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5화
최소한 빵을 굽는 동안 오븐 문을 계속 열었다 닫았다 하면 오븐 내의 온도가 유지되지 않아 빵이 설익는다는 사실 정도는 이해했을 것이다.
“그래, 우리 아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가르쳐 줬겠지.”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판부터 가게 시스템까지 고쳐야 하는 게 한두 개가 아니더라구요. 제가 손댈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손을 쓸 수 없다기보다는 손쓸 부분이 너무 많아 귀찮다는 쪽에 가깝다. 냉소적인 진혁의 말에 장은효가 당부했다.
“그래도 사람이 제일 우선이야. 네가 빵 굽기를 가르칠 때 네 아버지처럼 엄격한 건 아주 잘 알고 있단다. 무른 것보다는 좋아. 하지만 그렇게 엄격한 게 잘 통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어. 우리처럼 젊어서부터 장사를 한 사람이 아니라, 나이 들어서 새로 장사를 시작한 사람이면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 엄마는 진혁이 네가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단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요.”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에 둥실둥실 흘러가는 구름이 보였다. 수평선 근방에 있는 그 구름은 꼭 꼬리를 흔드는 하얀 고양이처럼 보였다.
그는 그 구름을 보고 문득 고양이를 떠올렸다.
“진호는 어때요?”
“드라이브도 아주 잘 견뎠고, 새 숙소도 좋아해.”
어머니는 진희가 서울에 가 있는 사이에, 진호를 집에 혼자 두고 오는 것을 걱정했다. 사실 동네에 혼자 풀어놓고 밥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자기 구역을 순찰하고 사냥하는 녀석이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사실을 모르시니까.’
진희가 찾아보고 반려동물 동반 가능한 펜션에 머물 수 있도록 했고, 350km에 달하는 자동차 드라이브에 동행해 여기까지 같이 왔다.
“진희가 말한 대로 자동차 타고 조금씩 시간 늘려서 드라이브한 게 좋았나 봐. 처음에 차를 탔을 때 좀 놀라기만 하고, 나중에는 아주 잘 있더라고. 삼십 분씩은 괜찮았지만 내려올 때는 네 시간이나 드라이브해야 해서 걱정했는데 전혀 문제없었어. 쿨쿨 잘도 자더라. 애가 겁도 없고 아주 용감해. 누굴 닮아서 그런지.”
어머니는 핸드폰을 꺼내서 고양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차 안에 실려서 안전벨트로 고정된 이동장 안에서 태평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편안해 보이네요.”
“그래, 회 좀 썰어서 갖다 주면 좋아할 텐데.”
“여름이라 가는 동안에 상하지 않을까요?”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갖다 주면 되지. 우리 진호도 갓 썬 전갱이회를 먹고 싶어 할 거야.”
진혁이 킥킥 웃었다. 어머니가 고양이를 사람처럼 아끼는 것을 볼 때마다 조금 신기했다.
“아까 너 오기 전에 항구에서 길고양이를 봤는데, 우리 동네하고는 또 다르더라.”
“그래요?”
“바닷가에서 알짱알짱하다가 어부가 잡아 온 생선 바구니에서 작은 물고기라도 뛰쳐나오면 잽싸게 달려가서 물고 달려가더라고.”
“푸핫.”
횟감 중에서도 진호 줄 것을 따로 남겨서 아이스박스에 포장하는 어머니를 보며 진혁이 물었다.
“그럼 진희는요?”
“거기까지 갖다 줄 수 있으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무리잖니.”
“하하하.”
낚시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덕분에 즐겁구나.”
“예?”
“이렇게 다른 생각 없이 하나에만 몰두해 본 것도 오랜만이야. 네 덕분에 유럽에도 가 보고, 거제에도 와서 낚시도 하고.”
“에이, 오늘만 하고 그만두실 건 아니잖아요. 내일 하고 모레도 내내 예약해 두었는데. 오늘 잡은 상사리보다 더 큰 참돔을 잡아야죠.”
“그래, 내가 씨알 좋은 놈을 잔뜩 너를 먹여주마. 허허.”
