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1화
◈ ◈ ◈
쉐프 나이프 모델 사진 촬영은 세 시간 만에 끝났다.
결과물인 사진을 보며 촬영 감독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페이스트리 쉐프님이시라더니, 모델 경력도 있으신가 봐요? 시선 처리도 아주 좋고, 포즈도 좋아요. 아주 잘하시는데요.』
『그런 적은 없습니다.』
카메라맨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이렇게 잘하시는데 수업 한 번 받은 적이 없다고요? 연기를 해본 적은 없으십니까?』
암살을 배운 적은 있다. 잠입하기 위해서 정파의 일원처럼 행동하는 법이나, 평범한 문사처럼 굴기나, 거리의 낭인처럼 움직이는 방법은 익혔다.
지금처럼 사진이나 그림의 모델이 되기 위해서 움직인 적은 없지만,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적도 없습니다.』
『천부적인 재능이라고요. 다른 촬영에는 관심 없으십니까?』
『허허, 이분은 최연소로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에서 우승한 페이스트리 쉐프야. 제과제빵 이외의 다른 것에 관심이 있으면 그 정도 경지에 이르지를 못하지.』
결과물을 보기 위해 뒤늦게 합류한 부사장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도 다른 이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들렸다.
『카를 부사장님이 직접 추천하셨다죠?』
『마스크도 그렇고 결과물만 보면 사진만 찍기에는 아까워요. 동영상 광고를 찍는 편이 훨씬 좋을 텐데.』
『열 시간을 예상했는데 워낙 잘해주셔서 세 시간 만에 끝나버렸잖아요. 기사님처럼 위엄이 있달까,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서 좋았어요.』
◈ ◈ ◈
공항 레스토랑에는 사람이 많았다. 진혁은 대강 아무거나 먹으려고 했는데 배웅하러 나온 루이스가 미리 식당을 예약해두었다.
“공항 근처는 다 별로지만 여기는 그래도 꽤 맛있는 곳이야.”
“내가 알아본 곳이라고!”
마리오가 잘난 척을 했다. 묵직한 배낭을 메고 식당에 들어선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까지 신경 써줘서 고맙네.”
“메뉴는 제가 시킬게요. 골고루 먹을 수 있게.”
마리오는 웨이터에게 이것저것 짚어 시켰다.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고 있어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다양한 것을 고루 시키는 것이 보였다. 음식이라면 특별히 가리지 않으니 아무것이나 상관없다. 진혁은 아버지 곁의 빈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나온 전채 요리를 보고 아버지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소라가 크기도 하지. 그런데 쪼잔하게 여섯 개밖에 안 주네.”
그 반응을 보고 마리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건 식용 달팽이예요.”
“그러고 보니 프랑스 사람들은 달팽이도 먹는다고 했지?”
이전에 푸아그라는 먹었지만, 에스카르고는 먹어보지 못했다고 해서, 루이스가 특별히 추가로 주문한 것이었다.
“이래 봬도 미식 요리 중에는 손에 꼽히니까요, 프랑스에 왔으면 한 번은 드시고 가야죠. 제가 껍질을 까드릴게요.”
엄지손가락 두 개의 크기인 식용 달팽이다.
이런 종류의 음식을 처음 보는 이들은 징그럽다면서 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별로 놀라지 않으시네요. 미국인들 중에서는 징그럽다고 손도 대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프랑스인들 중에서도 안 먹는 경우도 있고요.”
“보통 한국인이라면 안 놀랄걸.”
“그러고 보니 한국에 놀러 온 외국인은 골뱅이나 오징어회 같은 걸 잘 먹지 못한다고 들었어.”
루이스는 넓적하게 생긴 집게와 두 개로 갈라진 포크를 집어 들었다. 집게로 달팽이 집을 집어 올리고 포크를 안쪽에 밀어 넣자, 검고 쪼글쪼글해진 속살이 포크에 찍혀 돌돌 말려 나왔다.
“드시겠어요?”
“그래, 고맙다.”
임운정은 눈앞의 달팽이 살점을 포크로 찍었다. 탱탱해 보이는 살은 스테인리스 포크에 부드럽게 갈라졌다. 문어 다리나 오징어처럼 질기지는 않지만, 두부처럼 무르지도 않다.
“골뱅이나 소라가 취향을 좀 타긴 하지.”
그는 망설임 없이 달팽이 살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크고 짭짤한데?”
짭조름해서 맛있다. 임운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혁이 그 앞에 달팽이 살을 밀어주었다.
“아버지, 그럼 이것도 드세요.”
루이스가 달팽이 한 마리를 손질하는 동안, 진혁은 여섯 마리를 전부 껍질을 벗겨 아버지 앞에 갖다 놓았다.
