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4화
“전에 이렇게 배를 타 보신 적이 있으세요?”
“아, 너는 모르는구나? 너한테는 이모부가 되는, 내 셋째 형부가 결혼 전에 거제도에서 근무하셨어. 연애할 적에 나랑 셋째 언니랑 돌아가신 부모님을 초청해서 와본 적이 있단다. 그것도 벌써 30년 전이네.”
어머니는 바다 저 멀리 수평선을 보며 말했다.
“세월이 참 빠르지? 너는 태어나기도 전이야. 내가 아직 너희 아버지를 만나기도 전의 이야기야.”
진혁은 어머니가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보다도 더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일들은 알지 못했다.
이제는 희미해진 주름이 깊어지며 어머니의 얼굴에 미소를 그렸다.
“내가 당신을 거제도 갔다 오고 나서 만났지?”
“셋째 이모부가 소개시켜줬잖아요, 소망시에 사는 친구가 있다고.”
“어떻게 인연이 그렇게 닿았나 몰라.”
어머니가 옛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이에 아버지는 옆에서 묵묵히 낚싯대를 조립했다. 길게 쭉 뻗은 낚싯대 끄트머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휘청거렸다.
바다 한가운데 기기괴괴한 모양의 돌바위섬이 두엇 보였다. 흙이라곤 한 톨도 없어 보이는 바위섬은 무성한 해송(海松)으로 뒤덮여 있었다. 진녹색 잎사귀들은 바닷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처럼 함께 흔들렸다. 나무들로 가득한 섬이라니,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여기가 외도요, 외도. 이곳에서 참돔을 잡을 것이외다.”
선장이 억센 말투로 말했다.
그르렁거리던 모터가 멈추고, 배가 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선장이 뱃전 너머로 닻을 던지자, 밧줄이 풀려나가다가 멈추었다.
구름이 점차 흐려지며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인자 여서 하믄 되어!”
선장은 아이스박스에서 검은 점이 콕콕 박혀 있는 분홍색 벽돌을 꺼냈다. 그는 식칼을 꺼내 납작한 정육면체 모양의 벽돌을 절반으로 쪼갰다. 반으로 갈라지며 새우 향이 훅하고 풍겨왔다. 수백, 추천 마리의 새우를 각진 통에 얼려 놓은 것이었다.
“여 미끼 있수다, 싸게싸게 가져가시요.”
그는 한 사람당 하나씩, 붉고 파란 플라스틱 바구니 위에 새우를 한 줌씩 쥐어 듬뿍 올려 주었다.
그리고 낚싯바늘에 미끼를 어떻게 끼우는지 시범을 보여주었다.
“새우를 꼬리부터 끼워서 동그랗게 말아. 끝까지 집어넣어. 그려, 그렇게 하는 겨.”
은빛 바늘은 날카로운 바늘 끝과 미늘까지 전부 새우 속에 숨겨져 보이지 않았다.
“그기 아들이 부모님 해 드리지! 바늘에 손 찔리지 않게 조심혀. 미늘이 거꾸로 있으니 찔리면 위험해.”
“내 낚시를 한 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닌데, 내가 하믄 되지요.”
아버지는 자신만만하게 새우를 바늘에 끼웠다. 아버지가 한 마리를 끼우고 나서 고개를 들었다.
“여보, 내가 해 줄 테니 이리 줘.”
어머니가 쓸 루어 낚싯대 끝 갈고리에 낚싯바늘을 달아주던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옛날에는 이 줄을 일일이 묶었는데 요즘에는 고리가 생겨서 편하단 말이야.”
“그래요?”
“한 번 묶어서 돌리지 않으면 줄이 터져 버리니까, 아니 끊어져 버리니 말이지. 그걸 조심해야 했거든. 이제는 이 쇠고리만 걸면 되니 얼마나 편하냐.”
아버지는 진혁의 루어 낚싯대에도 바늘을 달아 주었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에이, 괜히 하다가 찔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냐.”
‘안 찔리는데요.’
“벌써 다 했습니다, 아버지.”
“아이구, 빠르기도 해라.”
아버지가 낚싯대에 바늘 줄을 끼우는 사이, 진혁은 어머니의 낚싯대에 주렁주렁 달린 세 개의 바늘에 새우를 전부 다 끼워주었다.
“우리 아들이 원체 손재주가 좋아요. 후딱후딱 배운다니까.”
