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68화 (268/656)

제 268화

『진혁 쉐프! 파리 불랑제리 매거진입니다. 인터뷰가 가능하실까요?』

진혁에게 다가온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영어로 말을 거는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프랑스어로 말하면서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다. 마리오가 고개를 저으며 모두 밀어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루이스 강은 예의를 잃지 않으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진혁 쉐프는 내일 대회를 위해서 컨디션을 관리해야 합니다.』

『오늘 꼭 인터뷰해야 하는데요….』

『진혁아, 너….』

루이스가 한 장 두 장씩 명함을 받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막상 인파 사이에 임진혁이 없었다. 그는 바로 옆에 서 있는 마리오에게 물었다.

“진혁이는 어디에 갔어?”

“어라? 조금 전까지 여기에 있었는데….”

진혁은 어느샌가 자리를 피해 인파 너머에 서 있었다. 신법을 이용해 몸을 빼낸 것이다. 그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는 옆에는 랑비에가 서 있었다.

루이스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

“아니, 지금 누가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데.”

뒤쪽에서부터 인파를 헤치며 다가온 랑비에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루이스 쉐프, 마리오 쉐프.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는 이곳에 있는 대부분 사람과 안면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랑비에가 프랑스어로 무어라 말하며 다가온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명함을 받고 돌려보내, 순식간에 앞에 있는 사람들을 정리했다.

『바깥쪽에 차를 대기시켜 두었습니다, 정지숙 여사께서도 걱정하시더군요.』

숙소까지 차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강 씨 형제 두 사람은 조용했다.

『역시 임진혁 쉐프님입니다. 한국 팀을 후원하기로 선택한 젤로스 사 한국 지부에게도 큰 명예가 되었습니다.』

랑비에가 온화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랑비에 씨도 보셨어요?』

『예, 오늘 하루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파리 시내를 지나며 마리오가 진혁을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

“어쩐지 만드는데 점도가 조금 다르긴 하더라. 맛있는 모델링 초콜릿 같은 걸 만들고 있었단 말이야? 시판하는 모델링 초콜릿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그거야?”

루이스는 팔짱을 끼고 아무 말 없이 지켜보았다. 진혁이 눈동자를 굴리며 대답했다.

“당연히 알고 있는 줄 알았지. 유채꽃 오일과 오렌지 추출물을 초콜릿에 섞는 걸 네 눈으로 똑바로 봤잖아.”

적반하장인 대답에 마리오가 발끈했다.

“내 거 반죽하고 주무르기만 하기에도 정신없는데 네가 무슨 오일을 넣고 뭘 섞는지 어떻게 알아.”

진혁이 친절하게 지적해 주었다.

“네가 뺑 오 쇼콜라 반죽 치댈 때 미지근한 우유를 넣을 뻔했다가 내가 지적해 줘서 고쳤잖아. 그게 왜 안 보여?”

크루아상이나 뺑 오 쇼콜라처럼 글루텐이 덜 형성되어야 하는 반죽의 경우, 이스트의 활동을 가능한 한 억제하기 위하여 차갑게 식힌 우유를 넣는 것이 정석이다. 미지근하거나 따뜻한 우유를 넣으면 원하는 정도로 부풀지 않기 때문이다.

루이스가 눈썹을 추켜올렸다.

“마리오 너, 이번에 그런 실수를 할 뻔했다고?”

마리오가 항의했다.

“결국, 안 넣었으니까 됐지. 십 년 이상 근무한 헤드쉐프도 아니고, 내가 할 일 하기에도 바쁜데 어떻게 전체적인 흐름까지 보냐고.”

“보이는데.”

랑비에가 흘끔 바라보았다. 두 명의 팀원을 보며 루이스가 타이르듯이 말했다.

“진혁아, 네가 무엇을 어떤 의도로 만드는지 최소한 같은 팀원에게는 이야기를 해줬어야 해. 나에게도 알려야 했고.”

“….”

“초콜릿을 맛있게 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는 걸 미리 말해줬으면, 우리도 우리의 초콜릿 철학을 설명할 때 말할 수 있었을 거야. 같은 팀원인데 우리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건 말이 안 돼.”

진혁이 미간을 좁혔다.

“어차피 먹는 거로 만드는 거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이왕 멋있게 만들면서 맛나게 만들지 않을 이유가 있어?”

