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76화 (276/656)

제 276화

『이게 대회 외부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스테피가 고개를 저으며 미간을 좁혔다. 라이언 윈체스터가 말했다.

『빵이 식기 전에 먹지. 향기가 좋은걸.』

『라이언 말이 맞아.』

심사위원이 모든 빵을 전부 먹지는 않는다. 배가 부르면 미각이 둔해지기에, 맛만 보는 것이 예의다. 푸드파이터가 아니라 맛을 평가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다른 감각이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지극히 기본이다.

라이언 윈체스터가 감각이 둔한 손을 천천히 움직여 접시 위에 있는 빵들을 톡, 톡 건드려 보았다.

-파스슥

손을 대자마자 바로 겉껍질이 바삭바삭하게 부서져 내리자, 라이언의 이마에 깊은 주름살이 패였다. 그는 흘긋 접시에 쓰인 플레이트 넘버를 체크했다.

[7번] 이었다.

『반죽을 어떻게 했길래 껍질부터 이렇게 부서지나.』

크루아상과 같은 반죽을 쓰는 뺑 오 쇼콜라다. 입안에서 부서지는 거라면 모를까, 이빨로 물어뜯기 전에 손이 닿기만 해도 무너지는 건 너무 약하다. 그는 7번 빵을 반죽한 제빵사가 밀가루를 너무 많이 넣은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생각보다 맛은 괜찮은데.’

따끈따끈하고 향긋한, 얇게 겹쳐 쌓은 빵.

그는 빵칼로 빵의 절반을 잘랐다. 돌돌 말려져 겹쳐진 빵 사이로 녹아 스며들어 있는 초콜릿이 보였다.

제대로 만든 뺑 오 쇼콜라다.

페이스트리 층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 것을 느끼며 라이언은 방금 느꼈던 감상을 정정했다.

‘입안에서 살살 녹게 만들려고 일부러 잘 부서지는 형태로 바꾸었군.’

괜히 이쪽 조각을 맛보았다. 뺑 오 쇼콜라를 평가할 때는 초콜릿 역시 평가해야 한다. 초콜릿이 들어있는 부분까지 맛보려면 한 입은 더 먹어야 한다. 그는 절반이 드러나 있는 빵의 초콜릿 부분을 장갑으로 휘저어, 살짝 덩어리져 있는 흑갈색 덩어리를 손끝에 발랐다.

-처덕처덕

‘초콜릿은 나쁘지 않아.’

비옥한 토양이 풍기는 향기처럼, 살짝 씁쓸한 맛이 나는 초콜릿은 익숙한 맛이었다. 아마도 벨기에의 벨코라우테 산이리라.

하지만 역시, 어제 맛보았던 그 초콜릿이 더 맛있다.

‘모델링 초콜릿이 이것보다 더 맛있었지.’

입안에 찰싹 달라붙어, 혀까지 빨아 삼킬 정도로 흡인력 있는 맛이었다. 맛보는 것만으로도 순간적으로 여기가 어디인지 잊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꽃향기와 풍부한 산미. 어제 그 초콜릿을 떠올리자 입안에 저절로 침이 고였다.

하지만 그 기억이 생생한 만큼, 이 초콜릿의 맛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이런, 큰일 났군.’

그는 빵을 내려놓았다. 옆에 준비된 찬물로 한 차례 입을 헹구고 심호흡을 했다.

방금 전에 먹은 것도 아니고, 어제 맛본 초콜릿의 맛이 머릿속에 감돌아서 맛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다니 미식 평론가로서 수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요리사를 하지 ‘못해서’ 미식 평론가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만큼 뛰어난 페이스트리 쉐프를 찾아내서, 제대로 키워내고 싶다.’

하지만 세계의 온갖 베이커리를 방문하고,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즐기고, 다양한 맛을 탐방했다. 뛰어난 쉐프는 많았지만, 그가 ‘원하는 형태’의 페이스트리 쉐프는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어제 그 앙트르메와 모델링 초콜릿을 만든 자.’

그는 동양에서 온, 뛰어난 외모의 쉐프를 떠올렸다.

사고 이후로부터, 자신이 어떻게 뛰어난 페이스트리 쉐프였다는 사실 자체도 헷갈릴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다.

원래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형태로 내놓는 음식에서 원재료의 형태와 맛을 살리며 자연주의적으로 돌아가는 음식까지, 세대가 변해왔다.

심지어 생화학과 물리화학의 힘을 빌려, 분자배열과 구조를 변형시켜 본래는 존재하지 않았을 음식을 창조할 방법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어제의 초콜릿은 그 자신을 깨닫게 했다.

