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5화
“마리오. 너 만들면서 이거 시식하지도 않았냐?”
루이스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냄새가 없어서 맛이 구릴 줄 알고 안 먹었지….”
마리오는 정신없이 빵조각을 씹으며 말했다. 진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도 레시피 아니까 직접 만들어 먹어.”
“나 혼자 만들어서 이 맛이 날까 모르겠는데.”
마리오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루이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분명히 같은 재료, 같은 방식으로 만드는데도 임진혁이 만든 것과는 다른 맛이 날 때가 있더라.”
진혁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이것은 마리오나 루이스가 제과제빵사로서 실력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진혁이 반죽을 하다가 무심코 천마신공의 진기를 흘려보내어, 본의 아니게 그 밀가루 덩어리의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려서 그렇다.
‘양손에 호신강기를 유지한 채 반죽을 해야 하나? 그러다가 반죽이 튕겨 나가서 조리대를 부수기라도 하면 곤란한데.’
부서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다시 사서 설치하려면 비용이 든다.
진혁이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경연 참가자들의 투표가 끝났다.
마리오는 침을 튀기며 말했다.
“심사위원들이 이 비스킷 맛을 봐 줘야 하는데!”
“한 팀이라도 반대하면 시식은 안 하기로 했으니까.”
루이스와 마리오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하는 걸 보면 대만은 확실히 맛에 신경을 쓴 것 같아. 쟤네들은 절대로 맛봐달라고 투표했을 거야.”
아직 아무도 결과를 모른다. 진혁은 문득 사람들이 무엇을 적었는지 궁금해졌다.
‘어디 한 번 볼까?’
그는 눈을 감았다. 실제 눈은 감았으나 심안(心眼)을 떴다. 오랜만에 천안투마공을 사용하자 옛 생각이 절로 났다.
상자 안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었다. 알리샤가 접힌 종잇조각을 하나씩 펼쳐서 앞에 보여주고 있었다.
『첫 번째 팀은 맛을 평가하는 데에 찬성했군요.』
‘동그라미가 하나, 둘, 셋….’
그는 상자 안에 들어있는 투표용지에 무엇이 적혀있는지 확인하고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아, 역시 그런가.’
심사위원들이 상자 안에 있는 용지의 투표 결과를 확인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경연 참가자들이 두근거리며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미리 알아버린 진혁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여유롭게 등을 기댔다.
안토니오 바트가 외쳤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경연 참가자 여러분께서 투표하신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진혁이 알고 있던 대로였다.
『이번 빵 공예 심사에서는 맛 평가를 함께 하겠습니다!』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말하자마자, 안토니오 바트가 새롭게 결정된 공지 사항을 알렸다.
『경연 참가자 여러분께서는 현재 전시품과 함께 제작한 여분의 빵을 제출하십시오!』
경연 참가자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사를 받을 새로운 빵을 제출하기 위해서다.
『단! 지금 새로 제작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필요하신 경우 현재 제출하신 작품 일부를 절단하여 제출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다만 그 경우에 장식적인 면에서 점수를 어떻게 받을지는 스스로 생각하십시오.』
즉, 양이 모자라면 이미 제출한 작품을 잘라서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경우 작품의 미(美)적 부분을 평가할 때 마이너스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브라이언, 우리는 뭘 낼까?』
『조리하면서 깎아낸 빵 조각을 쌓자.』
『그 위에 크림을 얹어도 될까?』
『그건 안 될 것 같은데. 러시모어 마운틴에 크림을 사용하지 않았잖아.』
토마스 브라운이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그 빵은 좀 뻑뻑하잖아? 크림이 안 되면, 다른 종류의 뭐라도 올렸으면 좋겠는데. 그냥 빵만 내놓으면 좀 심심하잖아.』
브라이언 신은 자신이 리처드와 함께 만들어 제출한 거대한 빵 공예 조각품을 바라보았다.
『검은 왕 점을 만들 때 썼던 검은색 모델링 초콜릿을 올리지.』
『그거 얼마나 만들어 두었는데?』
『여덟 개의 접시를 장식할 정도는 있어. 깎아낸 빵조각들을 하얀 접시 위에 둥글게 뿌리고, 거기에 모델링 초콜릿으로 포인트를 주자』
초콜릿이 왜 여유가 있지, 하고 생각하던 리처드 베이커가 손뼉을 딱 쳤다.