파도가 깊지 않고 잔잔했다. 멀리서 온 바람은 배를 감아 돌고서 다시 육지 쪽으로 흘렀다. 줄을 내려본 선장이 중얼거렸다.
“겉에는 조용해도 속물이 아주 세네, 봉돌 이거이 저까지 흘러가는 것 좀 봐라.”
진혁은 주변에 무엇이 있는가 살폈다.
바다는 생각보다 더 깊었다.
해저에도 육지와 다르지 않은 지형이 존재했다. 크고 작은 언덕과 얕고 깊은 골짜기 사이로 크고 작은 물고기들과 이름 모를 해양 생물들이 돌아다녔다.
자유롭게 물속을 유영하며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저마다 먹이를 찾아 먹기도 하고, 포식자에게 쫓기기도 하느라 바빴다.
‘이쪽도 바쁘네.’
한 몸처럼 움직이던 조그마한 물고기떼 중 몇 마리는 뒤떨어져 저보다 큰 물고기에게 삼키어졌다.
그 사이에서 배 위에서 드리내리운 낚싯바늘이 먹잇감을 찾아 출렁거린다.
선장이 야심만만하게 말했다.
“어제는 속물이 따뜻했으니 많이들 올라와서, 오늘은 참돔이 많이 낚일 거라.”
그가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색 플라스틱 통에 새우 벽돌을 통째로 넣더니 바다에 던져넣었다. 녹은 새우가 물길을 따라 흩어지며 물고기를 꾀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말없이 수면을 응시하던 아버지가 말했다.
“은퇴하면 어디 바닷가에 내려가서 고즈넉이 낚시나 할까 했거든.”
처음 듣는 아버지의 은퇴 후 소망에 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마치 무림인의 꿈과 닮아있었다. 강호의 은원을 정리하며 금분세수를 무사히 마치고, 평범한 촌부가 되어 농사나 짓겠다는 소망처럼 보였다.
“낚시를 그렇게 좋아하시는지 몰랐습니다.”
“나도 네가 낚시에 관심이 있는지 몰랐다. 어렸을 때는 갯지렁이니 지렁이가 징그럽다고 그렇게 싫어하더니만.”
“이제 철이 든 거죠.”
“하하하.”
갈매기가 끼룩끼룩 울면서 섬을 향해 날아갔다. 어머니는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한 잔씩 종이컵에 담아 나누어 주었다. 진혁에게 주는 커피는 특별히 후후 불어주었다.
“한 잔씩 마시면서 해요.”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때 선장이 어머니가 걸어 놓은 낚싯대를 보고 손가락질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기 좀 봐라, 물었다! 물었어!”
낚싯대 끝이 파들파들 떨린다. 한 손에 커피가 가득한 종이컵을 든 아버지가 말했다.
“여보! 언능 끌어올려!”
어머니는 양손에 종이컵에 가득 든 출렁이는 커피를 들고 순간적으로 머뭇거렸다.
“저 주세요.”
진혁은 망설임 없이 나아가 낚싯대의 릴을 감아올렸다. 투명한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물속에서 발버둥 치는 물고기의 힘이 느껴졌다. 진혁에게는 극히 미미한 힘이었다.
수면 아래에 시허연 그림자가 보이자, 그 크기에 선장과 아버지가 탄성을 질렀다.
“크다!”
“대물이야!”
“35cm는 넘겠네. 사진 한 방 찍자구.”
아버지는 파닥거리는 물고기의 아가미에 손을 집어넣더니 능숙하게 입에서 낚싯바늘을 뺐다.
“어망에 넣어놨다가 회를 치죠.”
“허허! 시작부터 느낌이 좋네.”
이번에는 어머니가 직접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웠다. 제일 먼저 대물을 낚아 올린 그녀가 들떠서 말했다.
“이렇게 크고 힘도 센데, 우리 진혁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진혁은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바닷물 깊숙한 안쪽 온도를 높여 좀 더 많은 물고기들이 활발하게 돌아다니도록 하지도 않았고, 살기를 퍼트려 물고기들을 제압한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이 물고기를 많이 낚을 수 있게 도울만한 방법이 분명히 더 있긴 할 텐데.’
그는 그냥 배낚시를 하는 어머니 옆에서 물고기를 끌어올려 주기만 했을 뿐이다.
자신의 능력 중 극히 일부도 발휘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자, 진혁은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대로 손맛을 느낄 수 있게 봐 드려야겠다.’
