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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330화 (330/656)

제 330화

“시옷인지 지읒인지 뭐 그런 이름이었지.”

“설마 이름이 지읒일 리가 있어? 누가 가게 이름을 욕으로 지어.”

“시옷일 겁니다.”

‘세상이 참 좁긴 좁은데.’

“하하하하.”

진혁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굳이 그 사람들과 같이 방금 전까지 일하고 왔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일행들이 회와 구이로 어느 정도 배를 채우자, 주방에 있던 사람이 휴대용 가스버너를 두 개 들고 나왔다.

“두 개나?”

진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문어라면도 시켰어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주방에서 라면 2개를 넣은 문어라면 냄비를 들고 나왔다.

파와 양파를 썰어 넣고 콩나물까지 넣은 다음, 문어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 머리와 다리를 쏙 내밀고 있는 해물라면의 비주얼을 본 이들이 감탄했다.

“맛없는 게 불가능한 생김새야, 아주 대단해!”

“이야, 문어 한 마리를 통째로 라면에 넣다니. 남자답구만. 호쾌해!”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사이 어머니가 진혁에게 소곤소곤 물었다.

“매운탕에 안 넣고?”

“어머니께서 문어라면 좋아하신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어?”

어머니가 생긋 웃었다.

“우리 진혁이, 고맙네.”

“별 것 아닌데요. 어차피 아버지가 잡은 걸 넣어달라고 한 거고.”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기억하고 있잖아. 그게 고마운 거야.”

“….”

“이따 숙소 잠깐 들렀다 가. 네가 좋아하는 된장국 끓여 놨어. 어제는 바빠서 들르지도 못했잖아.”

“예.”

“와서 오랜만에 진호 얼굴도 보고. 애가 바닷바람이 좋은지 계속 창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밖을 보고 있더라.”

“알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라면 드세요. 불기 전에 먹어야 맛있죠.”

진혁은 라면을 조금씩 덜어 어른들 앞에 갖다 놓았다.

가위로 문어를 잘라 나누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머니 앞에 눈에 띄게 큰 조각이 들어가자 어머니가 킥킥 웃었다.

“넌 안 먹고?”

“제가 먹을 걸 어머니가 드시면 되죠.”

“어머, 어머, 어머. 아들을 어쩌면 이렇게 효심 깊게 잘 키우셨어요? 우리 아들도 진혁군 십분의 일만 하면 좋겠네.”

살짝 부러움이 섞인 이야기를 들으며 어머니가 배시시 웃었다.

“저희가 뭘 했나요, 지가 알아서 컸는걸요.”

꼬들꼬들한 면발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자, 진한 주황색 국물에서 깊은 바다 향이 풍겼다.

“이거 그냥 문어만 넣으신 게 아닌데? 육수에 다시마를 넣으셨구나.”

“조금 너X리 같은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한데요. 나쁘지 않네.”

잠시 동안 후루룩 국물을 빨아들이는 소리만이 들렸다.

자식 자랑 대전에서 완전히 패배한 아주머니는 딸 사진을 보여주면서 은근히 묻기 시작했다.

“하여튼 말이지, 진혁 군은 서울에서 가게를 한다고 했지? 우리 딸도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데 말이야. 가게가 어디쯤에 있는지 궁금한데….”

“서울은 넓습니다.”

진혁이 단호하게 잘라 말하는 말을 듣고 아버지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래, 서울이 넓기야 넓지. 네가 아직 여자 생각이 없구나?”

어머니가 손을 내저으며 대신 거절해 주었다.

“아휴. 애가 어려서 그런지 아직은 누굴 만날 생각이 없나 봐요.”

‘그건 아닌데.’

오히려 그 반대다. 너무 나이가 많아서 그렇다.

진혁이 우물거리며 라면을 먹고 있는 동안 어머니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짚신도 제짝이 있다고 하잖아요. 때가 되면 누군가를 만나겠지요. 아직 이십대 중반인데 뭐 어때요.”

아버지가 말했다.

“당신은 그때 나를 만나 이미 결혼해서 쌍둥이를 뒀잖아?”

