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19화 (319/656)

제 319화

“그거랑 지각이 무슨 상관입니까?”

“보육원이 부천에 있으니까. 첫차를 타고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려. 수업이 끝나면 보육원에 돌아가서 보육원의 어린 애들을 돌봐야 하니 오전 시간밖에 없고.”

진혁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애들이 느린 건, 뭐랄까. 임진혁 쉐프는 아버지와 함께 어렸을 때부터 빵을 계속 만들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애들은 그래 봬도 다른 학생들보다 빠른 편이라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빵을 만든 적은 없지만,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

주영모는 서랍에서 수저를 꺼내 휴지 위에 올려놓았다.

훤히 보이는 주방 안쪽에서 주인이 돈가스를 튀기는 소리가 지글지글 들렸다. 코를 간지럽히는 튀김 냄새는 향긋하고 유쾌했다. 기름부터가 신선하다.

클래식 음악처럼 잔잔하게 들려오는 요리 소리를 들으며 진혁이 생각했다.

‘돈가스가 의외로 맛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주영모가 물었다.

“<골목 베이커리>에는 참여하기로 했나?”

“주영모 쉐프님께서 추천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자네가 있으면 완벽해. 완전히 드림팀이라고.”

“왜 추천하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왜라니!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주영모가 간단하게 답변했다.

“자네가 선량한 사람이니까.”

“예?”

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말이라서 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주영모는 그 반문을 ‘이야기를 계속해보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실력이 뛰어나지만 욕심이 없지. 자신이 혼자 갖고 있어도 좋을 것들을 자꾸 나눠주려고 해. 안토니오에게 알려준 레시피도 그렇고, 이번에 공개한 모델링 초콜릿 레시피도 그래.”

“그런 이유로 추천하신 겁니까.”

“그래. 자네 같은 사람이야말로 고통받고 있는 요식업자들을 만나서 진심으로 도와줄 수 있을 거야.”

‘니가 직접 하면 되잖아?’

진혁이 멀뚱멀뚱하게 쳐다보았다.

“직접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프로그램상 페이스트리 쉐프는 두 명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나쁜 경찰 착한 경찰 역이라고 해도 좋겠군. 그리고 주방에서 내가 자네만큼 성격이 좋지가 않아.”

주영모가 한숨을 곁들여 중얼거렸다.

“말해봤자 늙은이가 옛 시절 호시절이라고 하는 한탄 같아 말하기 꺼렸지만 말일세, 내가 젊었던 시절에는 빵을 만드는 기술이 엄청난 신기술이었던데다가 비밀이라 전수도 잘 안 해줬어. 나는 일본에 혼자 건너가서 어깨너머로 배웠지. 처음에는 주방에 발도 못 들여놓고 몇 년씩 식당에서 먼지 쓸기부터 했단 말일세.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고 빵집을 개업해서, 떠먹여 줘도 제대로 못 배우는 놈들을 보면 그걸 보면 화딱지가 난단 말이야. 그래서 책도 내고 학원도 차리고 했는데, 기술 배우기가 어려운지 모르는 놈들이 당장 기본부터 안 되어 있는 주제에 달랑 자격증 하나 가지고 뭘 안다고 잘난 척하는 걸 보면 저도 모르게 주먹이 나갈 것 같아.”

“그렇습니까.”

진혁은 저도 모르게 옛 생각을 떠올렸다.

문파에 새로 입문한 소년들 역시 마찬가지다. 청소부터 하면서 심부름을 하다가 신뢰를 인정받아야 삼류 심법과 각법이라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재능과 능력, 성실성을 인정받아 직계 제자가 되어야만 비로소 의미 있는 무공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반면 현대에서 ‘기술’과 ‘지식’은 의지가 있는 자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제갈세가에 입문해서 십 년을 공부해야 익힐 수 있는 수준의 산학(算學, 셈에 관한 학문)을 중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물론이다. 재능이 있고 노력한다면 기회는 어디에나 있다.

‘김동진처럼 갑자기 고아가 된 녀석도 제빵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주어진 거지.’

