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22화 (322/656)

제 322화

“저걸 우리가 먹어야 한단 말이지.”

상황실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진혁이 턱을 괴고서 말했다.

“베이킹을 얼마나 배우셨다고 했던가요.”

“자격증을 취득하시고 바로 가게를 오픈했다고 들었습니다.”

MC 지재언이 설명했다.

‘그러니까 가게를 열기 위해서 자격증을 취득한 거군.’

임진혁이 생각하는 동안, 주영모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분은 사실 지금 가게를 열어서 경영하는 것보다 병원 치료가 필요하신 것 같은데. 아까 보니 심약하고 스트레스에 약해 보이시던데. 자영업을 한다는 건 수많은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된다는 것과 같다고. 고작 카메라 한두 대 앞에서 벌벌 떨면서 겁을 먹는 분이 하시다가 건강이라도 상하면 어쩐다.”

타르트 가게 사장을 염려하는 주영모와 달리, 임진혁은 차갑게 말했다.

“지금 건강보다 파산을 걱정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아직 타르트를 반죽하는 중이다. 사장 부부는 사이좋게 타르트를 만들고 있었다. 부인이 재료를 가져오면 남편이 주물럭거린다. 하지만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하며 이것저것 물건을 떨어뜨리고 있다.

MC 지재언이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상권 망한 동네에서 맛없는 걸 느리게 만들어 비싸게 파니까요.”

비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임진혁의 평가를 들은 주영모가 놀란 눈을 했다.

“임진혁 쉐프….”

그는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려다가 다시 굳게 다물었다.

김산호 PD는 그 모습을 관찰하며 흥미진진하게 카메라를 돌렸다.

‘이거, 대본과는 완전히 달라. 캐릭터가 전혀 다르게 잡히는데?’

그는 모셔온 쉐프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일단 갑자기 사장이 바지에 지린다는 것부터 예상외의 상황이었다. 3살짜리 꼬마애도 아니고, 비뇨기과 요실금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성인 남성이 카메라 앞에서 방광에 대한 제어력을 잃는다는 경우의 수는 작가들이 미리 짜놓은 대본에서 한참 벗어났다.

심지어 그 후에 벌어진 일도 예상과는 달랐다. 당연히 촬영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거부해야 할 사장은 넋이 나가 있고, 부인은 남편을 배려하거나 방금 장면을 빼달라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지금 당장 타르트를 만들겠다며 엉뚱한 열성을 보였다. 이상 성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특이한 행동이었지만 담을 것은 있었다.

‘이렇게 느리게 만들면 오히려 이야기가 된다. 잘하는 사람보다 못하는 편이 나아. 실력이 좀 못하더라도 의욕이 넘친다면 열심히 배울 테니까, 촬영 전후 실력 차가 확실히 나아져서 좋은 그림이 될 거라고. 빠른 속도로 편집해버려야지.’

“작가님들, 우리 여기 촬영하는 사이에 잠깐 긴급회의 좀 합시다.”

“넵!”

◈          ◈          ◈

주인 부부가 타르트를 만들고 출연진들이 그를 평한다. 워낙 오래 걸렸기 때문에 중간에 자를 분량도 많았다. 그 틈을 타서 작가진과 PD들이 긴급회의를 하였다.

“캐릭터가 완전히 다르잖아요? 주영모 쉐프님이 사랑이 넘치는 엄마 역할이고, 임진혁 쉐프는 엄격하고 현실감 넘치는 아빠 같아.”

“그래, 촬영 컨셉을 갈자고. 지금 케이크 맛도 문제고, 접객 태도도 문제고, 홍보하는 것도 문제고. 간판도 괴악해. 케이크 맛이랑 접객 태도는 쉐프님들에게 맡겨둔다고 해도 홍보랑 간판까지 커버하실 수 있을까?”

“주영모 베이커리는 전통적인 신문 광고를 주로 하지만 <해와 달>은 달라요. 완전히 SNS에서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켜서 유명해진 맛집이라, 진혁 쉐프가 도와주지 않을까요?”

