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99화 (299/656)

제 299화

백진영은 비슷하게 정답을 맞추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케이크를 멀리서 보기만 해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맛을 상상할 수는 없지만, 레시피는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다.

‘저 초콜릿 브라우니 케이크에는 내가 모르는 재료를 썼는데? 특이한 견과류야. 무슨 맛일지 궁금하군.’

제일 밑단부터 하나씩, 임진혁은 프랑스 팀이 만든 일곱 개의 케이크를 철저하게 분석했다.

세계 최고의 제과 학교에서 수학한 만큼 조제프 쇠비어는 실력이 좋았다.

‘오레오는 시판하는 오레오를 사용한 게 아니라 아예 오레오를 만들어 써서, 좀 더 씁쓸한 맛을 강하게 했어. 다른 케이크 층이 달콤한 만큼 전체적으로 같이 먹게끔 하려고 했군.’

제과 경연에서는 좋은 재료를 훌륭하게 연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신의 기술적인 솜씨를 최대한 드러내야 한다.

‘엄청나게 특별한 기술을 사용한 건 아니지만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 일곱 개를 동시에 했어. 일을 할 때 손이 빠르고 정확하다는 증거지.’

케이크 한층 한 층마다 조제프가 얼마나 고뇌했는지 그 고민하고 연습한 시간이 보인다.

임진혁은 결론을 내렸다.

‘조제프 쇠비어는 꽤 괜찮은 페이스트리 쉐프야.’

진혁이 프랑스 팀의 케이크를 면밀히 살피는 동안, 마리오는 세상을 잊고 쾌락에 빠져 있었다.

“강 마리! 그만 좀 먹어!”

루이스가 마리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덧붙였다.

“지금 프랑스 팀의 케이크를 심사하고 있잖아. 우리 컨셉하고 유사하다고.”

“비슷하지만 다르지.”

진혁이 답변했다.

마리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케이크를 음미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한국 팀의 첫 번째, 제일 밑단에 있는 케이크는 검은색에 가까운 보랏빛이다. 진혁이 비정제한 사탕수수를 직접 캐러멜라이즈해서 만든 캐러멜에 생크림, 다크 초콜릿이 조화를 이루는 ‘캐러맬 크림 초콜릿’ 케이크다.

프랑스 팀이 첫 번째 케이크를 ‘브라우니’로 선택한 것과 명백하게 차이 나는 구성이다.

‘임진혁, 무서운 녀석.’

브라우니 케이크는 간단하다. 그냥 브라우니 반죽을 만들어서 구우면 된다.

하지만 진혁은 이번에 케이크마다 각자 다른 종류의 케이크 시트를 넣어, 복합적인 맛의 빌딩을 건설해냈다.

당장 이 첫 번째 케이크만 해도 그렇다.

마리오는 달디단 캐러멜 향이 듬뿍 감도는 케이크를 코 아래에 갖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이건 내가 생크림 케이크 시트를 만들었지.’

삼십여 년간 교향악단을 지휘해온 지휘자처럼 능숙하게 진혁이 적절한 지시를 계속해서 내려, 마리오는 기계장치 시계의 훌륭한 부품처럼 움직여 모든 임무를 시간에 맞게 달성해냈다.

지금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케이크다.

낙엽을 떨구는 가을바람처럼 스산하면서도 달콤한 향기.

마리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은 채 입을 열었다.

“하아….”

걸쭉한 캐러맬이 쫄깃하게 해 위에 올라앉았다. 설탕은 타기 직전에 최고로 달콤하다. 황혼이지는 짧은 순간을 포착한 사진 한 장처럼, 순간적인 맛을 잡아낸 캐러맬은 지옥처럼 달았다.

팜므파탈의 유혹처럼 치명적으로 단맛이 지난 후에는, 곧 따사롭고 안온한 생크림이 한겨울의 눈밭처럼 순수하고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다시 외로움이 성큼 다가온다. 씁쓸한 다크 초콜릿은 진혁이 우겨서 집어넣은 부분이었다.

아직 사랑이 다가오기 전,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사람을 어떤 식으로 묘사할 것인지 세 사람은 깊이 있는 토론을 나누었다.

고생 한 번 한 적이 없는 부잣집 여자는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곱디고운 설탕이 따스한 열을 받아 쾌락 속에서 녹아내린 캐러멜, 그것이 바로 여자의 삶을 상징한다.

자기 몸 챙기기도 힘겹게 평생 고생하면서 살아온 남자는 카카오 99%의 다크 초콜릿처럼 진하게 쓴맛 인생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지방이 듬뿍 든 생크림이다.

100% 동물성 지방으로 만들어진 생크림이야말로 개성 강하고 독특한 남녀 두 사람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쿠션 역할을 한다.

‘엄청난 놈이지. 자기가 얼마나 다양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지를 케이크마다 무식하게 때려 박았어.’

마리오는 이 케이크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새삼스레 상기했다.

