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7화
심사위원들은 빵과자 샘플의 맛을 보고 있었다.
『거북선의 밑판에 쓰인 초콜릿 브라우니 케이크와 같은 재질의 케이크 시트로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이 인형은 단순히 참고용일 뿐이고, 실제 맛을 보실 때는 옆에 있는 상판을 대치한 ‘꿀 비스킷’ 그리고 용의 머리에 쓰인 ‘바닐라 플러피 케이크’, 그리고 밑판에 사용한 ‘초콜릿 브라우니 케이크’를 맛보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흐음….』
『세 종류라.』
두 가지를 제출한 팀도 있고 한 가지를 제출한 팀도 있지만 세 종류를 제출한 팀은 한국 팀밖에 없다.
『주영모 쉐프가 설명하긴 했지만, 저 빵과 이 빵은 너무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
말레이시아에서 온 심사위원인 스테피가 말했다.
주영모는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쳤다. 이순신 장군을 보면 저절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거북선이라는 함선은 그냥 배가 아닙니다. 영웅의 종말을 함께 했지요. 당장 적들이 침략하기 하루 전에 아슬아슬하게 건조된 배인 데다가….』
그는 열심히 설명했으나 다른 심사위원들은 시큰둥했다.
『저 사람이 저 배에서 죽었다는 건 알겠는데,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전쟁 영웅을 부각하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영웅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습니까? 결국, 사람은 죽는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뭔지 도저히 알 수가 없군요.』
『마담 투소의 밀랍 인형만큼이나 완성도가 높다는 건 인정하지만 말이죠.』
『어차피 빵 공예 작품과 모양이 다르니까, 저 밀랍 인형 빵 같은 물건은 맛보지 않아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주영모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은 항상 함께 있는….』
시몬 리옹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정식 빵 공예 작품인 거북선이란 것과 함께 제출해야 했지 않나. 별도로 제출할 이유가 없지. 시간이 모자라서 그런 것은 아닌가?』
『!!』
◈ ◈ ◈
심사위원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진혁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이 사람들은 거북선과 이순신 장군 이야기에 대해서 몰라. 우리나라 국민들만큼 공감할 수가 없다. 주제를 잘못 골랐어.’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진혁에게 루이스가 물었다.
“진혁아, 왜 이번에 이순신 장군님의 그런 모습을 만든 거야?”
그는 너무나도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마리오가 진혁이 대신 대답했다.
“형, 얘 그냥 시체 좋아하잖아.”
“아니. 그건 절대로 아니야.”
마리오와 루이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혁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두 사람 다 지금 내가 시체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데.”
그는 특별히 시체 만들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을 만들 뿐이다.
하지만 강 씨 형제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당장 나랑 같이 나간 텔레비전 쇼에서 바다 배경으로 임진혁 네가 뭘 만들었는지 나는 기억하고 있다고.’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던 토막 난 발목 시체. 그리고 옆에 보이는 상어 지느러미.
잔혹한 해상 사고의 한 장면 같던 그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루이스가 어떻게 완곡하게 이야기할지 고민하는 사이, 마리오는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당연히 시체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거 아니야?’
“너 시체랑 살인사건에 관심 많잖아. 당장 너희 가게에서 팔고 있는 쿠키 시리즈만 해도 그렇고.”
“아니, 그렇진 않은데.”
‘이 대화 뭔가 기시감이 드는데….’
진혁은 이 대화를 누구와 함께 나누었는지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아버지는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하라고 하셨다.
임진희는 그런 건 만들지 않는 편이 좋다고 충고했다.
리처드 베이커는 진혁의 취향 자체를 존중하면서, 대중적인 방향이 어떤 것인지 조언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라는 명제에는 정답이 없었다.
열 명의 사람이 있으면 열 명의 취향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진혁은 백진영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샘플 과자들을 개발했다.
그 과정에서 만든 ‘살인 사건 쿠키 시리즈’는 의외로 평이 좋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생강 쿠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가게 앞에서 샘플을 맛보고서는 테마에 상관없이 맛있다며 즐거워했다.
미국의 추리극 드라마에 등장하는 살인 사건과 유사하다는 평을 받은 후에는, 그 드라마의 팬클럽 회원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더 팬이 늘었다.
진혁이 어떤 살인 사건을 참고할까-하다가 백진영의 추천으로 본 미국 드라마
‘정확히는 드라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기보다, 사람들이 이 정도는 허용해주는구나-라는 선을 알게 된 거지만.’
실제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쿠키로 만드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살인 사건 드라마에서 악한 짓을 저지르다가 정의의 응징을 받아 죽은 범인을 쿠키로 만드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실제 배우의 얼굴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안 된다.
초상권과 저작권 문제만이 아니다. 진혁은 몇 번의 연습을 통해, 인간의 얼굴을 유사하게 묘사한 경우 지인들이 그것을 아예 ‘먹을 것’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풍족하게 살아서 그런지 인육(人肉)에 관심이 없어. 좋은 일이지.’
진혁은 먹어본 적이 없지만, 마공(魔功)을 익힌 자들 중에는 야들야들한 인간의 살에 맛을 들여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자들도 있었다.
