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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291화 (291/656)

제 291화

진혁이 혼자 마리오를 채용할지 말지 고민하는 동안, 루이스는 볼펜을 꺼내서 냅킨에 숫자를 쓰고 있었다.

“루이 형, 뭐 해?”

“우리의 승리 전략.”

“응?”

“내일 진혁이가 슈가 크래프트에서 만드는 거 말이야.”

“응.”

“얘가 자꾸 손이 남는다고 뭘 더 만들잖아.”

“음.”

“이제 그런 일은 절대 있으면 안 돼.”

“그렇지!”

“무엇을 만들지 확실하게 결정하고, 그대로 따라가야 해. 우리가 모르는 아이템이 자꾸 튀어나오면 안 된다고. 너도 잘 지켜보라고.”

루이스가 마리오에게 소곤소곤 당부하는데, 진혁이 대답했다.

“미안해. 내가 말해야 했는데.“

“그래! 당연히 미리 의논해야지. 개인 경기도 아닌데!”

경력이 더 길고 나이도 많다는 이유로 헤드 쉐프를 떠맡은 루이스가 불만을 토했다.

진혁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는 않을 테니까 염려하지 마.”

루이스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슈가 크래프트에서는 미리 연습한 대로! 약속한 대로! 만드는 거지? 그 <러브 스토리> 말이야.”

진혁이 웃으며 양손을 들어 보였다.

“당연히.”

“그래. 그리고 갑자기 좀비를 만들고 싶다고 하질 않나.”

이때다 하고 툴툴거리는 마리오에게 진혁이 말했다.

“실제로 만들지는 않았잖아. 그나저나 마리오 너,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 가게에서 일하고 싶어?”

“응? 어….”

“내일까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결론을 내린 다음에 이야기해 줘.”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난 마리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숙소로 돌아가자.”

“그래. 너희들도 내일 새벽부터 일어나야 하니까, 어서 자야지.”

“아버지, 숙소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어차피 같이 가는 길이니 내가 데려다주마.”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아버지가 진혁을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아들과 함께 어깨동무하며 걷는 아버지는 신이 나 보였다. 어깨춤이라도 출 태세로 덩실덩실 걷다가 해괴한 웃음소리도 낸다.

“흐하하!”

진혁이 물었다.

“…다 큰 아들 데려다주는 게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 세계 대회에서 잘나가고 있는! 귀한 아드님 모시는 일인데 당연히 좋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신이 나 있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진혁은 아버지를 부축하며 은근슬쩍 아버지의 숙소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행 중 제일 많이 술을 마신 아버지도 기껏해야 맥주 다섯 잔 정도를 마셨을 뿐이다.

‘이 정도 술로는 취하시지 않으셨을 텐데. 그냥 진짜 기분 좋으신가 보다.’

저쪽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빠르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진혁은 아버지의 어깨를 감싸고 인도 쪽으로 방향을 옮겼다.

-휘리릭.

그리고 한순간,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아버지를 스쳐 지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찌이이이이이익

고무바퀴가 바닥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푸콰앙!

그리고 바로, 오토바이가 넘어지며 사람이 튕겨 나왔다. 그리고 나서도 오토바이는 사람 없는 도로 위를 데굴데굴 굴러가 처박히며 굉음 소리를 냈다.

“?!”

아버지는 순간적으로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으아앗?!”

그저 누군가 자신을 몸으로 감싼 채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만을 알았다.

진혁이 아버지를 감싼 채 몸을 반대쪽으로 날린 것이다.

“진혁아! 괜찮아!?”

루이스가 크게 외치며 달려왔다. 그는 임 씨 부자 두 사람을 살펴보았다. 겉으로 보기에 특별히 다친 데가 없는 것을 보고서 루이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마리오는 형이 간 쪽과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으으….』

가죽 재킷을 입고 헬멧을 쓴 남자는 바닥에 내팽개쳐진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기묘한 각도로 골절된 손은 뭔가 익숙한 크로스백의 어깨끈을 쥐고 있었다.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신음만 내는데, 손만이 아니라 양쪽 다리와 다른 쪽 손 역시 성치 않았다.