『아브라함 링컨에게 선글라스 안 씌워서 다행이네.』
『역시 그렇지? 수염에 선글라스는 별로니까.』
리처드가 투덜거렸다.
『수염에 선글라스가 얼마나 멋진지 모르는 네가 불쌍해.』
『아, 제발.』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토마스 브라운이 킥킥 웃었다.
『항상 사이가 좋다니까.』
미국 팀이 긁어낸 빵조각 위에 검은 모델링 초콜릿을 올려서 디저트 모양을 만들어내는 동안, 일본 팀은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그들은 금각사를 만들고 남은 설탕 막대를 쌓아 올려, 작은 캠프파이어 같은 것을 만들었다.
「야, 이거 어떡하냐.」
나카무라가 한숨처럼 내뱉었다.
빵이 모자랐다.
구워놓은 빵은 이미 다 지붕에 올렸고, 바닥을 깔았고, 벽을 쌓았다.
네 명 정도라면 어떻게든 맛을 보여줄 수 있겠지만 여덟 명에게는 무리다.
빨간 기둥과 대들보는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끓여서 굳힌 사탕일 뿐이라 평가를 위해 내밀만한 물건이 아니다.
슈가크래프트의 평가일은 내일이고 오늘은 빵 공예의 맛을 평가하는 날이니, 이걸 치워버리기도 애매하다.
나카무라가 고민이 담긴 눈으로 눈앞에 놓인 접시를 바라보았다.
「금각사를 부숴야 하나?」
후유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금각사를 부수는 건 승부를 완전히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럼 어떻게 해? 아무것도 없는데.」
후유가 고개를 저으며 조리대 위를 가리켰다. 하지만 기적처럼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나카무라 타다요시는 물끄러미 손바닥만 한 자그마한 빵과 빨간 사탕 더미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모자랐다.
‘답답해.’
그는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후유가 말했다.
「여기 있는 거로 어떻게든 해보자.」
「응?」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놓을 필요는 없어. 빵은 반으로 잘라서 맛을 볼 정도만 내밀고, 사탕은 부숴서 조금만 뿌리자.」
「뿌린다고?」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빵 맛이 심심하니까 조금만 올리자고.」
초조해하며 이것저것 방법을 찾는 일본 팀과 달리, 대만 팀은 유쾌해 하며 즐거워했다.
「장 대형! 아주 잘 했어. 처음에는 잘못되나 싶었는데, 역시 하늘은 열심히 하는 이에게 보답하는 거야.」
리우마오유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이야기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장치앙린은 접시 위에 올라간 바게트를 보며 여유만만하게 미소지었다.
「심사위원 용으로 만들어둔 작은 빵들을 접시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돼」
하지만 대만 팀만 즐거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와, 미리 더 만들어놓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대.”
진혁이 만들어 놓은 거북선 상판 비스킷을 오물오물 씹고 있던 마리오가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루이스가 미간을 좁히며 동생을 바라보았다.
“야, 그만 먹어.”
“왜? 엄청 많은데.”
“심사위원이 몇 명인데! 부위 별로 골고루 낼 거잖아. 이러다가 다 먹을래?! 모자라면 네가 다시 만들 거냐.”
동생을 구박하면서도 동시에 접시를 내민다. 루이스가 마리오에게 주는 접시 위에는 거북선 비스킷을 뺀 다른 빵들이 올라가 있었다. 여분의 역린이 포함된, 삐죽삐죽 돋은 비늘로 뒤덮인 목 부위 토막 빵, 그리고 함선의 밑바닥을 지탱하는 브라우니 케이크 조각도 함께다.
“웃……!”
동공이 저절로 흔들린다.
마리오는 한 쌍의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선저(船底) 하부의 초콜릿 브라우니 케이크와 종아리처럼 굵직한 경추 빵을 살폈다.
머릿속에서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외치는 것 같다.
‘청팀! 임진혁이 제일 자신 있어 하는 초콜릿 브라우니 케이크!’
베이킹파우더를 넣지 않아 쫀득쫀득하고 고소한 초콜릿 케이크.