강호의 흑점(黑店)은 가뭄이 들면 인육을 요리해서 팔기도 한다.
그러니 진혁은 인간의 살코기를 파는 것도 아니고, 그저 겉모양만 따라 한 케이크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진희와 백진영의 수많은 조언을 통해서, 그러한 케이크가 그다지 인기가 없다는 사실을 배우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피 흘리는 모양이나 죽어가는 모습이라고 해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순간이라면 괜찮다. 즉 유명한 드라마의 주역 캐릭터가 죽어가는 한 장면이라거나, 모두가 존경하는 누군가의 최후의 순간을 묘사한다면 그것은 예술적인 표현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삼류 무인 김씨가 죽는 것을 묘사하면 의미가 없지만, 하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가장 드라마틱하고 멋진 순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연출이었다.
‘멋진 스토리가 있으면 죽은 사람을 만들어도 괜찮아. 사람들이 그건 예술이라고 생각하니까.’
진혁이 웃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깨달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루이스 형, 그리고 마리오. 누군가의 진심은 어떤지, 언제 알 수 있다고 생각해?”
“뭐, 대회에서 이긴다거나?”
마리오가 한 대답을 듣고서 진혁이 헛웃음을 웃었다.
루이스가 말했다.
“사람이 죽을 때?”
“맞아. 이순신 장군은 죽음 앞에서도 자기 죽음보다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가치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 범인(凡人)에게 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 순간을 보여주는 게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했지.”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무공이 강한 자건 약한 자건, 부유한 자건 가난한 자건, 아름다운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상관없이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온다.
고결해 보이는 문사(文士)라고 하여 반드시 죽음 앞에 떳떳한 것은 아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황제라 하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초월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무학(武學)을 추구하는 무림인이라면 어느 시점에서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경지를 넘을 수 없다.
타인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어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이 무거운 만큼 타인의 생명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조화와 균형.
그것을 모르는 자는 현경의 경지를 초월할 수 없다.
“돌아가시는 게 아름답다라…….”
“사내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 거야.”
진혁이 마음속 한구석을 드러내어 보였다.
“그 순간을 재현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던 거지, 특별히 시체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고.”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마리오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살인 사건 현장 과자 집 시리즈하고 살인사건 생강 쿠키 시리즈만 봐도 알아.”
아까 했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버렸다. 진혁이 인내심 있게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많이 보고, 잘 알고 있는 걸 만드는 거지. 특별히 시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니까?”
“시체하고 살인 사건을 많이 볼 일이 없잖아. 네가 전쟁터에 파견된 군인도 아니고, 셜록 홈즈처럼 살인사건 전문 탐정인 것도 아닌데.”
‘아.’
진혁은 진희에게 말했던 것과 같은 핑계를 댔다.
“미드 보면 많이 보게 돼.”
루이스가 기뻐하며 물었다.
“와. 너도 추리랑 서스펜스 드라마 좋아해?”
“약간.”
진혁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돌아가는 길 단 하나만을 위해서 살아왔던 그는 요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고 있었다.
이상한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어설픈 살인 연극을 보는 것이 좋다.
어설픈 살인 연극을 보는 것보다 실제로 살인을 하는 걸 보는 편이 낫다.
남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스스로 하는 편이 낫다.
0점부터 10점까지 점수를 매긴다면, 1점 정도 될 것이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무학을 수련하며 새로운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다.
‘사람들은 이야기가 있는, 예술적인 시체라고 다 좋아하는 게 아니야. 너무 복잡하거나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어.’
진혁은 오늘 배운 것을 되새기며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또다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다음에는 조금 더 대중의 입맛에 맞는 빵 공예 작품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사 결과가 어떻게 되건 상관없다.
오늘은 오늘의 새로운 한 보(步)를 나아갔으므로.
『오오오오오!!』
심사위원들이 있는 방향에서 들린 감탄사를 듣고 진혁은 고개를 들었다. 심사위원들의 앞에 놓여있는 접시에는 한국 팀에서 제출한 빵들이 올라가 있었다. 이미 반 이상이 사라져 있는 접시도 있고, 비어있는 접시도 있다.
스테피는 체면도 차리지 않고 바닥에 코를 파묻고 후루룹 짭짭 접시에 흐트러진 빵부스러기까지 핥고 있었다.
『쓰으읍.』
유난 취는 아쉬운 듯이 다른 사람의 접시를 곁눈질하였다.
『아주 훌륭한데.』
주영모는 행복한 표정으로 뺨을 우물거리며 눈을 감았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플러피 바닐라 케이크는 빵도 크림도 아주 촉촉하군.』
『나는 플러피 바닐라 케이크보다 브라우니 쪽이 더 대단한 것 같은데. 과일처럼 새콤하면서도 뒷맛은 씁쓸한 게 두 가지 맛의 조화가 아주 훌륭해.』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저는 이 부드러운 비스킷이 마음에 드네요. 한 가지 맛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질감 차이로 전혀 다른 음식이 되는걸요.』
심사위원들의 반응을 보며 마리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흐윽.”
“마리오, 걱정할 필요 없어. 심사위원들 반응은 괜찮아.”
루이스가 말하자, 마리오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그게 아니야. 내가 더 먹고 싶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