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95화 (295/656)

제 295화

금빛 문양이 화려하게 두른 케이크 바깥쪽에는 빛나는 설탕 보석들이 포도 열매처럼 주렁주렁 열릴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처럼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말이다.

장치앙린이 슈가 다이아몬드를 마무리하는 동안 리우마오유는 퐁당 반죽을 맡았다. 조리대 위에는 가루 설탕을 뿌리고, 그 위에 잘 주물러 길게 늘인 퐁당 반죽을 올려놓았다.

「큰 구슬 스무 개, 작은 구슬은 백 개 부탁해.」

헤드 쉐프의 말에 리우마오유가 느긋하게 대답했다.

「열 개씩 더 만들게.」

작은 파이핑 팁으로 반죽을 콕 콕 찍어, 크고 작은 원 모양으로 퐁당을 잘라낸다. 작은 구슬은 1/4인치 크기로, 큰 구슬은 그 두 배의 크기다. 조그마한 퐁당 조각들을 문지르고 뭉쳐서 동그랗게 빚어내어 트레이 위에 조르륵 올려놓는다. 미리 곱게 체친 설탕 가루를 뿌려둔 트레이 위에 하얗고 동글동글한 구슬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펄 더스트는 여기에 있어.」

「고마워.」

막내가 준비해 건네준 봉투 안에는 반짝이는 진주 가루가 가득 들어있었다. 이제 여기에 방금 만든 구슬들을 넣어주면 된다.

-바스락바스락

리우마오유는 봉투를 열심히 흔들었다. 봉투 안에서 구슬들이 좌충우돌하며 서로 부딪혔다. 그는 진주 가루가 모든 구슬의 표면에 골고루 붙을 수 있도록 양손으로 봉투를 흔들었다.

「이거 흔드는 거 의외로 재밌는데.」

인생 최고의 무대에서 지금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을 하고 있다. 여기에 올라오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으니, 다음 대회에서는 능력 있는 후배들이 출전할 것이다.

아쉽고 섭섭하다.

바스락거리는 봉투를 빙글빙글 돌리던 그는 조리대 위에 지나가는 그림자를 보았다.

두 개의 더듬이를 흔들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그것’을 본 리우마오유의 동공이 커졌다.

「바…!」

그는 무심코 손에 들고 있던 것으로 ‘그것’을 내리쳤다.

-파아앙

봉투가 찢어지며 안에 들어있던 구슬들과 반짝이는 가루가 터져 나왔다. 진주 가루가 허공에 흩날리며 빛난다. 바닥에 떨어지며 으깨진 구슬들 사이로 이제 무지개색으로 요란하게 빛나는 ‘그것’이 잽싸게 몸을 빼냈다.

「저, 저, 저….」

「마오유?! 괜찮아?」

놀란 장치앙린이 뒤늦게 외쳤다.

「여, 여기 벌레가 있었어.」

「버얼레에?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장치앙린이 눈을 부라렸다.

「장 대형! 미안해. 이건 다 내 잘못이야.」

결국, 엉망진창이 된 조리대를 청소하고 방금 망가진 구슬들을 수습하느라 시간이 한참 걸렸다.

그래서 그들은 그 벌레가 어느 쪽으로 사라졌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          ◈          ◈

-푹

엄지손가락만 한 곤충이 생명을 잃고 나자빠졌다.

강기환을 보낼 필요도 없이, 살기(殺氣)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바로 죽어버린다.

“벌레가 많아.”

진혁이 중얼거렸다. 루이스가 고개를 들며 반응했다.

“벌레? 한 번도 못 봤는데.”

“이 안쪽에는 없으니까.”

들어오려고 하면 죽인다. 진혁은 방금 전에 대만 팀에서 벌어진 대참사를 똑똑히 보았다.

그는 이쪽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뭐라는 거야. 벌레가 없는데 왜 많다는 거야?”

마리오가 킥킥 웃으며 놀렸다. 진혁은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짙은 노을 색깔이 변화해나가는 과정을 아주 잘 잡았는데? 잘했어.”