천애 고아가 무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흔한 점소이 따위의 일도 부모님이 신원을 보증하지 않는 고아는 절대로 채용하지 않는다.

납치당해서 살수가 되는 것은 그래도 살아날 기회가 있다만, 혈교에 끌려가 실험체가 되는 경우는 도망칠 방도도 없다.

그에 비하면 현대 한국에서는 최소한의 복지를 제공한다.

‘녀석은 운이 좋아.’

지금 이 시간대에 이 나라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운아다.

잠시 진혁이 딴생각을 하는 동안 주영모가 말을 이었다.

“자네처럼 선량하고 능력 있는 페이스트리 쉐프가 함께 해준다면 큰 도움이 될 걸세. 학생들 도와주는 걸 보면서 알았지. 자네는 천상 교사야, 교사. 뭐가 틀렸는지 바로 파악해서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이라고. 당장 초콜릿 레시피만 해도 직접 개량한 거잖아?”

“저 말고도 직접 키워내신 페이스트리 쉐프 제자들이 많으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물론 그렇지. 직접 출연하고 싶다고 연락해온 녀석들이 없는 건 아니야.”

“그런데 왜 저를 선택하셨습니까?”

이 질문은 어제 백진영과도 나누었던 이야기다. 백진영은 ‘당연히 네가 나오면 TV 시청률이 치솟아 오르니까 그렇지! 네 고정 팬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임진혁은 주영모에게 있어 TV 시청률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자네 같은 사람이 세상에 좀 더 알려져야 한단 말일세.”

‘아, 이런 이유라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순박하고 선량한 이유였다.

‘모처럼 세계 대회 대표가 되었으니 그 영향력을 이용해서 학원을 광고하고 싶다거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아카데미와 베이커리를 홍보할 테니 도와달라던가, 뭔가 그런 이유일 줄 알았는데.’

진혁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르는 사이에 가게 주인이 돈가스를 들고 나왔다. 주영모가 미소지었다.

“그럼 식기 전에 들게나!”

고로케처럼 동글동글한 돈가스가 다섯 개, 기름이 빠질 수 있게끔 1cm 높이의 스테인리스 망 위에 놓여있다. 연갈색으로 바삭바삭하게 튀겨진 돈가스 위에는 파슬리가 점점이 뿌려져 있어 식욕을 돋웠다. 진혁은 나무젓가락을 집어 돈가스를 뒤집어 보았다.

타거나 덜 익은 부분 없이 빛깔이 일정한 것을 보면 제대로 튀겼다.

맞은편에 있는 주영모는 벌써 함께 받은 칼로 돈가스를 자르고 있었다. 진혁은 자르지 않았다.

“오오, 그냥 먹는 건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치즈 돈가스를 한 입, 베어 물자 따끈따끈한 튀김옷이 입안에서 바삭, 소리를 내며 뭉개졌다. 튀김옷 바로 아래에는 두툼한 모짜렐라 치즈가, 그 아래에는 새하얀 돼지고기 덩어리가 씹힌다. 바삭하고 쫄깃하고 다시 쫄깃하다.

‘튀김옷과 치즈가 느끼하니까 일부러 기름기가 없는 부위를 썼군.’

돼지고기는 제대로 된 통짜 덩어리를 손질한 다음, 허브 잎과 소금을 사용해 숙성시킨 것이 분명하다.

진혁은 입에서부터 쭈욱 늘어난 모짜렐라 치즈를 젓가락으로 다시 집어 올렸다.

주영모는 만족스럽게 우물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혁 역시 침묵에 잠겼다.

정말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다. 표정만 봐도 어떤 것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채를 썬 양배추는 신선하고, 미소 국물은 맑다. 하지만 둘 다 돈가스에는 비할 데 없는 맛이다.

고슬고슬한 흰밥까지 싹 비우고 나자, 가게 주인이 작은 접시를 내왔다.

“이건 덤이에요.”

달걀 껍질을 톡 깨자 말끔하게 벗겨졌다. 반들반들하니 간장에 물든 흰자를 보며 진혁이 말했다.

