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0화
『여기 있습니다.』
수북이 담겨 나온 피시 앤 칩스를 보며 루이스가 환하게 웃었다.
“이건 오늘 2위를 한 기념으로! 내가 사는 거니까 많이 먹어.”
그는 정말로 기뻐 보였다.
‘… 2위가 저렇게 좋을 일인가? 특이한 성격이군.’
진혁은 현명하게 속생각을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갓 나온 음식을 보고 아버지가 짧게 평했다.
“생선가스하고 비슷하게 생겼네.”
“그것보다는 조금 더 껍질이 얇아요. 어떻게 튀기는지 모르겠는데, 생선 살과 튀김옷 사이에도 공간이 넉넉하게 있다니까요.”
“이 하얀 건 우리나라에서 먹는 거랑 같은 소스인 모양인데?”
“맞아요. 타르타르 소스입니다.”
커리 소스와 그레이비 소스, 타르타르 소스 세 가지의 종류가 있었다. 아버지는 포크 한 조각으로 생선 살과 튀김을 동시에 찍어 하얀 디핑 소스에 듬뿍 담갔다.
생선가스보다는 얇고, 일본식 튀김옷보다는 살짝 두껍다. 절묘한 두께의 튀김옷은 기름기가 살짝 배어 나오면서도 바삭하고, 하얗고 부드러운 생선 살은 이빨에 닿자마자 그대로 부서진다. 살짝 후추로 간이 된 생선 살이 짭조름한 튀김옷과 함께 뭉개지며 뒤범벅되고 곁들인 타르타르 소스가 두 맛을 모두 감싸준다.
입안에 저절로 침이 가득 고이며, 저도 모르게 두 번째 조각을 포크로 찍게 되는 맛이다.
아버지가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이건 칭찬할 만하네!”
진혁도 함께 묵직한 생선 살 조각을 입에 넣었다. 진한 흑후추는 아주 조금 쳤을 뿐이고, 소금 간은 아예 안 되어 있다. 짭짤한 소금간은 튀김옷에만 입혀져 있고 아주 약간 식초 향도 났다.
“괜찮네요.”
진혁이 짧게 대답했다.
“영국식 생선 살 파이를 만들어 팔아도 좋겠습니다. 크림과 그레이비, 소금과 식초 맛을 따로 추가할 수 있겠는데요?”
“마살라 커리 맛은?”
“향이 강해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아.”
“의외로 매니아층이 생길 수도 있지.”
세 사람이 피시 앤 칩스를 칭찬하는 동안 마리오는 감자튀김을 계속해서 집어 먹었다. 진혁은 감자튀김을 눈여겨보았다.
“이건 감자튀김이라고 치기에는 조금 모양이 특이하네.”
웨지 감자치고는 몸집이 작은 데다가 껍질도 벗겨져 있다. 하지만 일반 감자튀김이라고 하기에는 통통하고 두껍다.
“감자튀김도 맛있니?”
아버지가 관심을 보였다. 진혁은 맨손으로 감자튀김을 집었다. 예민한 감각에 갓 튀겨낸 감자 특유의 따뜻하고 거칠거칠한 촉감이 느껴졌다. 한 조각을 입에 던져넣고 물었다.
“맛있네?“
촉촉하고 따스한 감자 속살은 매쉬드 포테이토만큼이나 부드럽다. 따로 튀김옷을 입히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껍질과 속살 사이에 공기층이 생기며 만들어진 겉껍질은 뜨끈뜨끈하고 파삭거렸다. 진혁은 만족스러워하며 눈을 떴다.
“나 콜라도 좀 시켜 줘.”
“네가 뭘 좀 아는구나.”
마리오는 이쪽으로 다가오던 웨이터에게 콜라 두 잔을 추가로 주문했다.
“여기 음식 괜찮지?”
“그래. 아주 입에서 살살 녹는구만.”
“여기는 감자 칩도 맛있어요.”
콜라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진혁은 접시 위에 올라가 있던 다른 채소에 눈독을 들였다.
삶은 브로콜리와 엄지손톱만 한 당근은 한국에서 먹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작고 쭈글쭈글한 콩알들은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완두콩은 한국 거하고 품종이 다른 모양인데?”
연녹색 쪼글쪼글한 콩 역시 평범하게 찐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옥수수알보다 작은 크기에, 입안에 넣으면 톡 터지면서 즙을 흘린다. 진혁은 콩을 한 알씩 터트리지 않고 포크로 위에 얹어 입안에 넣는 묘기를 선보였다.
