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69화 (269/656)

제 269화

“푸아그라랑 탕수육이 가격대 차이는 조금 나는 것 같지만요.”

“프랑스에서는 푸아그라가 그렇게 비싸지 않아요. 저렴한 냉동 푸아그라는 한 캔에 몇천 원 정도로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 살 수 있거든요.”

강 씨 형제의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진혁은 강 씨 형제가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먼저 푸아그라를 빵에 바르고 한입 물었다.

파테 입자가 송골송골하게 빵 사이에 스며들어, 파삭하고 딱딱한 빵과 대조되는 식감은 나쁘지 않았다.

단단한 식빵에 발린 농후한 지방의 맛이 부드럽긴 하나 결국 간 맛이었다.

‘돼지 간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맛이야. 거위 간이 아니라 오리 간인데.’

그는 이것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간을 먹어본 기억이 났다. 신강 십만대산에는 겨울이 되면 포동포동하게 살찐 철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온다. 그러면 암천대원들이 철새를 잡아 숙수에게 넘긴다. 숙수는 귀한 음식이라며 교주를 위한 새 구이를 내놓는다. 그때 간은 따로 꺼내서 요리하는데, 지금 이런 식으로 파테나 무스처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살짝 데쳐서 날것 그대로 먹었다.

‘이건 뭔가…상태가 좋지 않군.’

짓눌리고 으깨진 간에는 살아있던 거위가 느끼던 고통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푸아그라용으로 사육되는 거위의 경우, 움직이지 못하게 몸을 가두고 고개만 내민 채 위에 바로 호스를 연결해 끊임없이 사료를 투입한다. 일반적인 거위의 1일 권장 섭취량은 곡물 150g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푸아그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거위에게 1일 1.5kg 이상, 평소 먹는 양의 열 배 이상의 사료를 투여한다. 인간으로 치면 하루 세 공기의 밥을 먹는 청년에게 1일 30공기의 밥을 먹도록 강요하는 셈이다.

좁은 우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다 보니 면역력이 약해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쉬워, 투여하는 약물 양도 만만치 않다. 씁쓸하게 느껴지는 항생제 맛을 민감하게 느끼며 진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조그마한 곳에 갇혀 끊임없이 먹을 것을 투여받아온 짧은 삶.’

막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다가오니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맛보다 다른 데 더 집중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미 나에겐 미식(美食)이 아니야.’

그 다음에는 빵에 푸아그라와 푸룬을 함께 발라 맛보았다. 으깨서 설탕과 함께 끓여놓은 푸룬은 단순한 푸룬이라기보다 푸룬 잼에 가까웠다. 새콤한 맛과 진한 지방의 맛이 조화되자 독특한 풍미가 났다.

진혁은 솔직하게 말했다.

“푸아그라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 삶은 돼지 간을 후추와 소금에 찍어 먹는 게 더 나은 것 같아.”

돼지 간은 최소한 이 거위 간 보다는 상태가 좋다.

“결국 그래서 진혁이 너는 푸아그라 자체가 맛이 없다는 거야?”

“임진혁 너는 미식이 뭔지 몰라!”

루이스와 마리오는 푸아그라가 얼마나 맛있는지 열심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진혁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원래 안 먹어보던 거 먹으면 낯설어서 별로 맛없게 느껴질 수 있어. 익숙한 게 제일 맛있는 거야.”

임운정이 강 씨 형제들에게 말했다.

“나는 이건 푸룬을 바르지 않는 편이 더 맛있는 것 같네. 푸아그라, 푸아그라하고 말만 들어봤지 이렇게 먹어보는 건 처음이야. 아들 덕분에 이런 것도 먹어보네.”

진혁이 입꼬리를 가볍게 올렸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구나.’

곱창이나 순댓국 등을 즐겨 드셔서, 함께 양식을 먹으러 갈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진혁은 마음속의 할 일 목록에 ‘부모님 모시고 양식 먹으러 가기’를 추가하였다.