“이 정도는 내 실력에 비하면 식은 수프 마시기나 다름없지!”

신나서 으쓱대는 마리오를 보며 진혁이 피식 웃었다.

‘알기 쉬운 녀석이야. 이 정도면 같이 일해도 나쁘지 않겠군.’

단순한 데가 있어서 어떻게 다루면 될지 알겠다. 진혁은 마리오를 가게에 채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관객석에 있는 아버지를 흘긋 바라보았다.

어젯밤 늦게 마음고생을 한 탓인지, 피곤한 안색으로 반쯤 졸고 계셨다.

무지개의 일곱 가지 빛깔을 테마로 하긴 했지만, 가장 아래쪽을 보라색으로 내리누를 생각은 없었다.

진혁은 밑단에 위치한 케이크에서 커다란 조각을 두 개 잘라냈다.

양 대칭으로 잘려나간 케이크는 한쪽 끝에 쌓아두었다.

모래시계 모양으로 빈 공간이 생긴 케이크 위에 퐁당을 씌웠다. 크림 향이 짙은 세 겹의 레이어는 잠시 드러났지만, 곧 가려졌다.

강 씨 형제가 만들어준 퐁당의 색깔은 아주 선명했다.

천장부터 짙은 보랏빛 먹이 점차 흐려져 가면서 연보랏빛으로 물든다.

케이크에 퐁당을 씌운 후 자르는 것이 아니고, 자른 후에 퐁당을 씌우는 것은 진혁의 아이디어였다.

심사위원들이 맛보기 전에 케이크의 수분이 날아가 굳어버리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는 두 번째 단에서도 두 조각의 케이크를 잘라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치가 다르다. 조금 전보다 가깝게, 두 조각이 잘려나간다.

마리오가 미리 심어둔 기둥의 위치를 기가 막히게 파악해, 중간중간 쏙쏙 잘라낸다. 진혁이 케이크 조각을 마술처럼 정확하게 도려내는 모습을 보며 루이스가 말했다.

“심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아나 봐?”

“방금 마리오가 설치하는 걸 다 봤잖아요.”

“그래도 보통은 모른다고….”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윗단, 그리고 한 칸 더 윗단. 자르는 두 조각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서로 만난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 것이다. 루이스의 아이디어였다.

거리는 점점 더 줄어들어 마침내 사라진다.

이건 마리오의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여섯 번째 단은 두 조각이 아니라, 커다란 하나의 조각을 잘라낸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단은 케이크 조각을 자르지 않았다.

일부러 다른 단의 1/2 높이로 구워낸 조그마한 윗단에 퐁당을 씌우자, 꽤 봐줄 만해 보였다.

“아직 장식은 안 올렸는데도 괜찮네.”

“이 정도로 마치면 슈가크래프트라고 할 수가 없지.”

진혁은 설탕 끈적이를 녹여, 까만 인형들의 발밑에 붙였다. 접착성이 생긴 인형들은 각자 자기 위치에 놓여졌다.

아까 잘라낸 부분 안쪽이었다.

새까매서 그림자처럼 보이는 검은 인형들.

가장 어린 인형들이 아래쪽, 그리고 나이 들수록 위쪽으로 올라온다. 성장하고 만나고 함께 늙어간다.

각자 다른 공간에 있다가 점차 가까워지면서 서로 만나는 두 사람의 모습에는 어딘가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곳이 있었다.

맨 윗단에 놓여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인형 두 개는 아예 포옹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관계가 진전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루이스와 마리오, 진혁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 만든 컨셉이다.

진혁은 시간과 공간을 전부 넘나든다는 점을 마음에 들어 했고, 마리오는 하늘의 색깔을 이용해 계절과 분위기를 드러낸다는 점을 좋아했다. 루이스는 피 흘리는 전장이 아니라 달콤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었다.

“원래 디저트는 사랑이지.”

“만년 솔로인 형이 사랑 타령을 해봤자 신뢰성이 전혀 없어.”

“나는 못 하는 게 아니야. 안 하는 거지.”

