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84화 (284/656)

제 284화

『그런 건 아닙니다. 심사 기준에 들어있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모처럼 더 만들었으니 맛을 봐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뜻입니다.』

‘어제 프랑스 팀도 그렇고, 한국 팀도 그렇고 다 맛을 봐 줬는데 이제 와서 안 된다는 건가.’

장치앙린은 곤란해하며 말을 흐렸다. 관객석이 웅성거렸다. 지금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본 대만 팀의 응원단이 항의했다.

『어제 프랑스 팀의 경우에도 맛이 좋은 게 창조적인 거라면서 좋은 점수를 주었지 않습니까? 왜 우리의 장 대형만 차별합니까?』

「너무한 거 아니요?」

「프랑스에 돈 먹었냐?」

영어와 중국어, 프랑스어가 섞인 욕설이 난무했다.

심지어 무대를 향해 물건을 집어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찌그러진 종잇조각이나 쓰레기 따위였다.

「좀 제대로 해라!」

관객석에서 큰 소리가 나자, 장치앙린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이런 상황을 만들려는 건 아니었는데.’

어제의 심사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탈락한 국가의 팬은 물론이고, 현재의 기준이 맘에 들지 않았던 일반 참관객들마저 불평했다.

임진혁은 물건을 던지는 놈을 유심히 살폈다.

‘우리 아버지 쪽으로 던지는 건 아니지?’

그는 임운정이 있는 쪽에는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상황을 재미있게 구경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진혁처럼 침착하지 못했다. 마리오가 놀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프랑스 사람들 데모하는 성질은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대회까지 완전히 망치네.”

“글쎄, 지금 물건 던진 사람이 꼭 프랑스인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아, 저기 경비원이 가서 잡아 온다.”

물건을 집어 던진 사람은 경비원들에게 끌려서 밖으로 나갔다. 살벌하고 초조한 분위기 속에서,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앞으로 나섰다.

『저희가 어제 회의를 통해서 내린 결론은 분명히 모든 참가자 여러분께 공지된 바가 있습니다. 저희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만, 현재 상황은 반드시 그렇다고만 하기는 어렵군요.』

어제 이미 프랑스의 파티쉐리협회나, 미국의 제빵사 연합을 비롯한 온갖 단체에서 전화가 빗발쳤었다.

심사위원들도 편한 표정은 아니었다.

『참가자 여러분과 관객 여러분 모두 10분간 휴식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이 어떤 뜻인지는 명백했다.

심사위원들이 다시 긴급회의에 들어가는 것이다.

◈          ◈          ◈

심사위원들이 의견을 종합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주영모가 낸 의견에 모두가 동의했다.

『이미 대회의 평판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하지만 이미 맛을 보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발표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 제과제빵 경연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이 대회의 목적은 뛰어난 실력의 제과제빵사들이 서로 솜씨를 뽐내고 겨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 기준을 우리가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 세우게 한다면 어떨까요?』

모두가 그 지점에 동의했기에 긴급회의는 짧게 끝났다. 30여 분간의 휴식이 주어진 동안, 제과제빵사들은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짧은 휴식을 취했다.

휴식 시간 종료를 알린 후, 안토니오 바트가 마이크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이마에 내 천 자를 그린 채, 그가 진중하게 말했다.

『어제 있었던 심사와 오늘의 심사는 별개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회의의 결과,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같은 기준이라고 하시면…?』

안토니오의 이마에 주름살이 깊이 패였다.

『경연 참가자 전원이 동의한다는 전제하에, 모든 빵 공예 작품의 맛을 전부 보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국가의 대표 중 단 한 사람이라도 거절하신다면, 빵 공예에 대한 맛의 심사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

『단 한 분이라도 거절하시는 경우에는 ‘맛’이 평가 사항으로 고려될 수 없기에, 저희가 시식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주시지요.』

『…알겠습니다.』

장치앙린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자리로 돌아온 그에게 리우마오유가 물었다.

