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4화
“빵을 만드는 데 필요하지 않아도 알아야 할 건 많지.”
루이스가 고개를 가볍게 까닥이며 손을 움직였다.
“그래. 네 똥 굵다.”
◈ ◈ ◈
리암 에이든은 오늘도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 현장에 왔다. 어제 내기를 건 친구들이 킥킥대며 말을 걸었다.
『리암, 100달러를 낼 준비는 잘 됐어?』
『너야말로 낼 준비를 하라구. 이건 아무리 봐도 편파 심사로밖에 안 보인단 말이지.』
리암이 어깨를 으쓱했다. 독일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건 맞는 말이야. 어제는 좀 말 나올 일이 많았지. 이제 시끄러워질 거야.』
『하인리히 윙켈이 탈락해서 안 됐어.』
『아직 젊으니까 지금 탈락해도 괜찮아. 진정한 독일 남자라면.』
『아깝긴 아까웠지.』
『일본 팀도 만만치 않은데. 음양 앙트르메는 균형을 잘 잡았잖아.』
『이번에는 묘하게 동양 쪽 팀이 잘하는 느낌이야.』
『그건 아니다, 중국이 완전 죽 쒔잖아.』
『대신 일본하고 한국, 대만이 선전하고 있으니까.』
제이슨이 기지개를 켰다.
“네가 블로그에 썼던 초콜릿 칩 쿠키 말이야. 그거 어느 팝업스토어에 가면 사 먹을 수 있어?”
리암 에이든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야, 넌 단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리고 팝업스토어 아니야.”
“우연히 한 번만 구할 수 있었던 쿠키가, 하루만 판매하는 팝업스토어에서 샀다는 이야기 아니야?”
“최근에 뉴욕에 팝업스토어가 늘어났다는 이야기하고, 어쩌다가 만난 페이스트리 쉐프한테 초콜릿 쿠키를 얻어먹었다는 이야기를 네가 네 뇌 속에서 멋대로 합친 거잖아.”
“흠.”
제이슨은 손가락으로 터치 화면을 잡았다가 끌어 스마트폰에 리암 에이든이 쓴 워드프레스 블로그를 불러올렸다. 그는 가늘게 눈을 뜨고 친구가 쓴 글을 다시 훑었다.
“네 눈으로 직접, 다시 보라고.”
<환상의 쿠키 그리고 천재>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초콜릿 칩 쿠키란 무엇일까?
그 질문에는 백 명의 사람이 각자 백 가지의 맛을 대답할 것이다. 달콤쌉쌀한 맛을 즐기는 이는 80% 이상의 카카오가 함유된 다크 초콜릿 칩 쿠키가 제일 맛있다고 대답할 것이요, 맵고 단 초콜릿을 즐기는 자는 스파이시 초콜릿 칩 쿠키가 제일 좋다고 외칠 것이며, 우유처럼 순하고 달콤한 것을 사랑하는 이는 밀크 초콜릿 칩 케이크를 들이댈 것이다.
단 것, 신 것, 짠 것을 즐기는 이들 역시 나름대로 자기 목소리를 낼 터다.
모두가 각자의 입맛이 있어 그들의 입맛을 모두 만족시키기는 극히 어렵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갈린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세계가 다시 열리는 경험을 했다. 그것은 우연히 만난 한 쉐프의 ‘초콜릿 칩 쿠키’였다.
음식과 문화면을 담당하는 기자라면 비단 내가 아니라도 다양한 음식에 접하게 된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싼 세브루가 캐비어를 올려놓아 한 접시에 백이십여만 원 가까이 하는 달러 프리타타, 24k 금박을 아낌없이 사용해 접시당 사백여만 원이라는 가격을 자랑하는 골든 오믈렛, 1kg당 700여만 원에 달하는 가격의 덴스케 검은 수박처럼 고급스럽고 희귀한 음식들.
그에 비하면 초콜릿 쿠키란 그다지 대단한 음식은 아니다. 1938년에 한 제빵사가 미국에서 개발한 이 쿠키는 유명한 과자 회사에서 레시피를 사들여 현재 편의점과 슈퍼마켓을 비롯한 모든 가게에서 시판하고 있다. 1달러만 있어도 유사 브랜드의 모조품 미니 초콜릿 쿠키를 살 수 있다.