마리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설마 우리 처음에 만났던 그 대회, 거기서도 승천하는 용을 만들 때도 그랬어? 맛있는 초콜릿 만들기?”

“물론이지.”

“…그것도 맛있었겠네요. 진혁 쉐프가 만든 건 다 맛있습니다.”

랑비에가 유창한 한국어로 끼어들자, 한국 팀 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진혁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였다. 살행(殺行)을 나가는 살수(殺手)는 동료 살수에게 ‘나는 지금부터 은밀히 움직이겠다.’라고 선언하지 않는다. 인질을 납치하였으면 무조건 아혈(啞穴)부터 짚어 일단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한다.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이라 상기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자신이 맛을 내기 위한 몇 가지 재료들을 비밀스럽게 숨겼다가 넣은 것도 아니었다.

『식당으로 바로 가실까요? 기다리고 계신 손님도 있으십니다.』

『기다리고 계신 손님이요?』

『아마 보면 놀라실 겁니다.』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도 자동차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낯익은 기운을 느끼고 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임운정과 낯선 중년 여인이었다.

“아버지!”

진혁이 반가워하며 말했다. 강 씨 형제 역시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어머니!”

“엄마, 지금 뉴욕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조금 전에 오를리 공항에 도착했지.”

무뚝뚝한 표정을 한 프랑스인 웨이터가 여섯 사람을 식당으로 안내해주었다. 원형 테이블에 나란히 둘러앉자 임운정부터 자기소개를 했다.

“임진혁이 아비 됩니다. 부족한 우리 아들을 데리고 대회에 나가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루이랑 마리 엄마예요. 편하게 에일린이라고 불러 주세요.”

임운정은 먼저 진혁의 안부부터 챙겼다. 오랜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와서 아직 피로해 보이는데도, 아들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혁아, 별일은 없었지?”

진혁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별일 없었어요.”

루이스가 개구리처럼 입을 빠끔거렸다.

“저, 저…. 아무 일 없기는….”

“대회장에서 테러리스트가 폭탄을 터트린 것도 아니고, 오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있어 누가 다친 것도 아니고. 대회도 무사히 잘 끝났고, 다들 자기 역할을 잘 해주었습니다.”

아버지가 피식피식 웃었다.

“그런 기준이면 세상에 별일이 어디에 있냐.”

마리오가 신나서 말했다.

“엄마, 우리 첫날에 2위로 실버 메달을 땄어. 한국 최초야.”

어린애처럼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며 임운정과 강 씨 형제의 모친 역시 놀라워했다.

“축하할 일인데!”

“세 명 다 대단하구나. 진혁아, 그게 별일이 아니면 뭐가 별일인데?”

“중국 부스에서 가벼운 화재가 있어서 중간에 대회가 한 시간 정도 중단되기도 했어.”

임운정이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린 채 진혁을 응시했다.

“너 다친 데는 없지?”

걱정스러운 시선이 진혁을 꼼꼼히 살폈다. 진혁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내보이며 차분히 대답했다.

“멀쩡합니다.”

랑비에가 말했다.

“오늘 임진혁 쉐프가 엄청난 활약을 보였습니다. 진혁 쉐프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만 해도 한둘이 아니에요.”

웨이터가 다가와 물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먼저 랑비에가 웨이터에게 추천받은 레드 와인을 아페리티프로 주문해주었다. 아뮤즈 부쉬가 나올 때까지 일행은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랑비에는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전달해주었다. 상황을 모두 들은 아버지가 기가 막혀 하며 물었다.

“진혁아…. 그렇게 무대로 뛰쳐 올라가기 전에 팀원들하고 미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단 말이냐?”

진혁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멋대로 결론을 내리잖아요. 우리건 먹어 보지도 않고 당연히 맛없을 거라고 간주하는 게 좀. 그러니까 끝나기 전에 한번 먹어 보라고 한 거죠.”

“그럼 왜 미리 내놓지 않았어?”

“앙트르메 내는 것처럼 나중에 따로 커팅하나 싶었는데 따로 커팅 시간도 안 주더라고요….”

“아니, 전에 대회 분석할 때 뭘 본 거야?”

루이스가 이마를 짚었다.