“형! 여기 사람이 크게 다쳤어!”

마리오는 소리쳐서 형을 불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가방에 시선을 두었다.

뚜껑이 열린 남색 크로스백 안에서는 ‘우윳빛깔’ 같은 글자가 한글로 쓰여 있는 플랜카드가 비어져 나와 있다.

오늘 관객석에서 보았던 물건이다.

“이거 진혁이네 아버지 가방 아닌가…?”

마리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진혁이네 부자가 멀쩡한 것을 확인하고 이쪽에 어떤 광경이 펼쳐졌는지 본 루이스는 바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는 바로 구급차를 호출해, 현재 그들이 어디에 있으며 환자가 어떤 상태인지 설명했다.

『예, 파리 13지구의 어반 이보악 아파트 앞입니다. 지금 오토바이 사고로 부상자가 있습니다. 전신 골절로 추정되는데요….』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흙을 털며 진혁이 말했다.

“아버지 물건을 훔치려다가 저 사람이 우. 연. 히. 오토바이가 미끄러져서 넘어졌나 봐요. 노자가 말씀하시길 하늘의 그물이란 크고 엉성해 보이지만 빠뜨리는 것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失)고 하는데 그 말이 딱 맞네요.”

국어책을 읽는 것처럼 어색한 말투였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큰 사고에 놀란 일행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진혁아! 너는, 넌 다친 데가 없냐?”

반쯤 혼이 나가 얼떨떨해 있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당장 진혁부터 살폈다.

반면에 마리오는 다른 곳에 전화를 했다.

『경찰서죠?』

그가 유창한 불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진혁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보니까 루이스 형은 구급차를 부른 것 같은데 넌 어디에 전화한 거야?”

“경찰서.”

“어?”

마리오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갈 때 병원을 가더라도 수갑은 차고 가야지.”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마리오 너는 친절한 사람이구나.”

“응?”

마리오가 영문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임진혁은 희미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들의 눈앞에서 멀어지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 심장이 멈추도록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모처럼 마리오가 공권력까지 부르는 수고를 더했으니, 잡혀가도록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모처럼 나온 포쾌들, 아니 경찰들이 헛걸음하게 할 필요는 없으니.’

임운정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 환전한 유로화와 여권, 신용카드와 숙소 열쇠가 전부 저기에 들어 있는데 가방을 도둑맞지 않아 다행이다. 하지만 사람이 저렇게 다치니 신경이 쓰이는구나.”

진혁은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렸다.

“…예.”

구급차와 경찰차가 함께 와서, 경찰을 대동한 날치기범이 병원으로 이송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애초부터 그다지 취하지 않았던 임운정은 술이 완전히 깬 얼굴로 아들을 배웅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진혁아. 괜히 나 때문에 쓸데없이 이런 데 휘말려서 밤에 못 자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일 대회에 만전의 컨디션을 기해서 나가야 할 텐데.”

“괜찮습니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푹 자라.”

“네.”

아버지는 몇 번이나 당부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그다지 마음이 편치 않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진혁은 미간을 좁혔다.

‘…왜 기분이 안 좋으신 거지.’

아버지의 가방을 낚아채려고 다가오는 건방진 좀도둑이었다. 그 사지의 관절을 전부 부러뜨린 것은 당연히 임진혁의 솜씨였다.

그 와중에 피를 흘리지 않도록, 살갗은 찢어지지 않고 관절만 다치도록 신경을 썼다.

아버지가 피를 보면 기분이 상할까 봐 한 배려였다.

‘적당히 다친 걸 보면 통쾌해할 줄 알았는데. 뭐가 잘못됐지.’

계단을 걸어 올라가며 루이스와 마리오 역시 그다지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진혁이 한숨을 쉬자 마리오가 물었다.

“왜 한숨이야?”

