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88화 (288/656)

제 288화

한국은 맛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센스라고는 전혀 없지만 먹을 만은 하군.』

시몬 리옹마저도 그 점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영웅의 시체’에 대해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주제를 잘못 골랐다고 생각해요.』

『베르사이유 궁전을 만들면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장면을 같이 만드는 것과 똑같은 거지. 주제 자체를 잘못 골랐어.』

『아주 맛있었으나 제재를 잘못 골랐다는 점은 저도 부정할 수가 없군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마지막 순간이랑 더 비슷하지 않을까?』

한국 팀의 맛 평가가 끝난 후에는 바로 다른 팀들의 샘플 빵을 시식했다.

하지만 그 빵들은 상대적으로 그다지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다.

『미국 팀은 작은 빵조각 위에 모델링 초콜릿을 올렸네요. 말랑말랑한 초콜릿과 딱딱한 빵이 딱히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따로 놓았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이게 빵인가? 빵이라기보다 비스킷에 가깝다고 생각되는데. 지나치게 단단해.』

『살짝 짭조름하게 간을 했으면 더 맛있을 수도 있었겠어.』

임진혁의 빵을 맛본 심사위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팀의 음식에 가혹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조금 더 부드럽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맛이 지나치게 깊이가 얕군.』

몇몇 국가들의 평가가 끝난 후 대만 팀의 차례가 되었다.

『확실히 맛있는 바게트야.』

스테피가 만족스러워하며 말했다.

『정통 바게트 심사를 한다면 좋은 점수를 받았겠어요.』

『아니, 이걸 정통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 너무 벽돌같이 각져있는 모양인데?』

시몬 리옹이 차갑게 말했다.

『각진 모서리 부분은 딱딱하고, 가운데 부분에만 공기가 많이 들어가 있어. 바게트가 바게트 모양인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야.』

『빵 껍질이 바삭바삭해서 좋지 않아요? 난 이게 맛있는데.』

반면에 전혀 다른 면을 평가하는 이도 있었다.

『이건 그냥 먹기에는 좀 싱겁네. 버터라도 발라놓지.』

『버터를 바르면 빵 공예 작품이 금방 상하잖아.』

『그게 문제로구만.』

반면에 프랑스는 맛과 모양, 양측 모두에서 꽤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짭짤하면서 달콤해. 설탕과 소금을 아주 적절하게 넣었어.』

알버트 그림슨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두 가지 맛이 매우 잘 어울리는군요.』

엘리자베스 포크너 역시 호평했다.

『에펠 탑 모양이라고 해서 맛은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제대로 된 빵이야.』

까다로운 라이언 윈체스터 역시 기분 좋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시몬 리옹이 흐뭇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전통 있는 곳에서 배운 애들이 잘 하는 거지.』

주영모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자기 얼굴에 금칠하면 좋은가?』

『지금 뭐라고 했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두 사람, 조용히 해 주세요. 이제 심사 결과를 제출해 주세요.』

에펠 타워 브레드 역시 완성도가 높고 맛있었다.

‘조제프 쇠비어는 호두 오일을 아주 좋아하나 봐. 난 호두보다는 바닐라가 좋은데.’

주영모 역시 에펠 타워 브레드가 맛있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한국 팀이 제출한 플러피 바닐라 케이크가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둘 다 완성도는 비슷했지만, 취향의 문제다.

‘하지만 이런 걸 심사할 때에는 내 취향보다 보편적인 완성도를 평가해야 하니….’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단짠단짠은 맛있어. 내 취향이 아닐 뿐이지.’

주영모는 결국 고민한 끝에, 프랑스 팀과 한국 팀에게 같은 점수를 주었다.

“…둘 다 잘 만들긴 잘 만들었으니까.”

안토니오 바트는 심사위원들이 제출한 점수표를 보고 취합했다. 그는 뜸을 들이지 않고 바로 결과를 발표했다.

