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5화
유키코가 심호흡을 했다.
“진혁 쉐프님에게 프랜차이즈 제안이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원래 가게에 집중하신다고 하면서 거절하셨죠.”
“그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이렇게 하드하게 교육시키면서까지 갑자기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싶어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돈이 필요하세요?”
언뜻 들으면 시비조처럼 들리지만 그렇지는 않다. 유키코는 만일 돈이 필요한 거라면 자기가 가능한 한 보태겠다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지금 돈이 충분히 있어서 사업을 시작하려는 거니까요.”
마리오가 물었다.
“갑자기 사업을 크게 확장하려는 이유가 뭐야? 대회 우승 기념?”
“대회 우승해서 가게 홍보를 하기에 좋긴 한데. 그게 전부는 아니야.”
유키코가 걱정스레 반문했다.
“그럼요?”
마리오가 뒤늦게 김은동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는 빵을 만드는 거랑 빵 만드는 사람을 교육시키는 거, 그리고 빵 가게 운영을 잘 하는 건 전혀 별개의 일인데. 갑자기 일을 크게 벌린다고 하니까 루이 형도 걱정하더라.”
진혁이 웃었다.
“세상 사람들이 맛있는 빵을 많이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 명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정말로 그게 목적이야?”
“진심으로?“
“진짜요?“
“프랑스에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아무 빵집에 들어가도 빵이 맛있더라.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 수준이 안돼.“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리오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잠깐만, 잠깐만. 우리나라 빵의 전체적인 수준을 끌어올리려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거야?“
“응.“
“돈을 벌고 싶다거나,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고?“
“그런 허황된 걸 목표로 하면 안 되지.“
무공을 익힐 때도 마찬가지다.
부유해지고 싶다거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욕망으로 제대로 된 수련을 하는 놈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신의 몸을 제대로 알고 삼재검법을 10성까지 완벽하게 익힌다거나, 암천보를 5성까지 완벽하게 익힌다거나 하는 둥의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 쪽이 더 앞길이 창창하다.
‘자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나서 감당할 수 있는 목표를 규칙적으로 꾸준히, 습관적으로 해온 녀석이라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어야지.’
진혁은 이전에 암천대에서 신입 대원들을 훈련시키는 교관 역할도 맡은 적이 있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어린 소년들이 훌륭한 한 사람의 살수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기획하고 수행하는 데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게 길러낸 제자들은 진혁을 물심양면으로 따랐다. 뛰어난 무공 실력에 부하들을 이끄는 통솔력을 갖추었다는 평판을 바탕으로 그는 유일한 암천대 출신 소교주가 되었다.
진혁은 나약한 현대인들에 맞추어 수정한 자세한 계획표를 보여주었다.
“자, 봐. 3개월간 합숙 훈련을 거쳐서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전수해 줄 거야. 체력을 길러야 하니까 아침에는 조깅도 같이 하고, 능력이 발전할 수 있도록 영양가가 풍부한 식사를 삼시 세끼 제공하고. 자기 전에는 씻을 수도 있게 하고 밤에는 수면 시간을 6시간이나 허용하는 환상적인 환경이지.“
하루 두세 시간의 수면 시간과 하루 한 끼의 식사, 그리고 서로를 죽여야 하는 커리큘럼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국이라고 할 만한 계획이다.
‘단체 급식을 조리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조리 기구와 가스레인지, 조리대에 미리 오행진을 설치해 놓으면 3달간 충분히 체력이 길러지고 집중력이 향상될 거야.’
강호에 이런 수련 시설이 있다면 정파는 물론이고 사마외도의 누구라도 모두 자녀들을 보내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진혁이 말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들은 세 사람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3개월 동안 하루에 10시간씩 빵을 만들 수는 없어.”
마리오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표준 근무 시간은 8시간이에요.”
유키코에 덧붙여 김은동까지 쩔쩔매며 입을 열었다.
“최소한 점심시간 1시간은 보장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일이니까요.”
“이 정도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 가게를 갖고 싶은 사람들은 치열할 거 아니야.”
“특전사 훈련을 시키는 게 아니잖아. 조깅은 도대체 왜 하는 거냐고.”
“기본적인 심폐지구력을 기르는 데 필요해.”
“아니, 그러니까 그게 왜 필요한데?”
“체력이 좋아야 악력을 기르고 악력이 있어야 빵을 만들 수 있어. 수제 반죽을 할 때 글루텐이 잘 형성되려면 반죽하는 손힘이 어느 정도 이상 있어야 하니까.”
마리오와 김은동이 시선을 교환했다.
‘말은 맞는 말인데 말이지. 좀 말려 봐.’
‘이런 프랜차이즈 교육이 어디 있습니까. 무슨 군대도 아니고! 내가 현역으로 있을 때도 이렇게는 안 했는데.’
유키코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임진혁 쉐프님이 지금 하고 싶은 건 프랜차이즈 영업이 아닌 것 같아요.”
진혁이 반문했다.
“예?”
그녀가 입을 열었다.
“프랜차이즈를 열어서 돈을 받고 지원을 해 주는 게 주목표가 아니라, 맛있는 빵을 만들 줄 아는 페이스트리 쉐프들을 단기간에 육성하는 게 1차 목표인 걸로 보여요.”
“아니, 유키코 쉐프님. 지금 이 프로그램은 쉐프를 키우는 게 목적이 아닌데요. 아무리 봐도 꼬마 쉐프들을 죽일 것 같은데요.”