“저희가 알아둔 간판 업체가 있어요. 만일 사장님 두 분이 바꿀 마음을 먹는다면, 쉐프님들이 넌지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거죠.”

막내 작가가 말했다.

“그런데 지금 저기 제일 큰 문제는 그게 아닌 거 같아요.”

“응?”

“그, 부인 되시는 사장님이 뭔가 사차원이에요.”

“아, 그건 그랬지.”

“남편 몸보다 가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같던데? 외부 시선에는 민감한데 자기 가족은 소홀히 하는 게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어. 미리 나와 있지도 않고.”

“그건 남편 쪽도 똑같지 않냐? 조리복 아니고 양복 입고 나와 있었잖아.”

“자, 자. 우리는 지금 부부 갈등 다큐멘터리를 찍는 게 아니야. 적자투성이인 타르트 가게가 회생하도록 도우며, 동시에 페이스트리 쉐프 캐릭터를 이용해 홍보를 겸하는 거지. 결과적으로는 시청률을 올리는 게 최종 목표잖아.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알잖냐?”

“예!”

“그럼 방향은 대강 잡혔지?”

“네.”

메인 작가가 당부했다.

“지금 이게 첫 번째 촬영이잖아요. PD님 말씀하신 대로 지금 우리 프로그램이 부부간의 갈등에 주목하면, 프로그램의 방향성 자체가 흔들릴 수가 있어요. 순식간에 아침 드라마 된다고.”

“촬영하는 도중에 최대한 개인적인 결점은 강조하지 않는 쪽으로 가자고.”

“이 사람들이 지금 일반인이라서 TV에 자기가 나오고 온갖 사람들이 자기 얼굴을 알아본다는 게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는지 전혀 모르긴 하죠.”

“자기한테 몇백만 명씩 안티가 생긴다는 걸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고.”

“어디까지나 일반인이야, 일반인.”

“그럼 저 먼저 촬영 현장으로 돌아갈게요.”

“그래라.”

상황실로 먼저 향한 책임 PD 정상현은 두 쉐프와 MC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분위기가 왜 이래?’

임진혁이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레시피를 외우지 못했군요.”

“이미 알고 있지만, 확인을 위해서 들여다보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할 때마다 계속해서 레시피를 들여다보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설탕을 계량하기 전에 과일 맛을 보지 않다는 점에서 마이너스입니다.”

“그, 그야 그렇지. 초보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야.”

“하지만 자신의 가게가 있고, 가게에 나온 타르트를 손님에게 제공할 예정인 이상 기본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일은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당도가 다 달라요. 설탕을 얼마나 넣을지 결정하기 전에 과일 맛을 확인하는 건 과일 타르트를 만들 때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만.”

메인 PD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왜 주영모 쉐프님이 혼나는 분위기야?”

“진혁 쉐프님이 하나씩 지적하는데, 계속 지적만 쌓이는 거예요. 칭찬이 하나도 없고 나쁜 것만 주르륵 쌓이니까 분위기가 엄청나게 싸늘해져서 지재언 쌤이 주영모 쉐프님한테 손짓 발짓으로 헬프 요청을 했거든요. 그래서 주영모 쉐프가 그래, 엉망이다. 그런데 그럴 수도 있다. 이제 나아질 거라는 식으로 어떻게든 커버 쳐 보려고 했어요.”

카메라맨이 오디오에 잡히지 않게 입을 가리고서 작게 소곤거렸다.

“그런데?”

“도저히 커버가 안 되나 봐요. 그리고 사실 주영모 쉐프도 커버치고 싶지 않나 봐요.”

“….”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막내 작가가 말했다.

“막장이면 뭐 어때! 나아지기만 하면 되지. 비포 애프터가 극명해지면 괜찮을 수도 있어.”

“그래, 아직 초반이니까.”

마침내 타르트 굽기가 끝나고 시식 시간이 되었다. 상황실을 나와 타르트 가게를 향해 걸어가면서 임진혁이 말했다.