『얼음 조각 심사를 하기 전에 남은 순서가 있지요? 빵 공예 작품의 순위 발표가 있겠습니다.』

『경연 참가자 여러분께서 만장일치로 요청해서 시작된 맛 평가를 포함한! 결과지요.』

『과연 그 결과가 어떨까요? 여러분께서 손뼉을 쳐주신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관객들과 기자들이 열렬하게 호응했다. 박수 소리가 회장 전체에 울리자 엘리자베스 포크너는 바로 봉투를 열어 읽어 보였다.

『3위는 대만-입니다! 살짝 싱거우면서 단단한 벽돌 모양의 바게트로 좋은 평가를 얻었지요.』

대만 팀의 장치앙린이 나와서 상패를 받았다. 그는 분한 것처럼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장치앙린이 대만 팀으로 돌아오자, 두 명의 팀원들이 그를 위로했다.

「장 대형, 잘했어.」

「3등도 충분히 좋은 결과니까 괜찮아. 입술을 깨물 정도로 괴로워하지 않아도 돼. 참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해도 좋다고.」

「웨이, 마오유. 그게 아니야.」

상패를 내려놓은 장치앙린이 일그러진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장 대형?」

「실수로 잘못해서 혀를 깨물었어.」

「….」

「풉.」

리우마오유가 먼저 웃음을 터트리자, 막내 웨이 역시 배를 잡고 웃었다. 장치앙린 역시 미소지으며 두 의형제를 껴안았다.

「다음에는 좀 더 잘하면 되지.」

대만 팀이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으며, 진혁은 루이스와 마리오를 힐긋 바라보았다.

‘저쪽 팀은 분위기가 참 좋은데 말이지.’

“루이 형, 진짜 먹는 것 가지고서 장난치는 거 아니야. 다음부터는 조심하라고.”

“우리가 지금 이 대회에 먹으러 나왔냐?”

“우-우.”

강 씨 형제 둘이 장난치는 걸 보면 확실히 둘이 친하긴 친하다.

곧 2위를 발표할 텐데 아무도 긴장하지 않았고 그냥 편해 보인다.

심사위원들이 무엇을 투표했는지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진혁이 떠보듯이 물었다.

“2위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

“바로 얘기해줄 텐데, 뭐.”

마리오가 심각하게 대답했다. 그가 귀를 바짝 세우고 무대 쪽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설마 우리는 아니겠지?”

“왜?”

“진혁이 네가 이번에 만든 빵, 진짜 맛있거든. 진짜 내가 맛있는 음식을 밝히는 건 아닌데 이번에는 정말로 침이 줄줄 흐를 만큼 맛있었어.”

“너 맛있는 음식 밝혀.”

“아, 루이 형! 진짜!”

강 씨 형제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데 엘리자베스 포크너의 선언이 들렸다.

『아슬아슬하게도 2위는 한국 팀이었습니다!』

『세 종류 모두 놀랄 정도로 맛있었는데요, 소재가 나빴죠.』

루이스가 담백하게 앞으로 걸어 나가며 중얼거렸다.

“야, 이거 어쩐지 데자뷰가 느껴지는데.”

그는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 출연해서 임진혁이 만든 그 해상 사고 현장을 봤을 때만 해도, 자신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아무리 맛있게 만들어도 누구도 먹고 싶어 하지 않을만한 비주얼을 가진 걸 잘도 만들었던 놈이지.’

잘도 그 녀석하고 같이 팀을 이루어서 여기까지 왔다.

앙트르메 부문에서는 1위를 하기까지 했고, 초콜릿 쇼피스에서도 2위.

심장이 두근거린다.

빵 공예에서까지 2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얼음 조각과 슈가크래프트 결과에 따라서 종합우승 순위에서 3위 내에 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1위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다.

루이스는 자신이 만든 얼음 조각의 완성도에 대해서 생각하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진혁이는 지금, 이쪽 세계에 이순신 장군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걸 간과했다고 후회하고 있으려나?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해 줘야지. 너는 아주 잘하고 있다고.’

