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96화 (296/656)

제 296화

마리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네.』

루이스가 사랑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했고, 진혁이 이야기를 하나 꺼냈다. 마리오가 그 이야기를 그대로 하지 말고 해피 엔딩으로 맺자고 제안하여,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알리샤가 케이크를 카트에 담았다.

진혁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금천복 할매와 감 씨 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철 사태와 독고인의 이야기를 했지.’

아미파의 꼬장꼬장한 장문, 진철 사태.

부잣집의 장녀로 태어나 정혼자를 잃고서 그대로 불가에 귀의하여 비구니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무공에 뛰어난 재질을 인정받아 무당파의 장로 지위까지 올라간 고아 독고인.

두 사람은 평생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다.

정확히는 독고인이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다가, 진철 사태를 대신해 죽었다.

그리고 진철 사태는 남은 평생 독고인의 사당을 차려 신주를 모시며 살아갔다.

체면과 도리에 목숨을 걸고 있던, 무식할 정도로 단순한 도사. 그리고 상대방이 죽기 전까지 자신의 마음조차 깨닫지 못하고 외면하던 어리석은 비구니의 이야기다.

임진혁은 두 사람의 이름을 바꾸어 이야기를 해주었다. (물론 자신이 죽였다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 들은 루이스는 짧게 평했다.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비극인데.”

마리오는 대안을 제시했다.

“디저트는 해피 엔딩이어야 한다고. 차라리 만일 그 두 사람이 평범하게 만나서 혼인하였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괜찮을지도.”

그래서 수정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 지금의 이 케이크다.

천여 년 전의 두 사람이 저승에서라도 행복하기를 기원하며 진혁이 만들었다.

영혼결혼식의 의미를 담았기 때문에, 얼굴을 세세히 묘사하지 않고 검은색 인형 그림자로 대체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알리샤는 한국 팀의 케이크를 카트에 담고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드디어 완성한 케이크를 제출했고, 결과만을 기다리면 된다.

프랑스 팀은 심판의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조용했다.

한국 팀의 슈가크래프트 케이크가 카트에 실려 나오는 것을 보며 조제프 쇠비어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색 조합이 비슷한데.』

주느비에브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설마, 우연이겠지. 가까이서 보면 다를 거야.』

필리프가 주느비에브를 위로했다.

『우연 같은 소리. 아무리 봐도 색 조합이 비슷해. 무지개라는 컨셉을 그대로 따라 한 건 아닌지-.』

이미 제출한 케이크를 본 심사위원들 역시 프랑스 팀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재는 다르지만 닮았어.』

알버트 그림슨의 말에 스테피가 반박했다.

『그라데이션을 넣은 방법부터 아예 다른데? 한국 팀은 아예 퐁당에 색깔을 넣었고, 프랑스 팀은 층마다 다르게 미러 글레이징을 입혔잖아요.』

『어느 쪽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해?』

스테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건 취향 차이죠.』

우열을 고르기 힘들 정도로 둘 다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다.

『한국 팀은 케이크를 파내고 그 안에 아예 입체적인 그림자 무대를 두었잖아요.』

『프랑스 팀의 케이크가 아름다워요. 글레이징을 한 표면에 검은색 그림자로 인간의 생애를 훌륭하게 표현했어요.』

어린아이가 기어가다가 걷기 시작하고, 뛰어다니다가 사춘기가 된다. 성인이 되어 케이크를 만든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쪼그라들면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다.

케이크 장인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작품이다.

『한편 한국 팀이 표현한 건 사랑이죠.』

남자와 여자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만이 아니다. 두 사람의 배경에는 다르게 생긴 집과 나무가 있다. 여자의 집은 으리으리한 대갓집이고 과일나무가 무성하다. 남자의 집은 보잘것없는 초가집이고 비루한 나무 한 그루가 비실비실하게 서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면서 집은 그대로지만 나무는 자란다. 과일나무에 과일이 무성하게 열리고, 비루한 나무는 점점 더 커가며 가지를 뻗는다.

마지막에 두 사람이 합쳐지면서, 두 사람의 집 역시 하나가 된다. 사랑스러운 이층집 앞마당에는 남자의 나무가 잘 자라 꽃을 피워내고 있다.