배가 돌아오는 길에는 낮게 깔린 구름이 흩어지며 하늘이 맑게 개었다. 새하얀 태양이 점차 남보랏빛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며, 붉게 물들었던 하늘은 빛을 잃으며 어두워졌다.
“해가 지네요.”
진혁이 중얼거렸다. 자줏빛 띠가 순식간에 진한 보라색으로 물들어가다가 순식간에 먹물처럼 검어지는 광경은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칠흑처럼 물든 검은 밤바다 위에 조그마한 배가 빛을 뿜으며 파도를 헤치고 나아갔다. LED 전등을 촘촘히 단 작은 배 위에서, 임운정이 그윽한 시선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장은효의 손을 잡았다.
“여보, 우리가 인천으로 신혼여행 갔던 거 기억나? 그때 서해에서 일출을 같이 봤잖아.”
어머니가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
“그 당신 친구 집으로 갔던 그 신혼여행 말이지?”
“신혼여행을 친구네 집으로 갔다고요?”
들어본 적이 없던 이야기에 진혁이 물었다.
“소망시에서 인천까지 친구 차를 빌려서 갔는데, 인천에 친구네 집이 있어서 그리 가서 묵었지. 삼대가 같이 사는 집이라 방이 많았어.”
“….”
“그 친구의 형수가 신혼여행 와서 남의 집에서 묵는 거 아니라고 여관방을 잡아 줘서, 밤에 여관에 가서 잤지. 서해에서 일출 보고 가니까, 결혼 축하한다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잔치 음식을 차려 놓았더라고.”
“좋은 분들이셨어.”
어머니가 말했다.
“신혼여행이 아닌 다른 데서 만났다면 더 좋은 분들이셨겠지만.”
“어차피 옛날은 지금과 달라서 지금처럼 해외니 뭐니 생각도 못 했어. 해외에 나가려면 특별한 사람들이 허가를 받아야 했으니까. 좀 여유 있는 사람들은 제주도나 경주에 가기도 했지만 말이야.”
아버지가 변명했다. 진혁이 말했다.
“그럼 황혼 여행을 가면 되겠군요.”
“황혼 여행?”
“유럽에 가고 싶어 하셨잖아요? 이번 가을이나, 연휴 때 다녀오시도록 보내드릴게요.”
“이런, 진혁아. 지금 이번에 거제도에 온 것만으로도 충분해.”
진혁이 웃었다.
“어차피 이번 추석 때 가게를 쉬신다고 하셨잖아요? 아예 진희도 같이 데려가요.”
“그게 무슨 황혼 여행이야? 부부 둘이 가야 황혼 여행이지.”
“어머, 딸내미가 같이 가면 나야 좋지. 그런데 진희가 가고 싶어 할지는 모르겠다, 얘. 걔도 일정이 있잖니.”
아버지가 아이스박스를 메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차를 향해 걷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말했다.
“황혼 여행이니 뭐니, 말만 들어도 고마워.”
장은효는 아들의 양손을 꽉 잡고서 말했다.
“네가 건강히 살아있고 너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충분히 기쁘단다. 너는 젊고 해야 할 일도 많은 사람이니까, 네 일에 집중해. 엄마랑 아빠는 충분히 알아서 할 수 있단다.”
진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
“아, 내일 촬영 방향에 대한 회의를 한다고 빨리 들어오래요.”
“그럼 서둘러 가야겠구나.”
아버지는 차를 운전해 진혁을 숙소 앞에 데려다주었다. 진혁이 괜찮다며 사양했으나 부모님이 강권했다.
“회의 때문에 빨리 가봐야 한다며.”
“두 분 묵고 계신 숙소를 보고 가려고 했는데요.”
“내일 보러 와, 내일.”
“그래요.”
차를 타고 출발하는 부모님을 보며 진혁이 손을 흔들었다.
두 분이 나누는 이야기가 얼핏 들려왔다.
“여보, 같이 와 줘서 고마워.”
장은효가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이 오자고 해서 왔나? 아들이 불러서 왔지.”
두 분은 아주 즐거워 보였다.
‘이곳으로 부르길 잘했어.’
부모님의 새로운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진혁은 어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타르트 가게의 주인 부부에게 조금 친절해지기로 마음먹었다.