총 일곱 층-꼭대기의 설탕공예 장식을 포함하면 여덟 층이라고 할 수 있는 케이크다. 일곱 단의 케이크는 전부 세 종류의 다른 케이크 시트를 사용했다.

‘미친놈이 시간 내에 21개의 케이크 반죽을 다 해냈지.’

마리오는 7개 이내로 하자고 말했다.

루이스는 반죽을 10개 이내로 줄이자고 했다.

시간이란 한정된 자원이며, 제대로 된 데코레이션을 하려면 저렇게나 다양한 케이크를 만든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기껏해야 서너 개를 맛있게 만드는 데에 주력하는 것이 좋지, 어설프게 다양한 맛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혁은 21개의 맛이 어째서 필요한지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시간을 절감할 수 있는지까지 차트를 만들어 와서 두 사람을 설득했다.

‘달콤하지만 너무 달지는 않아.’

여름 호수의 백조 깃털처럼 희디흰 크림에도 자기만의 독특한 향이 있다. 짙은 우유 향이 감도는 뒷맛을 느끼며, 마리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와 옥장판을 판다면, 저도 모르게 흔쾌히 사버릴지도 모른다.

한순간 현실감각이 사라지고, 꿈속의 세계를 걷는 것처럼 몽롱해졌다.

“야, 마리. 저기 좀 봐. 지금 프랑스 팀 심사하는데 분위기가 엄청 좋다니깐.”

루이스가 마리오의 어깨를 흔들었다.

현실로 돌아온 마리오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형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이 저도 모르는 새에 다 먹어버린 케이크의 남은 흔적을 바라보았다.

포크에 묻은 크림을 보면 방금 전에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다.

두꺼운 캐러멜 시트가 한 층, 그리고 생크림이 듬뿍 든 화이트 케이크가 한 층이다. 마지막 층인 다크 초콜릿 시트는 연필의 두께만큼이나 얇다.

천국을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가 갑자기 떨어진 것처럼 절망스럽다.

“진혁아, 나 이것도 먹어도 돼?”

마리오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진혁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싸갈 것도 아니고. 먹고 싶으면 먹어.”

남동생이 게걸스럽게 케이크를 흡입하는 동안 루이스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다.

지금 그들은 친구네 집에 놀러 와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 대표로 세계 대회에 출전해 있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대한민국의 얼굴이 된다고. 일단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으니까, 아예 손대지 않는 것이 답이야.’

접시를 핥다 못해 씹어 먹을 기세로 달려드는 마리오를 힐긋힐긋 바라보며 루이스는 심호흡을 했다.

“후-우. 후-우.”

솔직히 말하자면 먹고 싶다. 아직 여분이 있으니, 절반 나눠서 먹으면 딱 좋겠다. 사실은 저 남동생 놈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려준 다음에 혼자 다 먹어도 좋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얼굴. 대한민국의 얼굴….’

차라리 진혁이가 마리오에게 먹지 말라고 했다면 모를까, 이미 먹으라고 했는데 새삼스럽게 빼앗을 수는 없다.

마리오는 숫제 국물을 들이켜는 것처럼 접시에 코를 박았다.

“후루룹.”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계속 난다. 루이스는 카메라에 마리오가 잡히지 않도록 조금 더 걸음을 옮겨, 애써 몸으로 가렸다.

‘누가 이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한국팀은 제대로 식사도 못 하고 굶고 다닌다고 오해하겠어.’

루이스는 심호흡을 하며 심사위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프랑스 팀 부스를 흘깃 건너보았다. 뻣뻣하게 굳어 긴장해 있는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포크너와 안토니오 바트가 번갈아 제비를 뽑는 동안, 마지막까지 한국 팀은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즉, 이번에 프랑스 팀의 심사가 끝나면 바로 한국 팀의 차례다.

‘이 다음이 바로 우리 차례야.’

마치 막차 버스를 탔을 때와 같은 긴장감이다.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택시도 오지 않는 시골 마을에서 마지막 버스에서 내릴 정류장을 지나 내리면 꼼짝없이 인적없이 드문 산길을 몇 킬로나 걸어가야 한다. ‘다음 역은ㅡ’ 하는 방송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며, 혹시 벌써 지나쳤나?! 하고 조마조마하게 기다릴 때처럼 초조감이 혈관을 타고 전신을 기어오른다.

그때 누군가 루이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형, 괜찮아?”

차분하고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루이스는 팀메이트의 이름을 읊조렸다.

“…진혁아.”

“이제 형 차례야. 우리 케이크, 제대로 설명해 줘야지.”

동생이 정신없이 케이크를 먹는 사이, 프랑스 팀의 심사가 끝난 것이다.

『이제 마지막 팀이네요! 제비를 뽑을 필요가 없겠어요.』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명랑하게 떠들자 안토니오 바트가 바리톤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형식상 뽑아 보도록 하지.』

『예! 드디어 마지막 팀입니다.』

이제 곧 질문이 다가올 것이다.