“삶은 간장 달걀이군요?”

“오늘은 맛있게 됐으니까 한 번 드셔보세요.”

진혁은 젓가락으로 껍질 벗긴 달걀을 절반으로 갈랐다. 겉면에는 간장이 스며들어 있지만, 안쪽은 흰색이다. 완전히 익지 않은 반숙 노른자는 찐득하니 맛있어 보인다.

한 입 넣어보고 진혁이 감탄했다.

“맛있네요.”

“임진혁 쉐프님이 맛있다고 하시니 영광이에요!”

“나도 맛있게 먹었네만.”

“당연히 주영모 쉐프님께서 계시니까 서비스로 드린 거죠. 호호호!”

식사를 마치고 주영모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이 먼저 계산했다.

뻘쭘하게 카드를 집어넣으며 진혁이 말했다.

“이제 슬슬 제가 식사를 대접할 수 있게 해주시죠.”

“괜찮아, 괜찮아. 20대는 그냥 얻어먹으면 돼.”

주영모는 아무렇지도 않게 진혁을 어린애 취급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진혁은 왼쪽 위에 붙어 있는 CCTV 카메라를 힐끔 쳐다보며 혀를 찼다.

‘저것만 없었어도 카드를 바꿔치기해서 계산하고 다시 돌려받으면 끝나는데.’

고장 낼 수도 있다. 하지만 모처럼 맛있는 돈가스와 달걀을 맛보게 해준 가게 주인의 비품을 망가뜨리는 것은 주객전도다.

“진혁 쉐프는 대단하다고. 이렇게 밥을 사주려고 할 때 얻어먹지 않으려고, 진심으로 계산하려고 하는 후배는 처음이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뭣 때문에 쓸데없이 빚을 진단 말인가? 진혁이 반문하자 주영모가 부드럽게 웃었다.

“이래 봬도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해. 자네처럼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선량한 사람과 같이 일하게 되어 기쁘네. TV 프로그램 출연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게나.”

“…촬영하는 만큼 여기서 강의하는 시간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만.”

“당연한 소리를. 자네가 빠지는 만큼 내가 같이 봐줄 생각이야.”

‘원장 직강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사실 제가 이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봐주는 것처럼, 저희 직영점에서 페이스트리 쉐프로 자라날 인재들을 따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가르칠 시간이 줄어들어서 좀 걱정입니다.”

주영모가 흔쾌히 대답했다.

“일정을 조정해보지. 내가 가서 강의할 수 있으면 하겠네.”

“하하! 감사합니다.”

진혁은 이 기회를 틈타 실리를 챙긴 데에 만족했다.

“업주들 다들 발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니까 지나치게 날카롭게 행동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그는 주영모가 흘린 혼잣말을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          ◈          ◈

임진혁은 오후에는 다시 <해와 달>로 돌아와 작업을 했다. 새벽과 오전 수업을 하고 왔어도 전혀 지쳐 보이지 않는다. 낯익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면서도 며칠 치의 반죽 작업을 순식간에 마쳐버리는 속도에, 다른 직원들이 혀를 내둘렀다.

“평소에도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두 배는 더 빠른 것 같아요.”

“설마 일부러 느리게 하고 있었던 걸까?”

“그러실 이유가 없잖아. 오늘은 유난히 컨디션이 좋으신가 보지.”

직원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은 진혁은 손을 움직이는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영업을 마친 밤에는 다시 백진영네 집에 방문했다.

“한 편만 보면 된다면서? 왜 또?”

혼자 살고 있는 진영이 반기며 물었다.

“주영모 쉐프가 나한테 부탁하려고 했던 역할이 내 생각과 달라. <착한 조언자> 역을 맡기려고 하니까,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준비를 좀 해야겠어.”

진혁은 자신이 그리 인내심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행동하면 된다니? 그냥 평소 네 모습 그대로 행동하면 되지.”

“내 모습이 어떤데?”

“누구한테나 공평하게 친절하잖아.”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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