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6화
팔뚝만 한 크기의 인형은 체구가 큰 무인이었다.
갓이나 투구를 쓰지 않고 상투를 틀었고, 부리부리한 눈썹 아래 두 눈은 애통하게 감겨 있다.
사내다운 이목구비는 콧수염과 턱수염으로 가려졌고, 입가에는 핏물이 한 줄기 흐른다.
양어깨와 왼 가슴, 오른팔 위에 꽂힌 화살 아래 장포는 검붉은 핏빛으로 물들어 원래 색깔을 알 수 없다.
“어허, 좀비가 아니야.”
진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아니, 네가 좀비 틀을 만들었다며.”
“그냥 평범한 시신이야.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말하고 나서 돌아가신 거지.”
“….”
“….”
마리오와 루이스가 말을 잃었다.
‘시체애호가…?’
강마리오가 임진혁의 취향을 의심하는 동안 루이스는 실제적인 질문을 했다.
“용감하게 지휘하는 모습을 만들 수도 있는데 왜 그때 모습으로 했어?”
“조선 시대 미늘 갑주와 투구까지 만들 시간은 없으니까.”
“???”
“상식적으로 지휘를 하고 있을 때는 갑주와 투구를 착용하고 있을 거 아니야.”
‘지금 네가 상식을 말할 때냐?!’
마리오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건 상관없이 진혁이 말을 이었다.
“돌아가실 때는 지휘하느라 갑주와 투구도 벗고 급박하게 전투하고 있을 때라고 들었거든.”
“죽기 전에 용맹하게 살아계신 모습을 한다는 생각은 없어?”
“만들다 만 좀비로 만들었다니까 그러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틀 자체가 좀비였기 때문에 이미 살아있는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만들기는 무리다. 루이스가 물었다.
“그런데 이 ‘장군님’ 말인데. 초콜릿 작품에 같이 내려고 했던 거라며? 그럼 초콜릿 공예품 아니야? 빵 공예에 낼 수가 없잖아. 장르가 다르다고.”
“괜찮아. 심만 초콜릿이고 그냥 브라우니 깎은 거야. 밑판이랑 같은 재료.”
“엥? 겉에 저 피부색이나 장포는?”
“그건 퐁당. 아주 얇게 만들어서 씌웠어.”
“언제 또….”
진혁이 싱긋 웃었다.
“그럼 우리는 이대로 낸다?”
꿀이 든 비스킷에 플러피 바닐라 케이크, 그리고 초콜릿 브라우니와 이순신 장군.
인형은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여덟 개의 접시 중 맨 가운데 접시에 서 있다.
루이스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야, 아무래도 이건 안 되겠어.”
“아, 형!!”
루이스는 조금 전에 마리오를 낚기 위한 미끼(?)로 사용했던 접시를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살금살금 뒤로 돌아가 잽싸게 빵 조각을 집어 들려던 마리오가 투덜거렸다.
“한국 속담에 먹을 것을 갖고서 사람을 놀리면 안 된다는 말도 있어.”
진혁은 친절하게 마리오가 알고 있는 잘못된 속담을 정정해주었다.
“개겠지.”
“먹을 것을 가지고 개를 놀려도 된다고?”
“…아니, 그건 아니고.”
막상 대답해주려고 하니까 진혁도 그 속담이 기억나지 않았다. 대신 중국 속담만 잔뜩 생각났다.
“토끼를 다 잡으면 개를 삶는다(兎死狗烹).”
“…어?”
“개는 먹이 주는 사람을 위해서 문을 지킨다(狗吃?的?, 就??看?)….”
진혁이 중얼거리는 동안, 마리오는 루이스에게 따졌다.
“진짜 왜 못 먹게 하는 거야?”
“이거 접시 위에 다시 올리자.”
“왜?!”
“야. 솔직히 말해서 저 이순신 장군님이 이 거북선이랑 같은 맛이 나겠냐?”
“같은 브라우니로 만들었다며!”
“크기도 다르고 겉에 퐁당까지 씌웠잖아.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 저건 장식용으로 그냥 봐주기 용이야.”
루이스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진혁은 이유를 듣고 수긍했다.