루이스가 발끈했다. 나름 인기 있는 페이스트리 쉐프 겸 얼음 조각사인 그에게도 개인 팬클럽이 있다.

원한다면 연애할 만한 상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형은 눈이 하늘만큼 높잖아.”

“그렇지는 않아. 그냥 나랑 맞는 사람이 안 보이는 것뿐이지.”

강 씨 형제가 티격태격하는 이야기를 들은 진혁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루이스 눈이 높아?”

“일단 프랑스어랑 한국어를 둘 다 유창하게 하는 사람을 원하잖아.”

“그건 좀 까다로울 수도 있겠다.”

진혁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아니, 나하고 의사소통을 하려면 프랑스어를 해야 하고. 내 어린 시절을 이해하려면 한국어를 해야지.”

“…통역사를 만나야겠네.”

“그런 건 아닌데.”

루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리오가 킥킥 웃으며 덧붙였다.

“그건 시작일 뿐이고 그밖에도 조건이 굉장히 많아. 국적부터 시작해서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은지까지 말이야. 그렇게 따지다 보면 아무도 못 만난다고.”

한때 ‘콜라를 아는 여자’를 원해서 조건으로 내걸기도 했던 천하제일마, 도산검림이라고도 불렸던 진혁이 피식 웃었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으면 그만큼 그 이상형에 맞는 사람을 찾기도 쉬울걸.”

마리오가 답답해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니깐?”

“흐으음.”

인형은 입체적이지만 배경은 평면적이다.

잘려나간 케이크 안쪽에 진혁이 공간적인 장소를 설명하는 그림을 꼼꼼히 그렸다.

각자의 집에 있다가, 꽃과 나무가 있는 정원에 함께 있다가, 둘이서 함께 같은 집 안에 머문다.

『마지막 심사 시간이 30분 남았습니다. 지금 제출하실 수 있으신 분께서는 미리 제출하셔도 좋습니다!』

진혁이 마지막 단 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인형을 올려놓았다.

루이스가 물었다.

“다 한 거야?”

진혁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스와 마리오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마리오, 벨은 내가 누를게.”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린다. 이제 이걸로 완전히 끝이다.

루이스가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이래 봬도 헤드 쉐프니까. 마지막은 내가….”

그가 손을 뻗어 벨을 눌렀다.

이제 곧 알리샤가 와서, 케이크를 가져갈 것이다.

“아니, 벨은 아무래도 좋아.”

마리오가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동생이 벨을 누르고 싶어서 자신을 쳐다보았다고 생각했던 루이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응?”

“이거 이제 먹어도 되지?

아까 진혁이 만들어서 잘라냈던 케이크다. 진혁은 그냥 치워달라고 옆에 내놓기만 했다. 하지만 그새 마리오는 그 케이크 조각의 단면이 마르지 않도록 잽싸게 랩까지 씌워놓았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거, 겉에 퐁당 씌울 걸 생각해서 좀 덜 달게 했단 말이야. 퐁당이라도 씌워주랴?”

케이크 조각이 올라간 접시를 소중하게 품속에 껴안고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마리오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야! 그냥 이대로 먹을 거야. 버터크림 아이싱이 되어있으니까 충분해.”

“케이크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심사 끝나고 먹든가 해! 넌 지금 긴장도 안 돼?!”

루이스가 동생을 야단쳤다.

“아니, 케이크를 먹는 건 긴장을 풀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마리오가 억울해했다. 진혁이 형제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 제출하는 동안 시간이 좀 걸리니까 그동안에 먹는 건 괜찮지 않아?”

“진혁이 너는 마리오한테 너무 물러.”

“처음 사귄 동갑내기 친구라서 그렇지! 내가 형보다 진혁이랑 더 친하다고.”

마리오가 잘난 척하며 형을 놀렸다. 루이스가 눈썹을 추켜올렸다.

“나이가 가깝다고 반드시 더 친한 건 아니야.”

“나랑 더 친하다고.”

도대체 왜 이런 화제로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진혁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케이크 제출부터 하자.”

마침 도착한 알리샤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한국 팀은 지금 이대로 최종 제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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