“다 같이 와 있으니 좋구나. 진희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실력 키운다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 어린 애들이 솜씨가 좋다면서 지지 않겠다고 말하더라. 주영모 아카데미에서 이것저것 배워서 좋대. 나 어렸을 때는 그런 시설이 없이 어깨너머로 배웠어야 했는데 말이야.”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야 편하게 배웠죠.”
낚싯대를 한참 동안 드리우던 가족들은 저마다 한두 마리씩 물고기를 낚았다.
“우리 아들, 잘 잡네!”
진혁은 놀래기를 두 마리 잡았고, 아버지는 참돔을 한 마리 잡았다. 의외로 어머니가 전갱이를 여섯 마리나 잡아 어망을 꽉 채웠다.
“전갱이는 어머니가 꽂은 새우를 좋아하나 봐요.”
“초보자의 행운인가 봐, 호호호!”
선장이 작은 접이식 탁자를 펼치더니 접시를 꺼냈다. 그는 어망에 들어 있던 물고기를 하나씩 꺼내고 손질하기 시작했다.
“원체 배에서 갓 잡아서 먹는 막썰이회가 제맛이지유. 몇 마리나 썰까?”
아버지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일단 참돔하고 제일 큰 전갱이 한 마리를 썰어주시면 됩니다.”
선장은 아주 익숙한 솜씨로 망설임이라고는 없이 칼을 놀렸다. 그가 스윽스윽 생선 머리를 썰어 바다로 던지자, 다른 고기들이 그쪽으로 몰려들었다.
“쌈장하고 초고추장은 예 있수다. 거, 전갱이는 생양파도 같이 먹는 게 더 맛있구려.”
진혁은 나무젓가락으로 전갱이회를 집어 입에 넣었다.
두툼하게 썬 생선 살은 탄력 있고 찰졌다. 비린내라고는 전혀 없이 쫄깃한 식감을 즐기며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거 맛있네요.”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이는 맛이다. 아버지 역시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렇게 신선한 회에 맛을 들이면, 이제 양식 물고기는 쳐다도 못 보지. 거, 선장님도 같이 드십시다.”
“흐흐.”
선장은 얇게 썬 생양파 조각을 하나 집더니, 그걸로 된장을 듬뿍 찍었다. 어슷하게 썬 녹색 고추까지 올리고 나서야 회 한 점을 집어서 그 위에 올린다.
“이렇게 먹는 게 진짜지유.”
진혁은 선장을 따라서 된장을 찍어 먹어보았다. 생양파의 알싸하고 아삭한 식감과 고추의 톡 쏘는 맛이 더해지자, 도톰한 살점에서 더 감칠맛이 났다.
진혁은 부모님이 어떻게 드시나 흘깃 살폈다.
어머니는 초고추장을 좋아하였고 아버지는 쌈장에 생양파를 얹어서 회를 찍어 드셨다.
“원래 두 분이 입맛이 다르세요?”
임운정이 옛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맞아. 옛날에 처음으로 집에 회를 포장해 왔을 때, 집에 초고추장밖에 없어서 깜짝 놀랐지. 당신이 회는 당연히 초고추장이라고 우겨서 당황했잖아.”
“우리 친정집에서는 원래 그렇게 먹는다고요.”
“지금은 쌈장이랑 초고추장 둘 다 올려놓고 먹잖아.”
“식당들도 다 그렇게 해요.”
진혁은 화제를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강력하게 느꼈다. 그가 어머니를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바로 먹으니까 신선함이 다르긴 다르네요. 어머니께서 잡으셔서 더 맛있습니다.”
“어머나!”
장은효가 깔깔대며 웃었다.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말을 잘하게 됐을까.”
전갱이회를 잔뜩 먹은 임운정이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너, 여기까지 내려와서 뭔 일을 한다더니. 그건 잘 되었냐?”
“잘 되긴요, 무슨. 기본도 안 되어 있는데 욕심을 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진혁이 혀를 찼다.
“기본이라, 우리 아들이 생각하는 기본은 어떤 건데?”
“최소한 빵을 낼 때는 제대로 익혀서 내야죠.”
“익지 않은 빵을 내는 제빵사가 있었어?”
“안 익은 줄도 모르더라구요. 구울 때부터.”
“저런. 그래서 잘 가르쳐 줬어?”
진혁이 웃었다.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