보통 벨코라데 초콜릿을 많이 사용하던 진혁이 이번에는 특별히 추천받았다며 다른 초콜릿을 골라왔다. 진혁이 싱글 오리진 초콜릿-즉 단일 생산지에서 생산한 초콜릿을 이것저것 테스트해 보더니, 역시 거북선은 이런 맛이 좋겠다며 선택한 맛이다.
카리브해의 세인트 도밍고에서 생산하는 카카오콩으로 만든, 싱글 오리진 초콜릿이다.
무겁고 치밀한 브라우니 케이크를 한입 물면, 달콤하고 산뜻한 과일 향이 감도는 세인트 도밍고 초콜릿이 코부터 간지럽힐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묵직하고 중후한, 씁쓸한 다크초콜릿 맛이 길게 여운을 남긴다.
‘홍팀! 가볍고 산뜻한 플러피 바닐라 케이크!’
브라우니 케이크와는 완전히 다른 지점에 서 있는, 구름처럼 가볍고 깃털처럼 사뿐한 크림 케이크다.
합성 바닐라 향 향료를 쓴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바닐라 향을 낼 수 있지만 이번에는 진혁이 고집해 굳이 천연 바닐라빈를 사용했다. 1g에 2만 원 이상의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한 마다가스카르산 바닐라빈을 그가 직접 끓여내 걸러내고 남은 부분을 갈아서 향을 냈다.
그 갈아낸 바닐라빈에 헤비 크림을 섞어 만든 이 푹신푹신한 크림.
역시 갈아낸 바닐라빈을 넣어 구워낸, 가볍고 촉촉한 바닐라 시트 케이크.
두 가지 역시 만들면서 맛을 보았던 마리오는 그 두 가지가 어떤 맛을 낼지 상상할 수 있었다.
‘부풀어 올라 촉촉한 케이크도, 푹신한 크림도 아주 잘 어울릴 거야.’
그리고 그가 상상할 수 없는 세 번째 맛이 어울려, 놀라운 신비를 가져다줄 것이다.
‘설탕 빨대.’
굵고 동그란 시트 케이크는 본디 목 위의 무거운 머리를 지탱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진혁은 시트 케이크 안에 가늘고 단단한, 속이 빈 설탕 막대를 여러 개 꽂아 고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용이 목을 구부리지 않고 하늘을 향해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선수상 형태로 세우고 있는 이유가 그래서다.
그래서 이 샘플 목 부분의 플러피 바닐라 케이크에도 중간중간 설탕 빨대가 숨어있다.
‘청팀과 홍팀, 중에 뭘 먼저 먹어야 하지?!’
마리오는 고민하며 접시를 노려보았다.
“자, 이거 먹고 저쪽은 손대지 마.”
루이스는 마리오 앞에서 접시를 흔들면서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마리오는 당근을 따라가는 토끼처럼 접시를 향해 졸졸졸 따라왔다.
좁은 간이주방 안에서 마리오가 루이스를 따라잡자 루이스는 한 손으로 잡고 있던 접시를 등 뒤로 휙 돌려 숨기며 씩 웃었다.
“네가 어린애냐? 단 것 준다고 따라오게!”
“아, 형!!”
마리오가 씩씩댔다.
“형이 만든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루이스가 진혁에게 물었다.
“진혁아, 이거는 마리오가 먹어도 되지?”
“음. 그런데 갑판 상판이 심사위원 여덟 명이 먹기엔 좀 모자라지 않나 싶은데….”
임진혁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 사실 두 사람이 작업하는 동안에 만들어둔 게 있어서. 이거는 그냥 마리오 먹으라고 하고 그걸 내면 어떨까 하는데?”
진혁이 만들어 놓은 무엇인가를 본 루이스가 뜨악하게 외쳤다.
“너, 이건 도대체 언제 만든 거야?”
“석가탑 만들 때부터 틀은 준비했는데, 두 사람 반응이 좋지 않아서 어쩔까 하다가. 거북선 만드는 도중에 여유가 있길래 이것도 같이 작업했지 뭐.”
“….”
루이스는 할 말을 잃었다. 마리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걸, 거북선 작업을 하는 틈틈이 몰래 만들었다 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