◈ ◈ ◈
제작진은 회의를 위해 펜션의 바베큐장에 모여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이제 막 시작했어.”
“진혁 쉐프, 식사는 하셨어요?”
“방금 잡은 전갱이 회를 맛보고 왔죠.”
“우와, 대단한데.”
“진혁 쉐프가 먹게 따로 고기 한 그릇 빼놨네. 좀 식긴 했는데.”
주영모 쉐프가 잘 구워진 삼겹살을 한 접시 내밀었다. 진혁이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셨습니까?”
“오늘 그 사장님 있지, 멘탈이 완전히 깨진 것 같더라고요.”
“맞아, 촬영을 진행할 수는 있을지 몰라.”
“중간에 그만하신다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분위기도 좋지 않고.”
“오후에도 이야기를 좀 해봤어야 했는데.”
“지금 조금 늦기는 했는데, 찾아뵙고 저희 입장을 한 번 말씀드리려고 해요. 오프더레코드로, 한 번 정도는 얘길 해야 할 거 같은데.”
“맞아. 우리가 해치러 온 것이 아니라 도와주려는 게 목적이잖아요. 그걸 알려주고 싶은데, 진혁 쉐프가 같이 가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괜찮으세요?”
메인 작가의 제안에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같이 가는 게 도움이 된다고요?”
“예. 메뉴를 개선하거나 하는 데에 전문적인 의견을 주실 수 있으니까요.”
“좋습니다. 같이 가죠.”
주영모가 크게 기뻐했다.
“그래, 애정이 있고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냉정하게 말하는 거야. 다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고.”
진혁은 자신이 없는 동안에 주영모와 다른 제작진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지금 출발하죠.”
◈ ◈ ◈
촬영 팀이 철수한 후부터 타르트 가게의 사장 부부는 침울해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기운 없이 앉아 있던 아내, 이남희가 남편에게 따지고 들었다.
“여보,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이도 많지 않은데 갑자기 요실금이 온 거야?”
“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오싹오싹하고 무섭더니, 으으….”
사장이자 남편인 김춘배는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양팔로 자신을 껴안았다. 오늘 밤에는 분명히 악몽을 꿀 것이다. 지금도 그 형형한 눈동자가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몸이 허해서 그런 거 아니야? 이번 일이 잘 되어야만 하는데. 굿이라도 해서 잡귀를 떨칠까?”
걱정보다는 비꼬는 말투였다. 남편은 눈치 없이 응대했다.
“떽! 굿을 하려면 몇천은 들 텐데 지금 그럴 돈이 어디에 있어! 지금 지붕 수리할 돈까지 전부 가게에 투자했잖아. 가게가 잘 돼야만 한다고.”
이남희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육지 젊은 애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했고 가격도 고급스럽게 했는데 왜 이리 손님이 없나 몰라.”
그녀는 타르트 가게를 열기 전에 제과제빵 잡지 과월호를 몇 권 구매해 남편과 함께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제일빵집’이니 뭐니 하는 촌스러운 플라스틱 간판을 내걸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여보, 서울서 온 그 제빵사한테 많이 물어보라고. 젊은 사람이고, 가게도 잘 되고 있다잖아. 꼭 군인 출신처럼 절도가 있는데 빠릿빠릿하고 뭘 많이 알고 있으니 말이야.”
이남희가 하는 말에, 김춘배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여보, 그 사람들은 우리한테 관심이 없어.”
그는 자신이 마음속 깊이 느끼고 있는 두려움이 그 젊은이에게서 왔다는 사실은 애써 언급하지 않았다. 접근하고 싶지 않았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무서운데, 그 사실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그냥 우리를 비웃고 괴롭히려는 거라고.”
춘배가 중얼거렸다.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흘리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이름도 널리 알려지고 돈도 많이 벌게 될 거라고, 걱정하지 말자고 했잖아. 이제 퇴직금을 다 써버렸으니 다른 걸 할 수도 없어. 우리는 완전히 망했다고! 당장이라도 전화해서 촬영을 중단하자고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그때 두 사람이 있던 가정집의 문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온 것이다.
“누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