「장 대형, 과연 다른 경연 참가자들이 빵 맛을 보는 데에 동의해줄까?」

「들어봐야 알지만, 아마 대부분 동의할 거라고 생각해.」

「맛보다 구성에 신경 쓴 사람들은 빵 공예 심사를 할 때 자기 빵 맛을 보지 않기를 바랄 거 아니야. 만장일치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아니, 여기 나올 정도라면 다들 자기 빵의 맛에는 자신 있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어제 일도 있었으니까 이번 빵 공예에서는 다들 신경 좀 썼을 거라고.」

장치앙린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내 빵이 제일 맛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말이지.」

◈          ◈          ◈

“…흐음.”

‘자기 빵이 최고로 맛있다고 자기 입으로 이야기하는 놈이 마리오 말고도 또 있네.’

임진혁은 대만 팀에서 중국어로 나누는 이야기를 전부 듣고 있었다.

“진혁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네 의견이 듣고 싶다.”

“빵 공예 심사하면서 맛도 보는 거?”

“응.”

뒤쪽에서부터 알리샤가 각 부스를 통과해 하나씩 투표를 받고 있었다. O, X를 표기해 상자 안에 넣으면 된다. 한국팀은 맨 마지막이었다.

알리샤가 오기 전, 팀이 어디에 투표할지 정해야 한다.

진혁이 대답했다.

“내 입장에서야 맛을 평가하는 게 좋지.”

그는 자신이 오늘 만든 빵을 떠올렸다.

등판은 바삭바삭한 비스킷처럼 담백하고 단단한 빵이되, 딱딱하면서도 달콤한 송곳 모양의 가시를 구석구석 찔러넣었다.

가시가 없는 목 부분은 아예 반죽부터 설탕을 많이 넣어 달콤하다.

밑판에는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브라우니 케이크를 바탕으로, 비스킷만큼이나 단단한 과자가 바깥쪽에 붙어있다.

'그냥 부스러기만 내밀어도 맛있을걸.‘

마리오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임진혁 너는 걱정되지도 않냐? 아까 보아하니 거북선은 이미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 괜히 더 모험하는 거잖아.”

“내가 걱정할 게 뭐가 있어. 어차피 다 동의해야 하는 거고. 동의 안 하면 맛보지 않는 거고.“

“만에 하나 다른 팀이 더 맛있는 걸 내놓으면 어떡해.”

진혁은 특별히 자랑하거나 의기양양한 모습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내 빵이 제일 맛있어.”

“맛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그야 보면 알지.”

거북선 빵을 만들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빵을 만들고 있는지 힐끔힐끔 엿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두 가지야. 첫 번째로 어떤 레시피를 가지고 반죽을 만들어 구워냈는지, 그리고 세공사의 솜씨가 어떤지.‘

모든 팀은 각자 나름대로 개발해온 다양한 반죽을 사용했다. 하지만 진혁은 그 반죽의 구조와 성분을 꿰뚫어 볼 수 있어, 어느 반죽에 어떠한 장단점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견고하게 뼈대를 만들되, 표면에 씌우는 반죽의 경우에는 깎아낼 수 있도록 성형하기 쉽게 만드는 점은 모두가 동일하다.

러시아 팀의 6단 마트료시카 빵이나 일본 팀이 만든 일본식 절 역시 크게 달라 보이는 점은 없었다.

눈에 띄는 팀이라면 아예 벽돌 단계에서 그림이 될 부분을 긁어내고 빵을 구워낸 대만 팀이나, 틀에 맞추어 반죽을 찍어낸 다음 조립하려고 시도한 프랑스 팀 정도다.

조르륵 늘어서 있는 다른 빵 중에, 그가 혼을 불태워서라도 모방하고 싶을 만큼 뛰어난 빵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대회는 후기지수들이 나오는 대회인 거야….‘

오묘하고도 진솔하며 개성 강한 맛의 8중주가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루며 울려 퍼졌던, 아드레아노 존부의 바닐라 케이크를 기억한다.