“시식 안 하면 안 됩니까?”

“먹어봐야 평가를 하지.”

“지금 만드는 것만 봐서도 개선할 부분이 많습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임진혁 쉐프. 오늘따라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는군.”

주영모 쉐프의 말에 진혁이 대답했다.

“사람 입에 들어갈 음식을 만드는데 책임감이 있어야죠. 나는 내 음식이 사람을 죽이거나 상하게 하지 않도록 제대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본디 선량하고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던 청년인데 말이지.”

“장인이란 누구라도 자기만의 고집이 있는 겁니다. 젊은 나이에 쿠프 드 몽드였나요? 그 국제 대회에서 한국대표로 우승하실 정도니 프라이드가 있으실 수밖에 없죠. 또 사람이 자기 가게를 꾸려나가면서 직원을 관리하다 보면 사람이 어느 정도 엄격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MC 지재언이 진혁을 옹호했다.

“와, 이거 또래라고 진혁 쉐프님 옹호하시는 것 좀 봐요.”

“또래라서는 아니고. 하하하하. 저랑 동갑입니다.”

‘정신 연령은 한참 다를 텐데.’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별다른 말 없이 멀뚱멀뚱하니 서 있는 진혁을 보고 지재언이 웃음을 터트렸다.

“와, 이런 반응 신선합니다!”

지재언은 어렸을 때부터 아역 배우로 유명하다가, 성인이 되어 아나운서로 데뷔하며 방송 진행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지재언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은 이미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유명인이다.

누구라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유명세에 대해서 모를뿐더러 관심도 없는 진혁은 멀뚱멀뚱하니 서 있었다.

“처음부터 쿨하다고는 생각했는데 정말 진심이었군요?”

“뭐가요?”

“저랑 친해지고 싶지 않습니까?”

진혁이 반문했다.

“제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유 말입니다만, 출연자들의 베이킹 실력 향상이 목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영모가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핫! 그렇지, 동갑끼리 친목 도모하려고 출연한 건 아니지. 어디 동갑 아닌 늙은이는 서러워서 살겠어?”

지재언이 자연스럽게 웃으며 받아쳤다.

“그럼 여기 오신 목적인 맛부터 봅시다. 사장님, 부탁드립니다~!”

여사장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타르트를 받쳐 들고 나왔다. 남편 되는 이는 뒤에서 창백한 표정으로 벽을 짚으며 걸어 나왔다.

“몸이 안 좋은지 온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네요.”

“아니, 그러면 병원에 가시는 편이 좋지 않습니까?”

“촬영팀 의료진이 확인했는데 따로 이상은 없다고 합니다. 병원에 방문해서 정밀 검진을 하도록 추천했는데 그건 거절하셨고요.”

주영모가 속삭이듯 물어보자 MC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허어, 의욕은 있는데 말이지.”

주영모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먼저 드셔보시고 이야기해주세요.”

여사장이 자랑스럽게 타르트를 내밀었다.

“이것 참 비주얼이 화려하군요!”

타르트 생지 위에 반듯하게 솟은 블루베리는 산처럼 뾰족했다. 시럽을 발라 반짝반짝 빛나는 보랏빛 열매가 몽글하니 가득 쌓인 모양이 아주 예뻤다. 지재언이 감탄사를 발했다.

“이렇게 아름다운데 먹으면 없어지다니, 참 아까운 일이에요.”

“타르트는 보통 위를 평평하게 만드는데 특이하게 위를 몽블랑처럼 가득 쌓았군.”

주영모가 짧게 평했다.

“그럼 이제 잘라주시겠습니까?”

지재언이 말하고 여사장이 칼을 들어 올리던 참이었다. 주영모가 빙긋 웃었다.

“그러고 보니 임진혁 쉐프는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서도 칼질이 남다르다는 평이 있었지. 지금 직접 잘라 주면 어떤가?”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가게에서 판매하실 때 제가 잘라드릴 건 아니잖습니까. 직접 자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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