“그렇다면 괜히 이걸 내밀 필요가 없었군. 역시 이건 거북선 위에 같이 올리는 편이….”
“아니, 그건 아니지.”
헤드 쉐프 역할을 맡은 루이스 강이 단호하게 말했다. 마리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거북선 자체의 완성도가 높으니까 이걸로 충분해.”
빙 돌려서 이야기하는 루이스와 달리, 마리오는 투덜거리며 본심을 말했다.
“누가 세계 대회에 돌아가신 분 시신 모형을 내놓냐? 여기가 마담 투소의 밀랍 박물관도 아니고. 사람들은 보통 시신을 꺼림칙하게 여긴다고!”
임진혁은 아주 조금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리고 보통은 그걸 먹고 싶어 하지도 않아!”
평범한 이순신 장군 인물상이었다면 거북선 옆에 세워두어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혁이 만든 이 모형의 문제점은 지나친 세밀함이었다.
다행히 키가 55~60cm 정도로 그리 거대하지는 않다.
하지만 갓 생명을 잃은 듯한 창백한 안색에 옷 전체가 피로 젖은 인형은 전쟁 피해자로밖에 보이지 않아, 보는 이에게 저절로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게 만들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사과하고 싶다.
몸에 꽂혀있는 화살을 뽑고 피에 젖은 장포를 벗긴 후, 깨끗한 옷을 입히고 꽃을 바치고 싶다.
다시 말해서, 절대로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이 아니었다.
‘자식이 쓸데없이 조형력만 좋아서!!’
“피 흘리는 인형 케이크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마리오가 방금 입 밖으로 꺼낸 말을 들은 진혁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너도 안 먹고 싶냐?”
그 질문을 들은 마리오가 움찔했다.
방금 전에 상상하고 있던 초콜릿 브라우니 케이크의 맛이 저절로 떠오른다.
촉촉하고 농후한 빵조각 사이에는 단단한 초콜릿 칩이 씹힐 것이다. 타액과 합치하는 순간 그대로 형체를 잃고 스러져 삼월의 눈처럼 녹아내릴 테지.
황홀하고 상큼한 향기가 코안을 가득 채우고 난 후 빵의 파편이 혀를 거쳐 목구멍을 미끄러져 내려갔으면 좋겠다.
“내가 싫다 했냐? 어? 내가 언제?”
마리오는 저절로 입가에 침이 고여 침을 꿀꺽 삼켰다.
모양이 조금 꺼림칙하기는 하다.
‘괴상하게 만들어놓았으면 뭐 어때. 내장까지 세심하게 재현해 놓는 것도 아니고, 반 자르면 그냥 초콜릿 빵인데. 하트 모양이건 물방울 모양이건 상관없이 어차피 뱃속으로 들어가 소화되면 다 똑같은 초콜릿이야.’
마리오가 열을 올리며 임진혁과 대화하는 동안 루이스는 다른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그는 마리오에게 미끼로 썼던 접시에 있던 조각들을 다시 나눠서 제출용 접시에 담았다.
“역시 이게 좀 더 안전해.”
루이스 역시 맛있는 빵 조각들이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알리샤가 카트를 밀고 다가와, 각 팀이 제출한 접시를 받아갔다.
『잘 받았습니다.』
◈ ◈ ◈
각 팀에서 제출한 빵이 하나씩, 심사대 위에 놓였다.
『다들 여유 있게 만들었군요.』
『하긴, 이미 완성한 빵 공예 작품을 잘라서 낼 정도로 정신 나간 페이스트리 쉐프는 여기에 없을 거야.』
『뭐, 주방에서 불을 낼 정도로 경솔한 쉐프는 한 명 있었지만. 그 사람은 어제 나갔지.』
시몬 리옹이 비꼬듯 말하자, 중국계 심사위원인 유난 취가 미간을 좁혔다.
『말이 심하군.』
『그래. 페이창도 원해서 불을 낸 건 아닐 텐데 말이지.』
화상 사고를 겪은 적이 있는 라이언 윈체스터까지 거들자 시몬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상황이 불쾌했다.
’아무리 맛을 심사하기 위한 추가 제출이라고 해도, 플레이팅의 기본이 안 되어 있어.‘
맛을 심사하기 위해서 추가로 낸 접시 중에서 봐줄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시몬 리옹은 일본 팀이 제출한 접시를 가리켰다.
