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78화 (278/656)

제 278화

『이건 모험이 아니야, 진보지.』

조리모 아래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주느비에브가 따져 물었다.

『너를 자기 아들같이 대하셨잖아. 네 위치에 있고 싶어 하는 애들이 한둘이 아닌데, 왜 지금 와서 그러는 거야? 네가 어떻게 스승님한테 그럴 수가 있어?』

그녀는 항상 조제프를 부러워했다. 스승님의 수제자로 간택 받아 모든 것을 전수받고, 이번 대회에서도 헤드 쉐프 자리를 맡았다. 그린 듯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것이 부러웠다.

그런데 지금 이놈이, 다른 모든 이들이 포기한 금방석을 멋대로 흙발로 짓밟고 있다.

조제프 쇠비어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서늘하게 웃었다.

『주느비에브. 내가 왜 무슈 시몬의 말을 잘 들었다고 생각해?』

『프로페서 시몬을 무슈라고 부르는 거야…?!』

『나를 이기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지. 하지만 이제 아니야.』

그가 단언했다.

『스승님처럼 고루하게 전통을 고집해 나가는 방식은 틀렸어. 원래 맛이란 변하는 거야. 누벨 퀴진이 새로운 흐름이었던 시대는 이미 지났어. 우리는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야지.』

『…하지만.』

『에펠탑의 토대를 무너뜨릴 셈이야?』

『하아.』

『걱정하지 마. 이번 대회에서 무슈 시몬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승리하면 그때는 너도 납득할 거야.』

『…나는 네 방식에 동의한 건 아니야. 헤드 쉐프가 말하니까 따를 뿐이지.』

주방에서 헤드 쉐프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 때문에 그렇다. 주느비에브가 입술을 깨물며 트레이를 들어 올렸다. 비비 꼬여 에펠탑의 상단부가 될 빵과자 반죽은 아직 구워지지 않아 희기만 했다.

‘그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수제자 자리를 차지했어야 했는데.’

주느비에브는 눈을 가늘게 뜨며 조제프를 살폈다.

‘개똥 같은 놈. 이런 식으로 내팽개쳐버릴 거면 처음부터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지!’

피아노 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것 같은 긴장감 아래에서 두 사람은 작업을 계속했다.

◈          ◈          ◈

또각또각 울리는 구두 소리가 눈앞에 올 때까지 주영모는 계속 갈등하고 있었다.

『이번 빵의 심사표를 제출해주세요.』

엘리자베스 포크너의 목소리가 짜랑짜랑하게 울렸다.

’제대로 프랑스식으로 구워낸 빵이랑 호두 오일 넣은 빵 말고는 특별한 게 없어 보이는데. 조금 못 만든 거 빼고는 다 비슷비슷해. 에잇, 모르겠다.‘

뺑 오 쇼콜라를 열 개가 넘게 먹었더니 그게 그거 같다.

그는 마지막까지 호두 오일을 넣은 빵과 정통 프랑스식 빵 중 정통 프랑스식 빵 중 어느 것에 더 높은 점수를 줄지 갈등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영모는 정통 프랑스식 빵에 더 높은 점수를 주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 정통 프랑스식 빵이 시몬 리옹의 제자 빵 같아서 기분 나쁘긴 하지만… 사람은 공정해야지.‘

호두 오일을 넣은 빵의 경우,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호두 향이 어떤 특별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다. 특별히 빵이 맛있어진 것도 아니고, 안쪽에 호두가 있어 그 존재감을 드러낸 것도 아니었다.

’호두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에게라면 어필할 수도 있겠지만. 별달리 역할을 하지 않는 걸 넣을 이유는 없지. 차라리 갈아 넣은 호두를 반죽에 넣어서 정말로 초콜릿 호두 페이스트리를 만들었으면 모를까, 어설퍼. 아직 한참 멀었어.‘

그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두 장의 심사표에 체크를 마쳤다. 안토니오 바트와 엘리자베스 포크너는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기 시작했다. 주영모까지 제출하고 나고 5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 안토니오 바트가 큐 사인을 보냈다.

곧 따랑따랑 하고 울리는 가벼운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중간 심사 결과 발표가 있겠습니다!』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앞으로 걸어 나오며 외쳤다.

『먼저 탈락한 빵이 어떤 것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겉껍질이 입에 들어가기 전까지 모양을 유지하지 못한 11번 빵입니다.』

『…!!』

『기본적인 완성도 자체의 문제입니다. 7번 빵을 만드신 국가는…말레이시아. 수고하셨습니다.』

빵공예 제품을 만들고 있던 말레이시아의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그대로 손을 멈추었다. 참혹한 표정이다. 그들은 이제 이곳을 나가서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탈락자들이 뿜어내는 절망감을 느낀 임진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만들다 만 빵 반죽들은 아깝다. 전부 최고급 밀가루를 썼을 텐데.”