그러니 그 쉐프가 직접 만들었다며 초콜릿 칩 쿠키를 내밀었을 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갓 구운 쿠키 특유의 좋은 향기가 풍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오 세상에! 그 쿠키는 내가 여태까지 맛본 그 어떤 쿠키와도 달랐다. 걸스카우트와 보이스카우트가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서툰 쿠키하고도 다르다. 어머니가 정성 들여 구워주신 할로윈 기념 단호박 쿠키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다. 아니, 그렇게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자에게 바다에 대해 설명한다고 생각해 보자. 싱그러운 바다 향과 맨발에 닿는 따끈따끈한 고운 모래, 몰아쳤다가 다가와 모래에 닿기 직전 부서지는 하얀 포말,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끼룩끼룩 울며 멀리 나는 갈매기들, 한눈에 가득 담기지 않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도 바다를 보지 않은 자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이 쿠키가 바로 그랬다.
버터를 넣어 구운 쿠키는 부드럽다. 하지만 쿠키가 부드러워 봤자다. 아무리 부드럽다고 하더라도 초콜릿만큼 부드러울 수는 없다.
내가 실은 초콜릿 칩 쿠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던가?
어렸을 적 어머니가 설탕 대신 소금을 잘못 넣어 구워준 쿠키를 먹어본 적 이후로, 초콜릿 칩 쿠키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정말로 맛있는 음식은, 그 어떤 취향보다 우선하다.
(…중략…)
음식은 얼음 조각과도 같아 녹아버린 후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내가 먹은 쿠키는 당신이 먹은 쿠키와 맛이 다르다. 반죽의 차이와 초콜릿 칩의 위치 차이 때문에, 모든 쿠키는 한없이 닮은 맛을 재현하려 하나 조금씩 다르다.
그러한 맛을 세상에 소환할 수 있는 놀라운 실력의 쉐프.
그가 지금 파리에서 부당한 일을 겪고 있다.
제과제빵사들의 올림픽이라고도 하는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
그 대회의 첫 번째 날에 있었던 일이었다.
-토옥, 톡.
리암 에이든은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해 블로그 스크롤을 내려 화면을 보여주는 제이슨의 손을 밀어냈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었길래 그래? 이거 아예 대놓고 진혁 쉐프를 옹호하고 심사위원들을 저격하는 거잖아.』
『누군가를 비방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사실을 말하는 거지.』
『저 사람들이 다들 이 업계에서 한가락씩 하는 사람들이라는 건 알잖아. 왜 이런 짓을 했어? 앞으로 제과 면에서 취재할 때 귀찮아질 거야.』
『적어 놨잖아.』
『뭐?』
『초콜릿 칩 쿠키가 맛있어서 그랬어.』
리암 에이든이 양손을 들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맛있는 초콜릿 칩 쿠키를 만드는 사람이 만들어낸 초콜릿 조각품이니, 그것도 분명 엄청나게 맛있었을 거야.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서 안타까워.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했지. 그게 언론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
『웃기지 마. 정말로 그렇게 사명감이 있었으면 이런 식으로 네 블로그에 써 갈기지 않고, 아예 정식 기사로 올렸겠지.』
『그런데 왜 태클이야?』
『평소에는 영어로만 작성하는 블로그에 왜 프랑스어로 작성했냐고. 사실대로 얘기해 봐. 임진혁 쉐프한테 돈 받은 거지?』
『돈은 무슨. 아침에 혼자 올린 거야.』
『여기 댓글 좀 봐.』
새벽 일찍 일어나 글을 올리고 난 후 바로 대회장으로 왔기 때문에 댓글은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리암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댓글? 무슨 댓글?』
『네가 글을 올리고 5분 후에 임진혁 쉐프가 어제 사용했던 모델링 초콜릿 레시피를 공개했어. 그 링크야.』
-휘유우우우.
리암 에이든이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오. 성격 대단한데?』
‘사업적으로 충분히 돈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인데. 이런 식으로 냅다 공개해버릴 만큼 치기 있고 어린 성격이었나?’