심지어 전용 도구도 쓰지 않았다.
“…가만 보면 손을 진짜 잘 쓴단 말이지.”
마리오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는 푸아그라를 토스트에 바르는 중이었다.
“너도 좀 먹어야지.”
“저는 괜찮아요.”
“아냐, 네가 먹으렴.”
결국, 진혁이 하나 맛보고, 아버지가 나머지를 다 먹었다. 짭조름한 것을 마음에 들어 하면서도 솔직하지 못한 그를 보며 진혁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집에 두고 온 아내가 아쉬운지 임운정이 중얼거렸다.
“이건 딱 느이 엄마가 좋아할 맛인데 말이야.”
“나중에 어머니 모시고 다시 와요.”
“그래, 그러자.”
아버지가 눈썹을 초승달처럼 휘며 웃었다.
그다음에 나온 메뉴는 토마토 베이스의 쇠고기 수프였다. 식전 빵으로 나온 호밀빵은 사람 수대로 잘려있었다. 구멍이 뽕뽕 뚫린 빵조각을 집어 든 아버지가 즐거워했다.
“이것도 맛있네.”
“수프에 빵을 찍어 먹어도 맛있어요.”
“그래, 그래.”
“진혁이가 한국 돌아가면 아쉬울 거에요. 아직 먹지 못한 음식이 이렇게 많은데.”
마리오가 아쉬워하자 진혁이 바로 칼같이 잘랐다.
“넌 바로 나 따라서 한국 올 거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한국에서는 치즈도 비싸고 디저트도 종류가 적고… 이왕 여기 있을 때 맛있는 걸 더 같이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 캐러멜 플랑도 못 갔고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올드 불랑제리도 못 갔잖아.”
속이 빤히 들여다보여 진혁이 피식 웃었다.
“거기 가서 먹고 한국에서 만들어 달라고?”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마리오가 얼버무렸다. 루이스가 미네스트로네를 수저로 뜨며 말했다.
“네가 이것저것 먹고 더 맛있는 걸 만들어 주면 좋겠다던데.”
“네가 직접 먹고 직접 만들어!”
“잘 하는 사람이 하면 좋잖아.”
메인 메뉴로 나온 도미찜은 가시 없이 말끔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하얗고 탱글탱글한 속살은 나이프도 필요 없이 부드럽게 잘렸다. 트러플 향이 짙은 갈색 크림소스에 하얀 생선 살을 묻혀 입으로 가져가며 아버지는 흐뭇한 듯이 미소지었다.
“아주 맛있구나. 생선을 이렇게 요리하니까 신기하네. 진혁이 너도 먹어볼래?”
진혁이 먹고 있던 것은 양고기 요리였다. 새끼 양고기의 늑골에 붙은 살점을 뼈째 구워냈다. 지방이 풍부한 고기는 보기 좋게 갈색으로 잘 구워졌다. 하지만 칼로 조금 잘라 보면 가운데는 연한 분홍빛으로, 피가 섞인 육즙을 가득 담고 있다.
사막에서 도살해서 비린내를 물씬 풍기던 질긴 양고기와는 수준부터 다르다.
“새끼 양고기도 맛있는데 조금 드셔 보실래요?”
“그래.”
아버지는 진혁이 내민 고깃조각을 조금 맛보더니 감탄했다.
“아주 입안에서 살살 녹네.”
도미와 함께 나온 버섯 조각을 집어 먹으며 임운정이 신기해했다.
“우리나라는 양고기를 거의 먹지 않잖아? 그런데 여기서는 많이들 먹는군.”
“한국에서는 스테이크나 찹보다는 보통 인도식 커리나 중국식 꼬치구이로 많이 먹으니까요.”
유난히 말이 없던 루이스가 차분히 대답했다.
“이제 진혁이도 마리도 둘 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보기 어렵겠군요. 몇 달 동안이나 함께 지냈는데 아쉽습니다.”
“형이 서울로 놀러 오면 되지.”
마리오가 투덜거렸다.
“그거야 그렇겠지만.”
루이스는 파리에 머물고 있다. 10시간에 걸쳐서 비행해서 오기에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그가 빙그레 웃었다.
잠시 마리오가 화장실에 간 사이 루이스가 고개를 숙였다.
“철없는 동생 녀석을 잘 부탁해.”
그는 진혁을 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애가 칠칠찮기는 해도 악의는 없고, 순하고 성실하니까 데리고 있으면 그만큼 몫은 할 거야.”
“순하다고….”
진혁은 마리오가 순한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옛 부하들과 비교한다면 그냥 호구 같다. 맛있는 케이크를 입에 넣어준다면 지옥까지 따라올지도 모른다.
“알았어.”