“야. 이걸 어떻게 포크로 먹냐? 다 터지게. 그냥 수저로 떠먹어.”
마리오가 핀잔을 주었다.
“이게 완두콩인가?”
루이스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가든 피(Garden pea)라고 하는데, 완두콩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흠.”
진혁은 이 또르르 굴러가는 작은 콩알이 마음에 들었다.
“쪼끄만 게 맛있네.”
입맛을 다시며 콩을 하나씩 하나씩 공략하는 아들을 보며 임운정이 킥킥 웃었다.
“특별히 즐기는 음식이 없어서 호불호가 없는 줄 알았는데 네가 이런 걸 좋아했구나.”
“엄마 음식은 아무거나 다 잘 먹잖아요.”
“그러니까 말이야.”
“엥?”
부자(父子) 두 사람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아버지는 평소 어머니 음식이 맛이 없다고 생각하고 계셨던 건가….’
진혁이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다, 아니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아버지는 황급히 양손을 내저었다. 진혁은 스마트폰에 손을 가져갔다. 아무렇지 않게 켜고 메시지를 확인한다.
“진희가 축하 메시지를 보냈네요.”
“그, 그래.”
“밤에 자고 낮에 일하고 싶어서 병원을 그만뒀다고 하더니 쓸데없이 이런 대회나 보느라 밤을 새우다니, 쯧.”
마리오가 반박했다.
“쓸데없는 대회는 아니지!”
진혁은 무시하고 메시지를 읽었다.
“엄마가 축하한다고 하시고. 아버지, 핸드폰 좀 확인하래요.”
“응?”
임운정 역시 스마트폰을 열었다. 그는 해외에 혼자 나가 있는 남편을 향해 보낸 오타 섞인 메시지를 보고서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내가 없으니 안 되는구만. 빨리 돌아가야지.”
진혁이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아 보였다.
‘화목한 가족’이라는 개념이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것만 같다.
두 사람을 보며 마리오가 입을 삐죽거렸다.
‘빵을 잘 만들면 그걸로 됐지, 가족도 사이가 좋고. 쟤는 못 가진 게 뭐야?’
남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동생 녀석이 심기가 불편하다는 사실은 알기 쉽다. 루이스는 마리오의 어깨를 툭 두드려 위로했다.
“무슨 생각해?”
“별거 아니야.”
쓸데없는 이야기는 잘도 주절거리면서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여기 흑맥주 한 잔 더 주세요.”
루이스는 손을 들었다.
“너희들, 내일도 새벽부터 일어나야 하는데 괜찮은 거냐?”
임운정이 물었다.
“맥주는 음료수라서 괜찮아요.”
“….”
진혁이 중얼거렸다.
“동양인이니 서양인이니 하기 이전에 너희 둘 다 그냥 프랑스 사람인데?”
“아니야!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라고! 김치찌개도 좋아한단 말이야.”
‘마리오 너 김치찌개 안 좋아하잖아.’
동생이 하는 말을 들은 루이스가 어이없어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진혁의 반응은 두 사람이 예상하던 것과 달랐다.
“아니, 프랑스인이면 어떻고 한국인이면 어때. 상관없잖아.”
진혁이 아무렇지 않게 한 말에 루이스가 눈을 크게 떴다. 마리오가 중얼거렸다.
“일부러 이번 대회도 한국 대표로 출전했고….”
“어차피 비행기 타고 몇 시간만 가면 세계 어느 대륙이라도 갈 수 있는 시대잖아. 여러 나라의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축복이지.”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어느 나라 음식을 좋아하고 즐기는지도 국적하고는 상관없잖아. 당장 우리 아버지만 해도 청국장은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렇다고 한국인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고.”
“너 내가 청국장 안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냐?”
“어떻게 몰라요? 엄마가 청국장 끓일 때마다 갑자기 학교 일이 생기시잖아요.”
“…느이 엄마는 아직 모르지?”
“예.”
“그래, 알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임 씨 부자가 만담처럼 대화하는 동안, 루이스는 깊이 생각에 잠겼다.
‘돌이켜 보면 한국 사람이냐, 프랑스 사람이냐 따지고 들어오는 사람은 몇 안 돼. 그 사람들에게 내가 대답해 줄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정체성은 스스로 생각하는 거지 다른 사람이 결정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세상에는 고민해서 해결되는 종류의 문제가 있고, 그렇지 않은 문제가 있다.