그렇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열 길 사람 속은 모르는 일이다. 리암이 킥킥거리며 레시피를 살펴보는데 제이슨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유명한 페이스트리 쉐프가 이 레시피로 모델링 초콜릿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지.』
그뿐만이 아니다.
시몬 리옹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가 갑자기 헤실거리며 모든 것을 놓아버린 표정을 짓는 것을 촬영해 편집한 움직이는 사진 파일(GIF) 역시 돌아다니고 있다.
『맛도 모르는 미국 기자가 듣도 보도 못한 아시안 쉐프를 띄워주려고 글을 썼다고까지 한다고. 지금 페이스트리 쪽 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반인들이 우르르 달려들었어.』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는 젊은 페이스트리 쉐프들에게 있어 세계 최고라는 이름을 인정받기 위한 등용문에 가깝다. 그렇기에 제과제빵계에서는 이름난 대회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렇게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누구나 뚜르 드 프랑스에 대해서 알지만, 사이클 경기의 열렬한 팬이 아니고서는 언제 누가 어떻게 어디서 하는지 정확히는 잘 모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번에 리암 에이든이 쓴 글이 도화선이 되어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유튜브까지 어제 사건이 일파만파 확산되었다.
@Cookies4Life : 양키놈이 무슨 맛을 안다고 나대는지 모르겠네.
@Le_chat_blanc : 대체 프랑스 팀이 뭘 잘못한 건데? 대회 기준에 맞게 창조적으로 작품을 제출했잖아.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서 맛도 살려냈고. 그런데 한국 팀은 막상 대회를 할 때는 맛있게 만들었다고 어필하지도 않더니 대회 끝나고 난리야. 오히려 심사위원들이 너그럽게 잘 대응한 거지. 이번 대회는 중국팀이 불을 내질 않나, 한국팀은 대회 다 끝났는데 먹어달라고 찌질대지를 않나. 수준이 낮아.
@Sweety_Life : 중국팀은 중국팀이고. 한국 팀을 끌어들이면 안 되지. 당장 이 이미지만 봐도 프랑스팀과 한국팀의 실력 차이가 드러나지 않아?
첨부파일 1 ‘시몬_리옹_맛있음에_취하다. gif’
첨부파일 2 ‘시몬_리옹_프랑스빵_싱거워. gif’
@Panagiotis_ss : 시몬 리옹이 이상한 표정 짓고 있는 거, 너무 맛없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사실 이 글 쓴 기자 놈은 여태까지 맛있는 초콜릿 칩 쿠키를 먹어본 적이 없는 불쌍한 인생인 건지도 몰라. 당장 3구에 있는 가게들 아무 데나 들어가도 훌륭한 초콜릿 칩 쿠키를 먹을 수 있다고. 당신이 맛있다고 착각한 그 음식이 다른 누군가에겐 음식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란 말이지. 빵 맛을 모르는 아시아 촌구석에서 온 쉐프라고.
@SKorea_9001 : 임진혁 쉐프는 빵맛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야.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서 아드레아노 존부가 인정했다고.
첨부파일: ‘내_빵보다_더_맛있다.jpg’
처음에는 미국과 프랑스의 기 싸움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임진혁의 팬들과 한국인들 대 프랑스의 악플전이 되었다.
리암 에이든은 알 길이 없었지만, 정지숙이 지휘하는 진바라기의 회원들은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고 있었다. 그녀가 사비로 고용한 아르바이트생들이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역한 댓글을 진바라기 회원들이 각종 커뮤니티에 다는 것이다.
물론 지숙의 지휘를 벗어난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김도을이 그중 하나였다.
“지금 국가대표로,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토종 페이스트리 쉐프가 열심히 대회에 참가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코쟁이 놈들이 무시하고 있다고요. 한국에서 태어나서 빵을 못 만든다는 게 말이 돼요?! 지역 차별이에요, 차별.”
그는 흥분한 어조로 방송을 이어갔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어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도을아, 너 학교 안 가고 여기서 뭐 하니?”
“은혜를 갚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