“우리 때야 다 그랬지. 나는 오히려 늦게 시집간 편이잖아요? 언니들이 빨리빨리 결혼해서요.”

“이모들이 빨리 결혼하셨어요?”

“바로 위에 언니가 일찍 했어. 스무 살에 당장 시집보내주지 않으면 목맨다고 난리쳐서 결혼했지 뭐야.”

진혁이 픽 웃었다.

지금은 근엄한 중년 부부인 이모와 이모부에게 그런 과거가 있는 줄은 몰랐다.

“지금은 서른 살이 먼 얘기 같지? 눈 한 번 깜빡하면 금방이야. 세월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데.”

아주머니가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거야 그렇죠.”

진혁은 순수하게 공감했다.

“우리 딸은 마포구에서 일하고 있는데, 혹시 그 근처면 이미 만났을 수도 있겠어.”

“하하하.”

진혁은 가게가 망원동이라는 설명은 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라면 냄비가 삭 비었다.

“라면 진짜 맛있었어요.”

“시키길 잘했어.”

주방장이 나와 라면 냄비를 상 위에 올려놓았다.

“국물 더 드실 분 있습니까?”

“제가 먹을게요, 그대로 두세요.”

그는 매운탕 냄비가 올라간 버너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부르스타를 이거 한 개만 내와도 됐을 걸 그랬네요. 라면이 인기가 좋군요.”

매운탕은 평소에 봐오던 생선 대가리와 뼈만 든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주먹만 한 물고기들이 대가리와 꼬리까지 합쳐 통째로 이것저것 듬뿍 들어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이게 놀래기야. 여기 검은색 줄이 있잖아. 연푸른색이 띄엄띄엄 줄무늬로 있고 꼬리지느러미가 노르스름한 게 암컷이고, 몸 전체가 어두운 청록색인 게 수컷이란 말이지. 그렇게 크게 자라지 않고 다 자라봤자 25센티미터가 안 된다고.”

아저씨가 지식을 자랑하는 사이에 아버지는 국자로 생선을 하나씩 떠서 사람들의 그릇에 올려 주었다.

“놀래기는 매운탕으로 먹어야 제 맛이지.”

아주머니는 투명한 생선 뼈를 긁어내고 하얀 속살을 수저 위에 올렸다.

“살이 포슬포슬하고 아주 부드러워요.”

저절로 눈을 감으며 감탄하는 아주머니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제철 놀래기는 수분이 많아서 아주 맛있지요? 저도 이걸 매운탕으로 먹으면 좋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덕분에 이렇게 먹어 봅니다.”

“그리고 요 빨갛고 위에 거친 지느러미가 있었는데 잘라낸 게 볼락이야. 요즘 시기에 잘 잡히는데 말이지.”

아저씨가 생김새를 설명하는 동안 아버지는 생선의 맛을 설명했다.

“볼락은 도톰하고 단단해서 맛있지.”

“당신은 날 두고 맨날 생선만 먹으러 다녔는지 아는 게 참 많네.”

어머니가 장난스럽게 아버지의 무릎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여보,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당신 모르게 회를 먹으러 다녔겠어? 그냥 낚시하다 보니까 알게 된 거지.”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진혁은 아버지를 보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백 회장님하고도 회 먹으러 가셨다고 했지.’

아버지가 회를 이렇게나 좋아하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물고기 맛을 잘 아는지는 처음 알았다.

“……그래, 사이다 한 병.”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오늘 낚시 구경하느라 많이 힘들었지?”

아주머니가 부러운 듯이 말했다.

“두 분이 아주 사이가 좋으시네요. 진혁 군은 부모님 금실이 좋으시니 좋겠어.”

‘아니, 아줌마 그냥 눈치가 없으신데요.’

진혁은 고슬고슬한 하얀 쌀밥을 한 수저 떴다. 매운탕에 젖어 붉게 물든 쌀밥은 짭조름하고 얼큰했다.

“밥이랑 아주 잘 어울립니다.”

“진혁이 너도 소주 한 잔 마실래?”

아버지가 뒤늦게 묻자 진혁이 웃었다.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야, 요즘 애들답지 않게 사양을 하지 않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소주잔이 오가던 중, 아주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스마트폰을 쳐다보았다.