라이언 윈체스터는 자신이 어떤 종류의 페이스트리 쉐프였는지, 다시 한번 알아차렸다.

그는 킬로그램당 몇억 원짜리 재료를 사용해서 만드는 귀한 음식을 다루며 자랑스러워하는 페이스트리 쉐프가 아니었다.

어디에나 있고 흔한, 누구라도 다룰 수 있는 재료를 섬세하고 정확하게 손질해서 요리해내는 제과제빵사였다.

누구에게나 공개된 흔한 레시피에 아주 조금, 그만의 테이스트를 추가해서 최상급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그만의 솜씨였다.

세상 모든 사람이 전부 계란 프라이를 소금 없이 부쳐 먹는 세상이 있다고 해보자.

그 세상에 라이언 윈체스터가 있다면 그는 최초로 계란 프라이의 완벽성에 도전할 것이다. 소금을 뿌리고, 케첩을 뿌리고, 간장을 뿌려서 어느 것이 최고의 계란 프라이에게 어울리는 양념일지 결판을 내고 마는 자.

그것이 라이언 윈체스터의 본성이었다.

사고 이후 그는 양손에 충분히 힘을 줄 수가 없다. 세밀한 장식을 하지도 못한다. 티스푼에서 한 방울의 향신료를 떨어뜨릴 수도 없다.

못난이 빵이라면 얼마든지 구워낼 수 있으나, 그가 원하는 수준의 제과제빵은 더 이상 못한다는 진실을 깨달은 시점에 그는 요리를 그만두었다.

‘그자가 바로 내가 찾던 사람이야.’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는 모델링 초콜릿 레시피. 가장 흔한 모델링 초콜릿 레시피에는 두 종류가 있다. 녹인 초콜릿을 주재료로 모델링 초콜릿과 녹인 사탕으로 만드는 모델링 초콜릿. 임진혁은 기존 커버춰 초콜릿을 재료로 만드는 초콜릿 레시피에 꽃 오일을 더했다.

모델링 초콜릿을 만들 때는 옥수수 시럽을 섞는 양을 조절해 경도를 맞춘다. 다크 초콜릿과 옥수수 시럽의 비율은 2:1, 화이트 초콜릿의 경우에는 4:1이다. 하지만 진혁 쉐프는 거기에 자신만이 아는 재료를 섞었다. 오늘 아침 공개된 레시피에 따르면 유채꽃 오일과 카카오 버터다.

‘바로 내가 찾던 종류의 원석이지.’

지금 먹고 있는 이런 평범한 뺑 오 쇼콜라와는 기본부터 다르다.

장갑에 덕지덕지 붙은 빵 껍질 조각이 거슬렸다. 그는 천천히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던지고, 느긋하게 새 장갑을 끼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심사위원, 스테피는 힐긋 라이언을 살폈다. 라이언이 7번 빵의 빵 껍질과 초콜릿을 맛보며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흐-음. 그렇게 별로인가?’

그는 7번 빵에서 새끼손가락 손톱만큼, 아주 적은 양을 떼어냈다. 맛을 보더라도 이왕이면 맛있는 걸 더 많이 먹어보고 싶다. 스테피는 입안에 빵과 초콜릿 조각을 옮겨놓고 천천히 혀를 굴렸다.

‘기본적으로 무난한데? 특별히 나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는 관대한 마음으로 점수를 평가하고, 다음 빵으로 건너갔다.

『이 팀은 그냥 초콜릿 빵을 구웠네?』

그는 쯧쯧, 하고 혀를 찼다. 반죽에 코코아 가루를 섞었는지, 완연한 갈색으로 구워진 뺑 오 쇼콜라가 하나 보였다. 기본적인 프랑스의 정통 뺑 오 쇼콜라는 크루아상 반죽을 쓰는 것이 정석이다. 대회 규칙상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여태까지의 시험에서 모든 빵은 정통적인 규정을 따라왔다.

마치 가장 오래되고 끝없이 고루하며 한없이 완고한 이들이 자기들끼리 지어놓은 성 같다.

‘얘네들은 미학을 몰라.’

다민족이 모여 사는 말레이시아에는 말레이 전통 음식, 인도 요리, 중국 음식, 중국과 말레이의 국제결혼을 통해 나타난 뇨냐라는 음식으로 갈래가 나뉜다. 빵이란 다른 문화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점점 더 맛있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래서 프랑스의 온전한 형태를 고수하고자 하는 그 전략이, 스테피에게는 조금 우습게 보였다. 그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참가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나 본데.』

오늘 새벽에 트위터를 통해서 공개된, 임진혁 쉐프의 모델링 초콜릿 레시피.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으며, 미국에 있는 수많은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초콜릿을 만들어 보고 얼마나 맛있는지 공표했다.