『두 팀에만 주목할 필요는 없죠. 저는 미국 팀의 ‘검은 여신상’이 마음에 듭니다.』

『평범한 케이크 모양이 아니라 그냥 여신상이잖아요?』

『한결같은 컨셉이라 즐거워.』

블랙 케이크를 여신상 모양으로 다듬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컨셉이다. 미국 팀이 제출한 케이크를 평가하며 심사위원들이 유쾌하게 웃었다. 시몬 리옹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자국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여신상까지 희화적인 대상으로 삼다니 대단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법이니까. 고지식하고 고루한 시선으로 볼 필요는 없지.』

라이언 윈체스터가 쏘아붙였다.

‘내가 할 말을 대신 해주는군.’

주영모는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심사 순서는 어떻게 할까, 그냥 2번부터?』

그렇게 한다면 제일 먼저 한국 팀의 케이크를 심사하게 될 것이다.

지옥에서 올라온 것처럼 치명적으로 달콤하고 유혹적이었던 맛!

그 이후에 맛보는 다른 케이크들을 싱겁고 연하게 느끼게 할 정도로 농후하고 진했던 맛.

앙트르메의 그 맛을 되새기며 시몬 리옹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전에 한국 팀부터 했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순서로 해보지.』

‘다른 케이크를 먹고 난 다음에 마지막에 먹으면 정말로 맛있는지 어떤지 알 수 있겠지.’

『그렇게 합시다.』

‘맛있는 건 나중에 먹어야지.’

시몬 리옹과 주영모는 각각 다른 이유로, 심사 순서를 변경하는 것에 동의했다.

◈          ◈          ◈

한국 팀의 케이크가 카트에 실려 나오며 관객들에게 공개되는 순간, 놀란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러브 스토리….』

리암 에이든은 케이크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는 한국 팀의 케이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다른 팀 먼저 심사하기로 하면서 그 케이크는 조금 더 뒤로 이동했지만 그래도 아주 잘 보였다.

그는 신문을 읽듯이 케이크를 꼼꼼하게 쳐다보았다.

주제는 아주 단순했다.

부잣집 딸과 가난한 집 아들이 만나서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고 마침내 결혼한다.

검은색 그림자 인형은 보통 평면적으로 표현하는데 이 인형은 신기하게도 입체적이었다.

특별한 누군가의 얼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검은 그림자를 세워놓았을 뿐인데도 그렇다.

그렇기에 공감하기가 쉬웠다.

‘나의 이야기인가.’

아내를 처음 만났던 순간의 설렘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줄리아는 파리에서도 몇백 년 이상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제과점에서 후계자를 맡을 예정이었다. 그녀는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제과점을 물려받는 것을 남동생에게 양보하고 대신 뉴욕에 분점을 열기로 했다.

이혼하면서 뉴욕의 가게를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듣지 못했다.

정말로 이혼할 것인지도 듣지 못했다.

지금은 이렇게 산산조각이 나버린 관계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리암은 눈시울이 축축해져 고개를 숙였다.

‘사실은 내가 파리로 와서 취업을 했어도 됐는데.’

뉴욕 헤럴드지에서 일하는 것은 자신의 오랜 꿈이었고, 줄리아는 그 꿈을 응원해주었다.

하지만 자신은 줄리아의 꿈을 응원해주었나?

‘내가 한국에서 온 그 쉐프에게 내 이야기를 했던가.’

물론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온 페이스트리 쉐프가 자신의 이야기를 알 리가 없다는 사실은 무시한 채, 그는 케이크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줄리아의 집 앞에 자라던 살구나무를 연상케 하는 과일나무.

오해 속에 멀어졌다가도 다시 행복해지는 연인의 모습.

그것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따끔따끔하게 아파져 왔다.

보잘것없는 자존심 때문에 고집을 부렸다.

자신 때문에 줄리아가 포기한 것들을 새삼스럽게 돌이켜 보자 반성하게 되었다.

그는 아까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내에게 연락해볼 속셈이었다.

‘아차.’

이혼 소송을 진행하면서 변호사의 조언을 받고 아내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그러니까 메시지가 올 리가 없다.