십수 가지의 케이크 위치로 각자 다른 재료를 사용해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고 선명하게 맛을 자아냈던 스텔라 위스커스의 컵케이크 위치를 기억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나온 이들은,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문파의 문주들과 소문주의 차이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매년 강남에서 열리는 강호 후기지수들만의 대회.

각자 뛰어난 무위를 뽐내는 자들이 선발되어 자웅을 겨루나, 그것은 병아리들이 서로 깃털이 얼마나 뛰어난지 자랑하는 것과도 같다.

이미 자랄 대로 자란 닭들은 그러한 대련에 출전하지 않고, 각자 수련을 하다가 큰 전장에나 참여하기 마련이다.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

이 대회에 출전하는 참가자들 중 제일 나이가 많은 자라고 해도 30대 초반이다.

그러니 아직 실력이 농익기에는 늦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너는 우리가 다 같이 빵을 맛보도록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해?”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래도 되고, 이래도 되고.”

“루이스 형은 어떻게 생각해?”

루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접시 위에 남아 있던, 빵 조각을 하나 집어 마리오에게 내밀었다.

마리오는 여태까지 한 번도 거북선 빵을 맛본 적이 없었다. 연습하느라 바빴고, 모양을 잡느라 바빴다. 거북선 빵의 ’맛‘이 무대에서 심사받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으니, 쓸데없는 짓을 할 시간이 없었다.

“이거 먹어보면 너도 답을 알 걸.”

혹여 구워지다가 부서질까 봐서 넉넉하게 만든 갑판 조각이다. 아직 설탕 가시는 꽂혀 있지 않지만, 그대로도 충분하다.

마리오는 미심쩍은 눈으로 갑판 조각을 살폈다.

자고로 훌륭한 빵이라면 갓 구운 빵 특유의 향긋한 향내가 풍겨야 한다.

하지만 이 갑판 조각은 연습 때에도 그랬지만, 향기 한 가닥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자신 역시 만드는 데 동참했기에, 기본적으로 버터 비스킷에 가까운 물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분명히 버터가 들어갔는데, 묘하게 향기가 안 난단 말이지.‘

손끝에 닿는 촉감은 비스킷의 그것이 맞다.

고온의 오븐에 정성껏 구워낸 후 슈가 시럽을 발라 코팅한 비스킷이다.

손가락 끝에 닿은 비스킷 조각에서부터 달콤한 시럽이 조금 녹아나 손끝을 간지럽혔다. 마리오는 그것을 혀로 핥아 맛을 보았다.

“이거 시럽하고 맛이 조금 다른데, 임진혁 너 이거 시럽이 아니라 꿀…….”

말하다가 그대로 말을 잊은 듯이, 마리오는 멈추어버렸다.

꿀 바른 비스킷이 입안에 들어오는 순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졌다.

단단하고 뻑뻑해야 할 비스킷은 이미 농후한 꿀에 그 몸을 허락했다. 벽돌처럼 단단할 줄 알았던 비스킷은 온천물에 삶은 달걀처럼, 보들보들하다. 딱딱해야 할 표면이 꿀에 젖어 말랑하니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으음…….”

마리오는 쾌락에 저절로 흘러나오는 신음을 애써 삼켰다.

꿀은 비스킷의 속 안까지 흘러 들어가지 않았다. 겉면과 그 바로 아래의 층위까지만 녹녹하게 파고들었을 뿐이다. 그는 다시 한번 입술을 크게 벌려, 과자를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꿀에 녹아버린 과자가 촉촉하고 부드러운 만큼, 꿀에 젖지 않은 부분은 바삭바삭하다.

말랑말랑하고 보들보들한 과자와 단단하고 바삭바삭한 과자가 입안에서 뭉개지고 부서지며 뒤섞여 화음을 연주한다. 그리고 동시에 여태까지 잠들어 있었던 버터 향이 폭발적으로 콧속까지 치고 올라왔다.

임진혁은 냄새를 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향기까지, 맛을 이루는 요소를 비스킷 안에 완전히 가둬버린 것이다.

“……맛 심사, 요청하자.”

입가에 묻은 꿀과 과자 부스러기조차 닦지 않은 채 마리오가 몽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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