조금 전까지 패닉에 휩싸이기 직전이었던 루이스는 놀랍게도 진정했다.

“…고맙다, 진혁아.”

‘마치 진혁이 녀석이 따뜻한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야.’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신기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해져, 루이스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다 잘 될 것이다.

『파스텔 톤의 7단 무지개색 배경 케이크입니다. 꼭두각시 그림자 인형극을 만든 점이 프랑스 팀과 다른 점이네요.』

『루이스 쉐프, 소개해 주겠나?』

『이 케이크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루이스는 침착하게 그들이 어렵게 고안해낸 컨셉에 대해서 설명했다.

『사랑을 하면 사람은 변합니다. 오랜 부부가 서로를 닮아가듯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지요. 이 케이크는 그 과정을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나요?』

『99% 다크 초콜릿 케이크는 평생 고생만 하며 살다 온 남자를 상징하고, 가장 고운 비정제 사탕수수 설탕을 따뜻하게 덥혀 만든 캐러멜은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자란 여자를 상징합니다. 이 두 가지 맛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점차 어떻게 변해가는지, 매 단마다 다른 맛을 느끼며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스물하나의 서로 다른 맛이라니, 대단한 시도를 했군. 과연 그 무모함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직접 맛을 봐야 알 수 있겠어.』

시몬 리옹이 차갑게 말했다. 라이언 윈체스터가 거들었다.

『이번에도 일곱 개의 케이크 전부를 맛보아야겠군.』

루이스가 당당하게 말했다.

『케이크와 함께, 초콜릿 그림자 인형 부분도 맛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쪽에도 적절한 맛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리샤가 미간을 좁혔다.

『제가 할 일이 아주 많군요?』

케이크를 여러 번 잘라야 할 뿐만 아니라, 그림자 인형까지 모든 심사위원들에게 골고루 잘라 주어야 한다.

루이스가 장난스럽게 허리를 숙이며 절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담.』

다른 경연 참가자들과는 달리 여유 있는 모습에, 알리샤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제가 당연히 할 일이니까 할 뿐이에요. 케이크가 제맛을 발휘할 수 있게, 아주 제대로 잘라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케이크를 하나씩 자르기 시작했다.

한편, 케이크를 다 먹은 마리오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입가에 묻은 케이크 부스러기가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을 본 루이스가 마리오의 등짝을 살짝 때렸다.

“최소한 우리 심사하는 건 봐야 될 거 아냐, 이놈아!”

마리오가 억울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형이 이걸 안 먹어봐서 그래.”

“…만들면서 먹어 봤어.”

“지금은 더 발전했다니까.”

마리오가 침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혀를 망치로 내리치고 식도를 취하게 할 만큼 맛있다고. 진짜 미친 맛이야.”

루이스에게는 비밀이지만, 그는 암스테르담에 여행을 갔을 때 몰래 대마초를 피워본 적이 있었다.

육체로부터 정신이 유리(遊離)되어, 세상과 자신이 한없이 멀어지는 경험을 했다. 거기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중독될까 봐 그 이후에는 손대지 않았다.

지금 이 케이크의 맛이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혼백이 분리되어 부유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정신이 육체, 그중에서도 미뢰에 그대로 함입해버린다. 온몸이 혀가 되는 것과 같은 강렬한 맛!

그는 어디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제과제빵을 주제로 유튜브 방송을 하느라 좋다는 케이크는 다 맛보면서 돌아다녔는데도 그렇다.

‘심사위원들이 혀를 갖고 있는 이상, 우승할 수밖에 없는 맛이야.’

배가 불러서가 아닌, 감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역치를 지날 만큼 강렬하게 느끼는 포만감.

행복에 잠긴 마리오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래, 네 맘대로 해라.”

루이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동생을 바라보았다.

강 씨 형제가 투덕거리는 동안 임진혁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는 그저 심사위원들을 관찰했다. 저 입맛 까다로운 프랑스 노인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궁금하다. 그가 내놓은 케이크와 시식하는 심사위원들. 이 구성은 마치 설탕과 밀가루, 우유와 초콜릿을 사용해 결투하는 진검 승부와도 같다.

아무리 뛰어난 무공이라도 해도 배우는 자의 자질이 일천하면 솜씨를 발휘할 수 없다.

프랑스에서 직송해온 수공예 치즈를 사용해 치즈 케이크를 만들 때 만드는 사람이 서툴다면 제대로 된 맛이 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삼재검법을 극한까지 수련해 뛰어난 솜씨를 부리는 무림 고수가 있다고 하자. 진혁은 그것과 평범한 재료를 엄청난 기술을 통해 맛있게 재탄생시킨 케이크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재능이 뛰어나고 경험이 풍부한 자가 최강의 내공으로 강력한 초식을 선보인다면 어떨까?

‘최고의 재료로 다양한 기술을 사용해서 만든, 제대로 맛있는 케이크지.’

반응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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