그는 눈앞에 있는 루이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루이스는 흔들림 없는 갈색 눈동자로 진혁을 응시했다. 그 두 눈 안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동생에 대한 애정, 함께 대회를 겪은 진혁에 대한 신뢰가 보였다.
“그래, 꼭 잘 좀 부탁할게.”
‘이 녀석은 이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따라왔구나.’
배웅하면서 식사대접을 하겠다며 굳이 파리 시내에서 먼 샤를 드골 공항까지 따라왔다.
루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진혁아, 네가 하는 일은 다 잘 될 거야.”
예언자가 내리는 축복처럼 확신에 가득 찬 말이었다.
“…고마워.”
진혁은 짧게 대답했다.
몇 달 동안 함께 하면서 루이스가 어떤 성격인지 잘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소속되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붕 떠 있었다.
자신이 이방인이라고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숙식을 함께하며 팀메이트로 하나의 목표를 향하며 달려가면서,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믿게 된 것 같았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들처럼 생각하거나 사고하지는 않지만, ‘한국 팀’으로 세계대회에서 우승했다.
정처 없이 떠돌던 망망대해에서 닻을 얻어 뿌리내린 것 같다.
‘최근 한 달은 거의 친형제같이 지냈지.’
한국으로 돌아가서 더 이상 루이스를 만나지 못하게 되면 허전할지도 모른다.
루이스 역시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촬영이 끝나고 짐을 챙겨서 바로 비행기로 떠나니 식사를 할 시간은 더 이상 없다고 했을 때, 공항 근처에 식당이 있다며 굳이 고집을 부린 사람이 루이스다.
화장실에서 마리오가 돌아왔다.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진혁이 빙긋 미소지었다.
“네 험담하고 있었어.”
“와! 이 사람들이 진짜. 마지막까지 방심하게 두지를 않네.”
“농담이야. 새로운 메뉴 생각하고 있었어. 여기 음식을 먹어보니까 맛있어서 이것저것 생각이 나잖아.”
“한국에서 달팽이 구하려면 비쌀걸?”
“에스카르고 말고 도미.”
진혁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버지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도미는 가시를 제거하는데 사람 손이 필요하잖아. 너무 번거롭지 않을까?”
“고급형 샌드위치로 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격이 너무 올라갈 것 같은데.”
“한정품으로 잠시 판매하면 되니까요. 비늘째 바삭바삭하게 튀겨낸 도미 튀김에 달콤한 소스를 얹어서 빵 사이에 끼우면 잘 어울릴 겁니다.”
“그건 진짜 맛있겠다!”
마리오가 초롱초롱 눈빛을 빛냈다.
“<해와 달>에서 샌드위치를 만들 일은 없을 거야. 샌드위치는 소망시에서 납품하거든.”
“내가 시식해 줄게! 시제품 만들 때는 시식이 필요하잖아.”
“…그렇긴 하지만.”
아버지가 시계를 보며 아쉬운 듯이 말했다.
“이제 슬슬 나가야겠구나. 디저트를 먹지 못하고 가는 게 아깝네.”
“그래도 덕분에 이것저것 먹을 수 있었어. 고맙다.”
“우리 사이에 뭘.”
마리오는 며칠 후에 프랑스에서의 짐과 집 계약 등을 정리하고 따라올 예정이다.
“조심히 가!”
“그럼 다음에는 서울에서 보자고.”
임진혁은 아버지와 함께 항공사 창구에 줄을 섰다. 사람이 많아 대형 캐리어를 부치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에는 시간이 한참 걸렸다. 기내용 캐리어를 끌면서 돌아다니던 아버지가 면세점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느이 어머니가 이걸 좋아할까?”
면세점에는 향수와 가방, 구두 따위가 진열되어 있었다. 놀랄 정도로 종류가 많다.
“어떤걸요?”
“글쎄. 뭘 사다 주면 좋을지 전혀 모르겠는데.”
이럴 때야말로 임진희의 눈이 필요하다. 진혁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진희에게 물어볼까요?”
“한국은 지금 새벽이잖냐. 잠 깨우면 일하는데 너무 힘들잖아.”
“엉뚱한 걸 사 가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몰라요.”
아버지는 고심하다가 진열장을 가리켰다.
“으음…. 저 구두는 어떠냐?”
붉은색 구두는 전에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양가죽 구두와 닮아있었다. 하지만 구두 끝이 조금 더 뾰족하다는 점이 달랐다.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니께서 갖고 계신 구두랑 비슷해 보이는데요. 가죽도 양가죽이고.”
“그럼 좋아하지 않을까?”
과연 비슷한 것이 두 개 있는 것을 좋아할까?
완전히 다른 것을 원하지 않을까?
아니면 차라리 완전히 똑같은 물건을 찾아야 할까?
진혁은 순간 갈등했다.
‘전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