그는 씁쓸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열었다. 마사가 새로운 메시지를 또 보냈다.

‘정말 눈치 없는 여자야.’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마사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

그 메시지는 마사가 보낸 것이 아니었다.

줄리아가 마사의 핸드폰을 빌려 보낸 것이었다.

「여보, 줄리아예요. 마지막으로 당신과 이야기해보고 싶어서 회사에 찾아왔어요. 보면 연락 주세요.」

파리에 있어야 할 아내가 지금 뉴욕에 있다. 그 사실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는 취재고 뭐고 집어치우고 관객석에서 뛰쳐나갔다.

『리암, 어디 가? 내기 결과는 보고 가야지!』

이 상황에서 지금 취재보다 내기를 우선하는 것이 참으로 제임슨답다. 하지만 리암은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네가 문자로 알려 줘.』

넘어질 것처럼 허겁지겁, 당장 달려나갔다. 지금 바로 아내에게 전화해야 했다.

◈          ◈          ◈

심사 순서는 제비뽑기로 정했다.

그 와중에 취재하러 온 기자 한 명이 급한 일이라도 생겼는지 허둥지둥 나가는 일이 있었지만, 심사위원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일 먼저 심사를 받게 된 팀은 …대만입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그들이 제출한 케이크의 이름은 ‘슈가 쥬얼리 케이크’.

신부처럼 하얀 순백색의 케이크다.

언뜻 보면 단순히 하얗기만 한 케이크처럼 보이지만, 한쪽에 바로크 시대처럼 화려한 금색 덩굴이 줄줄이 타고 올라와 백합 같은 문양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문양 위에는 반짝이는 보석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무대 조명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블루 다이아몬드와 핑크 다이아몬드, 그린 다이아몬드로 된 주렴이다.

크고 작은 슈가 다이아몬드 위에는 펄 더스트가 빈틈없이 붙어있어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알리샤는 그 케이크가 심사위원들 모두에게 보일 수 있도록, 케이크가 올라간 회전판을 빙글빙글 돌려주었다.

장치앙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케이크를 소개했다.

『슈가 다이아몬드 레몬 라즈베리 케이크입니다. 라즈베리 잼과 스위스식 레몬 머랭 버터크림을 사용했습니다.』

『원래 슈가 쥬얼리가 주제였는데 케이크 이름을 슈가 다이아몬드로 바꾸었네요?』

엘리자베스 포크너의 질문에 장치앙린은 솔직하지 못하게 대답했다.

‘바퀴벌레 소동으로 식용 진주를 전부 망쳐서, 다시 만들 시간이 없었어.’

『저희는 지금 프랑스에 있지요. 마리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테마로 했습니다.』

시몬 리옹이 지적했다.

『원래 마리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세 줄인데?』

장치앙린은 입술을 깨물며 버벅거렸다.

『예, 예.』

‘본디 그 컨셉이 아니었는데 멋있어 보이려고 갑자기 갖다 붙이는 게 아니었어.’

미리 제출한 서류하고도 다른 이야기다.

장치앙린이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숙이고 있자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부드럽게 말했다.

『…라즈베리 잼과 레몬 맛이 잘 났으면 좋겠군요, 그럼 시식할까요?』

알리샤는 케이크 조각을 잘라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슈가 다이아몬드도 놓치지 않고 하나씩 곁들여졌다.

세 겹의 스위스 레몬 머랭 버터크림 레이어를 보고서 주영모가 중얼거렸다.

『이건 꽤 고전적인 양식인데.』

알버트 그림슨이 코를 킁킁거렸다.

『저 슈가 다이아몬드도 하나는 먹어봐야겠지?』

『의외로 맛있을지도요.』

심사위원들은 묵묵히 케이크를 맛보는 데에 열중했다. 제일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시몬 리옹이었다.

『라즈베리 잼 맛이 살짝 강해.』

『레몬과 라즈베리는 아주 좋은 조화를 이뤘을 텐데 아쉬운 일이에요.』

유난 취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난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데. 라즈베리를 강조하면서 버터크림의 뒷맛이 살짝 남아있으니까. 빵이 촉촉한 것도 마음에 들고.』

주영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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