처음에는 국가 간 기 싸움으로 시작해, 미국인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프랑스의 고루한 대회를 비난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그 모델링 초콜릿 레시피 만들어봤더니 정말로 맛있어.’라는 이야기가 속속들이 확산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미국만이 아니라 프랑스에 있는 페이스트리 쉐프들 역시 모델링 초콜릿을 만들어 본 것이다.

아침에 심사를 하기 전에 스테피가 본 짧은 동영상 클립도 그중 하나였다.

『모델링 초콜릿이라는 게 사실 대단히 단순한 레시피에요. 어떻게 만들어도 그 맛이 그 맛이라고요. 이 재료를 넣는다고 엄청나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당당하게 말하던 프랑스인 페이스트리 쉐프는 막상 만들어진 초콜릿을 맛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이게 이런 맛일 수가 있네요. 우리 가게 초콜릿 다 치워야겠어요. 똑같은 벨코라데 초콜릿으로 만들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달라지지? 이걸 만든 사람은 천재예요.』

그 영상을 보는 순간, 스테피 자신도 피가 끓어올랐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주방으로 달려가 그 초콜릿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말레이시아의 6성급 호텔의 제과주방 주방장 출신인 자신도 이런데, 다른 쉐프들은 오죽할까.

‘아, 이런. 심사에 집중할 수가 없어.’

그는 컨닝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살폈다. 다들 제멋대로 순서 구분 없이 아무 빵이나 주워 먹고 있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모든 논란의 근원이 된 국가에서 온 다른 심사원을 흘깃 살폈다.

‘주영모 쉐프는 뭐부터 먹고 있지?’

주영모는 팔짱을 끼고 빵을 내려다보았다. 갓 구워진 빵들이 풍겨내는 향긋한 풍미도 그저 그렇게 느껴진다. 십여 년간 매일같이 비슷한 냄새를 느끼며 익숙해진다면 더 이상 그 냄새도 식욕을 자극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베스트셀러인 제빵 책을 출간하면서 시작한 주영모 아카데미는 학력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받았다. 제빵에 대해 전혀 모르는 채 입학한 학생들이 구워낸 엉망진창인 빵을 수없이 먹어보다 보면 저절로 질리기 마련이다. 빵을 좋아해서 제빵사가 되었지만, 막상 빵을 너무 많이 먹으니 질렸다. 그렇게 질려가던 차에, 빵이 다시 맛있어졌다.

주영모가 생각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맛있는 건 언제 먹어도 맛있고, 맛없는 건 언제 먹어도 맛없으니까. 임진혁이 만든 것부터 먹어야지!’

단순하기 짝이 없는 논리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아지고 싶으니 맛있는 것부터 먹을 생각이다. 심사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그는 전부 집어치우고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임진혁 쉐프는 스스로 빵 레시피를 공개함으로써 알아서 훌륭한 자기 방패를 만들었어.’

그는 3번이라고 쓰인 플레이트 위의 빵에 손을 댔다. 갓 익은 빵은 모락모락 김을 피워냈다. 따끈하게 다가오는 빵의 속살을 손으로 찢어내 하얀 속살이 길게 늘어지는 것을 면밀히 살피고, 한 점 입에 물었다.

‘음, 맛있다. 그런데 임진혁이 만든 건 아니네.’

초콜릿 부분을 예의상 한 차례 핥아준 주영모는 방금 먹은 빵에 점수를 매겼다. 그리고 바로 다른 빵에 손을 댔다.

시몬 리옹은 다른 심사위원들이 빵에 손대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뜨거운 빵은 원래 더 맛있게 느껴지기 마련이야.’

그는 빵이 온기를 잃고 조금 식기를 기다렸다. 그는 독수리와도 같은 눈으로 빵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폈다.

‘레시피를 오픈할만큼 자신이 있었던가. 그러면 뻉 오 쇼콜라도 그만큼 맛있게 만들었겠지.’

처음으로 제빵대회에서 그는 제자의 것이 아닌, 다른 자가 만든 빵을 먼저 찾았다. 인생 최초였지만 그는 자각하지 못했다.

‘그놈이 만든 빵은 어떤 거지?’

결코, 맛있어서 찾는 게 아니다. 정당한 판결을 내려주기 위해서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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