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9화
“식당에서 준비를 해 줘요?”
“요 앞에 가면 차림비 받고 썰어 주거든요. 우리 그이가 낚시는 잘 해도 물고기 손질을 할 줄 몰라서, 호호호.”
어머니가 반색했다.
“우리 신랑도 마찬가지예요. 원체 빵 굽는 게 일이다 보니 생선구이는 잘 하는데, 회는 썰 줄을 몰라요. 덕분에 생선구이만 여덟 마리 먹었네요.”
아버지가 입을 삐죽거렸다.
“아니, 어제는 구이가 맛있다며?”
“물론 맛있지. 그런데 이왕 당신이 잡은 물고기, 회로 해서 먹어도 좋잖아?”
“그래, 그래.”
부부 두 쌍이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며 일어나려 하자, 진혁은 주변의 짐을 정리했다.
아버지가 사용한 낚싯대에서 낚싯바늘이 연결된 짧은 선을 분리해 지퍼백에 넣고, 낚싯대 역시 뽑아서 고무줄로 돌려 감았다.
자잘한 쓰레기는 비닐봉지에 넣었다. 봉지에 매듭을 묶고 던지려고 하는 찰나, 아주머니가 말렸다.
“저기 멀리 있는데 내가 갖다 버릴게.”
진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멀리 던졌다.
-철썩
5미터는 훌쩍 넘는 바깥쪽 쓰레기통 안에 비닐봉지가 안착하자,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놀라워했다.
“우와, 잘 던지네!”
“직업이 야구 선수여?”
“야구 선수는 아닌데, 운동을 좀 잘 해요.”
어머니가 해죽해죽 웃으며 아들을 칭찬했다.
두 부부가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동안, 진혁은 저쪽 방파제 앞 낚시꾼 근처에서 낯익은 기운을 발견했다.
“…어머니, 문단속은 하고 나오셨지요?”
“당연하지. 숙소에 진호가 있으니까 잘 잠그고 나왔어.”
“….”
진혁은 앞으로 조금 더 빨리 걸어가, 어머니의 시선이 우측 해변가를 향하지 않도록 몸으로 가렸다.
그가 가리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눈에 들어왔을 위치에는 귀와 꼬리를 빳빳이 세운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당당하게 앞으로 걷고 있었다.
한국의 길고양이 중에서 삼색 고양이는 적지 않지만, 저렇게 덩치가 큰 수컷 삼색 고양이는 단 하나밖에 없다.
진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진호를 노려보았다.
‘왜 나왔어?’
당연히 고양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대답했다.
“미야옹-”
진호의 뒤에 따라오던 낯선 고양이는 이제 3개월 정도나 됐는지, 이제 갓 독립한 것으로 보이는 어린 고양이였다. 치즈색 줄무늬가 또렷한 새끼고양이는 마치 가족처럼 진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이것 봐라?’
두 고양이는 남색 낚시용 모자를 쓰고 홀로 낚시 중인 낚시꾼 뒤에 얌전히 앉아, 목을 빼고 기다렸다.
고양이들이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남색 모자 낚시꾼은 곧 작은 물고기를 하나 낚아 올렸다. 그는 엄지손가락만 한 물고기의 입에서 낚싯바늘을 빼서 도로 물에 놓아 주려던 참이었다.
낚싯바늘을 빼서 물고기를 허공에 던지는 순간, 진호가 바로 뛰어들어 그대로 물고기를 입에 물었다.
“아이구, 이놈의 괭이 좀 봐라!”
두 고양이는 순식간에 수풀 쪽으로 사라졌다. 낚시꾼은 혀를 차며 미끼를 도로 낚싯바늘에 끼우더니 다시 바다를 향해 던졌다.
진호는 방금 물어온 물고기를 작은 치즈 줄무늬 고양이 앞에 툭 던졌다. 치즈 고양이는 혀로 할짝 자신의 입을 핥더니, 바로 물고기를 물어 꿀꺽 삼켰다.
그 모습을 뒤로 하고서, 진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진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됐어. 저리 가. 집으로 가!’
진호는 꼬리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동글동글한 눈으로 진혁을 응시했다.
임진혁은 그 귀여운 척에 속지 않았다.
‘집으로 가!’
삼색 고양이는 몸을 돌려 꼬리를 살랑 흔들더니 숙소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방금 식사를 마친 치즈 줄무늬 고양이도 그 뒤를 따라서 짧은 다리로 뽈뽈 따라갔다. 어리다기보다 새끼에 가까운 고양이는 암컷으로 보였다.
“쯧쯧.”
진혁은 혀를 찼다.
‘자기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나 본데.’
