 자리를 바로 만드셨잖습니까.”

주영모가 급하게 주선해서 부스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면 이 케이크를 공개할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주영모 쉐프님! 맥주 축제 운영진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십니까?”

“회사에서 축하할 일이 있으면 케이크를 주문할 때가 많아. 그래서 홍보부 쪽 사람들만 좀 아는데, 이번에 비슷한 시기에 거제도 온다고 해서 얘기를 미리 해놨었어.”

“무슨 얘기요?”

“빈 부스 생기면 우리가 채울지도 모른다는 얘기.”

“마침 빈 부스가 생겨서 다행이네요.”

“그렇지, 자리가 없었으면 억지로 밀어 넣지도 못했어.”

메인 작가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번에 진혁 쉐프님이 이 도난 현장 케이크를 몇 시간 만에 만들어내신 게 아니면 이거 찍지도 못했어요.”

“보통 이런 종류의 케이크를 주문받으면 빨라도 일주일, 최소한 72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말이야. 비율이랑 가게 계산해서 토대 짜는 데에도 한참 걸릴 텐데, 그걸 눈으로 보면서 그냥 슈르륵 만들더라니까.”

메인 작가가 킥킥 웃었다. 그녀가 임진혁처럼 성대모사를 했다.

“<계산을 해야 토대를 짤 수 있습니까? 그냥 보고 만들면 되는데요. 보면 보이잖습니까>라고 하셨죠?”

“…그랬지.”

“아니, 진혁 쉐프가 재능이 많은 줄은 알고 있었는데.“

“미술이나 건축을 했어도 잘 했겠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말리지 말고 그냥 은행이랑 돈 가지고 오는 길 다 만들어도 된다고 할 걸 그랬어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주영모가 미간을 좁혔다.

“진혁 쉐프, 지금 이 설탕 공예 작품을 만드는 데만도 밤샌 거 아니야? 만드는 데 몇 시간 걸렸어?”

진혁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영업 비밀입니다.”

“도둑이 든 것도 아닌데, 하필 진혁 쉐프를 촬영하던 카메라도 고장 나서 데이터가 날아가고 말이야.”

김산호 PD가 투덜거렸다. 그는 임진혁이 케이크를 만드는 영상이 꼭 있었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막내 카메라맨 정 씨였나? 경찰에 신고도 하고 아주 잘하더니, 이번에는 왜 밤 내내 잠들었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평소에는 야간작업 잘만 하더니, 왜 이번에는 중요한 장면인데 그렇게 잠들었느냔 말이야.”

정 씨는 꾸벅꾸벅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진혁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공을 사용해서 제빵 하는데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으면 곤란하니까.’

적당한 충격을 줘서 카메라도 고장 내고, 카메라맨도 기절시켰다. 둘 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정 씨가 계속 혼나고 있자, 진혁이 끼어들었다.

“저희 이제 현장 도착했습니다. 바로 설치부터 하죠.”

“어어! 우리 케이크는 어디에 설치하면 된대?”

“저기요, 저기.”

제작진이 분주하게 오가며 이미 설치된 부스에 케이크를 옮겼다. 트럭에서 바로 내린 케이크는 백 명이라도 먹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크기였다.

그래서 한 명이 옮길 수는 없고, 바퀴 달린 들것에 실린 채로 트럭에서 내린 후에 굴려서 옮겨가야 했다.

“다시 봐도 진짜 신기해. 어떻게 그 가게 안을 저렇게 똑같이 재현하셨지?”

진혁이 밤새 만들어놓은 설탕 공예 케이크는 전혀 케이크같이 생기지 않았다.

지붕은 절반, 그리고 벽은 세 개만 만들어져 있다. 테이블이 없는 가게 안으로 발을 성큼 들여놓은 범인은 야구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썼다. 그가 칼을 들고 협박하는데, 겁에 질린 표정의 타르트 가게 주인 부부가 항복 자세로 양손을 들고 있다.

카운터와 주방, 그리고 주방기기와 타르트가 구워지고 있는 오븐. 조리대 위에는 블루베리가 흩어져 있고, 그릇에는 커스터드 크림이 소담히 담겨 있다.

성실하게 일하고 있던 부부에게 닥친 재난을 그대로 조각해놓은 것처럼 현실적이고 리얼한 작품이었다. 진하게 풍기는 달콤한 설탕의 향기가 아니라면 전혀 먹을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보조 PD 박하연이 중얼거렸다.

“심즈 게임 안의 한 장면 같아요.”

반면에 이종태는 케이크가 상징하는 장면보다 실질적인 면에 좀 더 관심을 가졌다.

“이게 브라우니 케이크라고? 우린 언제 먹을 수 있대?”

건물 안의 세세한 물건, 즉 오븐이라든가 카운터 테이블 등이 케이크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제일 먹을 것이 풍부한 부분은 바닥재, 즉 실내와 인물들이 표현되어 있는 그 아래의 2층짜리 케이크였다.

박하연이 대답했다.

“아니요, 호두 파운드 케이크래요.”

“빨리 먹었으면 좋겠네.”

이종태가 입맛을 다셨다.

냉방 시설을 설치한 컨테이너 안에 들어와야 케이크를 볼 수 있다. 일부러 잘 상하지 않는 재질로 만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돈을 들여 부스를 따로 설치했다.

그 옆에는 진혁이 따로 만들어둔 빈 공간이 있었다. 이제 촬영 2팀이 춘남 타르트에서 두 부부와 타르트를 실어오면 사용할 공간이었다.

주영모가 빈 타르트 진열대를 보면서 말했다.

“춘남 타르트 가게의 타르트는 이백 개 가져온다고?”

“예. 블루베리 백 개, 딸기 백 개요.”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영모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허, 참. 그린워터 팜 사장님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야? 거기는 철저하게 미리 계산해서 재료를 내놓잖아. 몇 시간 만에 육지에서 재료를 그렇게나 금방 갖다 줄 줄 생각도 못 했네.”

진혁은 민병철과 자신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민병철의 모친이 곱창과 삼겹살을 파는 가게를 하시는데 부모님이 자주 들르신다. 그는 유일봉의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해서, 소개받은 다음에 같이 샌드위치 사업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일봉이나 진영이처럼 친구라고 할만한 단계는 아니다.

그는 복잡한 관계를 짧게 요약해서 설명해 주었다.

“어릴 때 같은 동네 살았습니다.”

“거참, 세상이 좁긴 좁아.”

“민병철 사장이면 그 사람이잖아요? 그 유명한 대학 나와서 박사하다가 갑자기 때려치우고 회사 만들어서 성공한 사람.”

“피디님은 어떻게 아세요?”

“우리나라의 젊은 인재들 프로그램을 할 때 출연 섭외를 했는데 바쁘다고 거절당했습니다.”

김산호와 임진혁이 대화를 나누는데 메인 작가가 끼어들어 말했다.

“그래도 재룟값이니 뭐니 다 진혁 쉐프가 개인적으로 부담하시는 거잖아요. 죄송하고 감사해요.”

“이번에 <해와 달> 이름 걸고 홍보 차 나가는 거니까요.”

실은 어설프게 암시 걸었다가 도난 사건이 일어나서 이를 책임지기 위해서 일을 키웠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돈은 문제가 안 됩니다. 일단 제가 하기로 한 일이니까, 제대로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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