마리오가 끼어들었으나 진혁은 무시하고 이야기를 진행했다.
“둘 다 필요한 일이죠. 페이스트리 쉐프들을 길러내기만 하면 뭐합니까, 일할 데가 있어야 살아남을 테니까요.”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서 심사위원을 하셨던 분 중에 제과제빵 아카데미를 하시는 분이 있어요. 주영모 쉐프님이라고.”
“아, 그분이라면 이번에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에서도 심사위원을 했습니다.”
유키코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진혁 쉐프님에게 중요한 건 프랜차이즈 업소의 개수를 늘리는 게 아니네요. 상권 분석이랑 계약서 등은 조언을 받으신 거죠?”
“변호사의 조언을 받았습니다.”
“예. 이 부분은 손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제일 먼저 하시고자 하는 일은 유능하고 실력 있는 페이스트리 쉐프들을 훈련시키는 거잖아요? 한국에서 이 분야에 제일 뛰어난 사람을 알고 있어요. 아마 진혁 쉐프도 아시는 분이실 거예요.”
김은동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제가 지금 생각하는 그분이요?”
◈ ◈ ◈
“주영모 원장님. 아카데미에 관해서 여쭈어보고 싶다는 분이 질의를 해왔습니다.”
비서가 한 질문은 모호하고 애매했다. 주영모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궁금하면 그냥 다니라고 해. 지금 프랑스 갔다 와서 밀린 일 처리하고 있잖아. 바쁜 거 안 보여?”
“그, 전에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던 분입니다. 임진혁 쉐프님이라고….”
주영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 들어오라고 해!”
그는 사무실 바깥까지 자신이 비서와 주고받은 이야기가 전부 들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밖에서 전부 듣고 있던 진혁은 피식 웃어버렸다.
‘생각보다 나를 좋게 평가하고 있었나 본데.’
진혁은 더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비서는 바로 나와서 진혁을 안내했다.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영모 쉐프님.“
“하하하! 우리 자랑스러운 국가 대표님인데. 당연히 자리를 마련해야지.“
주영모 쉐프는 느긋한 마음으로 눈앞의 손님을 보았다. 한때 심사위원과 경연 참가자라는 입장으로 만났지만, 사실은 제대로 제자로 들여 보고 싶었던 걸출한 인물이다.
“본론부터 바로 이야기하지.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나?“
“아카데미에 관심이 있습니다.“
주영모는 처음으로 임진혁을 1:1로 마주했다.
그는 디저트 서바이벌 예선전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임진혁을 아주 낮게 평가했다. 제과제빵계를 우습게 아는 애송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가 아주 잘못 생각했지.’
임진혁은 계속해서 발전했으며,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기까지 보았다. 그가 현역으로 현장에서 뛸 때는 한국인은 국제 대회에 나갈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대회 출전을 아예 포기했다.
대신 후배들에게 꿈을 맡겼다.
하지만 그가 정성 들여 키워낸 후배나 제자들 중 아무도 세계급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후원을 했으나 아무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슴 속 깊이 임진혁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진혁 쉐프가 한국에서만 제빵을 공부한 제빵사라는 건, 우리나라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충분히 국제대회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증거야.’
그래서 주영모는 너그럽게 물었다
“어떤 종류의 관심인가? 자네가 학생이 되어 다닐 생각인 건 아닐 테니 말이지. 주영모 아카데미에는 초급, 중급, 상급자 과정, 그리고 세계대회 준비반이 있어. 그 세계대회 준비반이라고 해도 자네 수준에는 못 미칠 거고.“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지금 가게를 맡아 줄 후배 제빵사를 키우고 싶은데,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주영모 쉐프가 최고라고 하더군요.“
진혁이 직설적으로 말하자, 주영모가 눈썹을 휘며 웃었다.
“적절한 경력이 있는 페이스트리 쉐프를 면접을 보고 선발하는 게 아니라?“
“<해와 달>만의 레시피들을 제대로 만들 수 있어야 하니까요.“
“가게의 맛을 보존하는 게 목적이라면 아예 기존 상업형 프랜차이즈 가게처럼 하면 되잖나. 본사에서 냉동 생지를 직접 만들어 보내고 난 후에 각 점주들은 해동해서 굽기만 하고.“
실제로 스위트 바게트 등의 기존 프랜차이즈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면 맛이 없습니다.“
“특정 수준까지 맛을 끌어올리는 건 그편이 수월할 텐데.“
“제빵사 모두가 직접 반죽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주영모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프랜차이즈를 하면서 냉동 생지를 공급하는 건 아니지. 직접 반죽을 해서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제빵사라면 굳이 남의 가게에서 일을 할 이유가 없으니 말일세.“
’빵은 잘 만드는데 현실감각이 좀 없군.’
“초보자에게 잘 가르치면 됩니다. 그래서 이런 교육과정을 짰는데 한번 봐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영모는 종이를 집어 던질 뻔했다.
“이건 또 무슨 군대 훈련과정이야?“
‘잠깐. 이런 식으로 스스로 훈련을 해오면서 완벽한 빵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었던 건가?’
그는 제빵 초보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교육 과정을 보면서 그만 화를 낼 뻔했지만, 가까스로 심호흡하며 가라앉혔다.
“우리 초급 제과 과정 커리큘럼을 보여줄 테니까 비교해 봐.“
“하루 두 시간씩 6개월이라니, 너무 짧은 것 아닙니까?“
주영모는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야! 이 자식아! 누가 제과제빵 아카데미에서 운동을 배우고 싶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