새끼고양이의 등과 얼굴, 꼬리에는 치즈색과 흰색 줄무늬가 선명했다. 반면에 네 발에는 무늬 없는 하얀 털이 나 있어 마치 하얀 장화를 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길고양이 특유의 거칠고 더러운 털에도 불구하고, 분홍빛 코와 고동색 눈동자가 초롱초롱하니 예쁘다.
동네에서 진호 뒤를 따라다니는 암컷 고양이들보다 훨씬 어리다. 이제 갓 어미 젖을 뗀 것처럼 보였다.
두 고양이가 수풀 속으로 총총 사라지고 난 후 진혁은 안심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진혁아, 거기 뭐라도 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호가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본다면 어머니는 크게 걱정하실 것이다. 그리고 고양이를 찾아서 또 한참 헤맬 것이 분명하다. 그는 그런 일이 다시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저쪽에서 진호를 닮은 고양이를 봐서요.”
“진호가 누구예요?”
“저희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인데, 아주 착하고 예뻐요. 쥐도 잘 잡고, 웬만한 개는 다 이겨요.”
“개를 이기는 고양이가 다 있어요?”
“덩치도 있고, 힘도 세거든요. 이번에 거제도 여행도 같이 왔는데 지금 숙소에 있어요.”
어머니는 스마트폰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랑했다. 아주머니가 사진을 보고 눈을 껌뻑였다.
“이런 고양이가 흔한가 봐. 나도 아까 비슷한 고양이 봤어요. 낚시 공원 쪽 말고, 방파제 쪽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물고기 물어가더라고요.”
“그래요?”
“그래, 나도 봤어. 진짜 비슷하네.”
아주머니의 말에 아저씨도 한마디 더 했다.
“어머, 다음에 보면 사진 찍어주세요. 우리 집 진호랑 닮았다고 하니까 궁금하네.”
“고양이가 진짜 잽싸서 이 사람 저 사람 물고기를 다 물어가는 걸 보니까 항구에서 잔뼈가 굵은 것 같더라고요. 다음에 눈에 띄면 찍어 볼게요.”
“말씀하신 횟집이 여기죠?”
“네, 네. 맞아요.”
아주머니가 말한 막 썰어 횟집은 낚시 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진혁은 아버지가 들고 있었던 아이스박스를 받아들었다.
“이건 제가 들고 갈게요.”
무거운 아이스박스를 가볍게 들고 가는 임진혁을 보며 중년 부부가 칭찬했다.
“아드님이 효심이 아주 깊네요.”
“호호호, 요즘 애들이 다들 그렇죠.”
“다들 그렇긴. 20대 아들이 저렇게 부모님 챙기기 쉽지 않아요.”
부모님이 수다를 떠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며, 진혁은 식당 주방에 아이스박스를 전달했다.
“이거 회로 썰어주세요.”
“작은 놀래미도 회로 썰라구? 이거는 구이로 하면 딱 좋은디.”
“그럼 구잇감은 구이로 하고, 회로 부탁드립니다.”
“허이! 문어가 있네, 문어가 있어. 이건 어떻게 해 드릴까?”
진혁이 외쳐 물었다.
“아버지! 문어는 어떻게 해서 드실 거예요?”
주방장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따로 생각해놓은 게 없으문, 문어는 해물 라면 끓여 드리지. 이천 원만 주쇼.”
벌써 상을 펴고 앉은 중년 아저씨가 주방에 소리쳤다.
“예 소주 한 병만 주이소!”
녹색 유리병에 이어 밑반찬이 서너 가지 나왔다.
작은 도기 종지에 담긴 검붉은색 젓갈에는, 검지만큼 커다란 통멸치가 언뜻 보였다.
“멸치젓갈이 아주 잘 길이 들었네.”
젓가락 끝에 멸치젓을 조금만 묻혀 맛본 아버지가 소주잔에 술을 따랐다.
“아이구, 제가 따라드리죠.”
주거니 받거니 잔을 나누며, 각자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대부분 자식 자랑이었다.
“저는 딸 하나 아들 하나 있답니다. 둘이 두 살 차이에요.”
“어머, 우리도 그래요. 쌍둥이 남매를 뒀죠. 자녀분이 뭘 하시는데요?”
“우리 딸은 교대를 졸업하고 바로 임용고시에 합격했지 뭐에요. 제 딸이라서가 아니고, 아주 똑똑한 애랍니다.”
“그럼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겠네요. 우리 딸 진희는 간호학교 나와서 지금 가게 일 돕고 있어요.”
아주머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가게가 어지간히 잘 되나 봐요? 아니면 취업이 잘 안 됐나? 우리 지연이는 지금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데, 선 자리가 어찌나 많이 들어오는지 몰라요.”