나라 잃은 표정으로 무대를 내려가는 세 명의 말레이시아 페이스트리 쉐프들을 바라보며 마리오가 미간을 좁혔다.

‘이놈은 사이코패스인가?’

“…저 떨어진 사람들이 가엾지는 않고?”

“뺑 오 쇼콜라를 빵 껍질이 부서지게 구웠다며? 자기 실력이잖아.”

전장에 처음 나온, 삼류 무인이 ‘앗! 실수로 칼을 갈지 않았네요!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고 해서 사정을 봐주는 사람은 없다.

코웃음 치며 말하는 진혁에게 마리오가 대답했다.

“오늘따라 대회장의 오븐 설정을 잘못 맞추었을지도 몰라. 운이 나빴을 수도 있지.”

그는 진혁과 함께 나갔던 예전의 대회를 상상하며 말했다.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핑계야. 빵집에 온 손님한테 오늘은 비가 와서 습도가 높으니 수분기가 많아 빵의 맛이 달라졌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 항상 다른 조건이어도 같은 맛으로 빵을 만들어야지.”

마리오가 수긍했다.

“그건 그렇지. 그래도 저 모습이 나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신경이 쓰여.”

“나하고 같이 출전한 이상 그럴 일은 없을걸.”

“자신만만한데?”

마리오가 피식 웃었다. 잠시 손이 멈춘 사이 진혁이 지적했다.

“너, 거기 가시 부분은 좀 더 날카롭게 해줘. 이건 애완용으로 키우는 고슴도치가 아니고 적을 물리치기 위한 군사용 배라고, 배.”

“알았어, 알았어.”

‘진혁이 이놈은 자기 거 만들기도 바쁜데 남이 하는 걸 잘도 보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헤드 쉐프의 자질일지도 모른다고, 마리오는 속으로 생각했다.

‘서 있기만 해도 심장이 떨리는 것 같은 이런 무대에서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모습. 이런 걸 나도 배워야겠어.’

◈          ◈          ◈

말레이시아와 이집트, 체코 세 팀이 탈락하고 자리를 떠났다.

『3등은- 프랑스 팀입니다!』

초콜릿을 빵 반죽에 투입해 초콜릿 빵을 만들어놓은 것은 탈락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지만 빵의 비율을 조절하는 것은 원래 허용된 범위 내에 든다.

『이번 대회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많군요! 호두 오일을 통해서 독특한 향을 추가한 빵이 3위를 했습니다.』

조제프 쇠비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주느비에브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번에는 1위를 탈환하고자 해서 하지 않던 시도까지 했지만, 오히려 더 추락해버렸다.

『2등는 12번, 말랑말랑한 뺑 오 쇼콜라를 만들어낸 대만입니다! 쫄깃쫄깃한 속살이 아주 좋았다는 평이었습니다.』

관객석에 있던 기자들 중 독일 기자가 고개를 돌리며 리암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이라도 내기를 취소하고 싶어지지 않아?』

『아니, 이번에 한국 팀이 실력을 보여줄 거야. 과자를 그렇게 잘 굽는데 뺑 오 쇼콜라를 못 구울 리가 없거든.』

리암 에이든이 턱을 괴고 말했다. 겉으로는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지만, 속으로는 떨고 있었다.

’괜히 백 달러나 걸었나? 이번에는 대만 팀도 꽤 하는데.‘

한편, 일찌감치 자신의 팀이 통과하였으나 심사권에 들지 못했던 것을 알고 있던 미국 팀은 심사평을 듣는 것보다 빵 세공을 하는 데 더 집중했다. 프랑스 팀은 심사평을 듣느라 손을 멈춘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는 프랑스 팀보다 우리가 더 속도가 빠를걸,‘

리처드는 빵 반죽을 구우며 흥겹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마운트 러시모어에 가본 적이 있어?』

『수학여행 때 한 번.』

『수학여행은 보통 뉴욕으로 가는 거 아닌가? 누가 사우스다코타주에 수학여행을 가.』

『글쎄.』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에는 유명한 관광지랄 것이 없다. 1941년에 만들어진 마운트 러시모어에 새겨진 위대한 네 사람의 얼굴을 제외하면 말이다.