‘이번 대회가 끝나는 대로 부모님과 식당에 다녀오고, 다시 신강에 가서 부하들의 자취를 수색해야지.’

일행이 식사를 마치자 웨이터가 다가와 푸아그라 접시를 치웠다.

『샐러드입니다.』

메인 메뉴 전에 나온 가벼운 샐러드는 새우를 곁들인 아보카도(Avocat Sauce Crevette)였다. 신선한 아보카도는 연푸른 속살을 부끄러움 없이 내보이고 있다. 씨앗을 꺼내어 손질한 빈자리에는 연 주홍빛 로제 소스가 가득 담겨있는데, 그 안에는 머리와 꼬리를 손질한 작은 생새우가 소스에 버무려진 채 소복하게 쌓였다.

새우를 한 마리 집어 입에 넣은 아버지가 즐거운 듯이 이야기했다.

“평생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들인데, 해외까지 와서 이런 걸 다 먹어 보네요. 이런 건 나보다 애들 엄마가 더 좋아할 텐데.”

오랜 비행 때문에 지쳐 있었던 부친은 새로운 요리를 보는 것이 즐거운지 접시를 싹 비운다. 그 모습을 보며 진혁이 씩 웃었다.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배가 불렀다.

“이 아보카도도 아주 신선하네. 물이 좋은가 봐.”

‘그래도 그린워터 농장만큼 신선하지는 않지만 말이죠.’

아버지가 음식을 칭찬하는데 굳이 무어라 토를 달고 싶지는 않아, 진혁은 생각하던 것들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에일린 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혁 쉐프. 내가 제안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예?”

“오늘 만들었던 모델링 초콜릿 말인데,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진혁은 아보카도를 포크로 자르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떻게 하다뇨?”

랑비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시즈 강, 즐거운 식사 자리에서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시다니요. 저희 회사에서도 임진혁 쉐프가 오늘 만든 ‘맛있는 모델링 초콜릿 레시피’에 관심이 있습니다.”

에일린이 호쾌하게 웃었다.

“시몬 리옹을 알아요?”

“…오늘 심사 위원 중에 한 명이었죠?”

“진혁 쉐프가 알 필요는 없는 사람이에요. 어차피 프랑스에서 페이스트리 쉐프로 일할 건 아니잖아? 그 사람은 국수주의자 꼰대에 성격도 안 좋은데, 제자 가르치는 것하고 혀 하나는 최고급이에요. 그 시몬 리옹이 손가락을 빨게 만들 만큼 맛있는 모델링 초콜릿 레시피가 있다고 해서 다들 난리에요.”

그녀는 식탁 위로 명함을 내밀었다. 펄이 들어가 반짝이는 고급 명함 위에 금박으로 새겨진 글씨를 보고 임운정이 호오 하고 감탄했다.

“우리 회사는 미국에서 냉동 생지와 초콜릿을 유통하고 있어요. 한국에도 꽤 납품하고 있답니다.”

진혁 역시 알고 있는 회사였다. 그는 새삼스럽게 눈앞에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마리오와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들, 금수저였구나.’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에 가서 학교를 다니며 태권도를 배웠다는 것부터 이미 집안에 어느 정도 돈이 있다는 이야기다.

“엄마, 괜히 친분을 이용해서 은근슬쩍 계약서 내밀지 말아요. 진혁이 얘가 이렇게 보여도 솜씨는 좋아.”

마리오가 손을 휘저었다.

“보니까 우리 보러 온 게 아니라 계약하러 왔네.”

언뜻 실망한 기색도 내비친다. 에일린이 활짝 웃었다.

“우리 귀한 아들들 볼 겸 해서 왔다가, 비즈니스 쪽에 좋은 기회가 있길래 제안하는 거지.”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계약하니 뭐니 할 만큼 대단한 레시피는 아닙니다.”

“아니야. 진짜 맛있었어.”

루이스가 말했다.

“네가 샘플 갖고 나가는 정신 나간 짓을 할 때 우리도 조금씩 맛봤는데 진짜 장난 아니었어.”