“우린 작품 위주로 봤지, 대회 진행은 본 적이 없어.”

마리오가 턱을 괴고서 말했다.

“경향전에서 우리가 초콜릿 조각한 거 제출했을 때, 심사위원들이 맛을 보디?”

“맛은 안 봤지만, 절반으로 잘라서 초콜릿 용의 핏줄과 내장을 관찰했잖아.”

“… 그건 네가 안쪽에 특별한 걸 만드는 걸 다들 봤으니까 그런 거야. 초콜릿 쇼피스 내부는 심사하지 않는 게 보통이야.”

“묘한 데서 상식이 부족한 녀석 같으니라고. 역시 너한테는 내가 필요해. 내일부터는 대회에서 뭐가 나오는지 내가 꼼꼼히 알려주마.”

마리오는 갑자기 의욕이 넘쳐서 이것저것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진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고생했다. 네가 아무 일이 없다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구나. 원, 제과제빵 대회에 나가는 게 이렇게 위험한 일일 줄이야.”

아버지는 진혁이 어떤 일을 했는지보다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먼저 생각해주었다. 아주 작은 화재로,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고 대답해도 그 걱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진혁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아버지.”

은빛 카트를 끌고 나온 웨이터가 모두의 앞에 접시를 하나씩 내려놓았다.

『아뮤즈 부쉬는 푸아그라입니다.』

갓 구운 빵 특유의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딱딱한 토스트 빵과 삼각형 모양으로 잘라내 얹어 놓은 핑크빛 푸아그라. 그리고 씨를 빼서 건조한 후 으깬 검보랏빛 푸룬(서양 자두)이 흰 접시 위에 놓여 있다. 진혁은 푸아그라의 향을 슬쩍 맡아보았다.

‘확실히 지방 함량이 높아.’

푸아그라는 에스카르고와 트러플과 함께 프랑스의 3대 진미 중의 하나라고 일컬어진다. 인위적으로 거위를 살찌워 간을 부풀려 지방간이 되도록 만드는 잔혹한 요리로, 몇몇 국가에서는 동물보호법을 이용해 규제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흔히 먹을 수 있다.

진혁은 흥미롭게 푸아그라를 살폈다.

‘이건 내가 다뤄보지 않은 식재료야.’

겉은 갈색이고 속은 연분홍색이다. 언뜻 보면 순대에 곁들여 나오는 돼지 간과 비슷하지만, 질감이 크림처럼 부드러워 헷갈릴 일은 없다. 그는 나이프를 들어 파삭파삭한 빵 표면에 푸아그라 파테를 발랐다.

“푸룬이랑 같이 먹어.”

마리오가 조언을 해주었지만, 일단은 푸아그라 자체의 맛을 느끼는 데에 집중했다.

아버지는 옆에서 마리오가 조언한 대로 푸아그라와 푸룬을 동시에 빵 위에 바르고 있다.

“그건 사도야. 푸룬을 같이 먹는 것보다 빵하고 푸아그라만 같이 발라 먹는 게 더 낫다고.”

“각자 취향대로 먹으면 되지, 뭘.”

강 씨 형제의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두 아들이 바로 항의했다.

“아니에요, 엄마! 당연히 푸룬을 같이 먹어야죠. 새콤씁쓸한 맛이 베이스로 깔리면서 느끼는 농후한 지방의 풍미가 중요해.”

“새콤한 맛 없이 푸아그라랑 빵을 먹어야 진정한 푸아그라의 향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어머니.”

둘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격렬하게 토론을 시작했다.

“이 요리를 만든 쉐프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애초에 접시에 푸룬을 내놓지 않았겠지. 이미 푸룬은 쉐프에게 선택받아 여기에 있어. 요리를 직접 설계한 쉐프가 의도한 대로 먹어야 요리가 가장 맛있어지는 거라고. 쉐프의 의지를 따르면 필연적으로 푸룬을 곁들여 먹어야 해. 그것도 한입에!”

평소에는 사이좋던 형제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혁이 피식 웃었다.

“임진혁, 어떤 게 맛있냐?”

“아저씨. 푸룬을 같이 먹는 게 맛있죠?”

임운정이 중얼거렸다.

“…나와 느이 엄마가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을 것인지, 볶아 먹을 것인지 싸우던 것과 비슷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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