안토니오 바트가 은상 패를 건네는 동안, 루이스는 흘긋 한국 팀 주방을 곁눈질했다.

마리오는 방긋방긋 웃으며 이쪽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늘 없이 쾌활하고 밝게 자란 동생은 여전히 눈치가 없고 염치도 없다.

‘진혁이랑 동갑인데 열 살은 더 어려 보인다니까. 고생을 덜 해서 그런가.’

옆에서 진중하게 서 있는 임진혁은 무뚝뚝하게 서 있었다. 손뼉을 치는 것도 아니고, 마리오처럼 넉살 좋게 환호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장승처럼 서 있는 그 모습이 어쩐지 자신에게 신뢰를 보내는 것 같아 루이스는 저절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혼자가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왔다. 프랑스에서는 동양인 원숭이 취급을 받고 한국에서는 이방인이 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프랑스 팀을 선택해서 출전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아예 시작단계에서 거절당했다.

젤로스 사의 후원 제안을 받아들이며 팀원으로 임진혁이 좋겠다고 의견을 냈던 이유는 별 것 아니었다.

‘발전하는 속도가 눈부셨어. 그리고…….’

무대 위에서 다른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작업을 하면 진혁은 그것을 보고 배웠다.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빨아들여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것보다 진혁이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알고 싶었다.

‘많이 변했지.’

디저트 서바이벌 쇼를 촬영하기 전에 보았던 임진혁은 잘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롭고 예민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인사를 해도 단답식으로 짧게 대답할 뿐 사교적이지 않았다. 만일 누군가 뒤쪽에서 다가오려고 하면 귀신같이 뒤돌아보는 등 눈치는 빨랐는데 인사성이 바른 편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경력이 풍부한 사람들 사이에서 주눅 들어서 눈치 보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자신만의 세계를 확실하게 구축해서 당당한 사람으로 보았다.

하지만 디저트 서바이벌 쇼가 끝나 다 함께 종방연을 한 날, 회식 자리에서 본 임진혁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 외국에도 한 번 다녀온 적이 없다던 이력과는 달리, 그는 회식 술자리가 생소한 것처럼 앉아 있었다.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 맞는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어.’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진혁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막상 팀이 된 이후에는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 볼 시간이 없었다. 임진혁은 연습 귀신처럼 무지막지한 양의 연습을 해댔다. 과연 경력이 짧아도 이런 실력을 가질 수밖에 없구나 하고 납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진혁이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 덕분에-종합우승까지 노릴 수 있는 순위가 되었다.

‘슈가 크래프트는 임진혁이 제일 자신 있어 하는 분야야. 그러니까 충분히 종합우승권에 들어와 있어. 한국 최초로 입상을 할지도 모르지.’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프랑스와 한국, 어느 나라 팀에 들어갈지 고민하던 자신은 진혁과 함께하고 싶다는 이유로 한국을 선택했다.

‘프랑스팀이 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긴 했지만….‘

아마 지금은 그들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정말로, 잘 골랐다.

루이스가 상패를 받아서 내려오고 난 후, 바로 1위를 발표했다.

1위는 프랑스였다.

조제프 쇠비어가 금상 패를 받는 동안 임운정은 한국 팀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혁아. 사람들이 네 과자를 아주 좋아하는구나.”

그냥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진혁이가 내려오면 무어라고 말해주면 좋을지 혼자 중얼거리며 연습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 넌 아주 잘 만들었다.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눈시울이 붉어진 채, 아버지는 나지막하게 혼자 웅얼거렸다. 여기서 진혁이가 들을 수 있을 리는 없으니, 마음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냉큼 털어놓았다.

“네가 태어날 적에 사주가 아주 좋았다. 한 나라를 이끌 왕의 사주라고 했어. 백일 돌잡이를 할 때도. 이제 보니 네가 이렇게 우리나라를 빛내 주려고, 그런 말을 들었나 보다.”

무림 고수의 청력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나 듣고 있던 임진혁은 순간 발을 헛디딜 뻔했다.

‘…왕의 사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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