『맛 심사를 하기 전에 짚어둬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음?』
『지금 빵 공예 작품을 하는 도중에 만들었던 것이 맞는지, 그리고 빵 공예 작품과 같은 재료로 만든 것이 맞는지.』
시몬 리옹이 손가락 마디를 굽히며 말하자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수긍했다.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빵 공예 작품과 동일한 모양이어야 한다는 거지. 조각이라고 하더라도.』
『!!』
’지금 한국팀을 저격하는 건가?‘
주영모가 이마를 찡그리며 무어라 말하려던 참이었다.
『맞아, 이건 좀 너무하긴 해.』
라이언 윈체스터가 끄덕이며 손짓으로 다른 팀의 접시를 가리켰다. 알버트 그림슨이 말했다.
『지금 저 빵부스러기를 낸 팀을 보고 말하는 거지?』
『그래. 분명히 맛으로 심사를 받고 싶어 한다고 했는데, 내놓은 건 쓰레기야.』
『일부러 크럼블(Crumble)을 먹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그것도 최소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야지.』
미국 팀은 동그란 원형 틀 안에 빵가루를 뿌린 다음에 검은색 모델링 초콜릿을 올려, 아주 작은 미니 케이크 같은 모양을 만들어냈다.
플레이팅을 예쁘게 해냈지만, 빵 공예 작품의 모양과는 명백히 다르다.
일본 팀이 제출한 접시를 보면 더 수준 이하다.
접시 위에 빵조각이 흩어져 있고 그 위에 빨간 사탕 조각이 흩뿌려져 있는 일본 팀의 작품은, 빵 공예 작품과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가 장난쳐 놓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한국 팀은 기괴한 고대인 시체 같은 것을 제출했는데, 그쪽은 완전히 새로운 공예 작품 같은 느낌으로 수준이 높았다.
『맛볼 가치도 없어.』
『….』
심사위원들이 어떤 말을 주고받고 있는지는 경연 참가자들의 자리까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보면서 어떤 표정을 하는지는 스크린을 통해 알 수 있다. 시몬 리옹이 일본 팀이 제출한 접시를 보며 비판하는 모습이 스크린에 그대로 보였다.
「….」
일본 팀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카무라가 앓는 것 같은 신음을 냈다.
‘우리 팀이 낸 건 무슨 빵부스러기 더미 같아.’
자신만만하게 맛 심사에 응하기 전에, 남은 빵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했어야 했다.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그가 후회하는 동안에도 심사위원들은 평가를 주고받고 있었다.
『프랑스나 대만이 그나마 멀쩡하게 냈지.』
프랑스 팀은 프레첼처럼 단단한 반죽을 삼각형으로 납작하게 구워낸 빵과자를 냈다. 이 빵과자들이 모여서 에펠 탑의 가장 밑판이 되었으므로, 그들이 제출한 조각은 시몬이 말하는 조건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대만 팀이 제출한 빵은 사각형 벽돌 형태였는데, 이 또한 빵 공예품의 일부와 완전히 동일한 크기와 형태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몬이 가리키고 있는 인형은 그렇지 않았다.
『이 시체. 이건 대체 뭐야?』
『우리나라의 전쟁 영웅입니다.』
주영모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임진왜란과 거북선,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거북선과 나름 어울리는 주제긴 한데.’
그는 임진혁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저 청년은 짧은 제빵 경력을 가지고도 텔레비전 쇼에 출연하고, 지금은 세계 대회에서 입상 순위권에 들어 있다. 번화가에 가게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젊다. 유력한 샌드위치 프랜차이즈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들었다.
새로운 메뉴를 끊임없이 개발해내는 모습까지 보면, 최고의 인재다.
‘뭔가를 더 만든다면 거북선 함선 앞에 놓을 수 있게끔 앞쪽을 가리는 바다 모형이라든지, 하늘을 나는 갈매기 같은 걸 올려놓을 수도 있잖아. 왜 시체부터 생각하냐고.’
『그건 슈가 크래프트 케이크로, 겉에는 퐁당을 씌웠다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빵 공예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