“맛있긴 정말 맛있더라. 진짜…말 한마디만 해 주지. 우리가 금메달을 땄을지도 모른다고.”

“알았어, 알았어. 다음부턴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다 이야기하겠다고.”

“네가 생각하는 사소한 일이 도대체 어떤 건지 모르겠다, 야.”

세 사람이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것을 보며 임운정이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애들이 사이가 좋군요.”

“사실은 두 녀석이 나이 차가 좀 있어요. 경력도 많이 차이가 나고요. 그래서 둘이서 다른 쉐프님과 함께 대회를 나간다고 해서 조금 걱정했거든요. 마리가 루이를 많이 따르기는 하는데, 괜히 형 후광을 두르고 대회 나간다고 오해받으려나 해서요. 다른 한 분의 쉐프님이 소외당하지는 않을까 염려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네요. 이 팀의 구심점은 임진혁 쉐프예요. 아드님을 아주 잘 키우셨습니다.”

에일린이 웃었다. 임운정이 로제 소스에 새우를 바르며 말했다.

“루이스 쉐프도 아주 어른스럽고 포용력이 있던데요? 진혁이가 실력은 있어도 아직 어리니까 서툰 데가 있는데, 그런 점을 잘 봐주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아들을 칭찬하는데 랑비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진혁 쉐프는 성인인데 아버지가 오신다고 해서 놀랐는데, 루이스 쉐프와 마리오 쉐프의 어머니께서도 오신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파리에서 해야 하는 계약이 있는 김에 들렀어요. 아들 둘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기회도 드무니까.”

“…하하, 아들놈이 벌써 20대 중반이죠. 훌륭한 어른이지만 그래도 부모에게는 애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혼자 외국에 나가 있다고 생각하니 자랑스럽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해서 왔습니다.”

메인 디쉬인 스테이크는 버터와 감자를 곁들인 쇠고기 안심이었다. 육즙이 풍부한 고기를 맛보며 임운정이 흐뭇해했다.

“정말 맛있군요.”

식사를 마친 후 나온 디저트는 평범한 딸기 다쿠아즈였다.

“여기는 디저트로 유명한 가게는 아닙니다.”

“그래도 조금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식사를 마치며 나오는 길에 에일린이 봉투째 서류를 내밀었다.

“계약서 샘플입니다. 진혁 쉐프, 검토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젤로스 사에서도 최근 모델링 초콜릿까지 분야를 확장하려고 합니다. 저희 회사 계약서도 가지고 올 테니 부담 없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대회에 나갈 수 있게 대가 없이 후원을 해준 젤로스 사와, 팀메이트 두 명의 친모가 운영하는 회사다. 마리오가 괜히 눈치를 보았다.

“진혁아, 우리 신경 쓸 것 없어.”

루이스 역시 덧붙였다.

“어머니. 진혁이가 부담스러워하잖아요.”

임운정은 흐뭇한 눈길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진혁이 대답했다.

“이 레시피는 어차피 그냥 공개하려고 했던 거라서, 딱히 생각이 안 나네요.”

“그냥 공개한다고?”

마리오가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가 물었다.

“어째서 그러냐?”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만드는 모습이 카메라로 찍혀서 방송됐잖아요. 그것만 봐도 다 알 걸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거니까 굳이 돈 받고 팔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대회 영상을 본다고 레시피를 알아낼 수 있는 게 아니야. 설령 레시피를 알아낸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만들 수 있는데?”

마리오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그건 너만 그래….”

“뭐야, 못 만들어?”

“당연히 못 만들지!”

루이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카메라가 계속 너만 따라다니는 게 아니잖아. 중간중간 다른 팀도 촬영한다고. 그러니까 레시피를 다 알 수도 없어. 만일 네 말대로 대회에 나와서 요리하는 사람 보고 누구나 다 따라 만들 수 있다면, 누가 대회에 나와서 자기 비장의 레시피로 요리를 하겠냐?”

“잠깐 비는 순간은 추측해서 메울 수 있잖아.”

“보통 사람은 그게 안 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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