이야기를 나누는 새에 어느샌가 두 여자는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그 미묘한 신경전에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우리 아들은 내가 괜찮다는 데도 가게를 물려받겠다고 제과제빵을 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잽싸게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아들이 가게를 도와준 이후로 갑자기 빵집이 너무 잘 돼서, 딸이 시립병원을 그만두고 가게에 합류했죠. 딸 명의로 가게 새로 하나 내주려고 일을 배우게 시키고 있지 뭐요. 둘 다 제 아비를 닮았는지 손재주가 좋아서 빵을 아주 맛있게 굽는답니다. 아주 기특하죠.”
진혁은 머쓱해 하며 젓가락으로 콩나물무침을 하나 집었다. 신선한 콩나물이 아삭하게 씹혔다. 남쪽이라 그런지 양념이 매콤했다.
아주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깊어졌다.
“우리 지연이는 이번에 친절한 교사로 교육청에서 표창도 받았어요. 걔가 가르치는 학급에서 하도 난리였대요, 선생님이 너무나 잘 가르친다고.”
“우리 아들 녀석은 제과제빵을 하두 잘해서 텔레비전에두 나왔답니다. 국가대표로 국제 제과제빵 대회에 나가서 상까지 탔지 뭡니까. 알아서 잘 커 줘서 자랑스럽죠.”
아주머니는 입을 다물고 생선구이를 집었다.
머리와 내장을 손질하고 굵은 소금을 뿌려 먹음직스럽게 구워낸 전갱이였다.
겉은 갈색으로 보기 좋게 익은 생선 살을 젓가락으로 집어내자 하얗고 치밀한 속살이 드러났다.
“이거 아주 맛있네요, 그 집 어른이 잡으신 거죠? 어서 드셔보세요.”
어머니가 생긋 웃었다. 자꾸 자기 칭찬이 나와서 뻘쭘하게 입을 다물고 있던 임진혁은 조용히 눈을 껌뻑거렸다.
‘….’
중년 아주머니는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리 딸은 아주 이뻐요.”
어머니는 이에 질세라 양 손바닥을 활짝 펴서 진혁의 얼굴 밑에 갖다 댔다.
“진혁이는 잘생긴 데다가 키도 크답니다?”
“….”
‘집에 가고 싶다.’
이런 류의 자식 자랑을 못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눈앞에서 듣고 있는 건 어색하고 뻘쭘하다. 진혁은 뒷머리를 살살 긁었다.
“푸하하핫! 아드님이 잘생기시긴 했습니다. 아주 훤칠하세요, 키도 크고.”
잠시 어색한 사이에 아저씨 쪽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때 주방장이 접시를 가지고 나왔다. 두툼하게 막 썬 회가 두 접시, 상 위에 올라갔다.
“오늘 잡으신 참돔이 아주 씨알이 좋아예.”
천사 채 따위 없이 회로만 소담히 올려진 접시는 보기보다 양이 꽤 많았다. 아버지는 사양하지 않고 젓가락을 들었다.
“아주 쫄깃하고 고소하다!”
“낚시로 잡은 물고기는 아예 맛이 다르네.”
다 같이 생선의 맛을 즐기느라 잠시 조용해졌다. 진혁 역시 생선회를 한 점 베어 물었다.
‘갓 잡은 게 맛이 다르긴 다르네.’
비린내가 하나도 없이 그저 쫄깃하기만 하다. 중년 부부 중 남편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예 어찌 오셨수? 서울 말씨를 쓰시는 걸 보니까 예 사람은 아닌 거 같고.”
“아들놈이 효심이 깊어서, 자기 내려가는데 괜찮은 숙소를 봐뒀다고 오지 않겠느냐고 해서 휴가 겸해서 왔죠.”
“물이 아주 좋아요. 남편이 은퇴하고 낚시를 하는 게 꿈이라고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렇게 잠시 쉬고 하는 것도 아주 좋구만요. 가게를 하다 보니 여름 휴가란 걸 가져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쉬니까 아주 맘이 편해요.”
“빵집 하신다 하셨죠? 우리는 떡 가게를 하는데, 추석이랑 설에만 영업을 하고 다른 계절에는 예 내려와서 낚시를 해요.”
“여기 연고가 있으신가 봐요?”
“없었는데 요번에 생겼어요. 언니 부부가 이번에 내려와서 여기에 쪼끄만 파이 가겐지 뭔지를 차려가지구, 우리도 좀 가서 팔아 줘야 하거든.”
진혁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혹시 가게 이름이 ‘시옷’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