러시모어 산의 거대한 돌로 된 절벽을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해 깎아 만든 이 조각들은 가로로는 122미터 길이에 세로로는 18미터에 달할 정도로 크고 아름답다.

『그래서 리처드 베이커 쉐프가 러시모어 마운틴에 수학여행을 갔다 왔다는 이유로 이게 우리 주제가 된 거야?』

얼음 조각을 하고 있던 토마스 웨인 브라운이 킬킬대며 웃었다.

『우리는 수학여행을 플로리다 디즈니랜드로 갔는데 말이지. 리처드 쉐프가 나처럼 탤러헤시에 살았으면 미키마우스를 굽고 있겠네.』

『저작권 때문에 캐릭터 상품은 안 되잖아.』

『미리 허가받으면 괜찮지 않을까?』

『로열티 비싸서 싫어.』

미국 팀이 만들 큰바위얼굴에 등장하는 인물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워싱턴, 그리고 토마스 제퍼슨, 테오도르 루즈벨트, 아브라함 링컨 네 사람이다.

세밀한 조형이 가능한 반죽을 사용하기 때문에, 눈썹 하나하나까지 세세한 부분은 반죽 상태에서부터 조형되어야 한다. 그래서 리처드도 브라이언도 바빴다.

『역시 브라이언 쉐프가 손이 빠르단 말이지.』

마디마디 관절이 불거진 가느다란 손가락이 분주하게 반죽의 생김새를 다듬어가며 코와 눈썹, 미간, 그리고 입술의 형태가 드러난다.

『조지 워싱턴의 콧대가 너무 높지 않아? 안 와를 조금 더 파내야 하나?』

세세한 조형은 브라이언 쪽이 리처드보다 낫다. 리처드 베이커가 얼굴의 비율을 살피면서 잠시 손을 멈추고 묻자, 브라이언이 대답해주었다.

『클레오파트라도 아니고 이 정도면 되지. 어려우면 거기까지만 하고 넘기고.』

『오케이.』

브라이언은 막 아브라함 링컨의 트레이드 마크인 유명한 수염을 될 부분을 스패츌러로 밀어내며 다듬던 참이었다.

그는 이미 이목구비를 다 잡고 나서 섬세한 수염의 결을 이쑤시개처럼 가느다란 긁개로 긁어내던 참이었다.

『이 수염 결 말인데. 실제 러시모어 산에 있는 것과 같은 모양으로 할까, 아니면 좀 더 세밀하게 디테일을 파는 좋을까?』

『시간 문제만 없으면 세밀한 쪽이 더 재밌겠는데.』

『아, 시간. 그럼 그냥 러시모어 산을 그대로 하는 거로.』

잠시 동안 두 사람은 별말 없이 얼굴을 깎는 데 열중했다. 콧대를 다듬고 콧방울과 콧대 사이를 파고, 콧구멍이 될 부분 안쪽에 젓가락처럼 가는 봉을 넣어 안쪽의 덩어리를 빼낸다.

얼굴의 콧구멍을 파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말로 구멍 안쪽의 살을 파내어 실제 콧구멍과 똑같이 그림자가 지게 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옅게 살을 남겨두고 조금만 판 다음에 검은색으로 칠해서 구멍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이다.

전자의 방법을 쓸 경우의 문제점은 빵이 익으면서 부풀어 오르고, 일단 구워진 빵을 깎아내면서 주변이 부스러질 수 있어 모양이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번에는 후자의 방법을 쓸 계획이었다.

『눈알 4쌍은 다 되어가?』

『응.』

안구가 들어갈 부분은 따로 파고, 안구 부분은 별도의 흰색 반죽으로 동그랗게 만들어 나중에 합체할 예정이다.

브라이언이 말했다.

『조지 워싱턴은 눈꺼풀이 반 이상 가리고 있으니까 안구의 형태도 다르게 합시다.』

『실제 눈알하고 같게 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뭐 인체 모형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인체 모형이라. 만들면 좋아할 놈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옆 부스라면 지금 뭘 만들고 있는지 보일 텐데, 저쪽 끝의 부스라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리처드 베이커는 임진혁이 지금쯤 무엇을 만들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레시피도 그냥 공개해버리다니, 정말이지 예측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는 쉐프라니까. 역시 젊음이란 좋은 거야.’

임진혁의 실제 정신연령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베이커가 생각했다.

엘리자베스 포크너가 은빛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며 눈웃음을 지었다. 웅장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두두두둥

『1위! 1위를 발표하겠습니다. 정통 프랑스 제빵을 그대로 실현했다고 하여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1위로 선정한 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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