“거제도에서 나한테 전화가 올 일이 없는데, 어디지. 여보세요?”

짧은 전화 통화를 마친 아주머니는 안색이 나빠진 채 말했다.

“여보, 언니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봐.”

“처형이? 무슨 일인데?”

“모르겠어, 가게로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술을 먹어서…… 당신이 운전할 수 있어?”

“여보, 나는 여기 길은 몰라서 운전하기는 무서워. 차라리 대리를 부르든가.”

아버지가 어머니를 힐끔 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언니네에 도둑이 들었대요. 지금 너무 놀랬다고, 누가 와줄 수 있냐고 물어서 빨리 가보려고요.”

어머니가 흔쾌히 제안했다.

“어디로 가셔야 하는데요? 가까우면 제가 데려다드릴 수 있어요.”

진혁 역시 동승했다.

아버지가 거제도에 와서 렌트한 SUV는 두 가족이 전부 타도 자리가 남았다.

“이거,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서로 도와야죠.”

전화 통화를 들어서 사정을 알고 있던 진혁이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시옷타르트에 도둑이 들었다고 하셨죠.”

그는 제작진에게 연락해보았다.

“PD님. 임진혁입니다. 거기 별 일 없습니까?”

[아니, 임진혁 쉐프님. 무슨 일이 생긴지 어떻게 알았습니까?]

김산호 PD는 간단하게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저도 지금 우연히 그쪽으로 가는 길입니다.”

“아, 그래요?”

“예. 현장에서 뵙죠.”

◈          ◈          ◈

지세포 낚시 공원에서 시옷타르트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좋은 일도 아닌데 괜히 우리가 구경꾼처럼 기웃거리면 좋지 않아.”

부모님은 두 분을 내려주시고 바로 숙소로 돌아갔다.

아주머니는 급하게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남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순경이 고개를 들었다.

“예는 아적 범죄 현장이어서, 바깥에 계셔야 되예.”

“뭔 범죄 현장이라고요?!”

아주머니가 순경과 대화하는 사이에 김춘배는 가게 바깥에 멍하니 서 있었다.

아저씨는 김춘배에게 다가가 사정을 물었다.

“이거이 어찌된 겁니까?”

친척들끼리 말하는 동안 임진혁은 뒤쪽에 세워져 있었던 촬영용 밴으로 다가갔다.

밴 앞에 서 있던 제작진들에게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이야기를 들었다.

김산호 PD 곁에 서 있던 주영모 쉐프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린 다 숙소로 퇴근하고, 여기 카메라맨이 연습하는 거 찍고 있었잖아. 카메라맨이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강도가 들어와서 칼로 협박했다고 하더라고. 급하게 신고를 해서 경찰이 왔는데 이미 도망가고 없었어.”

김산호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이번 촬영은 진짜, 무슨 액땜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카메라에 전부 찍혔겠네요?”

“맞아. 불행 중 다행이지.”

“얼마나 도둑맞았대요?”

“인테리어 잔금 내려고 인출했던 현금 전체. 한 오백 된다고 하던데?”

진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루에 손님이 단 한 명도 오지 않는, 예약제 주문을 받는 소규모 가게다.

현금이 대량 있을 리가 없는데 마침 인테리어 잔금이 있는 동안에 도둑이 든다는 것이 이상했다.

“내부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 훔치러 온 것 같은데요.”

“경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김산호 PD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창백한 표정을 한 카메라맨이 거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아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아니,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거기에 마스크까지 꼈는데 어떻게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어?”

“요즘 덥다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으니까 냉방병 걸리면 마스크 낄 수 있잖아요. 그 사람이 들어오는데 사장님이 인사를 하더라고요. 칼 꺼내 들고 돈 달라고 하니까 서랍 안에 있던 돈을 그대로 꺼내서 봉투째 갖다 바쳤어요.”

‘이런 젠장.’

진혁이 이마를 짚었다.

강도가 강압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이미 암시가 걸려있는 김춘배와 이남희가 어떻게 반응했을지 눈에 선히 보였다.

‘차라리 암시가 아니라 세뇌를 할 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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