“아버지가 기분이 좋지 않으셔서.”

“그럴만하지. 눈앞에서 그런 걸 봤는데.”

“그 정도로?”

일부러 피가 보이지 않게 신경을 썼을 뿐만 아니라, 뼈를 부수지도 않았다.

오토바이가 나동그라지면서 모래 한 알도 튀지 않고 자신의 몸으로 아버지를 직접 보호하기도 했다.

진혁의 이마에 내 천(川)자 모양 주름이 깊이 팼다.

마리오가 중얼거렸다.

“그런 사고 장면을 눈앞에서 본 건 난생처음이야.”

루이스가 거들었다.

“나도 엄청나게 놀랐어. 네 아버지께서도 놀라셨을걸. 자칫하다가 그 오토바이 라이더가 너나 너희 아버지, 그리고 우리를 덮쳤을 수도 있잖아.”

그는 끔찍해 하며 몸을 떨었다.

“너나 너희 아버지가 다치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야.”

“나도 눈앞에 주마등을 봤어. 아까 시합 전에 형이 내 앞에서 흔들어댄 케이크 접시가 눈앞에 아른거리더라. 특히 겉은 바삭하고 촉촉한 초콜릿 브라우니 케이크가 아주 선명하게 보이더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형한테 양보하지 말고 먹고 싶은 건 다 먹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더라. 죽음 앞에서 상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마리오, 너는 나한테 양보하지 않았어. 내가 알아서 대회 제출용으로 낸 거지.’

루이스는 동생에게 사실을 직시하게 해주려다가, 눈을 들었다. 그러던 중 임진혁이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을 보고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진혁아. 네가 아버지를 감싼 건 아주 용감한 일이었어.”

뜻밖의 칭찬에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항상 확신에 가득 차 있고 어른스럽던 연하의 청년이 혼란에 빠진 얼굴로 서 있자, 뭐라도 이야기해주고 싶다.

루이스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네가 다칠 수도 있었어.”

그것은 임진혁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내가 다친다고?’

환골탈태를 마친 진혁은 금강불괴와 같이 튼튼한 몸을 가진 데다가 호신강기 또한 항상 전신을 보호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오토바이가 정통으로 들이받아도 오토바이가 찌그러지며 튕겨 나가지, 임진혁은 멀쩡할 것이다.

이번에도 아버지를 껴안고 흙바닥에 한참 굴렀는데도 피부에 긁힌 상처 하나 없다.

“안 다쳤는데.”

진혁이 말없이 멀쩡한 양 손바닥을 들어 보여주자 루이스가 말했다.

“다행히 다치지 않았지만, 다쳤을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마음이 편할 수가 없지.”

“…도둑이 다친 것을 보고 놀란 게 아니고, 내가 다쳤을까 봐 걱정하신 거라고.”

정말로 쓸데없는 걱정이다.

전혀 필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져 온다.

평소에 무뚝뚝한 편이고 웃더라도 눈은 웃지 않고 입만 웃는 임진혁이다.

그러던 그가 활짝 웃으니 인상이 훨씬 보기 좋았다. 루이스는 저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반면에 마리오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 웃으니까 진짜 잘생겼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빵도 잘 만들어, 사업도 잘해. 그리고 잘생겼어. 하지만 빵 만드는 센스는 내가 위야. 그러니까 내가 이겼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루이스가 팔꿈치로 마리오를 툭 쳤다. 강 씨 형제가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고서 진혁이 킥킥 웃었다.

“사이가 좋네.”

이야기하면서 계단을 올라오니 어느샌가 숙소 문 앞에 도착했다. 루이스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럼 내일 보자고.”

루이스와 마리오는 같은 방을 쓰고, 진혁은 맞은편의 다른 방을 쓴다.

마리오가 머뭇거리다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그 도둑이 다친 건 네 잘못이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잘 자라.”

“….”

할 말이 없어, 진혁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잘못…은 아니지. 일부러 그렇게 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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