사후세계에 관한 고민 같은 것은 아무리 오래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다.
그런 종류의 고민은 오래 매달려 있을 필요가 없다. 알렉산더 대왕의 매듭처럼, 잘라 버리고 바로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 답일 수 있다.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던 마리오 역시 말없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건 고맙다고 해야겠다.”
마리오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서 루이스가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십여 년 이상 고민해왔던 자아정체성의 문제가 진혁의 말 한마디에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보다 더 키가 큰 남동생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땀에 헝클어진 검은 곱슬머리는 어렸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짜식.”
“응?”
자신보다 더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온 남동생이다.
한국 음식을 잘 먹지만, 매운 것은 잘 못 먹는다.
한국 사람답게 매운 걸 잘 먹고 싶다며 혼자서 몰래 이것저것 요리해서 먹어 보다가 탈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팬클럽도 생겼다. 한국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걸 보고 자신감을 얻고, 냉큼 한국으로 유학을 갔다.
무슨 학교 대회에 나간다고 신나 하더니, 어이없이 패배하고 풀이 죽어서 유튜브 방송도 그만두고 파리에서 제빵을 배운답시고 일을 시작했다.
젤로스 사가 아닌 젤로스 사의 한국 지부에서 후원을 해준다고 했을 때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쿠프 드 몽드 대회에 같이 나갈 후보로 동생을 추천해 주었을 때는 정말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지금은- 아마도 괜찮은 것 같다.
어리숙해서 구슬치기를 하면 구슬을 뺏기고도 자기가 뺏긴 줄 모르던 남동생은 이제 다 자랐다.
‘자식, 그래도 아직 나보다는 한참 어리다니까.’
이제 동생은 괜찮을 것이다.
자신도 곁에 있을 거고, 동갑내기지만 어른스러운 팀메이트도 곁에 있다.
이번 대회가 어떤 성적으로 끝나도 뺑 오 쇼콜라를 만들어내어 입상했던 성적은 남아 있으니 앞으로 앞길도 탄탄대로다.
일하고 싶다면 마음대로 원하는 가게에 이력서를 넣으면 되고, 유튜브 방송을 계속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이제 세계적인 무대에서 자기 실력을 증명했으니 빵집을 차리고 싶다고 하면 어머니가 자본금을 보태줄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고민을 깊이 할 일도 없겠지.’
“마리오, 너는 이번 대회가 끝나면 뭘 하고 싶어?”
루이스의 질문에 마리오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취업할 거야.”
“어머니 계신 미국에서? 아니면 파리?”
“한국에.”
“한국에 네가 가고 싶었던 데가 있었어?”
마리오가 즉답했다.
“<해와 달>에 취업할 거야. 진혁이네가 사람 하나 뽑는다고 했어.”
“뭐?”
진혁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돌아보았다.
“왜?”
“진혁이하고 같이 빵을 만드니까 배우는 게 많더라고. 뺑 오 쇼콜라는 그냥 페이스트리 반죽을 얇게 뽑아서 접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되는지 이번에 배웠어.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도 알았고. 더 배우고 싶어.”
“뭔가 오해하고 있는데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가게를 연 게 아니야. 빵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서울에 오픈한 거지.”
“그래. 네가 아무리 괴상한 쿠키를 만들어도 나처럼 잘생기고 인기 있는 페이스트리 쉐프가 있으면 잘 팔릴 거야.”
마리오가 으스대며 말했다. 임운정이 파하하 웃었다.
“너희 둘이 정말로 사이가 좋구나. 마리오같이 능력 있는 페이스트리 쉐프가 와주면 진혁이도 한숨 덜겠네.”
“….”
그야 일봉이보다는 훨씬 손도 빠르고, 일하는 눈치도 있다.
‘하지만 얜 뭔가 멍청한데….’
임진혁은 잠시 마리오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처음에 재킷을 빌려 갔을 때의 첫인상을 생각해 보면, 순진한 데다가 약삭빠르지가 못하다.
거기다가 먹을 것을 매우 좋아하고 욕망에 솔직하다.
‘머리로 쓸 게 아니라 손발이 될 사람이면 멍청한 게 좋을 수도 있지.’
“설마 너, 거기서 일하면 진혁이가 만든 빵을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취업하려는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정색하는 동생을 보며 루이스가 불신하는 눈빛으로 빤히 보았다.
“네가 그렇게까지 얘기한다면 일단은 믿어 줄게.”
“사실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